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오패 - 공자의 시경(詩經), 사랑을 노래하다
한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이야 국경선이 선명하지만 기록도 제대로 남지 않은 시대에 드넓은 토지를 강력한 하나의 왕권이 모두 잘 다스렸다고 하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다이유는 간단하다불가능하니까왕정을 디폴트 값으로 두면 왕정이 약화되고 지방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던 시대가 비정상과 예외가 되지만 나는 그런 역사관에 충실한 동조자는 아니다.

 

그래서 춘추오패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지방 제후들이 세력 다툼을 하던 시대그 다툼이 대단히 왕성해서 전국에 이르렀다는 현실적인 시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현실 중국이 강력한 일국 체계 구축을 위해 원치 않는 민족들과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를 아는지가 감정 이입이 강렬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황제>가 생각나는 이 이율배반. 미리 말씀드리면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다사서삼경도 사마천의 사기도 읽지 않은 채로 배경지식은 별로 없어도 당당히 읽어본다오패가 겨루는 이야기인가 했던 무지함이 부끄럽게가장 유명했던 오패다섯 명 -제환공진문공초장왕오왕합려월왕 구천 은 시기가 서로 다르다.

 

그나마 사자성어 관련 지식정보가 조금 있어와신상담(臥薪嘗膽)*과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의미를 이야기 속에 녹여 만나본다.

 

사기(史記)의 월세가(越世家)와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 나온 말이다. (...) 부차는 아버지의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가시 많은 땔나무 위에 누워 자며 자신의 방을 드나드는 신하에게 이렇게 외치게 하였다. “부차야너는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夫差志復讎朝夕臥薪中出入使人呼曰: “夫差而忘越人之殺而父邪”)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9198&cid=40942&categoryId=32972

 

** 손자》 〈구지(九地)에 유래하는 말이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싫어하지만 한배에 타서 강을 건너는데 풍우를 만나게 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돕게 된다(夫吳人與越人相惡也當其同舟而濟遇風其相救也如左右手)."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8441&cid=40942&categoryId=32972

 

현대전은 전쟁 상대와의 물리적 거리가 아주 멀어져서 결심만 하면 대륙 간에 미사일을 날리기도 하고고전적인 무기와는 전혀 다른 전자파 공격을 할 수도 있다내 손에 상대의 피를 묻히지 않고도내가 든 무기가 상대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느낌을 몰라도 된다그래서 전쟁은 영상자료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러니 현대전에 참가하는 이들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과 관료들이다물론 군인과 겸업을 하는 이들도 많지만 춘추오패에서 말 달리며 무기를 휘두르며 작전을 짜고 목숨을 내걸고 전투에 임하는 그런 이들은 더 이 상 아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소설을 읽으니 모든 일을 제 손과 제 머리로 유연하게 다 해야 하는 이 시대에는 누구를 만나고 함께 도모하는지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결정짓는 큰 원인이라는 실감이 가득하다그러니 사람들이 자신의 제후군주장군에게 기대하는 것도 사람 잘 알아보고 도움이 되는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 안목(眼目) - 이었을 것이다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에 달렸으니 삼고초려가 할만 했다.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인물군상이 많은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다니놀랐지만 읽다 보면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천지에 가득하다인간이 인간성의 각축을 벌인다고 할까이 시대의 기록물을 잘 분석하면 인간성에 대한 무수한 보고서가 나올 듯하다형태를 달리하는 이 각축전은 지나간 일일 뿐일까재미도 없는 대선 각축전 소식보다는 108배 정도 더 재미난 이야기임을 분명하다.

 

지나간 사실을 기술함으로 장차 다가올 일을 안다. (술왕사(述往事지래자(知來者)”

사마천 <사기>

 

소설의 배경이 되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이자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지 못한 것들을 교육하고 저술한 공자의 저술들도 상당 포함되어 있다당대 패자들은 잠시 획득한 권력과 더불어 모두 사라졌고그 뜻을 한 번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떠돌던 사상가의 책과 메시지가 천 년을 넘어 이어지며 성인으로 추앙되는 것은 대하소설보다 더 기막힌 결론이고 대조이다.

 

인간의 수명은 그야말로 조족지혈매순간 스치는 바람처럼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다. (...)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손톱만큼도 없다. (...) 인생이란 게 어느 하루 교외로 소풍 가서 즐기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삶의 허망함과 기록의 불멸성을 다시 절감한다아무리 감탄을 거듭해도 나는 읽기만 할 뿐이지만.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무소유법정***


*** 문득 생각난 법정 스님. 유불도교를 오가는 신비한 날이다. 개천절이 다가와서 그런가.

 

생사와 흥망성쇠를 과식하듯 채워 읽고 나니 감상은 오히려 허허롭다길어진 10가을의 첫 주말 다들 무탈하고 느긋하시길 바라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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