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차별, 처벌 - 혐오와 불평등에 맞서는 법
이민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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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전까지 자신이 차별주의자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살았다오히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적지 않다고 자신하는 편이었달까그리고 본문을 읽기 전에 들어가는 글에서 무릎이 털썩 꺾이는 충격적인 자각을 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그저 복잡하게 애매한 사람이다.”

 

김지혜 저자의 일화이기도한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나도 종종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외에도 고쳐야할 언어표현들은 계속 등장했다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나는 변명의 여지없는 차별주의자였다.

 

모국어라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세상에는 의지를 갖고 배우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밀려나는 일들이 많다. 2년간 적어도 한 발이라도 지향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을까.

 

인간은 긴 역사 동안 수많은 분류 기준을 만들어왔고분류 기준을 근거로 한 차이를 이유로 폭력과 억압을 멈추지 않았다이 같은 흐름이 완전히 역전된다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시대에 따라 폭력과 억압의 대상만 변화할 뿐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외집단을 범주화하고 일반화하고 더 나아가 비인간화하는 본성이 단기간에 교화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근본적으로 인간은 차이를 발견하고그 작은 차이로 차별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차이가 차별로 변질되는 지적과 논쟁은 20세기 학회에서도 논의가 적지 않았다그 시기에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면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데 쓰레기 치우는 얘기한다는 반응을 받은 것처럼내가 속한 작은 세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과 세상의 반응은 다른 세상의 일처럼 달랐다.

 

그래서 2021년 판데믹과 비대면의 엄중한 시절에 더욱 도드라지고 가시화되는 현실의 차별에 대해 섬세하고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짚어주는 이 책을 만나 반갑고 감사하다더구나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후 좀처럼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던 차별금지법이 얼마 전 정식으로 발의되었단 소식을 들어 시대적으로 시의적절하고 사적으로 간절한 심정에 의지가 된다.

 

이민규 저자가 담은 내용은 이전의 논의와 현재의 현실 모두를 포괄하는 총괄적 내용이기도 해서 나의 조각난 지식 정보를 쉽고 자세하고 더욱 면밀하게 복기복원보충시켜 주는 친절한 텍스트이다학문과 당위로 접근한 나와 달리 차별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저자의 깊고 진지한 고민에 부끄럽고 뭉클했다.

 

오랜 세월의 고민이 시야를 좁고 깊게 하기보다는 인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전체적인 사회 구상으로 향하는 내용이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설득하게 위해 실제 사례들을 역사적인 중요성에 기반을 두고 짚어준 것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인류 역사에 만연한 폭력을 읽는 일은 쉽지 않지만 알고 기억해야할 것들이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문제의식과 연계하여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미국의 민권 변호사로서 한국의 독자들은 전혀 알 수 없었던 인종 차별 피해자인 에밋 틸 피살사건과 성차별의 피해자 찰리 하워드 사건을 알려 주어 제한적 가치가 아닌 보편적인 장치로서 법의 의미를 고민해보았다.

 

“노숙인이나 장애인이주 노동자성전환자가 극단적인 고통을 받는 사회에서국민의 대다수가 피해 의식과 좌절감으로 가득한 세상에서어느 계층에서나 불평등이 만연한 환경에서 혼자만 초연하게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리 없다온 세상이 울고 있는데 그 비극이 나만 피해 갈 리도 없다.”

 

아무리 저자가 쉽고 구체적이고 면밀히 분석하고 설득력 있는 제안을 해주어도 현실의 어려움과 차별 발생의 다양한 원인들 등 관련된 복잡성은 간명해지지 않는다그러니 복잡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출발이기도 하다단순하게 동조하고 심정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더 진지하게 차근차근 접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다 한 가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화법에 열광한다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탓도 있지만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일 것이다얼마나 편해지는지실제로 전문가의 조언을 접했을 때 뇌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기능을 아예 멈추기도 한다.”

 

오래 전 영국 유학을 시작할 때 학교에서 처음 받은 오리엔테이션은 차별적 대우를 받았을 때의 대처법이었다차별적 언어와 행동폭력을 구분해서 필요하면 반드시 신고하고 처벌에 이르는 강력한 절차가 존재했다한국에서 경험해 본 적 없는 교육이라 사회문화적 차이를 느꼈는데이후에 생각하니 차이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부재한 교육이었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차별과 불평등의 시대에서 차별금지와 평등의 시대로 나아가는 모습이다본 회의 심의를 기다리는 두 법안 <평등에 관한 법률안>과 <차별금지법>이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여 미래의 모습을 바꾸는 그런 변화이길 바란다사적인 선의나 운에 맡기지 않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사회안전망의 그물의 촘촘히 하는 그런 입법의 역사로 기록되길 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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