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정동호 지음 / 책세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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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xh Zarathustra>는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을 마지막 만남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했다독일어 원전을 읽고 이해할 수 없는 독자로서 최고이자 최선의 책이라고 믿는다. 10년에 걸쳐 니체철학의 국제적 정본을 한글로 번역 출간한 출판사의 친절한 해설서이다.

 

책의 구성은 철학과 역사로 나뉜다차라투스트라의 행적에 대한 소개를 처음이라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철학 파트는 해설서라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당연한 말이지만상징과 비유패러디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독특한 문체들은 여전하니까.

 

어쩌면 니체는 모든 사람을 위한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란 부제에 정직한 경고를 해두었다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자의 노력만이 남았을 뿐.

 

초인이란 번역어를 사용하지 않아 좋았다뜻이 오독/오용되어 아주 이상한 이미지가 칠해져 있기 때문이다. ‘위버맨쉬Übermensch’라는 원어를 니체 철학 속에서 다시 배우고 정리하는 일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인간에게 자기 부인은 죽음을 의미한다이는 신이 존재하려면 인간이 죽어 인간이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그러나 누가 뭐라 하든 신은 죽었고 그와 함께 신을 신앙해온 인간도 모두 죽어 무덤에 들지 않았는가.”

 

애초에 신은 죽었다란 말이 왜 그리 많은 관심을 끌었는지 후대의 인간으로 문화과 종교의 영향력이 달라 잘 이해하지 못했다그래서 굳이 유명한 내용을 찾아 전모를 밝혀 보리란 의지 없이 읽다 보니 책의 말미(453)에 가서야 이 구절을 만난다.

 

잘 모르던 20대에도 지금도 어째서 니체가 가장 급진적이고 반사회적 철학자로 꼽히는지는 완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무척 매력적인 철학이라는 점은 동의한다일단 권위 당시에 강조되던 온갖 기존의 미덕들사회적 규칙들에 대한 복종 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의 말은 편하고 좋다.

 

거부와 부정이 없이 발전도 새로움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자신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마구 주입되는 타인의 가치들이 공동체의 잠시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능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유효기간이 긴 처방법은 아니다부디 당시의 역사 사회적 상황을 현재와 비교해서 지금 보니 이런저런 헛소리들한계투성이라는 너무 쉬운 판단은 천천히 하자.

 

신은 죽었으니 막 살아보자는 허무주의도 아니고위버맨쉬Übermensch가 강자가 되어 약자를 모욕하자는 것도 아니며힘에의 의지가 파시스트에 대한 동조도 아니다 내게는 그런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자기극복'을 못 해서 하루 종일 위통에 시달리며 산 오늘, 니체의 자기극복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기록을 남긴다. 처음도 아니고 모르는 바도 아니고 어째서 유사한 스트레스에도 다시 휘둘리는 것일까. 헤세의 <데미안>도 문득 떠오르는 구절들.



니체는 우주가 운용되는 운동의 역학을 통해 이전에 신의 섭리라고 하던 주장들의 종말을 고했을 뿐이다이제 인간으로서 뭐가 되었든 외부의 간섭에 휘둘리지 말고 억눌리지도 말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찾아서 잘 살아보자고 격려한 철학자로 읽힌다.

 

이런 이야기를 왜 이런 형식으로 썼냐고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지만 그 역시 니체가 살았던 시대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하지 않을까.

 

원작을 읽을 자신이 없어 해설서를 읽은 독자로서 강력한 의견 제시도 민망하긴 하지만정동호 교수의 오랜 연구의 집약체인 이 책은 존중받아 마땅한 귀한 자료이자 가이드 책이다.

 

간혹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오독들이 판치는데 부디 태생과 전파가 괴이한 것들이 사라지도록 이 책의 설명이 설득력을 더 가지길 바란다.

 

친절한 해설서가 있다는 안도감은 크다다시 읽어도 좋은 주제들과 나중에 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적어도 다 포기하고 싶고 다시 읽어봐야 모를 것이란 절망은 사라졌다.

 

이제 가이드가 생겼으니 언젠가 나도 용감하게 원작의 숲으로 들어서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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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지혜 수업 - 78가지 사례로 배우는 행복과 성공을 위한 연금술
무천강 지음, 정은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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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듣는 일에 충분히 지친 독자라면 제목 때문에 이 책을 펼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더구나 지혜를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책의 화자는 78명이고 78개의 이야기가 담겼다이론이나 강독의 내용이 아니라화자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먼저 전개되고다른 이론가가 아니라 해당 삶의 당사자가 그래서’ 이런 통찰을 해보았다고 전해 주는 이야기이다.

 

독자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자세가 있는 파토스pathos - 화자들의 말은 별 기대가 없던 독자도 한 번 들어보자는 기분이 들게 한다그리고 이 책의 더 큰 장점은 에토스ethos, 말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밝혀서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일례를 들면 빈민가 출생마약 중독지독한 가난교육 기회의 부재구걸부모의 병사... 이런 조건에서 살았던 이가 하버드에서 원하는 만큼의 공부를 마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돕게 되는 삶이다


성취를 이룬 이가 자신이 경험한 삶을 지우지 않고 여전히 유사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무척 대단한 일이지만 따라하기는 요원하기도 하다.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인지.

 

화자에 따라 삶의 내용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겨웠든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쉬운 경우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의 삶의 이야기를 먼저 접한 전사로 인해 아무리 간단한 메시지라도 설득의 힘을 갖게 된다.

 

물론 동서양 문화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고지리적 요건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가정과 인간관계에서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제안들도 있다문득 궁금한데현재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직장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나요식사할 때 토론하는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나요.

 

행복의 비법을 알려 주려는 책이 아니라 삶의 고비에 마음이 확 꺾일 때불안하고 막막할 때 말을 거는 분위기이다그런데 등장인물들의 삶이 너무나 극적이라... 아무리 독자들도 자신의 삶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느낀다해도 힘들다 편하게 말할 분위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와 연구를 오래 하고 실제 사례들을 모아 정리한 내용을 나는 재밌게 읽었다유명한 이들도 있고 평범한 이들도 있다독자에게 어떤 울림을 줄 것인가 역시 각자의 몫일 것이다분량도 사연도 다양하고 남들 어떻게 살았나하는 이야기는 잘 읽히는 편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 ‘감정 조절이 삶의 평화를 부른다.’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 조절!


이대로 계속 늙어가면 괴팍하고 강퍅한 인간이 될 길 밖에...

 

이 책의 키워드는 하버드대학교라 할 수 있는데 저자는 하버드 출신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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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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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책소개글을 몇 문장 읽고 걷잡을 수 없이 끌렸다설명이 필요 없는 공감을 만났을 때의 무방비한 마음 풀어짐이 느껴졌다모든 수식어에 동의한다. ‘맞말(맞는 말)의 대향연사회인 공감 100%!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 

 

모욕을 당해도 침착해야 하는 능력이 도대체 회사 어디에 필요한 걸까요?”

 

내가 만난 많은 그들이삶에 잡아먹히지 않고씩씩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자신과 사랑하는 존재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은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그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글을 써나갔다.”

 

나는 아주 일부분을 좋아하는 것뿐이면서 안 맞는 일도 가득 찬 일을 직업으로 골랐다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나에게 이 직업은 지하철에서 파는 델리만쥬 같았던 거다냄새를 맡으면 참을 수 없이 끌리지만 실제로 먹게 되면 예상과 다른간식일 때 만족스러운 음식을 삼시 세끼 먹게 되자 삶이 엉망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무능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나쁜 의도는 없지만 내 생활을 엉망으로 만드는 무능함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말이다.”

 

이동 중에도 읽을 수 있을 듯해 넣어 다녔는데 펼쳐 보니 30쪽이 들려 주는 세계가 통쾌하다. 스스로도 여러 번 말로도 글로도 표현했던 것들인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끔하게 이해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체증은 아니고 있는 줄로 몰랐던 명치 어딘가의 응어리가 사르르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공감하는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고 세세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않아도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일단 숨 쉬는 게 좀 편안해 지는 일도 가능할 것이니우리는 혼자 괴로워하는 대신 멈추지 말고 읽고 쓰고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얇아서 아쉽고 귀한 가제본에 실린 [막내가 사라졌다]는 분량과 상관없는 위력적인 작품이다직장에서 막내라고 불리는 처지를 미리 짐작 못할 바가 아니고 그 따위 호칭을 사용하는 막내의 직장 상사들이 벌써 별로였다. 가족이나 위계가 붙은 호칭을 좋아하는 이들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그 막내가 사라지면서 남긴 문자는 아주 바람직한 대가이자 처벌이자 복수이다정당하지 아니한가!

 

저는 오늘부로 퇴사합니다필요한 서류는 대리인이 참석해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성추행 가해자 본부장인신공격하던 대리사적인 잡일을 시키던 팀장법률 대리인을 잘 맞이하길!

 

내일까지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그러게 회사 다닐 때나 상사고 선배지그만두면 아무 관계도 아닐 사람들끼리 진즉 기본 매너는 지키고 살면 좀 좋아요지금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까 껌뻑 죽는 척 해주는 거지나가면 알게 뭐예요말도 제대로 안 섞어줄 동네 아저씨고 모르는 아줌마지.”

 

뭔가 다들 오해하는 것 같은데 퇴사는 대단한 각서를 쓰고 허락을 받아야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적법한 시간과 절차에 맞춰 의사를 표현하면 성립되는 겁니다.”

 

직장이라고해서 인간관계가 마냥 얄팍하고 표리부동할 필요는 없다그런데 이 직장 내 인물 군상들은 아주 난망하다물론 현실은 더 가혹하고 처참한 경우도 부지기수다그러니 이상적인 직장 얘기를 더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대신 상상 속에서 막내 상사들의 따귀를 한 삼십 번쯤.

 

!현실에선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절대 그런 폭력은 안 쓸 겁니다!

 

30쪽의 거센 고발필독서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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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킹덤 1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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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초록한 여름 북유럽의 평원에서
순록이 뛰어 다니는 장면이 연상되는
순한 표지이다.

가제본을 읽고 출간본을 받으니 출판 과정에 참여한 묘한 기분...

스릴러 중에서도 나는 무척 심리적으로 어려워하는
가족, 이 등장하는 내면 갈등이라
무겁게 숨 쉬며 읽은 작품이다.

가족이 살던 집을 ‘킹덤’이라고 명명하는 데서 오는
폐쇄성과 비극과 드라마틱한 갈등 역시 내내 불안감을 고조했다.

‘화자’를 따라가며 읽는 방법 밖에 없는데
마음속으로 무수하게 말리고 싶은 장면들을 반복해서 만난다.

평범한 일상들이라 사건의 여파가 더 크고 길다.

가을을 밀어내는 겨울과 더 어울리는 차가운 공기,
올 겨울에 만나기 서늘한 북유럽의 이야기일 지도...

“나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마땅히 자기 것이어야 하는 것을 손에 넣는 일.
설사 그것이 아주 망가진 모습이라 해도.
그리고 그 일을 방해하는 자들과 

내가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




극지방에 가까운 빙하를 관광할 수 있는 빛이 부족한 북유럽의 겨울을 경험한 바가 있어,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읽는 동안 어딘가의 카디건을 찾아 꺼내어 무릎 위에라도 올려야 할 듯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한기를 글의 동력이자 자신의 재능으로 삼은 저자의 문장마다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스탠드 얼론stand alone’이란 시리즈물과는 별개의 사건, 세계관, 스토리를 단독으로 가지는 이야기이므로 <킹덤>은 누구나 첫 작품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력적인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장부터 7장까지의 구성이다. 책장은 아주 빨리 넘어갈 것이다.

 

개가 죽은 날이었다.

나는 열여섯, 칼은 열다섯.

며칠 전 아빠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냥용 나이프로 나는 개를 죽였다. (...)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뭐가 됐든 아주 조각조각 잘라주겠어, 젠장.

 

죽음, 더 정확히는 죽임, 피, 나이프, 총, 욕설로 시작하는 끔찍하게 어두운 이야기이다. 맥락과 상황을 파악하고 심정적 거리를 두려는 노력에도 속이 몇 차례 울렁거렸다. 더 몰입하거나 사건현장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무감해지거나 선택해서 읽어야 할 듯.

 

로위(형)과 칼은 황무지에 위치한 집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유일한 왕국(더 킹덤)은 오프가르 농장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성격도 삶의 방식도 다른 형제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세계는 농장으로부터 마을로, 카운티로, 해양을 지나 미국과 캐나다에 이른다. 그리고 마치 예정된 수순인 듯 다시 농장으로 회귀한다.

 

칼이 돌아왔다. 내가 왜 개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거의 이십년 전의 일인데. 어쩌면 예고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칼이 귀향한 이유가 그때와 똑같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언제나 그랬든 이 똑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형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을 거라고.

 

형인 로위는 황무지와 다름없는 농장에서 십오 년 동안을 혼자 살았다. 온 세상에 혼자인 듯한 기분으로 남은 그에게 동생의 귀환은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자신의 고립에 가까운 독거가 끝난다는 기쁨과 반가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어긋난 기대를 보여주려는 듯 이야기는 형제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어린 시절 동생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어떤 죄책감을 느꼈는지, 현실이 아니라 꿈과 상상을 통해 도망가는 성격이 얼마나 엄마와 닮았는지.

 

그런 형에게 귀향한 동생은 자신만만하고 리더처럼 시선을 주목시키고 이질적일 정도로 정반대의 모습이다. 친해지려고 캐묻도 방해하고 비웃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형은 그저 지켜만 본다.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끝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녀가 아빠 옆에서 워낙 희미한 존재라서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 엄마는 행복했나?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나? (...) 엄마는 왜 나와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로위는 어릴 적엔 엄마를 관찰했고 지금은 엄마를 닮은 동생을 지켜본다.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워 보일 때도 있다. 적어도 농장의 유일한 주인이자 왕국의 중심으로의 유일한 존재가 가장자리로 구경꾼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사람들은 내가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 아마 인생에 기대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 남의 인생에 참견하면 안 된다고 판단할 줄 아는 염치도 있다.

 

그러니까 아빠는 어떤 일에 주도적으로 앞에 나서는 일은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많이 배우고, 언변이 좋고, 추진력이 있고, 카리스마와 비전이 있는 칼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얼핏 아버지와 칼과는 다르고 로위는 닮아서 더 친밀하고 애정이 깊은 사이로 들릴 수도 있지만 로위는 아버지가 자신을 '좋아했고' 칼을 '사랑했다'고 믿는다.

 

로위는 아빠는 모든 이유로 칼을 더 사랑했다고 믿는다. 세상이 혼동에 빠져 각자도생해야 하는 날이 올 때, 로위은 잘 헤쳐나갈 수 있지만 칼은 거꾸러질 거라서, 칼은 아빠를 우러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칼이 엄마와 나무나 닮았기 때문에, 칼이 잘생겨서.

 

눈사태, 눈 더미, 얼음, 박살, 화재, 폭풍, 지붕이 찢어지고 부서지고. 드디어 손가락이 시린 듯한 환각을 주는 황무지의 냉혹한 자연이 느껴진다. 인간은 그 안에서 그저 무력하고 삶은 찰나의 사건처럼 끝나기도 이어지기도 한다. 형제의 이야기는 이제 잔혹한 생존기로 읽힌다.

 

내 등에 칼의 손이 느껴졌다. 그 손이 내 목을 살짝 쥐었다. 그리고 그의 파란 시선이 나를 비췄다. 크리스마스 때보다 좋아 보였다. 조금 말랐고, 움직임이 살짝 빨라졌고, 흰자위가 깨끗해졌고, 발음도 명확했다.

 

쉴 틈 없이 벌어진 사건사고들 속에서 로위와 칼 형제가 살아남았다. 마치 둘이 함께일 때는 어떤 것도 이들을 죽일 수 없는 존재들처럼 위기에서 탈출했고 회복했다. 설마 모든 스릴러 장치들이 생존 과정에 단단한 얼음처럼 박혀 있을 줄은 몰랐다.

 

힌트가 힌트인 줄 몰라 지나친 문장들이 무수할 듯하다. 그럼에도 예상이 깨어질 때마다 더 흥미롭고 궁금해져서 읽는 속도는 가속될 수밖에 없었다. 배경마저 긴장이 가득했던 여정이었다. 스포하지 않으려 쓰지 않으려 애쓰며 쓴 이상한 글이 되었다. 꼭 마지막까지 반전의 즐거움을 누리시길!

 

모두 다 다른 가정의 모습이지만 모두 비슷한 꿈을 꾸며 가족을 만들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족이란, 가정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살아남고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가. 가장 현명한 것은 고민 없이 의미가 가치를 찾지 말고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황량한 황무지에 북풍이 몰아치는 밤이면 또 다른 아이들이, 가족들이, 유령들이 자신의 왕국에서 잠 못 들고 어둠 속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듯하다.

 

“그래, 무자비한 봄이 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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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서점 - 살인자를 기다리는 공간,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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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색감과 제목을 보면 어떤 장르의 작품일 것 같으신가요. 작은 독립서점이 나오니 저는 무조건 읽고 싶어집니다. 서점이나 도서관 배경에 책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면 참을 수 없이 궁금하고 설렙니다. 




이 책은 고서적을 다루는 서점에서 15년 간 한 인물을 기다리는 주인공이 아주 치밀하게 계획한 순서에 따라 ‘전개되어야하는’ 이야기입니다.


뭉클하고 따뜻한 감동이 가득한 추억과 사랑이 아니라…… 살인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자신의 두 다리를 앗아간!


정체성을 사냥꾼이라 정하고 사냥감을 찾는 살인마의 행적이 묘사될 때마다 치를 떨며 읽습니다. 점점 더 생존자 주인공에 공감하게 되지요. 행위만 드러나고 정체를 모르니 의심스러운 몇 명의 용의자들을 두고 추리해나가며 참여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장르 소설에 익숙하시면 빨리 찾을 수도 있겠지만, 살인마에 대한 단서 - 기억 - 라곤 눈빛과 고서적에 대한 애착뿐임에도 주인공과 함께 찾아내는 일이 큰 재미입니다. 요행히 사냥꾼에게 빼앗은 고서적을 유명우 교수가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쉬운 미끼인가요.


고서적 수집가로 유명해지고자 한 노력, TV에 출연한 것도 모두 살인마를 유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일이지만 15년 전 자신이 기억하는 단편들을 믿고 이 위험천만한 대결을 시작해도 될까요.


물론 계획이 있습니다. 독자로선 이 계획을 파악하고 이해한 뒤 범인을 함께 유추해나가는 과정이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장르 특성 상 막 신나게 얘기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주인공이 맘 편히 계획을 세우며 즐겁게 복수를 꿈 꾼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요.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곧 죄책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내와 아이가 죽었으니 그 고통은 짐작하기 어렵겠지요.


그럼에도 이야기의 재미를 망치지 않는 점은 주인공이 감정적 폭발 대신 철저하고 냉철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점입니다. 긴장감도 대단하고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 무참함도 느껴집니다.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설정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액션보다 두뇌대결입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범인을 마치 사냥하듯 몰아가는 서사는 대단합니다. 


범인이 너무 분명하게 알아차릴 미끼라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을 함정이라 조마조마했습니다. 주인공이 15년을 절치부심했다해도 범인은 더 오래 살인을 연마한 노련하고 심지어 지적인 존재이니까요. 


복수를 위해 살인마를 기다리는 공간으로 독립서점이 활용되다니!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 탓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거침이 없습니다. 계획에 따라 빠르게 속 시원히 전력 질주하는 작품입니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으니까요.”


이제는 정말 스포 이외엔 더 쓸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만 총총.


! 반전 있습니다. 서점 안 비밀 공간 있습니다. 캐릭터를 빌린 현실 인물과 서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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