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가짜라고 생각할까 - 가면 뒤에서 불안한 당신을 위한 심리학
산디만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본 영화 <라 붐>의 소피 마르소에 완전 홀려서 당연히(?) <유 콜 잇 러브>를 보고 몰리에르에 대해서도 잠시 집착하였다희곡을 읽었는데 번역 상태를 감안하고도 무척 재미있는 작품들이란 느낌이 왔다게으른 성격이 아니라면 그때 불어 공부를 시작해도 늦은 건 아니었는데어쨌든 몰리에르(Molière), '타르튀프 혹은 위선자(Le Tartuffe ou L’imposteur)'에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

 

그러니까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 또는 증후군이라는 것이다저자 역시 성공한 이들 중에는 빈번하게평균 70% 정도의 사람들이 한 번 이상 겪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질환이 아닌 경험으로 분류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 한다.

 

언제라도 사람들이 내가 껍데기일 뿐이란 걸 알아차릴 것 같아요” 엠마 왓슨

 

불쑥불쑥 내가 사기꾼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어요내 자리가 내가 있을 곳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요.” 페이스북 최고운영자(coo) 셰릴 센드버그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산디 만 박사 역시 경험이 있다.



"사기꾼이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면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실패는 자신이 가짜라는 생각만 키울 뿐이다그들은 실패는 물론이고 어중간하게 하는 것도 두려워한다중략자기에게는 자격이 없다고 믿으며 언젠가 재능 결여가 들통나 지금껏 쌓아온 부와 명성을 삽시간에 잃을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며 산다."

 

"한때 사기꾼증후군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야심만만한 출세주의자들의 병으로 통했지만이제 더는 이들만 겪는 증상이 아니다자신이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엄마자신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느끼는 아빠인기가 없어서 고민인 친구심지어 신앙심이 부족해 면목이 없다는 사람도 저자의 상담클리닉을 찾았다."

 

어쨌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통계 수치가 늘 확실한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느끼는 불안이고 증상이다저자는 그런 점을 잘 이해해서 사기꾼 증후군 진행 과정을 설명해 두었고자가진단테스트까지 마련해 두었다.

 

진행 과정은 단순하다성공할 것 같지 않았는데성공했다면운이 좋아 성공한 것즉 세상 사람들이 내가 순전히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것을 언젠가 알아차릴 거라는 불안이 동반하는 증상이다그러니 정체가 타인들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지면 과도한 노력을 하고속마음을 숨기고멘토를 찾고완벽주의 성향을 보이고칭찬을 무시하거나 성과를 폄하하여 자신을 불구*화한다고 설명한다.

 

* ‘불구라는 표현이 비하발언으로 분류되는지 아시는 분께서 댓글 등으로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가진단테스트에는 18개의 항목을 계산해서 36점 이하일 경우에는 증후군이 있다고 평가한다저는 OO점으로 증후군의 점수 범위에는 속하지 않았다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다른 테스트가 있는 지 찾아보았다결과는 역시 증후군 범위는 아닌 것으로.



경험의 수준보다 더 빈번하고 깊이 증상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으나우선 마음을 진정하고 차분히 사실을 파악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나처럼 꿈이 늘 작고 소소한 성공에 만족하는 이들과 달리 이 증상이 심한 이들은 스스로가 부여한 목표가 무척 높기 때문에 분명한 능력과 실력이 있음에도 결국 그마저 부정하고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다목표 달성을 못한 것도 괴로울 텐데그나만 성취한 것들로 인해 스스로를 사기꾼이라 인식하다니명백하게 남을 해하거나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로 한 일이 아니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최후의 경우너도 나도 일정 정도 운에 성패가 좌우되기도 하고 결과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살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행운에 미안해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기꾼인 를 완결무결한 타인들이 언젠가 발견하고 단죄할 거란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비교적 최근에 투병말고 치병이란 표현을 들었다설사 내가 마음이 헝클어질 정도로 사기꾼 증후군에 휘둘린다 해도 한 번에 완전히 제거해 버리겠다는 또 하나의 지나치게 높고 완전무결한 목표를 세우기보다자신이 그런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수용하고 감정의 균형을 잡으려 애써 보면 좋겠다인지하고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다음 단계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저자가 모든 장에 마련해둔 실제 사기꾼증후군 사례를 담은 케이스 스터디를 읽어 보시는 것을 권한다환경과 배경이 다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기꾼증후군이 내가 원인이 된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적어도 자기비난과 비하에서는 상당한 거리를 둘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다소 무겁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내용의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다. impostor란 단어와 심리적 특성의 일부를 공유할 수도 있는 단어 - snob - 를 공식적으로 구사하신 분, 어쩌면 사기꾼증후군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할 지도 모르는, 남이 하는 평가 따위 일언반구 신경 안 쓰실 듯한 건강하고 멋진 분.


다음 수상 소감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


! imposter를 찾아보니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애용하고 의지한 온라인 어원사전에 나오지 않는다얼마 만에 이렇게 놀랐는지 느슨한 정신이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 impostor (n.) 다행히 라틴어 원형대로 찾으니 나온다.

 

1580s, "swindler, cheat," from French imposteur (16c.), from Late Latin impostor "a deceiver," agent noun from impostus, contraction of impositus, past participle of imponere "place upon, impose upon, deceive," from assimilated form of in- "into, in, data-on, upon" (from PIE root *en "in") + ponere "to put, place" (past participle positus; see position (n.)). Meaning "one who passes himself off as another" is from 1620s. Related: Impostrous. For a fem. form, Bacon uses French-based impostress (1610s) while Fuller, the church historian, uses Latinate impostrix (1650s).

 

imposteur̃pɔstœːʀ] 

 

시간이 넉넉하신 분들은 프랑스어사전을 찾아 꼭 발음을 들어보시라녹음한 분이 이 뜻을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발음이 들린다오래 기억에 남을 듯해 의도치 않게 프랑스어 단어 하나가 학습 완료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은 무지개! 작지만 소중한 1
테리사 트린더 지음, 그랜트 스나이더 그림, 조은수 옮김 / 두마리토끼책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 꼬맹이가 토끼띠라서, 그림책은 가족 모두 좋아하는 지라 반가운 책인데, 운이 좋아 감동 실화를 알게 되고 마음이 한 가득 뭉클해집니다. 


실화가 훨씬 더 감동을 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왜 그럴까요아무래도 기획과 설정과 창작의 짜임새에 비해 이야기 구조도 내용도 단순할 텐데요.

 

아마도 좌절과 포기를 생각해본 우리가 그래도 보고 싶은 현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창작물 속의 결말이 아무리 시원해도 현실의 작은 선함이 더 뭉클한 것과 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지개 그림은 점점 더 퍼져 뉴욕 헌팅턴 타운의 마을 전체를 감쌌습니다.”

 

이 책의 단 한 문장이 물에 번지는 물감처럼 마음에 퍼지는 기분에 잠시 움직이질 못했습니다물리학 전공자로서 무지개가 뭐 그리 신기한 것도 아니고 신비로운 것도 아닌데이른 봄 잠시 환상처럼 나타났다 섭섭하게 사라져 버리는 연둣빛처럼무지개의 존재감 역시 그러하지요그래도 누군가 무지개다라고 하면 다들 찾아보게 되지요마치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의 존재를 처음 목격한 것처럼 설레고 기쁜 표정을 다들 하고서 말입니다.

 

판데믹 그림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마음을 파고들듯 아프지만판데믹 시절을 견디는 어른들이 전망과 분석과 경고를 하는 시간에도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책이 여전히 나오고 그 세상 속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멋지고 빛나는 모습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있잖아, 어떤 이야기에든 시작과 끝이 있대.


여기가 있으면 저기가 있고......


그리고 그 사이에 무언가도 있지.

 

답답하다갑갑하다불안하다화가 난다이런 말들을 자주 하고 살았습니다그래도 되는 세월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거리로 나가 기물을 부수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는 대신 상한 마음과 감정을 자주 말과 글로 긁어냈습니다다정하고 따듯하고 의지가 되던 모든 이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처럼 굴었습니다.

 

이 책을 들여다보는 동안사라졌던 이웃들이반가운 목소리들이그리운 산책길들이즐거운 시간들이 잠시 다시 떠들썩하게 들리고 보이는 듯 했습니다여전히 그들에 기대어 살고 있는 투정 많은 제 자신도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언제나 온전히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영문도 모른 채로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잘 살아온 아이들에게 깊이 미안하고 감사하고 미안합니다확진사망실직경제 손실 등등 숫자로 표시할 수 있는 모든 피해들에 매일 주목하면서도아이들에 대해 어른들이 정식으로 사과 한 번 한 적이 없다는 새삼스런 자각이 듭니다.



 

아이들도 피해자입니다그 아이들이 자신들의 빛나는 생명력으로 움직이며 세상을 연결해준 메시지가 이 그림들입니다미국영국독일캐나다 곳곳으로 감동을 전하고 있다 합니다그런 아이들을 알아 봐준 저자들 테리사 트린더그랜트 스나이더 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흐리던 마음 한편에 비가 와도 사라지지 않는 무지개가 불빛처럼 들어왔습니다.


 

미래에는 더 안전하고더 행복하고더 너그럽고더 정의로운 곳에서 지금을 돌아보게 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박 장군과 고구마 병정 책 먹는 고래 19
장명숙 지음, 권유정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들이 고래책빵의 동화들을 좋아합니다. 그동안 만난 동시들도 참 좋았습니다

장명숙 저자는 처음 만나는 분이신데고용노동부에서 일하시며 동화도 쓰시고 천연비누도 만드신다 합니다. 엄청난 능력자이시거나 하루가 48시간이신가 부러워집니다.

 

권유정님은 이전 동시집 <햄버거를 닮은 하루>에서 만났습니다잔업도 야근도 밤샘도 드물지 않다는 NGO 환경단체에 근무하시며 그림을 그리시는 일도 하시니역시 부럽고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농산물 동화란 장르는 처음인 듯합니다. 목차를 보니 고구마김치호박은 잘 알지만싸리나무 채반에서 잠시 갸우뚱했습니다예전에 조부모님 본가에서 사용하시던 게 대나무인지 싸리나무인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서 뭘까 뒤늦게 궁금합니다만드는 걸 본 적도 직접 사본 적도 없네요.


싸리나무를 검색해보니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 낙엽활엽수라고 하는데외떡잎식물 벼목 벼과 대나무와는 수종이 완전히 달라서 둘 다 채반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그나저나 식물에 관해 너무 무지하다보니 나무가 콩과와 벼과로 구분되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역시 농촌을 사랑하시고 농어촌 문학상을 수상하시는 동화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보니 이런 배움도 가능하군요.

 

코로나 감염도 무서운 일이지만배달포장마스크로 인한 쓰레기가 엄청나게 늘고 있어 저는 솔직히 그 점도 무척이나 무섭습니다병은 나았는데 쓰레기로 죽을 수도 있는그런 미래도 간혹 떠오릅니다이제 이상기후는 이상하지도 않지요내일도 4월 한파가 닥친다고 하고 제 친구는 오늘도 정리보관 중인 겨울외투가 아쉬웠다고 하네요.


2018년까지 조사결과이니 분명 (엄청)더 늘어났겠지요.

 

저자가 이 책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식량 위기라는 문제입니다기후위기와 동반하거나 결과로 초래될 일이니까요한국은 식량자립도가 얼마나 될까요식량안보식량주권이란 용어들은 들어 보셨나요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아우르면서 우리 몸이 건강해지고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우리농산물을 건강하게 키워서 맛있게 잘 먹자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WFP가 공개한 ‘2019 식량 위기 현황 지도’(Hunger Map 2019), WFP 한국사무소는 

“전 세계적으로 8억 2100만 명이 식량부족을 겪고 있으며, 

취약계층의 식량 상황이 코로나19로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병정이란 단어가 나와서 군사주의문화가 반갑지 않은 저로서는 우선 실망이었는데, ‘총구를 겨눈다거나 총알을 날린다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총은 고구마 줄기이고 총알은 물방울입니다그래도 여전히 막 좋지는 않습니다. ‘건우가 남자아이라서 병정놀이를 씩씩하게 하는 것도 반가운 장면은 아닙니다그래도 전하시려는 주제에서 너무 멀리 가지 않고 집중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고구마를 먹으면 정말 방귀가 많이 나오나요?

전 달달한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감자파라 기억이…….😅

고구마 좋아하시고 많이 드시는 분들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김치만세]는 정말 무서웠습니다대왕피자의 마법에 걸려 엄마가 바위가 되다니요얼굴은 엄마이고 머리띠를 하고 있어서 더 무서웠습니다윤재는 김치를 맛있게 담아야 하는데 갑자기 할 수 있을까요?



[콩 나라 이야기]에는 바구미가 등장합니다기억나세요가만 쌀벌레라는 건 기억나는데 어릴 적 햇볕 좋을 때 쌀 말리던 기억은 나는데 좀 더 커서는 정확히 본 적이 없습니다지금 아이들은 더 낯설겠지요검색해보니 딱정벌레목이라고 합니다딱정벌레가 어쩌다 인간에게 해충 취급을...... 어쩌면 쌀보리옥수수콩 등을 인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주식으로 삼았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제가 무척 산만하게 읽는 듯하지만저자께서 전하시는 바는 잘 이해했습니다잡곡도 좋아하고 김치도 좋아하니이제 고구마와 호박만 거부하지 말고 한번 용감하게 섭식 시도를 해보겠습니다그 외에도 우리 농산물 중에 먹어 버릇하지 않는 종류가 아주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전 사실 과일들도 당도가 너무 높아서 별로 즐기질 않거든요어떤 과일은 맛보는 것만으로 급성 당뇨가 올 듯 한 기분이 듭니다.


다시 산만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정리포기하고 싶을 만큼 버겁고 힘들지 않다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가끔 점검도 해보고 면역력을 위한 편식을 할 필요는 없지만그래도 건강식을 먹는 습관을 키워보고쉽지 않은 건강한 방식으로 농산물을 키워내는 분들에게 힘이 되는 소비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작년에도 코로나로 판로가 막힌 농산물을 수많은 분들이 주문해주셔서 오히려 구매하기가 일이 힘들었던 일이 있었지요그런 기억을 떠올리니 제가 하는 말이 다 괜한 말 같습니다이미 잘 해오고 있었는데!

 

그럼다들 맛있고 기운 나는 식사 잘 챙겨 드시고 즐겁고 기쁘게 쓰레기를 줄여보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21일간, 아이들과 함께한 세계여행 다이어리
조성욱.박지혜 지음, 조예은 외 그림 / 지식과감성#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였던가...... 뭔가를 읽다가 2020년에 태어난 이들은 평생 해외여행을 못해볼 수도 있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처럼 들리지 않아 기분이 암담했습니다.

 

작년에도 여행기들을 보면 막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올 해도 그렇긴 하지만 조금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마침 코로나 판데믹 직전에 오랜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는 지금으로선 제일 부러운 내용입니다.


유럽 여행 경로

 

이 책은 특히나 아이들과 다 함께 321일간이나 세계 곳곳을 여행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기간이 긴 만큼 준비하는 과정도 내용도 철저하고 세심합니다아이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시니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해 보셨겠지요.



이동만으로도 지칠 터인데일기 형식으로 매일 매일 경험한 것들을 빼곡하게 적으신 점이 무척 놀랍고 멋져 보입니다여행이 행복하셔서 인지 글도 편안하고 덕분에 읽는 저도 기분이 편안했습니다.

 

세계 여행을 떠나자!”라고 결정한 게 2016년 여름쯤이었다.

 

그냥 내년 초에 떠나자!”(신의 한 수. 처음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떠나지 못했을 것.)

 

우리는 육아휴직을 냈다그 당시에는 법적으로 한 자녀에 대하여 한 명의 부모만 육아휴직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아빠는 예은이로엄마는 예린이로 각자 다로 육아휴직을 냈다.”

 

여행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지만 가슴 한편에는 우리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지금으로선 열심히 상상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지만합리적은 경비로 온 가족이 함께 긴 여행을 즐겁게 하기 위한 아주 좋은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물론 여행지가 다르면 추가적인 정보들이 더 필요하겠지요.

 

경로를 결정지으면서 가장 먼저 고려했던 사항은 날씨와 안전이었다.”

 

여행을 마쳤으니 하는 말이지만 계획은 놀라웠다아빠가 계획을 잘 세우기도 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여행 중에 엄마는 그 계획을 거의 참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헤매거나 권태기에 빠지게 된다면 계획서가 탈출구가 될 것.”



저는 사실 장거리 비행 여행이 지구환경에 부담이 된다는 생각에 이미 너무 많이 다닌 여행은 자제하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비행은 하지 않겠다고 여러 해 전에 결심을 한 바가 있습니다그래도 꼭 한 번은 다시 여행을 해보고 싶습니다이렇게 기한 없이 헤어져 다시 못 만날 줄을 몰라 못 다한 마음과 말들이 있습니다.

 

다들 안전하고 마음 편한 해외여행이 가능하게 되면 어디를 제일 먼저 가보고 싶으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그리운 사람추억장소가 있는 곳혹은 오래 그리던 곳들이겠지요.

 

이 책의 여행가들은 유럽 곳곳은 물론이고미국과 뉴질랜드까지 정말 다양한 국가들을 방문했습니다그리운 곳들과 더불어 제가 가본 적 없는 장소들도 있으니 아주 충실한 간접 여행을 즐기게 세상을 활짝 펼쳐주는 느낌입니다.

 

500쪽이 넘는 분량 역시 반갑고 만족스런 부분입니다현실의 321일 만큼은 아니지만 사진들과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독서로서 충만한 기분이 듭니다무척 사랑스럽고 즐거운 가족들의 추억이 가득합니다사진들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합니다.



지금은 아는 이들과도 잔뜩 모일 수 없는 스산한 시절이지만역시 여행의 가장 신비롭고 감동적인 일부는 모르고 살던 참 좋은 이들을 만나 친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많이 만나고 많이 보고 많이 웃고 많이 생각하고그리고 이 가족처럼 매일 적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친하게 지냈던 미국 여자아이가 또 놀러 왔다함께 아침을 먹고 공놀이를 했다이쯤에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 아이의 부모님은 도대체 어디에?’”

 

만약 평생 여행이 제한된 상태로 살아야 하는 시절이 길어진다면그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과 감성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아예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가상/증강 현실이 서툰 진짜 현실 경험보다 더 생생하고 유익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요?

 

끝없이 별별 곳들로 생각이 손을 뻗습니다여행이 그리워서 그렇습니다.


https://www.travelbite.co.uk/sell-house-travel-worl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 강화도조약 Ominous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굽시니스트라고 알려진 김선웅님을 아시는 분이 많으신가요? <시사인잡지에 역사만화 연재하시던 분입니다재밌지만 분량이 감질나던 느낌이라 단행본 소식이 반가웠습니다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접근성이 좋은 만화 형식이지만, ‘역사’ 공부에 관한 관점에 공감을 할 수 있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책들입니다.

 

저는 사실 국사라는 말이 이상하거든요알려지지 않은 무인도국가도 아니고 더구나 한반도에서 외세의 부침이 끊임없었던 환경에서 똑떼어 국사라니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내용 역시 부족하거나 부실할 거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교육을 전공하신 분이라무지에서 오는 제 대범함과는 달리 모든 역사는 세계사다 동양사로 좀 더 치밀하게 구상해서 들려주시는데여전히 즐겁게 따라 읽을 수 있는 기본적인 관점이 좋습니다.



근대 시작의 거점인 프랑스에서 일본, 대만, 조선으로 좁혀 들어오는 구성이 마음에 듭니다.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국민국가 시대에 의식화를 위한 교육의 필요는 잘 알고 있지만, ‘국사보다는 한국사라고 명명하시는 것 또한 저로서는 좀 더 신뢰가 갑니다.

 

국사 공부만으로도 빡센 거, 뭘 굳이 중국사 일본사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나 싶지만, 한국사라는 나무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멀리서 동양사라는 숲을 봐야 하는 부분이 있는 법입니다.”



처음에는 5권으로 기획하셨다는데첫 권을 읽으면서 죄송하지만 그 말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5권으로 마무리할 설명과 열정이 아니란 느낌이 너무 확실했거든요결국 20권으로!

 

발굴하거나 추론한 모든 정보들이 중요한 역사학 분야라 꼼짝없이 모든 자료들을 숙지할 수밖에 없는 기본적으로 분량이 엄청납니다그것들을 잘 엮고 짜서 일관적인 관점으로 풀어내는 일은 잘 몰라도 엄청 고될 것입니다사자성어를 자주 사용하시는데 저자야말로 박학다식의 표본!입니다.

 

형식만 만화이고 내용은 검색이 필요한 충실하고 가득한 책입니다그러니 읽으실 방법을 미리 정하시는 것도 독서에 도움이 됩니다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일단 일독한다혹은 처음부터 찾아가며 다 이해하며 천천히 읽는다저는 중간 어딘가의 자세로…….

 

유머 코드도 시사적이고 현재성이 있고 - SNS에 열심인 독자들에겐 익숙한 방식 분노 유발 역사적 사건들에도 차분하게 욕해주시며 찰 지게 풍자해 주시는 능력이 빛납니다덕분에 한번이 아니라 적어도 두 번 이상 속 시원하게 욕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 일완벽한 이가 누가 있으랴그냥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바로 잡고 새 인생 살면 서로 좋을 텐데세계사에 여러 민폐를 끼친 것도 잘못인데이후의 행태가 더 밉상인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특정 국가만 지적하는 건 아닙니다만.

 

저는 의외로(?) 역사서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통시적인 관점에서만 비로소 잘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난 이후에는 더 재미있습니다.

 

역사를 알면어쩌면 낭비에 다름 아닐 고민들도 걸러낼 수 있습니다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론이나 의견 같아 보이는 것들도 왜 이 시기에 이런 논의가 필요했는지를 전후 맥락을 알면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논의의 핵심이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능한 게으르게 살고 싶은 근원적인 욕망이 강한 사람으로서 쓸데없는 것들을 말끔하게 해주는 모든 계기가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남들이 이미 열심히 다한 이야기를 혼자 막 열렬하게 설파하는 민망한 상황도 피할 수 있기도 합니다.

 

19세기무척이나 복잡한 정치사이지요또한 강화도 조약 체결까지의 과정과 이후의 변화들은 마음 편히 읽기에는 불편하고 속상하고 아프고 여전히 아주 민감한 부분들도 많은 시기입니다



 개인들끼리의 역사라 하더라도 기억하는 내용이 다 다르고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당연하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혹은 유리한 내용으로 편집하는 것이 지난 일이지요간혹 대화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실증적 근거들을 찾아 볼 수 있는 국가 간 역사는 오히려 다행인 점이 많기도 합니다여전히 해석의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만.

 

어차피 진실이란 누구 한 사람이 발표하듯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오래 전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살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정보들은 말로 충분합니다그런데 종합적인 전체 그림으로서의 진실은 드러나는’ 속성인 것 같습니다. To be revealed.

 

다 찾아 읽어 보지 않아 현실에 얼마나 많은 동아시아 역사서들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일단 팩트가 많이 인용되었다는 점과 유쾌하고 통쾌한 촌철살인의 필력으로 쓰인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만한 역사서라고 생각합니다.

 

학습용 만화도 아니고 개그가 주도적이라 웃고 넘기는 책도 아니고교양서와 수험서의 어디쯤에 위치한본격 역사서라고 느껴집니다의도적인 왜곡 의지나 사적 믿음이나 창의적 철학을 설파하는 내용도 없어서 혹은 저는 발견을 못해서 그것 역시 좋습니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진지한 것만은 아니라 게임만화드라마와 연계한 비유들도 친절하게 등장하는데저로서는 익숙한 작품들이 아니라 오히려 신기했습니다.

 

! Ominous. 분명 형용사인데 무려 제목처럼 단독으로 표기되어 저자의 의도를 알고 싶어 애를 썼습니다어원사전까지 찾아보았지요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진정하고 생각해 보면 형용사 단독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유는 없습니다.

 

강화도 조약이 얼마나 Ominous한 것이었는지 그 불길한 느낌은 확실하니까요서글프고 분한 역사이지만 제목 덕분에 혼란스럽고 흥미로웠고 결국엔 '불길한' 그 시절이 아팠습니다.



서계 문제와 운요호 사건을 가지고 조선을 압박하던 구로다는-

 

서계 문제 사과 운요호 사건 사과와 책임자 처벌!!”

친교를 회복하자는 회담에서 그런 시빗거리가 무슨 소용이오이까?!'

역시 친교를 회복해야죠친교 회복만 된다면야 서계니운요호니다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죠~”

이를 위해 저희 측에서 근대식 수호조규 모델을 준비해왔답니다.”

아니지난 250년 전통의 친교를 그대로 회복하면 될 일인데어찌 조약 어쩌고 하는 낯선 이야기를.”

이 외에 다른 친교의 방법은 없습니다.”



................................................................

ominous (adj.)


"conveying an omen, significant," 1580s, from Latin ominosus "full of foreboding," from omen (genitive ominis) "foreboding" (see omen (n.)). Especially (and now exclusively) "of ill omen, giving indication of coming evi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