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 - 종(種)의 최후 현대 예술의 거장
정준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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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남은 음악이다.

살아남았다면 다 클래식이다.

죽은 음악을 양분 삼아,

잊힌 음악과 맞서 여전히 전하는 것이 클래식이다.

 

스트라빈스키를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개봉한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영화를 보고 스토리보다 음악에 빠져서 한참을 듣게 된 순간이었다사람이든 다른 무엇이든 첫눈에 반하지 않는 성격이라알게 되니 좋아하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더 알게 되고 더 좋아지고 그렇게 찾아서 듣는 작곡가로 자리 잡았다

버릇처럼 잃어버린 2020년 봄에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보고 들으며 순진하게도 코로나 상황이 곧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기억이 서럽게 떠오른다.

 

어느 해 3개월 정도 정준호 작가가 진행한 <FM실황음악>을 들으며 거의 매일 오후 산책을 하기도 했다규칙적인 산책이 멈추고 시간대가 바뀌면서 그렇게 또 잊고 살았는데출간을 하신 줄은 몰랐다초판을 읽어 보지 못해 개정판 소식이 무척 반갑다특히나 올 해로 타계 50주년을 맞이한 스트라빈스키를차분하지만 가득 채워진 방송처럼 애정과 재능을 가득 쏟아 평면의 역사로부터 생생히 살려 내셨을 거라 믿으며 읽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1882년 6월 17일 출생 - 1971년 4월 6일 사망.

 

평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대비는 다루는 예술가의 예술 작품의 위대성을 최고로 끌어 올리고그 예술가의 사생활은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불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예술가를 경애하는 독자나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이나 평전을 읽는 독자는 거의 예외 없이 이 구도에서 갈등과 실망과 혹은 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이해를 하게 되는 여러 갈림길에 서게 된다.

 

사적으론 사생활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고 천인공노할 명백한 범죄가 아니라면 작품을 통해 예술가를 평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단지 이토록 많은 책들을 인용하고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연주들을 성실히 언급하는 저자가 진정한 복원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담지 않았을 내용이라 신뢰하기 때문에내용을 살펴보았다.

 

계산적속임수도 마다 않는이용가치 여부를 냉정하게 판단자기중심적권위적인 가부장불륜 행위니진스키는 비난을 했고 쇼스타코비치는 실망했다고 한다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이상적인 가치로 여기는 한편사생활에 대한 관심도는 병적일 만큼 높은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활동하기도 평가받기도 어려운 예술가임에 분명하다.

 

내 분야는 아니지만 성공이란 걸 하기가 얼마나 가능성이 희박한 세계인지 아는 지라당시 그가 할 수 있어 시도한 모든 책략들과 태도들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가 되어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술들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는 부와 명성을 추구한다나는 부와 명성을 바라지 않는다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작곡가지만 인생에 대해 쓰지는 않는다그는 아무런 목적 없는 소재들을 창안한다나는 목적 없는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다나는 자주 그에게 목적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려고 애썼지만그는 나를 한갓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중략스트라빈스키는 일의 낌새를 예민하게 알아챈다나는 그렇지 못하다니진스키의 말 중에서. 121-122

 

2020년 노벨상 재단에서 한해 마무리 공연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연주했다고 한다베토벤이 고전과거라면 스트라빈스키는 새로운 미래를 묘사한 것이라 하니 음악사를 전공한 분들에게는 익숙한 내용일지 모르나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무척 중요한 인물에 대해 무척 무지했구나하는 심정!

 

스트라빈스키조차 인정했듯이위대한 베토벤도 멜로디 위주의 작곡가는 아니었다스트라빈스키는 그 점을 시인하면서 무리하게 멜로디 주도론을 이어간다. ‘반독일 친 이탈리아 프레임의 핵심이 바로 멜로디 즉 선율이기 때문이다. 11

 

나는 <봄의 제전>을 정말 좋아한다발레 무용수들의 근육과 뼈를 찢고 부수는 노고를 통해 만들어진 안무이긴 하지만 조금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리듬을 들으면 봄에 소생하는 만물 중 하나가 된 듯지쳤다가도 일단 벌떡 일어나 보게 되는 힘이 있다.



나는 봄의 제전을 쓰면서 어떤 체계도 따르지 않았다당시 내가흥미를 갖던 다른 작곡가들곧 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들의 음악은 훨씬 체계적이다그리고 그것은 위대한 전통에 의해 지탱되었다봄의 제전을 쓰면서 내가 믿을 것이라고는 내 귀뿐이었다나는 들었고 내게 들리는 것을 적었다.” 123-124

 

또한 <봄의 제전>을 쓰면서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이나 예술의 종교화를 경계하였다는데이는 바그너와 바그너주의에 대한 반감반 독일 입장 등의 여러 요소들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겠지만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무척 마음에 드는 그의 예술 철학이다이로서 <봄의 제전>을 한층 더 가뿐하게 좋아할 수 있다니 신나는 노릇이다.

 

그것은 억제하지도 감추지도 못하는 슬픔이었다자신(드뷔시)과 전혀 다른 세계 앞에 놓인 사람의 얼굴이었다그것은 뒤에 남은 슬픔이자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새로운 형식을 마주친 예술가의 고통이었다.” 215

 

러시아 민족주의의 영향 하에서프랑스에서의 신고전주의 곡들의 작업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존경러시아 정교회의 교인이 된 이후의 종교음악미국보스턴에 정착한 후의 모더니즘영화 음악에까지 이르는 활발한 작곡 활동 등스트라빈스키의 삶은 자신의 욕망과 역사의 물결에 의한 끝없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저자 역시 스트라빈스키를 찾고 만나기 위한 도저한 여행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느껴진다번역서가 아니라서 더욱 잘 읽히는 내 생애 최초이자 최고의 평전으로서살지 못한 시대를 알 수도 있을 만큼 그렇게 세심하고도 깊이 있게 묘사해준다.

 

아주 오래 전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를 보러 갔더니 오페라를 관람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샤갈의 그림이 어울리지 않는 듯 혹은 그래서 더 특별한 듯 눈에 띄었다그림의 에펠탑 오른쪽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firebird]를 나타낸 것이란 설명을 들었다.



그것 말고는 두 예술가에 얽힌 이야기를 모르니 화가 샤갈과 스트라빈스키 관련 내용이 무엇일까 내심 몹시 궁금했다<불새>의 탄생과 성공 스승인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새를 소재로 한’ 작품 <황금닭>과 <불멸의 카셰이> 설화를 차용한 것으로 파리가 원하던 아방가르드란 요소로 전 유럽에서 연주가 성공하게 된다 은 그 오래전 지식 없이 만난 불새와 샤걀을 이제야 정식으로 만난 만족감을 주었다.

 

또한 들리는 것을 적었다라는 작곡가의 곡을 듣지 못하고서야 문장들 역시 제대로 이해된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면에서 유튜브나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공연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게 소개해준 부분의 내용이 반갑다.

 

무명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탁 후 파리 활동장 콕토와의 첫 조우드뷔시와 라벨의 프랑스 음악 전성기피카소와 마티의 미술 작업 활동코코 샤넬의 여성 패션 개념의 전복이 시기를 경험하면서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음악인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로 발길을 향하게 된다벌써 10년 전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에서 각자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절을 그리워하고 찾아 떠나는 눈부신 장면들이 떠오른다.

 

러시아 혁명으로 재산도 돌아갈 곳도 사라진 스트라빈스키는 프랑스로 국적을 바꾼다1차 세계 대전으로 스위스로 건너갔다 20세기 중반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국적을 옮긴다어느 분야든 역사에 따라 중심지는 옮겨 가게 마련이고 스트라빈스키는 고향과 집에 연연하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것우정도 명성도 영광도 기억도 작곡 스타일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마치 과거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버릴 수 있다대신 원하는 결과를 얻겠다라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선택들이다.

 

“1945년 12월 28스트라빈스키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전쟁이 끝나면서 유럽에서 건너온 인사들이 잔류와 귀향 사이에서 고민했지만중략그에게 가장 중요한 여건은 자유롭게 창작하고 연주할 환경이었다고민은 필요 없었다.” 377

 

초판본에 현대 음악의 차르라는 부제가 사라지고 이 책에는 종의 최후라는 부제가 달렸다왜 그랬을까저자는 스트라빈스키가 사망한 후 20세기 클래식 음악신고전주의 예술가란 종은 최후를 맞았다고 최종적인 비극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스트라빈스키를 지상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밀어 올린 것이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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