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가짜라고 생각할까 - 가면 뒤에서 불안한 당신을 위한 심리학
산디만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본 영화 <라 붐>의 소피 마르소에 완전 홀려서 당연히(?) <유 콜 잇 러브>를 보고 몰리에르에 대해서도 잠시 집착하였다희곡을 읽었는데 번역 상태를 감안하고도 무척 재미있는 작품들이란 느낌이 왔다게으른 성격이 아니라면 그때 불어 공부를 시작해도 늦은 건 아니었는데어쨌든 몰리에르(Molière), '타르튀프 혹은 위선자(Le Tartuffe ou L’imposteur)'에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

 

그러니까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 또는 증후군이라는 것이다저자 역시 성공한 이들 중에는 빈번하게평균 70% 정도의 사람들이 한 번 이상 겪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질환이 아닌 경험으로 분류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 한다.

 

언제라도 사람들이 내가 껍데기일 뿐이란 걸 알아차릴 것 같아요” 엠마 왓슨

 

불쑥불쑥 내가 사기꾼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어요내 자리가 내가 있을 곳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요.” 페이스북 최고운영자(coo) 셰릴 센드버그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산디 만 박사 역시 경험이 있다.



"사기꾼이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면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실패는 자신이 가짜라는 생각만 키울 뿐이다그들은 실패는 물론이고 어중간하게 하는 것도 두려워한다중략자기에게는 자격이 없다고 믿으며 언젠가 재능 결여가 들통나 지금껏 쌓아온 부와 명성을 삽시간에 잃을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며 산다."

 

"한때 사기꾼증후군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야심만만한 출세주의자들의 병으로 통했지만이제 더는 이들만 겪는 증상이 아니다자신이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엄마자신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느끼는 아빠인기가 없어서 고민인 친구심지어 신앙심이 부족해 면목이 없다는 사람도 저자의 상담클리닉을 찾았다."

 

어쨌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통계 수치가 늘 확실한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느끼는 불안이고 증상이다저자는 그런 점을 잘 이해해서 사기꾼 증후군 진행 과정을 설명해 두었고자가진단테스트까지 마련해 두었다.

 

진행 과정은 단순하다성공할 것 같지 않았는데성공했다면운이 좋아 성공한 것즉 세상 사람들이 내가 순전히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것을 언젠가 알아차릴 거라는 불안이 동반하는 증상이다그러니 정체가 타인들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지면 과도한 노력을 하고속마음을 숨기고멘토를 찾고완벽주의 성향을 보이고칭찬을 무시하거나 성과를 폄하하여 자신을 불구*화한다고 설명한다.

 

* ‘불구라는 표현이 비하발언으로 분류되는지 아시는 분께서 댓글 등으로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가진단테스트에는 18개의 항목을 계산해서 36점 이하일 경우에는 증후군이 있다고 평가한다저는 OO점으로 증후군의 점수 범위에는 속하지 않았다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다른 테스트가 있는 지 찾아보았다결과는 역시 증후군 범위는 아닌 것으로.



경험의 수준보다 더 빈번하고 깊이 증상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으나우선 마음을 진정하고 차분히 사실을 파악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나처럼 꿈이 늘 작고 소소한 성공에 만족하는 이들과 달리 이 증상이 심한 이들은 스스로가 부여한 목표가 무척 높기 때문에 분명한 능력과 실력이 있음에도 결국 그마저 부정하고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다목표 달성을 못한 것도 괴로울 텐데그나만 성취한 것들로 인해 스스로를 사기꾼이라 인식하다니명백하게 남을 해하거나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로 한 일이 아니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최후의 경우너도 나도 일정 정도 운에 성패가 좌우되기도 하고 결과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살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행운에 미안해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기꾼인 를 완결무결한 타인들이 언젠가 발견하고 단죄할 거란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비교적 최근에 투병말고 치병이란 표현을 들었다설사 내가 마음이 헝클어질 정도로 사기꾼 증후군에 휘둘린다 해도 한 번에 완전히 제거해 버리겠다는 또 하나의 지나치게 높고 완전무결한 목표를 세우기보다자신이 그런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수용하고 감정의 균형을 잡으려 애써 보면 좋겠다인지하고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다음 단계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저자가 모든 장에 마련해둔 실제 사기꾼증후군 사례를 담은 케이스 스터디를 읽어 보시는 것을 권한다환경과 배경이 다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기꾼증후군이 내가 원인이 된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적어도 자기비난과 비하에서는 상당한 거리를 둘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다소 무겁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내용의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다. impostor란 단어와 심리적 특성의 일부를 공유할 수도 있는 단어 - snob - 를 공식적으로 구사하신 분, 어쩌면 사기꾼증후군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할 지도 모르는, 남이 하는 평가 따위 일언반구 신경 안 쓰실 듯한 건강하고 멋진 분.


다음 수상 소감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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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poster를 찾아보니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애용하고 의지한 온라인 어원사전에 나오지 않는다얼마 만에 이렇게 놀랐는지 느슨한 정신이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 impostor (n.) 다행히 라틴어 원형대로 찾으니 나온다.

 

1580s, "swindler, cheat," from French imposteur (16c.), from Late Latin impostor "a deceiver," agent noun from impostus, contraction of impositus, past participle of imponere "place upon, impose upon, deceive," from assimilated form of in- "into, in, data-on, upon" (from PIE root *en "in") + ponere "to put, place" (past participle positus; see position (n.)). Meaning "one who passes himself off as another" is from 1620s. Related: Impostrous. For a fem. form, Bacon uses French-based impostress (1610s) while Fuller, the church historian, uses Latinate impostrix (1650s).

 

imposteur̃pɔstœːʀ] 

 

시간이 넉넉하신 분들은 프랑스어사전을 찾아 꼭 발음을 들어보시라녹음한 분이 이 뜻을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발음이 들린다오래 기억에 남을 듯해 의도치 않게 프랑스어 단어 하나가 학습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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