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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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 홀렸다.

저항도 부정도 하기 싫을 만큼 홀린 상태가 좋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불러도 보았다.

자꾸만 기대와 상상이 부풀어 올랐다.

혹시나 짐작만큼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 않다면

기꺼이 스스로 양념을 더하겠단 괴상한 다짐도 했다.

그런 다짐이 불필요할 만큼 8개의 단편들은

새로운 시공간의 반짝이는 조각들처럼 생명체들처럼 유영하고 교차하며 정신을 들뜨게 한다.

 

오래 전 영국 어느 거리에서 마녀처럼 보이는 점성술사가 별점을 봐주며,

내게 필요한 건 땅에발딛기grounding’라고 당부를 했다.

아니면 너는 아이디어와 뇌 속에서만 살게 될 거라고,

SF의 한 장면처럼 들뜨고 불쾌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첸카라는 이름의 그가 마음에 들었고,

확실한 호의에서 전해 준 이야기도 감사하고,

재밌기도 해서 그 기억을 소중히 잘 담아 두었다.

 

우다영 작가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을 읽으며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 양

그 당부를 모두 잊고 혹은 배반하고

걱정도 불안도 염려도 없이 신나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듯했다.

 

긴 호흡을 들이 마시며 후읍~

능률이 점점 떨어져 매일 야근을 하는 기분이 드는 우울한 일상에 틈을 열고,

꿈과 마법과 소원이 가득한때로는 간절한 것들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그런 세상으로 들어가 보았다.

 

부디 불가해한 문장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다 읽어 버리고 싶지가 않다.


..........................................................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할머니할머니."

"나를 불렀니?"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어린 남자아이들이었다그 애들은 한곳에 모여 내기를 하고 있었다이 섬에서는 어딜 가나 세 명 이상 모이면 내기를 벌였다.

 

"누가 가장 특별한 아이인지 골라주세요."

"그러자꾸나."

 

세 번째 아이는 쌍둥이 마을에서 태어났다어떠한 유전적인 요인으로 그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일란성쌍둥이였다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똑같은 얼굴의 쌍둥이가 하나 더 있었다모든 임산부가 쌍둥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유산율도 높았다태어나면서 하나가 죽으면 살아남은 아이에게 진흙으로 만든 아기 인형을 선물했다인형을 평생 돌보며 비어 있는 영혼의 반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쌍둥이가 아니었어요모두가 단독자인 내 존재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죠."

 

나는 세 번째 아이의 동그란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리다."

 

노파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주름진 얼굴을 내 귓가에 가까이 가져다 댄 뒤 속삭였다.

 

"누구나 언젠가 도착하게 되는 텅 빈 해변이 하나 있어."

 

노파는 노래하듯 계속 말했다.

 

"누군가는 해변에 앉아 잠시 머물다가 떠나고누군가는 해변을 산책하듯 천천히 지나가고누군가는 오랜 세월 해변을 헤매고누군가는 해변이 마음에 들어 집을 짓고 살고누군가는 자신이 해변을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누군가는 자신이 해변에 도착한 줄도 모르는 채 거기서 평생을 살고간혹 수평선의 석양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해변을 헤매기보다 해변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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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나간 일기도둑 - 미취업 어른이의 세계 사람들 만난 이야기
박모카 지음 / 새벽감성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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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면 고생이고 일은 하고 싶고미안하지만 나는 네 밑에는 못 들어가요. 이렇게 적힌 구절을 보고 보람 없는 일을 고생하며 견뎌야하는 최악의 상황도 있다고 말하려니미취업보단 나은 거라고 혼이 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하기 싫은 일은 아니지만 좀 더 옵션이 있었으면 하고 늘 바라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하루에 4시간만이라던가 4일 근무라던가승진출세는 원하지 않으니 자립 생활이 유지될 만큼만 벌고 더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시간 욕심을 부리고 싶었는데매번 그게 가장 큰 죄악인 듯 거부당했지요.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고용인과 고용주의 계산기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누구에게 이익인가를 아주 치밀하게 계산해서 티끌마저 다 모아야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독일 회사에서 만난 미국인 신입 사원이 회사채용에 합격하고 회사 측과 의논하여 6개월간 먼저 여행 다니다 출근하겠다고 계약을 조정했다는 이야기를 본인에게 들었습니다졸업하고 놀 시간이 없었으니 그렇게 하고 싶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지요건너 들었으면 의심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회사 동료들이 함께 한 자리니 저만 조용히 놀란 사실이었지요.

 

놀고 싶다가 아니라 업무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다고 시간을 달라고 해도 과연 그 말이 한국의 어느 기업에서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질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해피타임이란,

자신과 어울리는 여유를 부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취업 전 공식적인 일 년간의 백수 생활을 선언했다고 하니 오래 전 기억이 불쑥 났습니다그럼 여행 경비가 충분하지 않을 텐데저자는 어떻게 했을까요카우치 서핑이나 홈 익스페인지워크어웨이와 같은 각종의 방법들을 시도하고 소개합니다참 용감한 사람입니다그만큼 자신이 선언한 여행에 대해 책임감 있고 진지하게 실행했다는 뜻이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왜 여행을 하느냐는 것이다중략.

앞으로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시작은 미국에서브라질과 아마존 정글 속으로모로코와 몰타의 자연 속으로광활한 러시아로리가로 아름다운 에스토니아로그리고 키르기스스탄까지신기하고 재밌게도 제가 다니지 않는 지역들만 여행하니 흥미진진 가이드 여행을 간접 체험하는 것처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여행기입니다.

 

태어난 그대로 살아보자 아마존 정글 제목만 읽고도 부러운 기분이었습니다무려 7박 8일이나 머물렀습니다벼락을 맞아 인터넷이 끊기는 거야 별 문제가 아니지만 아무리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도 사람들이 친절해도 자연에 식재료가 널려 있어도도시가 아닌 곳에서의 제 생존 능력이 한심할 스스로의 나약함을 아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어 가이드가 나무와 강의 흐름을 보고 길을 찾고 물고기가 사는 곳(?)에 찾아가서 낚시를 하고 보고 싶은 동물을 보고 싶다고 부르는(?) 일이 정말 멋져 보입니다저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보러 가지 못합니다기대할 것도 즐거움도 없이털도 눈빛도 빛을 잃고좁은 공간에서 그저 살아남아 있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크루즈 여행은 제가 도버 해협을 건널 구실만 있으면 좋아라 했던 여행이라 그립고 부러웠습니다뭐 막 적극적으로 즐기기 보단 조용히 간식이나 먹으며 바다 구경하며 국경을 건너곤 했습니다만.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도 컸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을 하고 눈치를 자주 보았다.

동시에 그들이 지닌 인격에 대해 흠집을 잡으며,

이 사람은 어때서 나랑 안 맞고 저 사람은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이유를 만들었다.

내 기준에 완벽한 사람이 아니면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완벽하기를 원했다.

 

여행이란 장소를 방문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요저자가 만난 사람들 역시 저자가 다닌 장소들만큼 참 다양합니다상상 이상으로 다채롭고 흥미로운 인물 유형들입니다당연히(?) 친절하고 행복하고 즐겁고 유쾌한 이들도 있고불쾌하고 이해불가능하고 위협적이고 힘들게 하는 이들도 만납니다.

 

소위 젊음의 힘인지저자 특유의 생명력인지 자주 감탄스럽게도 저자는 아주 용감합니다게다가 아주 솔직합니다사람에 대해서도 장소에 대해서도 별로는 별로야라고 그냥 말합니다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귀에 대고 이야기를 들려주듯일기를 읽어주듯 그렇게 전해줍니다어떤 종류의 에세이일까 여행기일까 궁금했는데제가 읽기에는 여행일기(저널같습니다그 점이 저자와의 거리를 한층 가깝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눈과 사람의 눈이 다르다니 너무 웃기고 신기하다.

 

앞으로 뭘 하든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들 어떻게 사시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하는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잘 하면서 산다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아무에게나 소원으로 빌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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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
이현아 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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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에세이 재미있겠다, 라고 느긋한 생각을 했던 시간이 낯뜨겁게 머리가 쭈뼛하거나 마음이 떨리는 내용들이 한 가득이다.

 

저자들의 작업은 그저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들 구비하다가 어느새 내가 더 좋아하네하고 깨달은 그런 수준의 애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역시 창작으로 나서는 동력이란 다른 종류의 확실한 열망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이 책을 만든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분들은 그림을 그리며 잃어버린 마음 조각도 찾고 자기반성도 하고 이해와 공감을 위한 매개로도 삼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의 두 가지 운영 철학>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함께 창작하는 삶을 살아갈 것.

** 학교 안과 밖의 온도 차를 줄이는 통로의 역할을 할 것.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성으로서엄마로서읽고 쓰고 운동하는 사람으로서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그리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잘 살아가고픈 저자들의 면면.”

 

글을 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고 흥분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자극했다

평소 글쓰기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먼지 쌓인 아이패드를 꺼내 드로잉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살아있다는 건 말이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거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경계를 기억하면 삶의 무게 중심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삶,

내가 떠난 후에 남겨질 것들을 헤아리는 삶을 살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이렇게 얽히고설킨 인연으로 삶과 죽음 가운데에 순환하며 살아간다

생명력을 가진 죽음이기에 아프지만 슬프지 않고애틋하지만 허무하지 않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옆 사람을 제치고 빨리 도착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도착점에 가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

 

나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 사람들이 나의 노동에 고마워한다는 것

그것이 노동의 보람이자 가치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 관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타인도 나의 잣대로 섣부르게 판단해 버린다.

투박한 시선과 생각은 오해를 쌓고 대상과 거리감을 만든다.

 

공감의 핵심은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토끼처럼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에 상대방의 방식으로 그 존재를 존중해주며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었다

때론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공감의 핵심이었다.


내가 다수에 속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나의 기준을 들이밀며 쉽게 이야기한다.

내가 가진 일상적인 특권을 내려 놓고,

 주변을 둘러보며 그 특권을 갖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 익숙한 질서를 깨는 다수가 있다면......


자연스레 성장해나가는 생명을 믿고

그저 곁에서 지켜보고

보듬어주는 일

이 따뜻한 손길 덕분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모순과 얼룩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보다는 옷을 더 입어야 편할 듯하지만

이렇게 나무 그늘 아래 긴 의자에 잠시라도 누워 본 적이 언제일까

그런 일이 있긴 있었나

얼굴을 책으로 덮고 깊이 잠들었나

궁금하고 부러운 마음이 차오른다.

 

일 년에 한 마디만 성장하는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가는 듯 느껴지지만

열심히 몸집을 키우는 삼나무를 보면 여름 한 계절도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갔구나 싶다

식물들의 시간 의식을 보고 있으면

작은 들풀

커다란 나무

울창한 숲 등 자연은 그 누구 하나 계절을 쉬이 보내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이 첫 눈에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그림책 읽기가 조금 민망하기도 한 어른들 보라고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라고 해준 것이다경험과 생각들이 밀도가 높아서 솔솔 풀어가며 제대로 읽고 충분히 상상하는 일에도 필요한 시간은 다 들이게 된다.

 

읽을수록 확실해지는 생각은 성장을 마친 어른이란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특정 나이가 닥치면 법적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주고대접은 변변치 않게 해주면서 어른다움이나 어른구실에 대한 강요가 강한 사회가 불편하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에서 솔직하게 갈피를 못 잡겠다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지알아서 살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묵묵히 요구받은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이들도 많다그런 분들의 처진 어깨흔들리는 눈빛지친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늘 아프다.

 

이 책이 그런 어른들에게 얼른 도착했으면 좋겠다마음을 들여다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서 자기의 속도에 맞는 성장을 비로소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텐데……자신이 겪은 억울한 일들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남아 있는 폭력의 질서를 깨는 제대로 출세한(세상으로 나아간)’어른들로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쓴 수전 손택은 

연민이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이라면

공감은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 라고 했다

처음에 수민이는 캄보디아 아이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맨발로 축구하는 장면을 관망했다면

종내에는 그들 사이로 성큼 들어가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의 삶에 동정이나 연민을 보내지 않고

공감한 것이다.

 

대충 살고 싶은데 자꾸만 똑바로 제대로 살라는 매력적인 글들이 천지사방에 가득하다심지어 표지의 촉감조차 격려와 응원인 듯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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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엔 노스탤지어가 흐르고
김효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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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물감과 팔레트를 꺼내들고 싶게 만드는 참 아름다운 표지 색감이다이렇게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구도에 늘 끌리는데장면이 시선이 끝나는 곳에서 더 나아가려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그 간절한 느낌이 좋다할 수만 있다면 계속 이대로 끝까지 걸어가고 싶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코로나가 끝나면 내겐 별 흥미와 의미가 없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조차 즐겁게 걸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다매일 일하다 다치고 죽는 이들이 있는 현실에서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기도 하지만갑갑하고 답답하다기상과 동시에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앞에 바짝 붙어 서서 심호흡을 열 번 정도 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매년 토정비결을 보고 좋은 내용이 있으면 신이 나서 챙겨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올 해 내용을 받아만 두고 아직 안 읽어 봤다내용이 아주 길다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사주도 봐줬고 유학 가기 전 명성이 자자한 동대문 어디의 유명한 점집에서 점도 봐줬다그래서 알게 된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아주 강했다세 마리 말이 끌고 달리는 사주라나 - 삼두마차!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젊은 시절 가족 떠나 집 떠나 고향 떠나 나라 떠나 오래 돌아다니며 살겠다는 풀이였다.

 

사주를 보기 전 미리 계획된 것이긴 했지만 공항 멀미가 날 만큼 돌아다니긴 했다십대 때에도 이왕 태어난 거 지구를 다 둘러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그래봐야 지구의 동동 뜬 섬 위를 오종종 일부 다닌 것뿐이지만이 책을 읽으니 예전에 할 일 마치고 은퇴해서 유유자적한 세 마리 말에 고삐를 슬쩍 다시 매고 싶은 기분이 든다.

 

호모 바이에이터.

 

여행하는 존재.

 

살다가 큰 배반감을 느낀 적이 있는데그 중 하나가 세상에 여행가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순간이었다잠시 눈을 의심했다분했다이런 직업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모르고 전형적인 직업군의 세계에서만 선택지를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웠다그러다 여행을 하는 것만이 직업을 모두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행가란 직업은 어떤 일을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별로 없어 금방 자신감을 읽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이유들로 현재의 나는 여행기 읽기를 좋아한다모든 여행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선택 가능한 스펙트럼은 남부끄러울(?) 정도로 넓다아무래도 정보보다는 여행가이자 저자의 생각과 필력이 충분히 포함된 책들을 읽을 때가 아쉬움이 적다여행이라는 행위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 하며 둘러보는 혹은 살아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여행지 거주민들의 이야기나 여행가의 체험이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저자가 평화구현 세계민박단체 서바스 SERVAS’에 소속되었다는 점이다http://www.servas.or.kr/ 찾아보니 한국서바스 홈페이지가 존재한다행정안전부 주관 비영리민간단체(???)로서 나로선 모순되는 듯해 재밌고도 헷갈리는 설명이긴 했지만 정부기구가 주관하는 비정부기관이다혹시 아니라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명칭에서 쉽게 짐작하시듯 서바스SERVAS는 서비스Service, 에스페란토어*로 봉사를 뜻하며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종종교문화를 초월한 지구 평화를 원하는 단체이다서로가 호스트와 게스트로서 서로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이것은 내겐 엄청난 도전일 듯하다사적 공간에 대한 집착이 어느 고양이보다 강한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언젠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렇게 호방한 일도 해보고 싶다.

 

에스페란토Esperanto : 

 

1887년에 폴란드 안과 의사 라자로 루드비코 자멘호프(Lazaro Ludoviko Zamenhof, 1859~1917) 박사가 창안한 배우기 쉬운 국제 공용어이자 가장 대표적인 인공어이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주의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다른 민족과는 중립적인 국제공용 보조어 에스페란토를 사용한다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에스페란티스토'라고 한다에스페란토어를 상징하는 것은 초록별로서 초록색은 평화를별은 희망을 나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내용 중 일부 발췌).

 

세상에 나와 5분이 지나면

생명줄의 서맥은 스스로 멈춘다.

탯줄이 잘리는 순간,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되었다.

 

배꼽의 탄생이다.

 

지구의 배꼽 중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영화를 안 봐서 몰랐는데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애절하게 가고 싶었던 곳이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호주의 울루루라고 한다젊을 때 도전해볼 수도 있을 일이나백혈병까지 앓는 첫사랑과 함께 행복하게 경험할 장소는 아닌 듯하다무덥고 파리들이 떼 지어 덤비는 황량한 고지대 사막…….



독박육아로 아이를 수년 간 키우다 제대로 미칠 것 같아 한 달 휴가를 받아 저 멀리 호주로 한 달 떠난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로는 대도시를 제외한 호주는 아프리카보다 더 험하고 불편한 땅이라 했고 사막 비율만 봐도 해안가를 제외하면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다시 불끈 주먹을 든다.

뽀얀 창을 닦고,

한쪽 귀퉁이가 망가진 지불을 새로 고치고,

색바랜 담벼락을 칠한다.

골목에서는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골목엔 노스탤지어가 흐르고 중에서

 


!

나뭇잎 하나 어깨 위에 떨어진다.

우주가 내려앉는다.

 

바삭한 가을 중에서

 


참 좋다.

 

수필의 자유로운 문학적 특성은 언제나 여행기에서 그 진가를 더 발휘하는 듯하다.

저자가 문득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문득 찾아온 느낌을 기록하는 여행이야기.


지구가 자전을 멈추지 않는 한 그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어 쪼개 쓰는 우리의 시간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도저한 흐름을 순간순간으로 나누어,

때로는 지난 순간들을 꺼내어,

현재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남은 시간을 이렇게 살아가리라 하는 생각들.

 

저자의 감정은 때론 골목길에 멈춰 선 듯,

때론 우주를 비행하는 듯 그렇게 교차하기도 한다.

 

직접 찍은 사진들 역시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채,

단지 말이 아닌 방식으로 펼쳐친 순간들을 설명하고 있다.



담담한 위로와 편안한 글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시간에 좋은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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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조해진.김현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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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도구로 쓰는 생각과 마음을 도구로 쓰는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생각이 머무는 장소를 상상하니 눈송이처럼 머릿속에 흩날리던 그림들이 마음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잃어버린 것에 관한 생각의 파도는 자연스럽게 잃어버려선 안 되는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에 가닿지요

 

어쩐지 편지 바깥에서 너는 이미 행복한 듯 난감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하긴인간이 아름다운지혹은 인간을 아름답게 보는지?의 

기준은 모호하고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은 가변적이지.

어제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침과 저녁 사이에도 우리는 유빙인 듯 먼지인 양 생각과 생각 사이를 표류하는 존재들이니까.

고민하고 방황하고 배회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인간일 테니까.

 

현아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는 기쁨이 있다면 그 소식을 꼭 전해줘.

슬픈 소식만큼 기쁜 소식도 의무감을 갖고 전해줘.

우리 이것을 잊지 말자,

기쁨도 공유가 되어야 한다는 걸,

가꾸어지고 이름 불려야 한다는 걸.

 

편지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어머님의 안부를 물어요.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 친구 분께 두 손 모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생했으니 이제 편히 쉬라고어느 바람결에 전해주세요시인님…….

 

우정이란 그의 집에 찾아온 슬픔을 내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해서 내게 힘들다 말 전하지 않고 못하고 갑자기 떠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의 삶이 중단된 것보다 내가 받은 충격이 더 크고 중해서 제대로 이별도 못했습니다

그게 벌써 2년 전입니다

이 책에서 세상과 작별한 친구에게 전하는 구절이 있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늦은 인사를 전하자고 그렇게 혼자 결심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두 손 모아 하고 싶은 말들을 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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