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영어의 정석
김병용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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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습에 관한 서적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목적에 따라 수험서와 실용서와 학술서 등으로 그 종류도 갖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당면한 특정한 목적을 위한 단기 학습이 아니라 어학으로서 혹은 일상 언어로서 학습하려는 이들에게는 그 복잡하고 다양한 저서들 중에서 무엇을 얼마나 익혀야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권위 있는 문화원이나 어학원에서 배우는 일이 가장 편한 방법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역시 시험과 자격증에 수업 내용이 맞춰져 있게 마련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 가서 일정 기간 이상 살아 보는 것이다. 그 방법이 간단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나는 철저히 유학에 맞춰서 영국문화원에서 수강을 했고 몇 해를 영국에서 지냈으나 전공과 관련된 영어와 학계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만 익숙하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일상 영어는 거의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 물론 의사소통이 어학에만 한정된 행위가 아니라서 “내가 공부하러 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서 살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자 비로소 다른 종류의 인간관계와 일상적인 대화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고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농담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영어가 가장 익숙한 외국어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기 때문에 ‘발음만은, 문법만은, 독해만은, 쓰기만은 제대로 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단지 내 경험일 뿐이지만, 나도 내가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한국 교육 과정에서 전무하거나 누락된 하지만 아주 기초적이고 중요한 사실들을 뒤늦게 배우면서 배신감(?)과 낭패감을 동시에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

 

<생활영어>라는 제목과는 달리 분량이 많고 그 내용 또한 비례해서 묵직하고 진지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기억들 - 어쩌면 다른 분들은 다 알고 나만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 이 다시 떠올랐다. 모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어 역시 개인차가 결국엔 가장 큰 결과의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어학준비를 하면서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성격 탓이 크다. 잘 안 들려도 당황하기는커녕 “어차피 난 한국어도 처음 만난 사람,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 말은 잘 안 들리니까.” 혹은 “세상엔 무수한 말투가 있으니까” 이런 식……. 너무 게으르고 무덤덤했던가 싶지만.

 

그 와중에도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안 들리는 말은 할 수가 없고 한국어로 모르는 단어와 주제는 외국어로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컨텐츠가 없으면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내게 식품영양학에 대해 한국어로 10분간 이야기하라고 하면 한국어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기 아이 영어 공부 어떻게 하면 좋냐고 가끔 묻는 어머니들에게 여러 번 말씀을 드렸다. “아이가 한국어 단어를 100개밖에 모르면 영어 단어도 그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을 골고루 발췌하는 것이 어려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해본다. 나는 재밌게 비교하며 배웠고 저자도 마침 시작부터 소개하는 내용이다.

 

한글은 우리가 이미 사용하는 ‘말’에 맞추어 만든 글자이기 때문에 모든 ‘말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의 개수가 정확하다.

 

그에 비해 ‘영어’는 라틴어로부터 시작해서 ‘로마문자’로 정리된 것을 빌려서 사용하는 문자 - 알파벳 -이기 때문에 발화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말소리와 일치하는 문자가 아니다. 따라서 소리의 개수가 불일치하고 영어 자음과 모음의 개수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 모음은 A, E, I, O, U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갈수록 끝없이 영어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인정하기 싫겠지만 영어 모음은 A E I O U가 절대 아니다. 이들 다섯 글자는 영어 모음 글자일 뿐이고 영어 모음의 개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한다. 정리된 저자의 예를 직접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알파벳 'A'만 해도 8가지 모음을 표현한다.

 

1. [ɑ] : garage[gə'rɑ:dƷ], father['fɑ:ðə(r)] → '아'와 비슷한 소리


2. [æ] : Canada['kænədə], apple[ǽpl] → '애'소리


3. [ei] : maple['meɪpl], ace[eɪs] → '에이'소리


4. [e] : fare[fer], air[er] → '에'소리 '어'는 [r]발음을 하면서 나는 소리


5. [ɔ] : ball [bɔ:l], hall[hɔ:l] → '아'와 '오'가 합쳐진 소리


6. [ɪ] : garbage ['gɑ:rbɪdƷ] , surface ['sə:rfɪs] → 짧은 '이' 소리


7. [ə]: banana[bə'nӕnə], again[ə'geɪn] → '어'소리


8. [ ] : hospital['hɑ:spɪtl], mental['mentl] → 묵음(소리가 나지 않음)


이러니 소리와 글자가 일치하는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인들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불일치를 배우기는 하지만 혼동이 없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가성비가 좋다고 볼 수도 있으나 다르게 보면 이토록 무규칙에 - 적어도 학습자 입장에서는 - 낭비가 심한 언어도 없다.

 

게다가 음성언어는 같은 단어라고 하더라도 앞뒤에 오는 단어나 화자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소리 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자나 신호 등으로 음성언어를 100% 완벽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또한 문자 언어는 음성언어만큼 유연하지 않아 이 둘에는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모국어라면 음성언어를 먼저 배우고 문자를 배우니 문자를 모른다 하더라도 말을 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어는 문자를 먼저 배우고 그 문자들을 통해 음성언어 읽는 법을 배우는데 문자와 소리가 다른, 매우 다른, 자주 다른 영어의 알파벳은 거의 시작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ㄱ’에 ‘ㅏ’면 ‘가’이고, 이런 규칙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발성법을 정확히 가르쳐주고 어이가 말을 배우듯 청각 수업을 먼저 하는 시간과 노력이 부족한 경우, A, E, I, O, U가 모음이라는 지식을 기억하는 한 발음이 될 리가 없고 따라서 회화가 될 리도 없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영국 영어에는 단모음 11개와 이중 모음 5개 도합 16개의 모음이 있다.

 

단모음: /i: ɪ, ɛ, æ, ɑ:, ɔ:, u: ʊ, ʌ, ɚ, ə/ (11개)


이중모음: /aɪ, eɪ, oɪ, aʊ, oʊ/ (5개) 총 16 개

 

영어 모음은 국어와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발음할 수 있다.


단모음과 이중모음으로 나누어진다.


단모음은 다시 길게 발음하는 긴모음과 짧게 발음하는 잛은 모음으로 구분되다.


긴모음: /i:, a:, u:, aw/ (4개)


짧은 모음: /i, e, ae, u, uo, ur, eo/ (7개)


영국 영어의 자음은 미국과 같고 모음만이 다르다. 단모음에서는 /ɒ/ 한 개가 추가되고, 미국 영어의 /ɛ/를 /e/로, /ɚ/를 /ɜ:/로 발음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영국 영어의 단모음은 12개이다.

 

이중모음은 미국 영어의 이중모음 5개에서 /ɪə, eə, ʊə/ 3개가 추가된다. 그래서 영국 영어의 이중모음은 8개가 된다.

 

결과적으로 영국 영어의 모음 개수는 단모음 12개와 이중모음 8개를 합쳐 총 20개이다.

 

단모음: /i: ɪ, e, æ, ɑ:, ɔ:, u: ʊ, ʌ, ɜ:, ə, ɒ/ (12개)


이중모음: /aɪ, eɪ, oɪ, aʊ, oʊ, ɪə, eə, ʊə/ (8개) 총 20 개

 

한국은 미국영어(?) - 어느 지역인지 제대로 특정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사실 의미 없는 구분이지만, 어쨌든 - 를 미국인처럼 하는 것이 학습 목표처럼 통용되는데, 세상에는 그냥 수많은 영어들이 있다. 유학할 당시 동기들 25명의 국적은 17개였다. 2주일 정도 우리는 누구도 누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물론 미국인과 영국인도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고 같은 단어의 뜻이 다를 때도 있고 표현도 달라서 자기들끼리도 열심히 물어서 소통을 위한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 학회에 가기 위해 이용한 기차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행한 네 명은 영국인, 이탈리아인, 스웨덴인, 한국인이었는데 아무도 방송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만약 무슨 사고가 난 거라면 우리는 큰 일 난거라고 잠시 두려웠다. 그러니 혹여 한국인만 영어를 못하네 하는 헛소문 때문에 절대 좌절하지 마시라, 여러 해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본 결과 한국인들은 아주 고급스럽고 문법도 잘 맞는 교양 있는 영어를 사용한다.

 

문법은 인지주의 학습이론에 따라,


학습방법은 모국어 익히는 과정을 모델링해서,


인공지능과 언어심리학 학습이론을 참고하여 구성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모두 다 잘 모르지만 게으르게 한번 쭉 통독하는 것만으로도 끄덕끄덕하며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험과 자격증에 더 이상 도전할 걱정은 안 하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총괄적이고 포괄적으로 언어를 열심히 설명하는 이 책이 친절한 이야기책처럼 잘 읽혔습니다.


다른 독자분들에게도 무언가 유익하고 재밌는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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