낭산 - 신의 숲, 왕의 산
김호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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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어떤 기억이 있으신가요경주 단체 사진이 있는 제 세대 분들도 있으실 테고<나의문화유산답사기읽고 방문하신 분들도 있으시겠지요물론 고향이시거나 근무처이시거나 현거주지이시거나 각자의 의미가 있는 장소이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여러 장면들이 있는데어느 해 한 겨울 경주에 무척 많은 눈이 내린 날 방문한 불국사는 아주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가장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합니다바쁜 친구 덕에 한 여름에 남산 등반을 하기도 했습니다안전요원들이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걱정하던 다정한 눈빛들도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가 터지고 경주 동국대 의대 교수이자 환경연합 활동 하시는 김익중 교수께서 <한국 탈핵>을 출간하시고 북토크 겸 강연하실 때 뵙고 경주에 다시 내려가 보았습니다수많은 분들의 추억과 시간이 흐르는 땅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몹시 분노했습니다.

 

장소를 방문하는 일은 책을 읽는 일과 비슷합니다일독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 한정적인 것처럼 방문으로 알 수 있는 것들도 제한적이지요오늘은 익숙한 듯 싶었던 경주에 낭산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배웁니다.


김호상 저자는 역사고고학 연구자로서 낭산*의 가치와 역사성을 알리기 위해 문화유산해설서인 이 책을 출간했습니다오래 전 <언덕에 올랐다 산에서 내려온 잉글리시맨>이 생각나는 도심의 낮은 구릉을 경주에 사시는 분들은 산이라고 오래 부르셨습니다예전 모습은 많이 달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산 이리 랑산의 지형이 이리가 길게 엎드려 있는 모습.

 

신라인들에게 낭산은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니는 성스러운 숲으로 추앙받았던 곳이며높은 격을 지닌 나라의 제사를 지낸 진산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동산이지만 (...) 신라문화의 깊은 금광 같은 곳.”

 

낭산의 행정수도는 경주시 보문동입니다동네 이름도 역시 보물 가득한 명칭답습니다무려 실성왕 12(413)년부터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고선덕 여왕릉사천왕사지능지탑마애불황복사지 삼층 석탑이 낭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왕들의 장례를 지낸 곳이고 비를 세운 곳이고 왕사를 포함한 절들을 지은 곳이니 낭산은 신라시대 경주의 행사장이자 광장이자 무대였습니다신화와 역사의 경계처럼 느껴지는 솔거양지월명최치원과 같은 인물들 역시 낭산에 역사적 흔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경주 낭산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니…… 많습니다잘 알고 역사기행을 다니시는 분들도 계시고 조사 연구하는 분들의 글도 있고 보도 자료들도 있습니다명칭 하나를 안다는 것이 경주라는 세계에 대한 경계선을 쭉 늘려 줍니다.

 

역사기행을 가보면 좋겠습니다모임을 통해 공부하고 가도 좋고 문화해설사와 함께 해도 좋고 가족과 느긋하게 다녀와도 좋겠습니다꼭 많이 배우고 봐야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사겸사하는 마음으로 옛날 옛적 신라인들처럼 신화와 현실의 경계에서 상상하고 소원하고 즐겁게 문화를 누리는 경험이어도 좋겠습니다.

 

판데믹 시절에 국내의 여러 장소들과 관련해서 새로 계발한 관광포인트들만이 아니라 역사 이야기를 발굴해 주는 책들이 많아지면 반갑겠습니다차를 달려 남한 한 바퀴 돌고 답답하다갑갑하다 하소연한 시간들이 조금 부끄럽고 후회되는 독서였습니다.

 

"모든 여행은 정확히 그 속도만큼 더 따분해진다."  미술평론가존 러스킨

 

귀한 시공간인 경주와 거주민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경주 땅 속에 묻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경주방폐장 에 대한 대책도 수명이 진작 끝난 월성핵발전소에 대한 대책도 하루빨리 잘 마련되길 더불어 바라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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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버스 - 3,000년 아랍 역사 속을 달리는 한 권으로 끝내는 역사 버스 시리즈 4
이희수 지음, 한창수 그림 / 니케주니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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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이슬람과 아랍 역사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이 많으신가요. 한국은 아주 오랫동안 일본과 미국의 시선으로 본 역사를 자국민들에게 교육해왔고 그 덕분에 세계사에 관해 저는 아주 무지했습니다.

 

유럽으로 유학을 가니, 서유럽이긴 했지만 미국 시각에서 벗어난 다른 역사가 좀 보였지요. 그래도 여전히 유럽 중심 역사이긴 했습니다.

 

귀국한 뒤 이리저리 찾아봐도 미국과 유럽, 즉 패권국가들 이외의 역사에 대해 읽고 배울 책들조차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르몽드(Le Monde diplomatique)*지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다고 해서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ilemonde.com/

 

*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 약칭은 르 디플로. 국제 뉴스를 다루는 월간지.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 중. “세계를 보는 창노암 촘스키 https://www.monde-diplomatique.fr/

 

그래서 세계사에 대해 세계의 현실에 대해 잘 알게 되었나,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받은 훈련이 부족하고 각 나라들에 대한 기초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고 공감할 감수성과 기억이 없으니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거의 유일한 창이라 의무교육처럼 읽고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지하철에서 르몽드지를 읽는 교복 입은 학생을 보고 반가워 말 걸 뻔하다 간신히 자제한 적도 있습니다. 현실 역사 속의 인류로 말고, 다른 한편 우리는 이슬람과 아랍에 대해 아주 익숙하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 속 테러납치범들은 모두 이들이었으니까요.

 

아랍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성서> 속의 같은 백성이야. 함께 유일신을 믿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막 땅에서 2천 년간 유목과 목축을 하며 물과 먹을 것을 나누고 평화롭게 살아왔지. 아마 역사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해 온 민족도 없을 거야.”

 

유대인과 이런 역사를 나누었는데, 유대인 자본이 많은 영화계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모순이 참 현실답습니다. 적이 있어야 힘이 나고 전쟁이 있어야 수출이 매끄러운 군산복합체 거대산업을 운영하는 미국은 20019.11 비극 이후 내내 자본을 투자하고 스타 배우들을 내세워 이슬람과 아랍에 대한 문화적 적대성을 키워왔습니다.

 

다른 한편 본토에서 미국의 꼭두각시 대변자 역할을 잘 할 정권 수립에 애써 오다 다 실패하고 얼마 전 그야말로 야반도주하듯 도망을 갔지요. 20년 동안 미국이 선전한 세상에서 언젠가 살게 될 거라 믿고 살았던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요.

 

너무 미국 얘기만 하는데 이 시기에 저는 영국에 살았습니다. 부시의 푸들이란 멸칭으로 불리던 총리는 천만 명이 넘는 영국인들이 반전 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학교 직원이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인권변호사 출신 한국 대통령도 참전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났다고 알려 주기도 했지요.

 

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도 아니고 그들에게 동의하는 바는 전혀 없습니다.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 뭘 하는 것도 참 없습니다. 19억 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대략 3,000년이 넘게 지구상에서 함께 살았는데 가장 친숙한 이미지가 검은 피부의 테러납치범이라니…….

 

무함마드는 (...) 종교적 명상을 하면서 마음속에 품어 왔던 사회의 악습과 모순에 대해 고민하던 중 610년에 알라의 첫 계시를 받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계시는 2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단다. (...) 계시를 받은 내용을 아내에게 예기하면 아내가 그것을 받아 적었어. 그게 <꾸란>이야.”

 

압바스 왕조는 아랍 사람들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거든. (...) 무슬림이라면 아랍 사람이든 아니든 똑같은 세금을 징수했지. 이슬람을 믿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원칙을 실천한 압바스 왕조는 아랍 제국이 아니라 진정한 이슬람의 가치를 실현한 이슬람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단다.”

 

어쨌든 친미라면 지지 않는 한국에서도 미국 뒤처리에 동참하는 한편 한국에 조력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대의로 무사히 탈출시켜서 한국 땅에서 살아갈 준비와 대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될 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아주 쉬운 이 책으로 가족 모두와 읽고 배워봅니다.

 



역시나 여기저기서 걸러지고 취사선택된 언론에서 뿌려대는 이미지와 기사 내용들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불의합니다. 게으른 제 탓도 크지만 여성에게 생지옥과 같은 세상이란 공포가 심했는데, 나라 별로 여전히 계급과 자산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은 있지만, 어쨌든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직접 선거를 통해 여성 대통령, 총리를 선출하고,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등 개혁 조치들이 점차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이슬람 여성을 다른 각도로 바라봤으면 좋겠어. (...) 항상 떠올리는 억압과 폭력, 전근대성의 이미지는 종교적인 문제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니까. (...) 이슬람 사회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양성평등의 사회로 바뀌고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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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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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에 담은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번역본의 제목. 그 점이 아쉽다.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2020)

  

<세계지식포럼> 덕분에 미뤄뒀던 책을 일단 펼쳐 보았다아주 오래전 대학원 강의에서 만난 존 롤즈의 정의론도 띄엄... 띄엄... 겨우 떠오르고 여타의 지식정보도 생각도 산만하단 생각에 일독을 결정했다.

 

마침 대선 정국으로 들어선 한국 정치계에서는 능력주의에 관한 어떤 기본적인 이해에서 출발한 건지 모를 능력주의를 언론 패널 이외에 별 다른 경력도 없는 야당 대표가 주장하여 몹시 빈정이 상해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만난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논문에는 참 이상한 예시들이 많았다언제나 무언가 부족한 상황에서 골고루’ 나누다 다 죽는 것이 더 나은가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살리는 게 옳은가뭐 그런 논조.

 

듣다 지쳐서 왜 매번 이러냐고이건 원하는 답을 위한 설계된 질문 아니냐고왜 세상을 보는 눈이 이 따위(?)냐고 발작하듯 말이 튀어나온 적이 있다그리 친하다는 생각도 동류란 의식도 없던 교수님이 우리랑은 논조의 전제가 많이 다른 것 같아.”라고 말해서 놀랐다.

 

어쨌든 나는 그런 류의 분석도 질문도 결론도 아주 별로이다만인의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제한된 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은 자신의 노동력 혹은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고그런 행위로 온전히 사적인 소유물로 만드는 성취만이 정당하다는 쪼잔한 논리.

 

현실에서 여전히 큰 목소리를 가진 능력주의는 물론 이런 소박한 수준이 아니다샌델이 지적했듯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획득한 성공에 대해 사회는 아무런 간섭을 할 수가 없다.

 

그 논리가 성립하려면 성공의 모든 공덕이 주체 혼자의 재능에 한정한 이라는 확인이 필요하다물론 그런 일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분석이다어쨌든 능력주의에 따르면 덜 성공한 사람들을 배려할 이유는 전무하다따라서 능력주의를 믿는신념으로 삼은 이들에게 연대는 무의미하다.

 

실생활 공간에서 공중 부양해서 아무 도움 없이 뭔가를 성취한 뒤 다시 착지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샌델은 능력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은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고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그것 이외에 인류 전체가 모두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현상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국적사회지역가정가족학교친구 그리고 살아가면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들이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는 모두 다른 출발선을 세심하게 살펴 잘 맞춰 주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는 그런 상냥한 역할을 하면 이상적일 것이나그런 호시절은 인류가 전쟁을 멈춘 적이 없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그러니 결심만 하면 바뀔 수도 있는 개인들이 좀 더 겸손하고 관대하면 좋겠다.

 

능력을 이유로 부디 타인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한다각자의 능력의 차이란 것도 알고 보면 별반 대단하지 않을 뿐더러어떤 인간도 능력의 우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연령에 따라 변하는 체력은 물론이고 아이들과의 지력 대결에서 늘 이길 수 있는 어른도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도혼자 뭘 성취하는 것도 힘들지 않은가그러니 비교비난순위탈락배척하는 세상 말고 좀 더 다정한 공적 삶을 상상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평소 게으르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는 내가 하는 말은 설득력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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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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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교수의 책입니다유학 중에는 피할 수 없어 라틴어 공부를 잠시 하긴 했지만 그리스어보다는 쉽다는 위안 살면서 그것도 한국에서 라틴어 책을 읽고 강의를 막 듣고 싶고 저자의 팬이 될 줄이야최고로 유쾌한 뜻밖이고 우연이고 조우였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믿지 않지만삼위일체론을 연구하신 큰 이모부 논문도 재밌게 읽었고존경하는 수녀님과 추기경과 교황도 계시고동네가 가까웠으면 그 교회에 다녔을지 모를 무척 멋진 목사님도 내내 좋아하고스승처럼 여기는 불교계 승려도 계시고존경하는 유학자도 계시니어떤 의미로 저는 무척 종교적인 무종교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가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였던 건 궁극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뭔가 좋은 점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이미 무엇에든 믿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안식처에 대한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겠지요.”

 

한국적 특색을 지닌 종교계의 모습에 때론 충격을 받기도 하고 동의할 수 없는 주장들도 만나지만한동일 교수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불안도 두려움도 없이 다 반갑게 듣고 싶습니다공감과 동의를 기대했는데그 이상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나 다시 한 번 반합니다참 어려울 이야기를 참 쉽게 들려주십니다.

 

교회는 대중이 교회와 멀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세속주의 때문이라고 말하지만사실은 박해와 시련 때문이 아니라 교회 스스로가 사람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 인간은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신에 대해서조차 조작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런 모순된 상황을 신앙으로또 종교로 받아들이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만 가진 이들이 아닌 목사 혹은 신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종교인들의 지위에 관해 설명해주시면서 믿지 않는 혹은 믿지 못하는 이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분석하듯 명쾌하고 친절하게 들려주십니다물론 진심을 담아 잘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 주제는 종교와 믿은 이들에 대해서겠지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종교를 밝히고 큰 성당이나 교회사찰을 비롯해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경배 드리는 성전을 찾아갑니다기도하거나성경이나 불경을 필사하기도 하지요그러나 그 같은 모습 자체가 그를 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 태도가 그 사람을 보여줍니다자기의 종교적 신념이나 가르침이 드러나는 어떤 행동은 우리 사회와 이웃에 그 종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종교인들에게 아무런 불편함을 주지 않는 종교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은 최고로 강력한 전도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라틴어 수업>에 홀리신 분들은 언제가 되든 꼭 읽게 되실 책일 지도.



....................................................

 *     O vos omnes qvi transitis per viam,

attendite et videte si est dolor sicvt dolor mevs.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이 글귀 속 비데테videte’라는 말에 주목해봅니다이 말은 보다라는 의미의 비데오video’의 명령형입니다이 동사에서 바라봄직관을 의미하는 명사, '비시오visio'가 파생하고이 명사는 영어의 비전vision’이 됩니다고통 속에 있던 예수는 우리에게 보기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보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바라봄viso’에서 시작됩니다개인의 고통도사회의 아픔과 괴로움도 그 해결을 위한 첫 단계는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여기가 모든 이해의 출발점입니다우리는 국적성별나이종교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를 수 있지만인간이기에 분명히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바라봐야 하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같음입니다.

 

나아가 바라봄이 늘 타인을 향한 것이라면 타인의 단점잘못된 점만 쉽게 보게 되어 결국 상대를 탓하는 마음이 생깁니다그래서 타인을 바라보는 만큼 더 절실히 주의를 기울여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세상의 조화로운 질서에 관해 연구하려면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치열하게내면을 바라보는 눈앞에 등불을 켜서 들어야 합니다들추고 싶지 않은 아픔이나 불편한 양심혹은 잘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고통은자기애와 만나면 이기적인 마음으로 변하기 쉽습니다또한 이런 감정들은 회피에 능해 자꾸 안으로 숨어들기 때문에 스스로 자주 불을 밝혀 바라봐야만 합니다.

 

질문하는 인간에게는 분명히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답이 온다는 것을 믿으며, ‘나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사실 제게는 정말 하기 어려운 일하기 싫은 일이 나의 부족함과 실패를 마주하는 것이었는데요저는 이제야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실패와 실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야 합니다한없이 작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우고 감추려고 해도 그 기억은 결정적인 순간에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다가와 저를 괴롭혔습니다무엇보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실패했던 그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고통스러웠지요거기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그 순간에서 벗어나야만 했는데그러려면 나의 실패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마주하기 싫은 것을 마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그렇게 보기 싫은 것을 마주해나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며 일상의 진보가 아닐까 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돌아가신 부모님과 그 연배의 세대가 존경스러울 때가 많습니다그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라각자 어떻게 주어진 삶을 살아냈을까에 대한 경의라고 해야겠지요어려운 시대에 성장한 것에서부터 직장을 얻고결혼을 하고아이를 낳아 키우고장성한 자녀를 결혼시키고자신의 노년을 맞기까지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을 겁니다어디에도 어려움을 호소할 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삶의 무게를 지고 걸어온 분들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은 각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막을 걷는 사람은 사막에 난 길을 보고 걷지 않는다고 합니다바람이나 비동물 때문에 변하는 길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길을 걷습니다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바라보는 것저는 그것이 아마도 사막에서 바라보는 별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어떤 별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가는 걸음의 방향은 달라질 겁니다그 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 길잡이가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지켜야 할 누군가사랑하는 누군가존경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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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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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 무산되고 혼자 읽은 책 2>

 

제목을 보는 순간 반발심이 감정적으로 불쑥 올라오지만곧 수긍하고 마는 현실에 다름 아니다측정할 수 없는 모든 정성적인 것들도 정량화 시켜야만 그 가치를 일부라도 인정받는 시스템은 근대 이후로 탄탄하게 구축되어 왔다.

 

우리는 무심코 생명의 가치를 절대시하고 신비화하기도 하며 위무하고 살지만현실의 생명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촘촘하게 세심하게 가격이 매겨져 있다.

 

해당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태생적 조건사회적/사회화된 조건은 물론이고현재 연령과 건강상태 등등 더 이상 분석할 정보가 남지 않을 때까지 가격 측정의 과정은 이어진다.

 

어느 국가인지노동자가 조합에 가입되어 있는지화이트칼라인지 블루칼라인지어떤 업계인지와 같은 요인들이 모두 추정치에 영향을 미친다각기 다른 연구에서 매우 상이한 추정치가 도출된 가운데 2000년 미국의 비용편익분석 전문가들이 국내 연구를 바탕으로 합의한 생명 가치는 1인당 610만 달러였다.”

 

코로나 판데믹 이전에도 일 년에 천 명이 넘게 일하다 죽임을 당하고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게 된 분들은 원청회사에서 열심히 찾아 간신히 법의 테두리에 맞춘 가장 싼 보험금이 가격표로 붙어 있다.

 

어느 대기업에선 일인당 500만원으로 맞췄다는 보도를 보았다그렇구나그렇게 생각하는구나모든 인간은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단 한 번도 유의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 읽고 싶었던 책을 심각하게 공부하듯 읽고 필사하며순진하고 무지한 채로 안전하게 남아 있어 보려던 가림막들을 마저 털어낸다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하지만 확실한 진실이다.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가격표가 매겨진다는 사실 


이러한 가격표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이러한 가격표는 투명하지도 않을 뿐더러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 


이런 불공정함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높은 가격표가 붙은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적절한 생명 가격표를 책정하는 것을 논의 할 때에도 그 생명의 가치는 순전히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현재의 1000달러가 10년 후의 1000달러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매우 명백하지만과연 오늘날의 1000명이 10년 후의 1000명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생명 가격표가 일상적으로 매겨지는 것은 현실이므로 우리는 생명가치의 평가 방법을 반드시 직접 결정해야 한다.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우리는 반드시 가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비극을 애도하고 이후의 보상 문제에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9.11 이후 사망한 약 3000명의 희생자들에게도 모두 가격표가 붙었다금전적 보상에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단지 애도할 때는 희생당한 모든 분이었다가 보상 절차에는 갈가리 찢는 행태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존중과 대접인지 황망할 뿐이다.

 

금액은 25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매우 컸다.”

 

건강에 가격표를 매기는 일은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매우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 운전 교습 강사는 만약 차로 보행자를 치었을 때 돈을 아끼려면 후진했다가 마저 일을 끝내라라며 매우 잔인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9.11 희생자 보상기금도 부상자에 대한 보상금이 사망자 보상금보다 많은 경우가 있어 운전 교습 강사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이 경악스러운 내용이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비춰주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생명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이제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가격을 찾기 위해선 인간은 내가 이해하는 개념 범주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역설적이게도 그런 의미로 모든 인간은 비로소 다 다르다는 공식 인정을 받은 셈이다.

 

어차피 가격표가 낙인처럼 부여되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계산 기준과 과정이 공정하도록 확인은 잘 해야 한다그런 방식으로라도 인권과 생명은 좀 더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 500만 원짜리 생명보험을 합의도 없이 원청 기업 혼자 결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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