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만두를 먹는 가족
이재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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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만두와 가족이 등장하니 따뜻한 생활밀착형 이야기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이야기의 도입부가 채 지나지 않아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양’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소재가 나에겐 너무나 강렬하고 충격적이라 심하게 놀랐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폭력이 등장하는 미디어물이나 문학작품을 감상하지 못한 지가 꽤나 오래 되었고, 의도적으로도 소비하려하지 않는다. 현실의 가혹함과 범죄 수위가 절망적일 만큼 높기 때문이며 정서 상 그런 장면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심약한 독자로서 자주 만날 수 없는 ‘하드하기 그지없는’ 이 작품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영양만두의 재료로 사용되는 ‘개’의 환경과 물론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개공장, 식육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이 책의 주요 살인 사건이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해 마치 각오하라는 듯이 펼쳐져 있다. 그저 글자들일 뿐인데 이토록 음산하고 야만적일 수도 있다니. 문장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몸서리가 처지게 오싹했다.


“평생 개장사를 하니까 말이야. 개가 때론 사람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사람이 개로 보이기도 해. 요즘 사람들은 개를 개같이 키우지 않고 지 새끼처럼 키우잖아. 개장에서 사는 꼬락서니로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고.” 47


그 고비를 넘으면서 책을 덮지 않았다면 드디어 가족 수가 많은 한 남성이 살해된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데, 평소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타입이 아닌 나로서도 전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이런 세상은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평생 모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오죽하면 쓸쓸하고 적막한 주인공의 삶이 무척이나 인간적이게 느껴질 정도이다. 짧디 짧은 문장을 연결해서 속도감 있게 할 말 다 하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고 그 덕분에 몰입이 깨지지 않아서 숨을 거듭 멈추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미스터리의 구조가 아니라 분위기로 이렇게까지 독자를 겁먹게 할 수 있다니……. 물론 내가 겁쟁이가 그런 것뿐일 수도 있지만……. 이런 현실이, 유사한 현실이 실재할 것만 같은 분위기와 그것을 태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그저 소개하는 작가의 태도에 더 겁을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보통 용의자 중에서 누군가는 범인이 아니어도 알리바이가 애매해야 되잖아. 그런데 알리바이가 완벽한 게 이상하지 않다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거잖아.”

“이상하다는 거야 안 이상하다는 거야? 중략.

“신인범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죽느샤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게 문제지.” 168


이 대사가 복선이기도 한데, 실제 살인 사건은 간단한 구조가 아니었다. 전개하는 도중에 처음으로 짐작할 수 있는 해법도 충분히 끔찍한데, 최종 결말에 이르면 작가는 기어코 바닥을 한 번 더 부수어 보겠다는 식으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신뢰까지 싹 걷어 치워버린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그것도 한때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청춘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저는 최소한 그런 인간은 아닙니다.” 182


원한이 깊은 것도 아니고 그저 확실한 이익을 위해 이토록 흉악해질 수 있는 인간 세계, 발췌 내용이 많아서 미스터리를 망치는 건 아닌가 싶지만. 마음이 콕콕 찔리는 듯 따가웠던 구절들을 홀린 듯 다시 읽어 본다.


“탈은 보통 사람 얼굴하고 다르잖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글쎄요.”

“사람들이 평소 탈을 쓰고 살잖아요. 탈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탈 안에 있는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132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이유를 말해봐야 이유가 되겠냐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한테.”

“그래도 가족이잖아.”

“가족은 개뿔…….” 232


심기가 굳건하고 소설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강렬하고 팽팽하고 쌩쌩 결말을 향해 달리는 소설이 드물게 큰 즐거움일 거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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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 공책 1 - 도리스 레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창비세계문학 73
도리스 레싱 지음, 권영희 옮김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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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25년 전 대학원에서 읽은 책들이 개정되거나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다당시에는 한글 번역서도 없어서 영어로만 읽었던 책들이라 집중하고 애쓴 것에 비해 남아 있는 내용이 거의 전무하다반갑기도 하고 하나같이 쉽게 읽히는 내용들이 아닌 것을 기억하는지라 조금쯤은 망설이다 마치 도전하는 심정으로 읽어 보았다.

 

이 책의 저자 도리스 레싱의 저명함은 설명이 사족이겠지만 또 다른 저명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20대 초반에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눈을 떴다고 극찬한다. 그에 비해 20대에 이 책을 읽은 나는 차라리 이론서가 더 낫겠다 싶은 비참한 심정이었다당시 문학적 이해력이 부족하던 내게 특별한 도전을 끝까지 요구하던 무시무시한 작품물론 저서 자체의 명성과 저자의 능력이 의심할 바가 없다는 점에서 모든 헤맴과 오독은 순전히 나의 능력 탓이다.

 

어쩌면 1950년대 후반을 다루고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의 내용이 현재에 어떤 유용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겠냐고 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지만, 25년 전에 한번그리고 지금 다시 읽어본 나의 감상은 변하지 않은 현실이 절망스러운 만큼이나 이 책에서 선명하게 지적해내는 장면들이 바로 적용 가능한 시각과 세계관을 여전히 적용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은 페미니즘 문학에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이 아니라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해당하는 시대와 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얕기 때문에 당시 인물들이특히 여성 작가의 일상적인 삶과 추구하는 가치들과 그 속에서 분열되는 자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있지만그 역시 내 자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뿐이다게다가 인문사회학에 대한 공부도 부족해서그 시절 서구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반전(反戰)운동공산주의의 몰락여성해방운동 등의 주제들을 기본적인 내용을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문학 속에 녹아든 의미들을 눈 밝게 찾을 수가 없었다어쩌면 당시 내가 시몬느 드 보봐르의 <2의 성>을 비교적 잘 따라가며 읽고 중요한 내용을 파악했다고 느낀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몇 편의 글에서 반복하여 예를 들기도 했지만한국 사회는 오랜 세월 공고했던 가부장제와 다른 모든 가치들을 뒷전으로 물린 경제성장 논리의 부작용들이 염려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표출되는 끔찍한 경험들을 몇 년간 겪고 있다끊임없이 기사로도 재생산되고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지만결혼과 출산육아이혼율 등은 이제 특정 개인들의 개별적 특수성이나 특정 세대의 이기심 혹은 성별에 국한된 문제로 볼 수는 없다.

 

그중 외로운 여자 다섯 명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데도혹은 그들 탓에 조용하게 혼자서 미쳐가고 있었다모두 스스로에게 의혹을 품고 있었다자신이 행복하다는 이유에서 죄의식도 가지고 있었다예외 없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279~280


내 안의 긴장이 시작되었고 평화는 이미 사라졌다스위치가 켜지고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재닛에게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낸 다음 마이클에게도 아침을 차려줘야지차가 다 떨어졌다는 거 잊지 말고기타 등등기타 등등이 쓸모없지만 틀림없이 불가피한 긴장과 더불어 원망의 스위치도 함께 켜진다무엇에 대한 원망일까불공평이겠지세세한 것들을 걱정하느라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 519

 

크고 작은 범죄들로 거의 매일 자행되는 사건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대중교통 속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식당과 카페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이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부재하거나 마련되는 속도가 너무 늦어서 공포와 좌절과 무력감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자살이라는 또 다른 비극적 결말을 맞기도 한다.

 

이런 예들은 사실 나의 경험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데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저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가부장적인 면이 분명히 있으나 자식을 성차별하지 않고 폭력을 가하는 않는 부모를 운 좋게 만났고노골적이고 의도적인 성차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직장을 운 좋게 다녔을 뿐이고친구지인주변인들 역시 운 좋게 좋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나의 사적인 경험을 토대로 실제로 성차별과 젠더폭력이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모르겠다거나 과장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그것은 마치 나는 배고파 본 적이 없는데 정말 한국 사회에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있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여성적인 세계를 겨눈 그의 조롱은 그가 애나의 존재를 의식한 순간 시작되었다그래하지만 딱히 새로울 것도 없지애나는 이미 익숙한 터였다. (아이도 그 조롱이 자신을그리고 여성 일반을 겨누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애나는 딸에게 조용히 공감하며 생각했다그래내 가엾은 딸아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좋아끊임없이 그런 태도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니. 42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어두운 비밀이죠아무도 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어딘가 문을 열면 그 안에서는 늘 날카롭고 절박한알아듣기도 힘든 비명 소리가 귀를 때리거든요.” 436-437

 

그래서 몇 십 년 전 탄생한 이 책의 내용이 읽을수록 대한민국의 현실을 환기시킨다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느낌이 한편으로 서글프고 두렵기까지 하다힘들 때 힘든 이야기를 굳이 찾아 읽고 싶지 않다는 심정은 나도 마찬가지이지만혹시 기회가 있다면 그래도 나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불행을 증언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아주 일상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많은 공감을 나누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다소 경직되거나 경도된 한국 사회의 논의를 신기하게도 꼭 집어 지적해주는 듯한 내용도 있고당시에는 문학이라 더 어렵다고 느낀 부분들이 이제는 문학이라 가깝게 다가오는 점들도 있다그래서 이런 작품이 소위 세월과 무관하게 읽히고 재해석되는 명작일 것이다.

 

그건 차라리 우리 시대 여자들의 질환이다여자들의 얼굴이나 목소리에서혹은 그들이 사무실로 보내오는 편지에서 나는 매일 그걸 목격한다그들의 감정은 불의에 대한비개인적인 독성에 대한 원망이다그게 비개인적인 것을 알지 못하는 운 나쁜 여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남편이나 연인에게 떠넘긴다반면 나처럼 운 좋은 여자들은 그 감정에 맞서 싸운다피곤한 싸움이긴 하다. 520

 

아직 잠든 채로나는 나 자신이 어떤 페이지에 써놓은 말을 읽어보았다용기에 관한 내용이었는데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그런 용기가 아니었다그것은 모든 삶의 뿌리에 놓여있다 할 수 있다할 수 있는 작고 고통스러운 종류의 용기이는 불의와 잔인함이 또한 생명의 뿌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396

 

여자가 여자를 지켜주는 여자들만의 기사도가 있는 법이고이것은 다른 어떤 충성심보다 강력하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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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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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0세기의 일이니 참 오래전 일이다 싶다가도 그때 시대정신이라고 회자되던 이념들이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으니 현 시대에도 그 유효성이 여전하거나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그 당시 내 세계가 좁아서였겠지만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것만 같았던 연구주제들도 실제로는 대중성이 부족하거나 정책화된 적이 없었다는 평가가 맞는 결론이었다고도 생각된다생태주의, Ecology는 과학만의 분야처럼 들리기도 하지만통합학문을 추구하는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분야였다또한 환경과 사회에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 과학을 눈 먼 상태로 두는 일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철학적 기반과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는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되었다한 주제도 입장과 의견 차이에 따라 분야가 다양지는 경향에 일반적이지만세 개의 큰 흐름으로 구분하자면 생태주의는 심층생태학, Deep ecology, 생태여성학, Ecofeminism 그리고 생태사회주의, Ecosocialism으로 분류되었다.

 

생태여성학도 여러 분야로 다시 나뉘지만당시 대학원 수업에 생태철학이 포함되어 수강할 때 나의 관심사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반핵운동을 하면서 생태철학을 확립한 반다나 시바의 이론이 비슷한 전공을 택한 반가움을 더해 가장 흥미로웠다그래서 25년 전쯤에 영어책으로 읽은 <에코페미니즘>을 다시 번역된 책으로 만나게 된 기분은 반가우면서도 뜻밖의 조우처럼 복잡하다.

 

특히 반다나 시바는 유학 중에 재학 중인 학교에 두 번 초정되어 강의를 직접 들었고학점 교환이 되는 대학교를 인도 히말라야 부근에 설립하신 뒤로 수업료가 딱 절반이라 그 핑계로 인도도 가고 히말라야도 보고 강의도 듣게 되어서 특별한 추억이 있다기초과학을 전공하는 여성이라면 여성 동기나 선후배가 적고 교수는 더구나 거의 전무했던 시절이었던 지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더구나 성차별의 측면에서는 험난하다고 인식된 인도 사회의 여성이라 더욱 궁금하고 기대되는 분이었다.

 

이런 예전 기억을 갖고 한글로 번역된 책을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읽었다영어로 읽고 영어로 토론하고 영어로 리포트를 썼기 때문인지완전히 새로운 책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모든 독자가 술술 읽을 수는 없는 내용이다생태학이나 여성학사회학정치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독자가 이해하기 덜 힘들 거라 본다시바 이야기만 했지만 이 책은 독일의 사회학자 마리아 미스와의 공저이다일주일 정도 읽다 놓다 생각하다 메모하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과거의 기억도 현재에 다시 파악된 내용도 대강 정리가 된다.

 

다시 읽는대도 누가 자연을 우리의 적으로 만들었는가?”란 질문에 대한 사례로 든 근대과학자들의 발언은 여전히 어찌나 과격한지 차라리 믿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어머니 자연의 자궁으로 갱도를 파헤쳐 들어가 그것의 금기를 알아내야 한다.” “나쁜 여자를 다룰 때처럼 고문을 해서라도 자연의 비밀을 강제로 빼내야 한다.” 물론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는 단순히 이런 폭력성을 욕하거나 고발하고자 예를 든 것은 아니다고통스럽지만 왜 이렇게 근대 과학이자연과학자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연과 여성을 대상화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근본적인 환경의 변화가 어렵다는 과학 지식의 영역에서 생각해보자면아마도 1부에서 지적하는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이론은 여전히 유용한 통찰일 것이다과학지식의 중요성을 한편 인정하면서도 과학의 세계관이 마땅한 권위보다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제대로 연구하는 일이 어렵고 기존의 이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는 방식은 전문가 이외의 다양한 이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고그러다보면 확인된 정보 속에 갇혀 지식을 독점하는 부정적 결과도 늘 있어왔다특히나 사회가 급변하고 다루는 문제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경우에는자연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다른 방식으로 자급이 가능한 삶의 대안들을 부정하고 아예 지식의 영역에서 추방하기도 한다따라서 시장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은 여성의 노동과 존재와 양식은 이용하고 실험하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입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다.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자원 강탈은 강간의 문화를 낳는다지구에 대한 강간자족적인 지역 경제에 대한 강간여성에 대한 강간이다." 16

 

에코페미니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통계를 걸러내고 폭력의 강도와 범위를 수치화하며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책을 읽고 강단에 서서 강의하지 않는다대신 가장 먼저 거리로 나갔고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집을 요구했다중략 이 투쟁은 이후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경험과 투쟁이 이론적 연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32

 

가부장제 과학지식의 환원주의는 자신을 전문가 집단으로 호명하며 장 외부를 소외시킨다과학은 자연을 원자론으로 집어넣고 파편화하며 자연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창조 능력을 단일성으로 끌어내린다수동적 형태로 제시되는 자연은 생산성과 성장개발의 관점에서 착취 대상으로 분열통제배치된다. 91

 

"베이컨 이후 수 세기 동안인간과 어머니 자연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 사이의 공생관계의 파괴가 곧 자유와 해방의 과정으로 치부되어왔다." 중략. "인간과 자연의 상호 공생적인 관계를 일방적인 주종 관계로 바꾸지 않았다면 부르주아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이민족들과 그들의 땅을 백인 남성들의 식민지로 바꾸어놓지 않았다면 자본주의경제는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남성과 여성 간의 공생관계를 폭력적으로 파괴하지 않았다면여성을 단지 인간 이하의 동물이라 부르지 않았더라면새로운 남성들은 자연과 여성의 군주로 부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14

 

발췌한 내용이 충분하진 않지만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가 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이 책에서 주된 문제로 다루는 것은 과학의 환원주의와 소비주의라고 소개해도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닐 것이다이 둘이 주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당연히 그 피해와 희생은 비주류로 분류되는 대상들 자연여성 그리고 주류가 되지 못한 모든 이들 일 것이다.

 

따라서 비전문가로 분류되지만 인류의 오랜 역사 상 사실 삶의 방식으로 운영해왔던 이들의 자급경제가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더욱 보급되는 일과경제적 이익으로만 환원되는 개발주의그리고 그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주의가 현격하게 감소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인도 히말라야의 칩코 여성들이 벌목산업에 대항에 자발적으로 나무를 껴안고 벌였던 조용한 저항운동, tree-hugging은 유학 당시 유럽에서도 주목을 많이 받은 운동방식으로 나에게는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모든 해법이 늘 그렇듯이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지만내게는 이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보다역설적이게도 코로나로 세계가 멈춘 이후의 시간에서 더 설득력을 가질 해법들로 느껴진다.

 

우리는 다시는 이전에 정상이라고 불리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깊이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이 문제를 유발한 방식을 되풀이하면 똑같은 문제를 재생산하는 일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역사 상 처음으로 인류는 첨단기술을 탑재한 수천 개의 미사일들과 80% 이상이 수치로만 존재하는 금융자본이 인류의 생존에 마스크와 면봉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풍부한 사례를 보여주는 점인데 그 점은 책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셔야 제대로 실감하실 것이다전공도 이론도 실천도 넘나드는 두 학자의 이해력과 글쓰기 능력은 처음 발간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에코페미니즘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대중화시키는데 가장 큰 자산이었을 것이다문제점과 해결방식이라는 순서로 발췌를 하다 보니 대립적인 분위기가 가시적일 수도 있겠지만저자들은 인간과 비인간여성과 남성서구와 비서구라는 이분법에 전혀 기대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협동과 연계를 위해 이분법적 사고와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이 책 전반에서 제안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환경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 -는 심화되고 있고젠더 불평등은 개선의 동력이 미미하다가장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통계가 2012년인데 여전히 80%가 넘는 여성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가해자는 남편이나 남편 가족이 대부분이다가전제품의 현란함은 아쉽게도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총선이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은 국회의 여성국회의원의 수를 세어보는 것이 유의미한 통계에 더 가까운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뭘 개발하다가는 자연훼손이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공멸하게 생겼다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반에 일정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이 든 일이 근래에 있었다80% 가량의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답한 점이다나는 그렇게 높은 수치를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환경문제에 관한 한 상처와 불신이 깊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지극한 반성과 더불어 그새 강고해진 선입견을 버리는 기쁜 노력을 해야 했다그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것과 개발이 관련되는 첫 단계는 흔히 원인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 단계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지층에 묻힌 화석연료 탄소저장물 -를 땅 위로 캐내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멈추었다고 해서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노력하는 이들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비록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하더라도 셀 수 없이 수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세상이다풍부하고 유용한 통찰력이 가득하지만 만만치 않은 이 책의 재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귀환이다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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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gir 2020-04-19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서평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20-04-20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멋진 서평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을 얼마 후에 읽을 예정인데, 책을 읽기 전에 이 서평을 만난 것이 책 읽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았네요.
:)
 
꽝 없는 뽑기 기계 - 2020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곽유진 지음, 차상미 그림 / 비룡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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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 싫어하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고기 싫어하는 우리집 쪼꼬맹이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고깃집이 뽑기 기계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자면 가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이다. 


그렇다고 그 집 뽑기 상품이 대단하게 멋진 것은 아니고 결국 먹지 않는 사탕들만 잔뜩 나오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눈을 반짝이며 동전 주세요~를 공손히 부탁한다.


학교 문구점 뽑기 역시 어른들 눈으로 보자면 아주 조악한 장난감이 대부분이지만, 진지하게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기대가 반짝이고도 귀엽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 코로나로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도 선생님도 못 만나는 아이에게 선물하면 좋겠다 싶었다. 더구나 꽝이 없다니 얼마나 신나는 이야기일까!


그런데... 아이가 "뽑기가 좀 이상하네"라고 쓱 읽고 내려 둔 책이 궁금해 내가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8살 꼬맹이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한 겹씩 숨은 이야기가 들려올 땐 눈물이 솟구쳤다.


자식이 있는 부모의 할 일 중 하나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자식이 홀로설 수 있을 때까지 살아있어주는거라 믿는 나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늘 불안하고 두려운 점이 그것인 나로서는, 한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울음이 나왔다. 불시에 어린 자식들을 두고 떠난 부모도 그렇게 남겨진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탓하며 말을 못하게 된 아이도... 이런 상황을 슬프지 않게 표현할 방법은 없다. 더구나 어제는 4월 16일, 아직도 관련 기사만 봐도 눈물이 절로 흐르는 날이었다.


작가님이 참 대단한 점이 이런 상황 속에서 마치 마법처럼 아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장치를 만들어 이야기를 건네시는 점이다. 울면서도 진심으로 존경스럽다고 생각하고 또 감사했다. 


특히 떠난 부모가 미칠 듯이 그리운 부재의 순간, 엄마, 아빠의 칫솔이 없는 장면은... 작가님의 섬세한 장치에 감탄하면서도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고 일상적이라서 마음에 충격이 올 정도로 절감했다.


다행히 동화 속에서는 이런 위로와 치유가 있지만, 실제로 혼자 남겨진 아이들은 또 어떻게 오늘을 살아가나, 그런 생각이 가득해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무겁다. 아이를 낳고 문득 든 그런 생각으로 작은 후원을 하고는 있지만, 이럴 때 내게도 마법의 지팡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아이들책이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란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비룡소의 이 책이 왜 대상을 받았는지 그 이유를 듣지 않아도 다 알 것같다.


좋은 책, 감동적인 책, 어쩌면 누군가의 생각과 일상을 바꿀 지도 모르는 책의 출간에 감사드린다. 부디 아이들도 어른들도 조금 덜 아프고 덜 외로운 날들이 더 많아지길 흘린 눈물만큼의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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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영어의 정석
김병용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영어학습에 관한 서적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목적에 따라 수험서와 실용서와 학술서 등으로 그 종류도 갖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당면한 특정한 목적을 위한 단기 학습이 아니라 어학으로서 혹은 일상 언어로서 학습하려는 이들에게는 그 복잡하고 다양한 저서들 중에서 무엇을 얼마나 익혀야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권위 있는 문화원이나 어학원에서 배우는 일이 가장 편한 방법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역시 시험과 자격증에 수업 내용이 맞춰져 있게 마련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 가서 일정 기간 이상 살아 보는 것이다. 그 방법이 간단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나는 철저히 유학에 맞춰서 영국문화원에서 수강을 했고 몇 해를 영국에서 지냈으나 전공과 관련된 영어와 학계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만 익숙하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일상 영어는 거의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 물론 의사소통이 어학에만 한정된 행위가 아니라서 “내가 공부하러 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서 살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자 비로소 다른 종류의 인간관계와 일상적인 대화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고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농담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영어가 가장 익숙한 외국어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기 때문에 ‘발음만은, 문법만은, 독해만은, 쓰기만은 제대로 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단지 내 경험일 뿐이지만, 나도 내가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한국 교육 과정에서 전무하거나 누락된 하지만 아주 기초적이고 중요한 사실들을 뒤늦게 배우면서 배신감(?)과 낭패감을 동시에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

 

<생활영어>라는 제목과는 달리 분량이 많고 그 내용 또한 비례해서 묵직하고 진지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기억들 - 어쩌면 다른 분들은 다 알고 나만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 이 다시 떠올랐다. 모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어 역시 개인차가 결국엔 가장 큰 결과의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어학준비를 하면서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성격 탓이 크다. 잘 안 들려도 당황하기는커녕 “어차피 난 한국어도 처음 만난 사람,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 말은 잘 안 들리니까.” 혹은 “세상엔 무수한 말투가 있으니까” 이런 식……. 너무 게으르고 무덤덤했던가 싶지만.

 

그 와중에도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안 들리는 말은 할 수가 없고 한국어로 모르는 단어와 주제는 외국어로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컨텐츠가 없으면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내게 식품영양학에 대해 한국어로 10분간 이야기하라고 하면 한국어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기 아이 영어 공부 어떻게 하면 좋냐고 가끔 묻는 어머니들에게 여러 번 말씀을 드렸다. “아이가 한국어 단어를 100개밖에 모르면 영어 단어도 그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을 골고루 발췌하는 것이 어려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해본다. 나는 재밌게 비교하며 배웠고 저자도 마침 시작부터 소개하는 내용이다.

 

한글은 우리가 이미 사용하는 ‘말’에 맞추어 만든 글자이기 때문에 모든 ‘말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의 개수가 정확하다.

 

그에 비해 ‘영어’는 라틴어로부터 시작해서 ‘로마문자’로 정리된 것을 빌려서 사용하는 문자 - 알파벳 -이기 때문에 발화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말소리와 일치하는 문자가 아니다. 따라서 소리의 개수가 불일치하고 영어 자음과 모음의 개수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 모음은 A, E, I, O, U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갈수록 끝없이 영어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인정하기 싫겠지만 영어 모음은 A E I O U가 절대 아니다. 이들 다섯 글자는 영어 모음 글자일 뿐이고 영어 모음의 개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한다. 정리된 저자의 예를 직접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알파벳 'A'만 해도 8가지 모음을 표현한다.

 

1. [ɑ] : garage[gə'rɑ:dƷ], father['fɑ:ðə(r)] → '아'와 비슷한 소리


2. [æ] : Canada['kænədə], apple[ǽpl] → '애'소리


3. [ei] : maple['meɪpl], ace[eɪs] → '에이'소리


4. [e] : fare[fer], air[er] → '에'소리 '어'는 [r]발음을 하면서 나는 소리


5. [ɔ] : ball [bɔ:l], hall[hɔ:l] → '아'와 '오'가 합쳐진 소리


6. [ɪ] : garbage ['gɑ:rbɪdƷ] , surface ['sə:rfɪs] → 짧은 '이' 소리


7. [ə]: banana[bə'nӕnə], again[ə'geɪn] → '어'소리


8. [ ] : hospital['hɑ:spɪtl], mental['mentl] → 묵음(소리가 나지 않음)


이러니 소리와 글자가 일치하는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인들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불일치를 배우기는 하지만 혼동이 없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가성비가 좋다고 볼 수도 있으나 다르게 보면 이토록 무규칙에 - 적어도 학습자 입장에서는 - 낭비가 심한 언어도 없다.

 

게다가 음성언어는 같은 단어라고 하더라도 앞뒤에 오는 단어나 화자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소리 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자나 신호 등으로 음성언어를 100% 완벽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또한 문자 언어는 음성언어만큼 유연하지 않아 이 둘에는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모국어라면 음성언어를 먼저 배우고 문자를 배우니 문자를 모른다 하더라도 말을 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어는 문자를 먼저 배우고 그 문자들을 통해 음성언어 읽는 법을 배우는데 문자와 소리가 다른, 매우 다른, 자주 다른 영어의 알파벳은 거의 시작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ㄱ’에 ‘ㅏ’면 ‘가’이고, 이런 규칙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발성법을 정확히 가르쳐주고 어이가 말을 배우듯 청각 수업을 먼저 하는 시간과 노력이 부족한 경우, A, E, I, O, U가 모음이라는 지식을 기억하는 한 발음이 될 리가 없고 따라서 회화가 될 리도 없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영국 영어에는 단모음 11개와 이중 모음 5개 도합 16개의 모음이 있다.

 

단모음: /i: ɪ, ɛ, æ, ɑ:, ɔ:, u: ʊ, ʌ, ɚ, ə/ (11개)


이중모음: /aɪ, eɪ, oɪ, aʊ, oʊ/ (5개) 총 16 개

 

영어 모음은 국어와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발음할 수 있다.


단모음과 이중모음으로 나누어진다.


단모음은 다시 길게 발음하는 긴모음과 짧게 발음하는 잛은 모음으로 구분되다.


긴모음: /i:, a:, u:, aw/ (4개)


짧은 모음: /i, e, ae, u, uo, ur, eo/ (7개)


영국 영어의 자음은 미국과 같고 모음만이 다르다. 단모음에서는 /ɒ/ 한 개가 추가되고, 미국 영어의 /ɛ/를 /e/로, /ɚ/를 /ɜ:/로 발음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영국 영어의 단모음은 12개이다.

 

이중모음은 미국 영어의 이중모음 5개에서 /ɪə, eə, ʊə/ 3개가 추가된다. 그래서 영국 영어의 이중모음은 8개가 된다.

 

결과적으로 영국 영어의 모음 개수는 단모음 12개와 이중모음 8개를 합쳐 총 20개이다.

 

단모음: /i: ɪ, e, æ, ɑ:, ɔ:, u: ʊ, ʌ, ɜ:, ə, ɒ/ (12개)


이중모음: /aɪ, eɪ, oɪ, aʊ, oʊ, ɪə, eə, ʊə/ (8개) 총 20 개

 

한국은 미국영어(?) - 어느 지역인지 제대로 특정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사실 의미 없는 구분이지만, 어쨌든 - 를 미국인처럼 하는 것이 학습 목표처럼 통용되는데, 세상에는 그냥 수많은 영어들이 있다. 유학할 당시 동기들 25명의 국적은 17개였다. 2주일 정도 우리는 누구도 누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물론 미국인과 영국인도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고 같은 단어의 뜻이 다를 때도 있고 표현도 달라서 자기들끼리도 열심히 물어서 소통을 위한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 학회에 가기 위해 이용한 기차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행한 네 명은 영국인, 이탈리아인, 스웨덴인, 한국인이었는데 아무도 방송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만약 무슨 사고가 난 거라면 우리는 큰 일 난거라고 잠시 두려웠다. 그러니 혹여 한국인만 영어를 못하네 하는 헛소문 때문에 절대 좌절하지 마시라, 여러 해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본 결과 한국인들은 아주 고급스럽고 문법도 잘 맞는 교양 있는 영어를 사용한다.

 

문법은 인지주의 학습이론에 따라,


학습방법은 모국어 익히는 과정을 모델링해서,


인공지능과 언어심리학 학습이론을 참고하여 구성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모두 다 잘 모르지만 게으르게 한번 쭉 통독하는 것만으로도 끄덕끄덕하며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험과 자격증에 더 이상 도전할 걱정은 안 하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총괄적이고 포괄적으로 언어를 열심히 설명하는 이 책이 친절한 이야기책처럼 잘 읽혔습니다.


다른 독자분들에게도 무언가 유익하고 재밌는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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