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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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0세기의 일이니 참 오래전 일이다 싶다가도 그때 시대정신이라고 회자되던 이념들이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으니 현 시대에도 그 유효성이 여전하거나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그 당시 내 세계가 좁아서였겠지만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것만 같았던 연구주제들도 실제로는 대중성이 부족하거나 정책화된 적이 없었다는 평가가 맞는 결론이었다고도 생각된다생태주의, Ecology는 과학만의 분야처럼 들리기도 하지만통합학문을 추구하는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분야였다또한 환경과 사회에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 과학을 눈 먼 상태로 두는 일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철학적 기반과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는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되었다한 주제도 입장과 의견 차이에 따라 분야가 다양지는 경향에 일반적이지만세 개의 큰 흐름으로 구분하자면 생태주의는 심층생태학, Deep ecology, 생태여성학, Ecofeminism 그리고 생태사회주의, Ecosocialism으로 분류되었다.

 

생태여성학도 여러 분야로 다시 나뉘지만당시 대학원 수업에 생태철학이 포함되어 수강할 때 나의 관심사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반핵운동을 하면서 생태철학을 확립한 반다나 시바의 이론이 비슷한 전공을 택한 반가움을 더해 가장 흥미로웠다그래서 25년 전쯤에 영어책으로 읽은 <에코페미니즘>을 다시 번역된 책으로 만나게 된 기분은 반가우면서도 뜻밖의 조우처럼 복잡하다.

 

특히 반다나 시바는 유학 중에 재학 중인 학교에 두 번 초정되어 강의를 직접 들었고학점 교환이 되는 대학교를 인도 히말라야 부근에 설립하신 뒤로 수업료가 딱 절반이라 그 핑계로 인도도 가고 히말라야도 보고 강의도 듣게 되어서 특별한 추억이 있다기초과학을 전공하는 여성이라면 여성 동기나 선후배가 적고 교수는 더구나 거의 전무했던 시절이었던 지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더구나 성차별의 측면에서는 험난하다고 인식된 인도 사회의 여성이라 더욱 궁금하고 기대되는 분이었다.

 

이런 예전 기억을 갖고 한글로 번역된 책을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읽었다영어로 읽고 영어로 토론하고 영어로 리포트를 썼기 때문인지완전히 새로운 책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모든 독자가 술술 읽을 수는 없는 내용이다생태학이나 여성학사회학정치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독자가 이해하기 덜 힘들 거라 본다시바 이야기만 했지만 이 책은 독일의 사회학자 마리아 미스와의 공저이다일주일 정도 읽다 놓다 생각하다 메모하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과거의 기억도 현재에 다시 파악된 내용도 대강 정리가 된다.

 

다시 읽는대도 누가 자연을 우리의 적으로 만들었는가?”란 질문에 대한 사례로 든 근대과학자들의 발언은 여전히 어찌나 과격한지 차라리 믿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어머니 자연의 자궁으로 갱도를 파헤쳐 들어가 그것의 금기를 알아내야 한다.” “나쁜 여자를 다룰 때처럼 고문을 해서라도 자연의 비밀을 강제로 빼내야 한다.” 물론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는 단순히 이런 폭력성을 욕하거나 고발하고자 예를 든 것은 아니다고통스럽지만 왜 이렇게 근대 과학이자연과학자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연과 여성을 대상화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근본적인 환경의 변화가 어렵다는 과학 지식의 영역에서 생각해보자면아마도 1부에서 지적하는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이론은 여전히 유용한 통찰일 것이다과학지식의 중요성을 한편 인정하면서도 과학의 세계관이 마땅한 권위보다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제대로 연구하는 일이 어렵고 기존의 이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는 방식은 전문가 이외의 다양한 이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고그러다보면 확인된 정보 속에 갇혀 지식을 독점하는 부정적 결과도 늘 있어왔다특히나 사회가 급변하고 다루는 문제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경우에는자연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다른 방식으로 자급이 가능한 삶의 대안들을 부정하고 아예 지식의 영역에서 추방하기도 한다따라서 시장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은 여성의 노동과 존재와 양식은 이용하고 실험하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입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다.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자원 강탈은 강간의 문화를 낳는다지구에 대한 강간자족적인 지역 경제에 대한 강간여성에 대한 강간이다." 16

 

에코페미니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통계를 걸러내고 폭력의 강도와 범위를 수치화하며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책을 읽고 강단에 서서 강의하지 않는다대신 가장 먼저 거리로 나갔고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집을 요구했다중략 이 투쟁은 이후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경험과 투쟁이 이론적 연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32

 

가부장제 과학지식의 환원주의는 자신을 전문가 집단으로 호명하며 장 외부를 소외시킨다과학은 자연을 원자론으로 집어넣고 파편화하며 자연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창조 능력을 단일성으로 끌어내린다수동적 형태로 제시되는 자연은 생산성과 성장개발의 관점에서 착취 대상으로 분열통제배치된다. 91

 

"베이컨 이후 수 세기 동안인간과 어머니 자연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 사이의 공생관계의 파괴가 곧 자유와 해방의 과정으로 치부되어왔다." 중략. "인간과 자연의 상호 공생적인 관계를 일방적인 주종 관계로 바꾸지 않았다면 부르주아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이민족들과 그들의 땅을 백인 남성들의 식민지로 바꾸어놓지 않았다면 자본주의경제는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남성과 여성 간의 공생관계를 폭력적으로 파괴하지 않았다면여성을 단지 인간 이하의 동물이라 부르지 않았더라면새로운 남성들은 자연과 여성의 군주로 부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14

 

발췌한 내용이 충분하진 않지만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가 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이 책에서 주된 문제로 다루는 것은 과학의 환원주의와 소비주의라고 소개해도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닐 것이다이 둘이 주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당연히 그 피해와 희생은 비주류로 분류되는 대상들 자연여성 그리고 주류가 되지 못한 모든 이들 일 것이다.

 

따라서 비전문가로 분류되지만 인류의 오랜 역사 상 사실 삶의 방식으로 운영해왔던 이들의 자급경제가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더욱 보급되는 일과경제적 이익으로만 환원되는 개발주의그리고 그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주의가 현격하게 감소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인도 히말라야의 칩코 여성들이 벌목산업에 대항에 자발적으로 나무를 껴안고 벌였던 조용한 저항운동, tree-hugging은 유학 당시 유럽에서도 주목을 많이 받은 운동방식으로 나에게는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모든 해법이 늘 그렇듯이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지만내게는 이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보다역설적이게도 코로나로 세계가 멈춘 이후의 시간에서 더 설득력을 가질 해법들로 느껴진다.

 

우리는 다시는 이전에 정상이라고 불리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깊이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이 문제를 유발한 방식을 되풀이하면 똑같은 문제를 재생산하는 일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역사 상 처음으로 인류는 첨단기술을 탑재한 수천 개의 미사일들과 80% 이상이 수치로만 존재하는 금융자본이 인류의 생존에 마스크와 면봉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풍부한 사례를 보여주는 점인데 그 점은 책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셔야 제대로 실감하실 것이다전공도 이론도 실천도 넘나드는 두 학자의 이해력과 글쓰기 능력은 처음 발간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에코페미니즘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대중화시키는데 가장 큰 자산이었을 것이다문제점과 해결방식이라는 순서로 발췌를 하다 보니 대립적인 분위기가 가시적일 수도 있겠지만저자들은 인간과 비인간여성과 남성서구와 비서구라는 이분법에 전혀 기대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협동과 연계를 위해 이분법적 사고와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이 책 전반에서 제안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환경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 -는 심화되고 있고젠더 불평등은 개선의 동력이 미미하다가장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통계가 2012년인데 여전히 80%가 넘는 여성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가해자는 남편이나 남편 가족이 대부분이다가전제품의 현란함은 아쉽게도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총선이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은 국회의 여성국회의원의 수를 세어보는 것이 유의미한 통계에 더 가까운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뭘 개발하다가는 자연훼손이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공멸하게 생겼다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반에 일정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이 든 일이 근래에 있었다80% 가량의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답한 점이다나는 그렇게 높은 수치를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환경문제에 관한 한 상처와 불신이 깊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지극한 반성과 더불어 그새 강고해진 선입견을 버리는 기쁜 노력을 해야 했다그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것과 개발이 관련되는 첫 단계는 흔히 원인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 단계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지층에 묻힌 화석연료 탄소저장물 -를 땅 위로 캐내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멈추었다고 해서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노력하는 이들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비록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하더라도 셀 수 없이 수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세상이다풍부하고 유용한 통찰력이 가득하지만 만만치 않은 이 책의 재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귀환이다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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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gir 2020-04-19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서평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20-04-20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멋진 서평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을 얼마 후에 읽을 예정인데, 책을 읽기 전에 이 서평을 만난 것이 책 읽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