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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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라는 대본 제목을 보고 나나라는 인물이 나올 거라 생각했으니 나는 무척이나 심층적 상상력이 부재한다고 봐야겠다잠시 내 상상 속에 등장했던 나나 대신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어버린 십 대 두 명이 등장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영혼의 실재성 여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 존재가 쪼개지는 경험을 하게 된 걸까어린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초를 내용을 모르고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살아있는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을 사냥하는 존재가 있다고 해서 처음엔 무서웠다평생 처음으로 영육이 분리된 황당한 상황인데 딱 일주일의 시간만 준다그 시간 동안 육체와 재결합에 실패하면 저승행이다.

 

그런데가장 소름끼치는 설정은 영혼이 빠져 나온 육체가 아주 멀쩡히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후유증도 없고 의식도 또렷하고 아주 잘 산다심지어 그동안 영혼 탓에 멈칫거렸던 윤리적도덕적 고민을 하지 않아 거침없이 이익이 되는 지에만 관심을 두고 행동하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영혼 없이 살아요!” (...)

선령은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생각보다 많아.”

 

영혼 없는 인사영혼 1도 없네영혼이 가출했네. (...)

뭐만 하면 영혼을 갈아 넣었대.

그렇게 쉽게 갈아 넣을 수 있는 거,

차라리 없이 살면 좀 어때?”

 

영혼이 분리된 채로도 저렇듯 아무 변화가 없다니. (...)

영혼은 서랍 속 낡은 볼펜 같은 게 아닐까?

있어도 그만없어도 그만인,

그야말로 잡동사니 말이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듯이 살아간다? (...)

아무런 근심조차 없다는 뜻이잖아.

그럼 지금껏 영혼이 있을 때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뜻인가.”

 

영혼이 없는 육체는

편법 앞에서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간단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외부의 요인들이 있지만 1차적으로는 가족과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폭력과 학대가 만연한 그런 관계를 차치하고 표면상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외형이 유지된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으로 사는지는 보여 주지 못한다.

 

안타까운 점은 관찰력이 좋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고 자신을 관리하고 가족의 행복에 기여할만한 성취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이기적으로 굴지 않아 많이 아프게 되고결국엔 과부하가 걸려 자신을 온전히 유지할 힘도 없이 영육이 분리되고 마는 것이다.

 

부모라고 해서 다 잘 하고 다 잘 알고 자식을 세세히 배려하고 마음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일이나 어떻든 보호자의 보호와 양육이 필요한 시기의 아이들이니 부족한 점들은 부모이든 사회이든 방임이라 부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삶은 저마다 무게를 지니고 있어. (...)

누구도 남의 다리로 땅을 디딜 수는 없어.

그 무게는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라는 뜻이지.”

 

사실 너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

상처도 마찬가지야.

부러지고 깨지고 다 벗겨졌는데도……

전혀 안 보일 때가 있어,”

 

인간은 실시간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자는 모습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스스로의 것임에도 보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았다.

깊은 심연 속마음도 마찬가지다.

제 것이지만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

때로는 방치하고 모른 척한다.”

 

첫 인상과는 달리 무척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이다물론 마무리가 향해가는 방향이 그렇다고 해도 그런 분위기만으로 일상의 세세한 고민들이 해결되고 큰 걱정거리들이 사라지고 인간관계가 최선만을 위해 합의되진 않는다.

 

영혼이 분리되었든 재결합을 이루었든 육체를 가진 존재가 살아가는 세상은 힘들고 어렵고 극적인 경험을 통해 이룬 자각은 시간과 더불어 또 다시 자기배반을 거듭할 지도 모른다사람 사는 일 비슷하다는 말은 동시대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고래로 삶에 대한 고민과 문제는 다른 듯 비슷하게 반복되었고 누군가는 해답을 구하기도 했을 것이지만 또 수많은 이들은 현실에 갇힌 채 답 없이도 생존을 유지할 기술만을 터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평생을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사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인간이란 본디 쓸데없이 복잡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한 생명체니까요.”

 

인간은 느낌을 사실로 여기는 멍청한 오류를 자주 범해.”

 

사람들에게 비극적 결말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데에는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그 마지막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안도 때문이었다.”

 

그러니 영혼이 제 육체에 다가갈 수 없도록 결계가 쳐져 있는데 그 결계는 누가 왜 친 것일까영혼이 분리된 후 재결합하지 못하고 저승에 끌려간 영혼 없이 사는 육체가 사는 모습은 어떻게 변해갈까영혼 분리는 한번 겪으면 면역이 생기는 성장통과 같은 경험일까 아니면 일생 주의해야 하는 증상일까.

 

좋은 것바른 것옳은 것이상적인 것을 몰라 그렇게 못 사는 이들보다 알아도 변할 수 없는 이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얼마만큼이 제 잘못인지 따지고 싶지는 않다혹시 어느 순간 영혼이 분리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 해치우고 해결해야할 일이 끊이지 않을 때는 더구나 그렇다읽고 나니 야박하다 생각했던 일주일의 유예가 무척 다정한 제안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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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오패 - 공자의 시경(詩經), 사랑을 노래하다
한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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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국경선이 선명하지만 기록도 제대로 남지 않은 시대에 드넓은 토지를 강력한 하나의 왕권이 모두 잘 다스렸다고 하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다이유는 간단하다불가능하니까왕정을 디폴트 값으로 두면 왕정이 약화되고 지방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던 시대가 비정상과 예외가 되지만 나는 그런 역사관에 충실한 동조자는 아니다.

 

그래서 춘추오패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지방 제후들이 세력 다툼을 하던 시대그 다툼이 대단히 왕성해서 전국에 이르렀다는 현실적인 시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현실 중국이 강력한 일국 체계 구축을 위해 원치 않는 민족들과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를 아는지가 감정 이입이 강렬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황제>가 생각나는 이 이율배반. 미리 말씀드리면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다사서삼경도 사마천의 사기도 읽지 않은 채로 배경지식은 별로 없어도 당당히 읽어본다오패가 겨루는 이야기인가 했던 무지함이 부끄럽게가장 유명했던 오패다섯 명 -제환공진문공초장왕오왕합려월왕 구천 은 시기가 서로 다르다.

 

그나마 사자성어 관련 지식정보가 조금 있어와신상담(臥薪嘗膽)*과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의미를 이야기 속에 녹여 만나본다.

 

사기(史記)의 월세가(越世家)와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 나온 말이다. (...) 부차는 아버지의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가시 많은 땔나무 위에 누워 자며 자신의 방을 드나드는 신하에게 이렇게 외치게 하였다. “부차야너는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夫差志復讎朝夕臥薪中出入使人呼曰: “夫差而忘越人之殺而父邪”)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9198&cid=40942&categoryId=32972

 

** 손자》 〈구지(九地)에 유래하는 말이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싫어하지만 한배에 타서 강을 건너는데 풍우를 만나게 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돕게 된다(夫吳人與越人相惡也當其同舟而濟遇風其相救也如左右手)."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8441&cid=40942&categoryId=32972

 

현대전은 전쟁 상대와의 물리적 거리가 아주 멀어져서 결심만 하면 대륙 간에 미사일을 날리기도 하고고전적인 무기와는 전혀 다른 전자파 공격을 할 수도 있다내 손에 상대의 피를 묻히지 않고도내가 든 무기가 상대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느낌을 몰라도 된다그래서 전쟁은 영상자료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러니 현대전에 참가하는 이들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과 관료들이다물론 군인과 겸업을 하는 이들도 많지만 춘추오패에서 말 달리며 무기를 휘두르며 작전을 짜고 목숨을 내걸고 전투에 임하는 그런 이들은 더 이 상 아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소설을 읽으니 모든 일을 제 손과 제 머리로 유연하게 다 해야 하는 이 시대에는 누구를 만나고 함께 도모하는지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결정짓는 큰 원인이라는 실감이 가득하다그러니 사람들이 자신의 제후군주장군에게 기대하는 것도 사람 잘 알아보고 도움이 되는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 안목(眼目) - 이었을 것이다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에 달렸으니 삼고초려가 할만 했다.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인물군상이 많은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다니놀랐지만 읽다 보면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천지에 가득하다인간이 인간성의 각축을 벌인다고 할까이 시대의 기록물을 잘 분석하면 인간성에 대한 무수한 보고서가 나올 듯하다형태를 달리하는 이 각축전은 지나간 일일 뿐일까재미도 없는 대선 각축전 소식보다는 108배 정도 더 재미난 이야기임을 분명하다.

 

지나간 사실을 기술함으로 장차 다가올 일을 안다. (술왕사(述往事지래자(知來者)”

사마천 <사기>

 

소설의 배경이 되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이자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지 못한 것들을 교육하고 저술한 공자의 저술들도 상당 포함되어 있다당대 패자들은 잠시 획득한 권력과 더불어 모두 사라졌고그 뜻을 한 번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떠돌던 사상가의 책과 메시지가 천 년을 넘어 이어지며 성인으로 추앙되는 것은 대하소설보다 더 기막힌 결론이고 대조이다.

 

인간의 수명은 그야말로 조족지혈매순간 스치는 바람처럼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다. (...)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손톱만큼도 없다. (...) 인생이란 게 어느 하루 교외로 소풍 가서 즐기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삶의 허망함과 기록의 불멸성을 다시 절감한다아무리 감탄을 거듭해도 나는 읽기만 할 뿐이지만.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무소유법정***


*** 문득 생각난 법정 스님. 유불도교를 오가는 신비한 날이다. 개천절이 다가와서 그런가.

 

생사와 흥망성쇠를 과식하듯 채워 읽고 나니 감상은 오히려 허허롭다길어진 10가을의 첫 주말 다들 무탈하고 느긋하시길 바라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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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차별, 처벌 - 혐오와 불평등에 맞서는 법
이민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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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전까지 자신이 차별주의자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살았다오히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적지 않다고 자신하는 편이었달까그리고 본문을 읽기 전에 들어가는 글에서 무릎이 털썩 꺾이는 충격적인 자각을 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그저 복잡하게 애매한 사람이다.”

 

김지혜 저자의 일화이기도한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나도 종종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외에도 고쳐야할 언어표현들은 계속 등장했다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나는 변명의 여지없는 차별주의자였다.

 

모국어라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세상에는 의지를 갖고 배우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밀려나는 일들이 많다. 2년간 적어도 한 발이라도 지향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을까.

 

인간은 긴 역사 동안 수많은 분류 기준을 만들어왔고분류 기준을 근거로 한 차이를 이유로 폭력과 억압을 멈추지 않았다이 같은 흐름이 완전히 역전된다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시대에 따라 폭력과 억압의 대상만 변화할 뿐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외집단을 범주화하고 일반화하고 더 나아가 비인간화하는 본성이 단기간에 교화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근본적으로 인간은 차이를 발견하고그 작은 차이로 차별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차이가 차별로 변질되는 지적과 논쟁은 20세기 학회에서도 논의가 적지 않았다그 시기에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면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데 쓰레기 치우는 얘기한다는 반응을 받은 것처럼내가 속한 작은 세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과 세상의 반응은 다른 세상의 일처럼 달랐다.

 

그래서 2021년 판데믹과 비대면의 엄중한 시절에 더욱 도드라지고 가시화되는 현실의 차별에 대해 섬세하고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짚어주는 이 책을 만나 반갑고 감사하다더구나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후 좀처럼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던 차별금지법이 얼마 전 정식으로 발의되었단 소식을 들어 시대적으로 시의적절하고 사적으로 간절한 심정에 의지가 된다.

 

이민규 저자가 담은 내용은 이전의 논의와 현재의 현실 모두를 포괄하는 총괄적 내용이기도 해서 나의 조각난 지식 정보를 쉽고 자세하고 더욱 면밀하게 복기복원보충시켜 주는 친절한 텍스트이다학문과 당위로 접근한 나와 달리 차별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저자의 깊고 진지한 고민에 부끄럽고 뭉클했다.

 

오랜 세월의 고민이 시야를 좁고 깊게 하기보다는 인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전체적인 사회 구상으로 향하는 내용이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설득하게 위해 실제 사례들을 역사적인 중요성에 기반을 두고 짚어준 것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인류 역사에 만연한 폭력을 읽는 일은 쉽지 않지만 알고 기억해야할 것들이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문제의식과 연계하여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미국의 민권 변호사로서 한국의 독자들은 전혀 알 수 없었던 인종 차별 피해자인 에밋 틸 피살사건과 성차별의 피해자 찰리 하워드 사건을 알려 주어 제한적 가치가 아닌 보편적인 장치로서 법의 의미를 고민해보았다.

 

“노숙인이나 장애인이주 노동자성전환자가 극단적인 고통을 받는 사회에서국민의 대다수가 피해 의식과 좌절감으로 가득한 세상에서어느 계층에서나 불평등이 만연한 환경에서 혼자만 초연하게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리 없다온 세상이 울고 있는데 그 비극이 나만 피해 갈 리도 없다.”

 

아무리 저자가 쉽고 구체적이고 면밀히 분석하고 설득력 있는 제안을 해주어도 현실의 어려움과 차별 발생의 다양한 원인들 등 관련된 복잡성은 간명해지지 않는다그러니 복잡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출발이기도 하다단순하게 동조하고 심정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더 진지하게 차근차근 접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다 한 가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화법에 열광한다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탓도 있지만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일 것이다얼마나 편해지는지실제로 전문가의 조언을 접했을 때 뇌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기능을 아예 멈추기도 한다.”

 

오래 전 영국 유학을 시작할 때 학교에서 처음 받은 오리엔테이션은 차별적 대우를 받았을 때의 대처법이었다차별적 언어와 행동폭력을 구분해서 필요하면 반드시 신고하고 처벌에 이르는 강력한 절차가 존재했다한국에서 경험해 본 적 없는 교육이라 사회문화적 차이를 느꼈는데이후에 생각하니 차이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부재한 교육이었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차별과 불평등의 시대에서 차별금지와 평등의 시대로 나아가는 모습이다본 회의 심의를 기다리는 두 법안 <평등에 관한 법률안>과 <차별금지법>이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여 미래의 모습을 바꾸는 그런 변화이길 바란다사적인 선의나 운에 맡기지 않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사회안전망의 그물의 촘촘히 하는 그런 입법의 역사로 기록되길 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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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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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부터 분류내용까지 여러 장점이 있다혼자 읽는 것보다 같이 읽고 얘기 나누는 것이 좋은 나는 이 책을 다양한 내용으로 지인들에게 권해 보았다제목만 보고 인문학 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이란 짐작하는 이도 있고과학책이라 더 반갑게 읽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일독 후에 김초엽 작가가 완전히 다른 존재와의 접촉이나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거나혹은 타인이 나를 이해하게 될 때 느끼는 인식의 전환인식의 확장이 있잖아요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라고 한 문장이 생각나 반갑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SF팬이었던 친구는 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이 경쟁과 싸움보단 협력과 연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해온 SF의 메시지라고도 했다부디 그 협력과 연대가 인간 한정이 아니기를 바라는 요즘이다환경을 망가뜨리는 속도가 줄지 않는데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을까.

 

"이 공격성에 관한 비용대비 이익비중을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아도 친화력이 호전성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도덕 원칙을 고심해서 세우고 다양성을 잘 배워 익히지 않고도 운이 좋아 우연히 환경이 마련된 시절이 있었다덕분에 다양성과 관용에 익숙해진 경험을 했다영국에 유학을 가보니 동기가 25명인데 국적이 17개였다세상엔 거의 유엔 가입국만큼 다양한 영어가 존재했고우리는 인간이라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다 달랐다.

 

"우리는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할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사회화되면서 정답과 최선이라 여기던 많은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다살아가는 일은 온통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반복되는 일이었고덕분에 한편으로는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고다른 한편으로는 필요하기 때문에 남은 관념이 구체적 현실의 모습으로 완성되며 퍼즐이 채워지는 효과도 있었다.

 

우리는 큰 규모의 집단 안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종이다.”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늘 도덕과 윤리의 하한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옳다고 믿던 태도가 함께 잘 살기 위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고무척 부담스러웠던 배려와 돌봄의 가치를 그제야 깨달았다. ‘비용편익계산처럼 정성적인 모든 것을 정량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류 사회와 대비되는 정성 평가법 수업도 들었다동일한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눈으로 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은 논쟁이 불필요한 팩트이고 관용친절상냥함다정함은 생존의 필수 양식이었다타인과 맺을 수 있는 느슨하지만 견고한 최고의 연대는 우정이며이는 동종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종과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도 경험했다.

  

동물에 관한 글을 두 편 썼다시선The sense of being stared과 의식Animal consciousness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이란 외부에 노출된 중요한 감각 기관이자 에 다름 아니라는 것따라서 타인과의 관계맺음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가 보다viso’라는 것자신조차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담았다다 잊고 살다 이 책을 만나 복기해보았다.

 

"우리의 눈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이바지하도록 설계되었다."

 

태어나보니 이미 존재했던 개 오빠사랑했음이 분명한 함께 꼭 붙어 찍은 사진들함께 잠들고 혼자 깨어난 아침의 이별꼬리가 잘리는 학대를 겪고도 씩씩하게 자라 평생 고양이 좋다는 말씀 없으셨던 부모님께 막내 자식으로 효도하는 냥이 동생이들의 다정함을 떠올려본다.

 

동물과의 유대 그것은 우리종이 특별하고 동물들과 다르다는 믿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그런 까닭에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그토록 효과적인 비인간화 전술이 된 것이다.”

 

숫자로 평가되는 물질화되는 것들이 중요한 인간들이 서로를 비인간화하고 은밀하게 무시하는 동안이들은 다정함의 위력을 더 잘 알고 활용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함께 사는 인간을 인간 세상의 기준들로 판단하지 않고 한결같이 전면적인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감동과 자발적 돌봄을 끌어내는 이들이 진화적으로 앞섰다는 실증인지도 모른다.

 

"다정함이 승리의 전략임을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다."

 

주의참고문헌 재미있습니다포기 말고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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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5
이소호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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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함께 해도 이해할 수 없어 근원적인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나 자신인 경우가 있다타인은 다른 존재라서 그러려니 하는 관대함이 가능하고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한 오해와 무지도 당연한 귀결이라 여기면 그뿐이다하지만 최초의 이유가 무엇이건 자신과 불화하기 시작한 이는 해법도 중단도 탈출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불화의 시간이 오래되고 내용이 구체적일수록 생존을 위해 일정 정도의 자아 분리는 필수불가결하게 된다자신을 타인처럼 뜯어낼 수 있다고 믿어야 바라볼 대상으로 대상화할 수 있고그 얼마간의 거리만큼 불화의 속도는 느려진다이것이 가능하려면 자신만의 요령과 비법으로 거듭 시도와 실패를 거듭해야하는 실험의 주체자로 상당한 시간을 살아야 한다.

 

나처럼 대체로 평범한 불화를 겪으며 적당히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으로 견딜만한 경우와 달리존재의 구성물들을 철저히 분석하려는 이소호 시인이 불화를 대하는 방식은 신랄하게 해체적이고 지독스럽게 구성적이다전작에서 가족과의 불화에 결별을 고하고 난 뒤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듯 자아와의 불화를 총체화한다.

 

작품으로 남기로 한 이상원래 소호가 무엇이었는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이 시는 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나는 쉽게 불행해졌고 소비했고 앙상하게 껍데기만 남은 진짜 나를 남기고 싶었다읽고 싶은 소호를 배제하고 배열된 이 는 어떻게 읽히는가다행히 이 시를 쓰는 동안 나는 열렬히 사랑했고 처절하게 버림받았다조금 더 죽고 싶고 조금 덜 살고 싶었다이 작은 차이하나이면서 다수인영원히 반복되는 나는어쩔 수 없는 이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언급했듯이 시인은 분리와 해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기록과 작품과 전시와 설명의 방식을 동원해서 스스로의 불화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정리함으로써 재구성한다분명히 활자화된 기록이자 시의 형태를 유지하는 텍스트이지만일부의 구절을 떼어내어 유의미하게 보고 듣고 감상하기란 힘들다.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언가 있어야 하는 곳에 없는 것을 작업하던 이소호 시인은 데페이즈망 시는 이미 존재하지만 진정한 본질로 돌아가 오로지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들어보겠다고 밝혔다. (...) 매일 꿈을 꾸고 꿈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오브제를 현실로 가져와 창작자 말고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시인의 만족감 외에는 전부 배제된 초현실의 평행세계를 만들어고립시키고혼합시키고수정하고우연히 만나고크기를 변화하고개념에 개념을 붙이고이중 이미지를 덧대면서 비논리를 논리적으로 쓰는 것이다.

 

시집처럼 보이는 이 책은 참전 기록이자 전시도록이자 오직 독자와 관객의 참여가 더해졌을 때 감각적 감상이 작동하는 예술 공간이기도 하다우리가 알던 방식으로 명명할 수 있는 기법과 소재들 사진그림텍스트 로 구성된 점이 평범한 독자로서의 나의 접근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느꼈다.

 

최초의 일독 후에는 할 말이라곤 떠오르지 않았다가까이 쳐다본다고 작품 이면의 메시지가 패턴처럼 떠오르지는 않았다옅은 감각처럼 남은 감상을 차라리 그림이든 몸부림이든 고함이든 여타의 매체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표현 가능한 방식인가 생각해 해보았다.

 

글쎄시가 뭘까이미지를 포착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글씨로.”

 

한동안 책과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시인이 불온하게 직시하는 것을 나도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뭐라도 써보았다.

 

우리가 경험하는 뜨거운 불화들은 주체의 별스러움 탓이 아니다.

개별적 욕망이 끌어낸 사적 해프닝이 아니다.

오직 지난하고 집요하고 악의적으로 여성들을 조련하고 학대하는

폭력적 사회의 시선과 강고한 시스템을 고발한다.

 

우리끼리 통하는 언어로 쓰인 편지를 주고받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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