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뜻밖에(?) 초록한 여름 북유럽의 평원에서
순록이 뛰어 다니는 장면이 연상되는
순한 표지이다.

가제본을 읽고 출간본을 받으니 출판 과정에 참여한 묘한 기분...

스릴러 중에서도 나는 무척 심리적으로 어려워하는
가족, 이 등장하는 내면 갈등이라
무겁게 숨 쉬며 읽은 작품이다.

가족이 살던 집을 ‘킹덤’이라고 명명하는 데서 오는
폐쇄성과 비극과 드라마틱한 갈등 역시 내내 불안감을 고조했다.

‘화자’를 따라가며 읽는 방법 밖에 없는데
마음속으로 무수하게 말리고 싶은 장면들을 반복해서 만난다.

평범한 일상들이라 사건의 여파가 더 크고 길다.

가을을 밀어내는 겨울과 더 어울리는 차가운 공기,
올 겨울에 만나기 서늘한 북유럽의 이야기일 지도...

“나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마땅히 자기 것이어야 하는 것을 손에 넣는 일.
설사 그것이 아주 망가진 모습이라 해도.
그리고 그 일을 방해하는 자들과 

내가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




극지방에 가까운 빙하를 관광할 수 있는 빛이 부족한 북유럽의 겨울을 경험한 바가 있어,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읽는 동안 어딘가의 카디건을 찾아 꺼내어 무릎 위에라도 올려야 할 듯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한기를 글의 동력이자 자신의 재능으로 삼은 저자의 문장마다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스탠드 얼론stand alone’이란 시리즈물과는 별개의 사건, 세계관, 스토리를 단독으로 가지는 이야기이므로 <킹덤>은 누구나 첫 작품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력적인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장부터 7장까지의 구성이다. 책장은 아주 빨리 넘어갈 것이다.

 

개가 죽은 날이었다.

나는 열여섯, 칼은 열다섯.

며칠 전 아빠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냥용 나이프로 나는 개를 죽였다. (...)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뭐가 됐든 아주 조각조각 잘라주겠어, 젠장.

 

죽음, 더 정확히는 죽임, 피, 나이프, 총, 욕설로 시작하는 끔찍하게 어두운 이야기이다. 맥락과 상황을 파악하고 심정적 거리를 두려는 노력에도 속이 몇 차례 울렁거렸다. 더 몰입하거나 사건현장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무감해지거나 선택해서 읽어야 할 듯.

 

로위(형)과 칼은 황무지에 위치한 집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유일한 왕국(더 킹덤)은 오프가르 농장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성격도 삶의 방식도 다른 형제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세계는 농장으로부터 마을로, 카운티로, 해양을 지나 미국과 캐나다에 이른다. 그리고 마치 예정된 수순인 듯 다시 농장으로 회귀한다.

 

칼이 돌아왔다. 내가 왜 개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거의 이십년 전의 일인데. 어쩌면 예고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칼이 귀향한 이유가 그때와 똑같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언제나 그랬든 이 똑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형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을 거라고.

 

형인 로위는 황무지와 다름없는 농장에서 십오 년 동안을 혼자 살았다. 온 세상에 혼자인 듯한 기분으로 남은 그에게 동생의 귀환은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자신의 고립에 가까운 독거가 끝난다는 기쁨과 반가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어긋난 기대를 보여주려는 듯 이야기는 형제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어린 시절 동생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어떤 죄책감을 느꼈는지, 현실이 아니라 꿈과 상상을 통해 도망가는 성격이 얼마나 엄마와 닮았는지.

 

그런 형에게 귀향한 동생은 자신만만하고 리더처럼 시선을 주목시키고 이질적일 정도로 정반대의 모습이다. 친해지려고 캐묻도 방해하고 비웃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형은 그저 지켜만 본다.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끝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녀가 아빠 옆에서 워낙 희미한 존재라서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 엄마는 행복했나?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나? (...) 엄마는 왜 나와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로위는 어릴 적엔 엄마를 관찰했고 지금은 엄마를 닮은 동생을 지켜본다.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워 보일 때도 있다. 적어도 농장의 유일한 주인이자 왕국의 중심으로의 유일한 존재가 가장자리로 구경꾼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사람들은 내가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 아마 인생에 기대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 남의 인생에 참견하면 안 된다고 판단할 줄 아는 염치도 있다.

 

그러니까 아빠는 어떤 일에 주도적으로 앞에 나서는 일은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많이 배우고, 언변이 좋고, 추진력이 있고, 카리스마와 비전이 있는 칼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얼핏 아버지와 칼과는 다르고 로위는 닮아서 더 친밀하고 애정이 깊은 사이로 들릴 수도 있지만 로위는 아버지가 자신을 '좋아했고' 칼을 '사랑했다'고 믿는다.

 

로위는 아빠는 모든 이유로 칼을 더 사랑했다고 믿는다. 세상이 혼동에 빠져 각자도생해야 하는 날이 올 때, 로위은 잘 헤쳐나갈 수 있지만 칼은 거꾸러질 거라서, 칼은 아빠를 우러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칼이 엄마와 나무나 닮았기 때문에, 칼이 잘생겨서.

 

눈사태, 눈 더미, 얼음, 박살, 화재, 폭풍, 지붕이 찢어지고 부서지고. 드디어 손가락이 시린 듯한 환각을 주는 황무지의 냉혹한 자연이 느껴진다. 인간은 그 안에서 그저 무력하고 삶은 찰나의 사건처럼 끝나기도 이어지기도 한다. 형제의 이야기는 이제 잔혹한 생존기로 읽힌다.

 

내 등에 칼의 손이 느껴졌다. 그 손이 내 목을 살짝 쥐었다. 그리고 그의 파란 시선이 나를 비췄다. 크리스마스 때보다 좋아 보였다. 조금 말랐고, 움직임이 살짝 빨라졌고, 흰자위가 깨끗해졌고, 발음도 명확했다.

 

쉴 틈 없이 벌어진 사건사고들 속에서 로위와 칼 형제가 살아남았다. 마치 둘이 함께일 때는 어떤 것도 이들을 죽일 수 없는 존재들처럼 위기에서 탈출했고 회복했다. 설마 모든 스릴러 장치들이 생존 과정에 단단한 얼음처럼 박혀 있을 줄은 몰랐다.

 

힌트가 힌트인 줄 몰라 지나친 문장들이 무수할 듯하다. 그럼에도 예상이 깨어질 때마다 더 흥미롭고 궁금해져서 읽는 속도는 가속될 수밖에 없었다. 배경마저 긴장이 가득했던 여정이었다. 스포하지 않으려 쓰지 않으려 애쓰며 쓴 이상한 글이 되었다. 꼭 마지막까지 반전의 즐거움을 누리시길!

 

모두 다 다른 가정의 모습이지만 모두 비슷한 꿈을 꾸며 가족을 만들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족이란, 가정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살아남고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가. 가장 현명한 것은 고민 없이 의미가 가치를 찾지 말고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황량한 황무지에 북풍이 몰아치는 밤이면 또 다른 아이들이, 가족들이, 유령들이 자신의 왕국에서 잠 못 들고 어둠 속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듯하다.

 

“그래, 무자비한 봄이 또 다가오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