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정동호 지음 / 책세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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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xh Zarathustra>는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을 마지막 만남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했다독일어 원전을 읽고 이해할 수 없는 독자로서 최고이자 최선의 책이라고 믿는다. 10년에 걸쳐 니체철학의 국제적 정본을 한글로 번역 출간한 출판사의 친절한 해설서이다.

 

책의 구성은 철학과 역사로 나뉜다차라투스트라의 행적에 대한 소개를 처음이라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철학 파트는 해설서라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당연한 말이지만상징과 비유패러디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독특한 문체들은 여전하니까.

 

어쩌면 니체는 모든 사람을 위한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란 부제에 정직한 경고를 해두었다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자의 노력만이 남았을 뿐.

 

초인이란 번역어를 사용하지 않아 좋았다뜻이 오독/오용되어 아주 이상한 이미지가 칠해져 있기 때문이다. ‘위버맨쉬Übermensch’라는 원어를 니체 철학 속에서 다시 배우고 정리하는 일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인간에게 자기 부인은 죽음을 의미한다이는 신이 존재하려면 인간이 죽어 인간이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그러나 누가 뭐라 하든 신은 죽었고 그와 함께 신을 신앙해온 인간도 모두 죽어 무덤에 들지 않았는가.”

 

애초에 신은 죽었다란 말이 왜 그리 많은 관심을 끌었는지 후대의 인간으로 문화과 종교의 영향력이 달라 잘 이해하지 못했다그래서 굳이 유명한 내용을 찾아 전모를 밝혀 보리란 의지 없이 읽다 보니 책의 말미(453)에 가서야 이 구절을 만난다.

 

잘 모르던 20대에도 지금도 어째서 니체가 가장 급진적이고 반사회적 철학자로 꼽히는지는 완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무척 매력적인 철학이라는 점은 동의한다일단 권위 당시에 강조되던 온갖 기존의 미덕들사회적 규칙들에 대한 복종 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의 말은 편하고 좋다.

 

거부와 부정이 없이 발전도 새로움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자신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마구 주입되는 타인의 가치들이 공동체의 잠시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능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유효기간이 긴 처방법은 아니다부디 당시의 역사 사회적 상황을 현재와 비교해서 지금 보니 이런저런 헛소리들한계투성이라는 너무 쉬운 판단은 천천히 하자.

 

신은 죽었으니 막 살아보자는 허무주의도 아니고위버맨쉬Übermensch가 강자가 되어 약자를 모욕하자는 것도 아니며힘에의 의지가 파시스트에 대한 동조도 아니다 내게는 그런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자기극복'을 못 해서 하루 종일 위통에 시달리며 산 오늘, 니체의 자기극복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기록을 남긴다. 처음도 아니고 모르는 바도 아니고 어째서 유사한 스트레스에도 다시 휘둘리는 것일까. 헤세의 <데미안>도 문득 떠오르는 구절들.



니체는 우주가 운용되는 운동의 역학을 통해 이전에 신의 섭리라고 하던 주장들의 종말을 고했을 뿐이다이제 인간으로서 뭐가 되었든 외부의 간섭에 휘둘리지 말고 억눌리지도 말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찾아서 잘 살아보자고 격려한 철학자로 읽힌다.

 

이런 이야기를 왜 이런 형식으로 썼냐고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지만 그 역시 니체가 살았던 시대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하지 않을까.

 

원작을 읽을 자신이 없어 해설서를 읽은 독자로서 강력한 의견 제시도 민망하긴 하지만정동호 교수의 오랜 연구의 집약체인 이 책은 존중받아 마땅한 귀한 자료이자 가이드 책이다.

 

간혹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오독들이 판치는데 부디 태생과 전파가 괴이한 것들이 사라지도록 이 책의 설명이 설득력을 더 가지길 바란다.

 

친절한 해설서가 있다는 안도감은 크다다시 읽어도 좋은 주제들과 나중에 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적어도 다 포기하고 싶고 다시 읽어봐야 모를 것이란 절망은 사라졌다.

 

이제 가이드가 생겼으니 언젠가 나도 용감하게 원작의 숲으로 들어서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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