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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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책소개글을 몇 문장 읽고 걷잡을 수 없이 끌렸다설명이 필요 없는 공감을 만났을 때의 무방비한 마음 풀어짐이 느껴졌다모든 수식어에 동의한다. ‘맞말(맞는 말)의 대향연사회인 공감 100%!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 

 

모욕을 당해도 침착해야 하는 능력이 도대체 회사 어디에 필요한 걸까요?”

 

내가 만난 많은 그들이삶에 잡아먹히지 않고씩씩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자신과 사랑하는 존재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은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그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글을 써나갔다.”

 

나는 아주 일부분을 좋아하는 것뿐이면서 안 맞는 일도 가득 찬 일을 직업으로 골랐다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나에게 이 직업은 지하철에서 파는 델리만쥬 같았던 거다냄새를 맡으면 참을 수 없이 끌리지만 실제로 먹게 되면 예상과 다른간식일 때 만족스러운 음식을 삼시 세끼 먹게 되자 삶이 엉망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무능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나쁜 의도는 없지만 내 생활을 엉망으로 만드는 무능함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말이다.”

 

이동 중에도 읽을 수 있을 듯해 넣어 다녔는데 펼쳐 보니 30쪽이 들려 주는 세계가 통쾌하다. 스스로도 여러 번 말로도 글로도 표현했던 것들인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끔하게 이해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체증은 아니고 있는 줄로 몰랐던 명치 어딘가의 응어리가 사르르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공감하는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고 세세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않아도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일단 숨 쉬는 게 좀 편안해 지는 일도 가능할 것이니우리는 혼자 괴로워하는 대신 멈추지 말고 읽고 쓰고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얇아서 아쉽고 귀한 가제본에 실린 [막내가 사라졌다]는 분량과 상관없는 위력적인 작품이다직장에서 막내라고 불리는 처지를 미리 짐작 못할 바가 아니고 그 따위 호칭을 사용하는 막내의 직장 상사들이 벌써 별로였다. 가족이나 위계가 붙은 호칭을 좋아하는 이들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그 막내가 사라지면서 남긴 문자는 아주 바람직한 대가이자 처벌이자 복수이다정당하지 아니한가!

 

저는 오늘부로 퇴사합니다필요한 서류는 대리인이 참석해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성추행 가해자 본부장인신공격하던 대리사적인 잡일을 시키던 팀장법률 대리인을 잘 맞이하길!

 

내일까지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그러게 회사 다닐 때나 상사고 선배지그만두면 아무 관계도 아닐 사람들끼리 진즉 기본 매너는 지키고 살면 좀 좋아요지금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까 껌뻑 죽는 척 해주는 거지나가면 알게 뭐예요말도 제대로 안 섞어줄 동네 아저씨고 모르는 아줌마지.”

 

뭔가 다들 오해하는 것 같은데 퇴사는 대단한 각서를 쓰고 허락을 받아야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적법한 시간과 절차에 맞춰 의사를 표현하면 성립되는 겁니다.”

 

직장이라고해서 인간관계가 마냥 얄팍하고 표리부동할 필요는 없다그런데 이 직장 내 인물 군상들은 아주 난망하다물론 현실은 더 가혹하고 처참한 경우도 부지기수다그러니 이상적인 직장 얘기를 더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대신 상상 속에서 막내 상사들의 따귀를 한 삼십 번쯤.

 

!현실에선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절대 그런 폭력은 안 쓸 겁니다!

 

30쪽의 거센 고발필독서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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