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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평점 :
이 책은 제목부터 분류, 내용까지 여러 장점이 있다. 혼자 읽는 것보다 같이 읽고 얘기 나누는 것이 좋은 나는 이 책을 다양한 내용으로 지인들에게 권해 보았다. 제목만 보고 인문학 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이란 짐작하는 이도 있고, 과학책이라 더 반갑게 읽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일독 후에 김초엽 작가가 “완전히 다른 존재와의 접촉이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거나, 혹은 타인이 나를 이해하게 될 때 느끼는 인식의 전환, 인식의 확장이 있잖아요. 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라고 한 문장이 생각나 반갑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SF팬이었던 친구는 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이 ‘경쟁과 싸움보단 협력과 연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해온 SF의 메시지라고도 했다. 부디 그 협력과 연대가 인간 한정이 아니기를 바라는 요즘이다. 환경을 망가뜨리는 속도가 줄지 않는데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을까.
"이 공격성에 관한 비용대비 이익비중을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아도 친화력이 호전성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도덕 원칙을 고심해서 세우고 다양성을 잘 배워 익히지 않고도 운이 좋아 우연히 환경이 마련된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다양성과 관용에 익숙해진 경험을 했다. 영국에 유학을 가보니 동기가 25명인데 국적이 17개였다. 세상엔 거의 유엔 가입국만큼 다양한 영어가 존재했고,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다 달랐다.
"우리는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할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사회화되면서 정답과 최선이라 여기던 많은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다. 살아가는 일은 온통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반복되는 일이었고, 덕분에 한편으로는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하기 때문에 남은 관념이 구체적 현실의 모습으로 완성되며 퍼즐이 채워지는 효과도 있었다.
“우리는 큰 규모의 집단 안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종이다.”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 늘 도덕과 윤리의 하한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옳다고 믿던 태도가 함께 잘 살기 위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고, 무척 부담스러웠던 배려와 돌봄의 가치를 그제야 깨달았다. ‘비용편익계산’처럼 정성적인 모든 것을 정량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류 사회와 대비되는 정성 평가법 수업도 들었다. 동일한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눈으로 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은 논쟁이 불필요한 팩트이고 관용, 친절, 상냥함, 다정함은 생존의 필수 양식이었다. 타인과 맺을 수 있는 느슨하지만 견고한 최고의 연대는 우정이며, 이는 동종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종과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도 경험했다.
동물에 관한 글을 두 편 썼다. 시선The sense of being stared과 의식Animal consciousness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눈’이란 외부에 노출된 중요한 감각 기관이자 ‘뇌’에 다름 아니라는 것, 따라서 타인과의 관계맺음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가 ‘보다viso’라는 것, 자신조차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담았다. 다 잊고 살다 이 책을 만나 복기해보았다.
"우리의 눈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이바지하도록 설계되었다."
태어나보니 이미 존재했던 개 오빠, 사랑했음이 분명한 함께 꼭 붙어 찍은 사진들, 함께 잠들고 혼자 깨어난 아침의 이별, 꼬리가 잘리는 학대를 겪고도 씩씩하게 자라 평생 고양이 좋다는 말씀 없으셨던 부모님께 막내 자식으로 효도하는 냥이 동생. 이들의 다정함을 떠올려본다.
“동물과의 유대 : 그것은 우리종이 특별하고 동물들과 다르다는 믿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그토록 효과적인 비인간화 전술이 된 것이다.”
숫자로 평가되는 물질화되는 것들이 중요한 인간들이 서로를 비인간화하고 은밀하게 무시하는 동안, 이들은 다정함의 위력을 더 잘 알고 활용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함께 사는 인간을 인간 세상의 기준들로 판단하지 않고 한결같이 전면적인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감동과 자발적 돌봄을 끌어내는 이들이 진화적으로 앞섰다는 실증인지도 모른다.
"다정함이 승리의 전략임을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다."
주의! 참고문헌 재미있습니다. 포기 말고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