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요람 1 - 어느 산부인과 실습생의 일기
오키타 밧카 지음, 서현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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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분위기와 만화라는 형식에 속았다. 편견을 깨는 경험이 좋다. 어쩌면 삶에는 내내 기쁨보다 아픔이 더 많았을 것이다. 1990년대 일본의 현실이지만, 2023년 한국 사회의 풍경이 이보다 더 순하고 안전할 것 같진 않다.

 

있지도 않은 정상가족과 관계의 테두리에서 임신한 여성 이외에, 불륜과 성폭력, 비혼모, 학대로 인해 병원을 찾은 어린이와 여성들이 있고, 선택이 아닌 유산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도 있다.



 

한 번도 상상하거나 질문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죽은 태아들이 많고, 이들을 어떻게 떠나보내는지 전혀 몰랐다. 얼마를 살았던 다들 화장되는 풍경이 일반적이라서, 장례/상례의 풍경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이 되었다.

 

만화이고 논픽션이다. 그러니 밧카의 일도 태도도 노래도 모두 현실이다. 생명은 우연한 사건이라는 과학의 설명 말고, 인간이 공감하고 이해해야 할 생명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어두운 우주 공간에서 잠시 반짝이는 빛처럼, 아름답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아도, 슬퍼도, 밧카가 알아보는 순간 작고 분명한 빛이 존재하게 된다. 존재가 선명해지기 전에 사라졌지만, 분명 존재했던, 그래서 투명에 더 가까운.

 

그리고 분명 존재하지만, 무시당하고 가해를 입고 피해를 당한 이들이 완전히 투명해지지 않도록, 기록을 남기고 대처를 돕고 실질적인 힘이 되는 간호사들. ‘외료라는 직업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귀한 기회였다.

 

특히, 세계 최저 수준의 공공의료조차 축소되고, 현장 의료 인력인 간호사들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조차 거부당한 현실이라 졸음도 피로도 게으름도 한순간 물러가는 독서였다.

 

책도 더 읽고 싶고 드라마도 찾아보고 싶다. 이후의 일본의 상황이 어떤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의료자체에 대한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고민과 숙려가 시급하다는 조바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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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연화
김태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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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풍경을 잘 모르고 살았다. 학과 특성도 있고, 그 시절에는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이는 드물었다. 우연히 한 선배가 기술고시라는 공무원 시험이 있다고 생각 중이라고 해서, 신기해서 교재 구경을 한 적은 있었다.

 

공무원이니 당연히 을 공부한다. 넘겨본 법학 교재들은 조사와 어미만 빼고 모두 한자였다. 영어 교재를 사용하고, 수학언어를 주로 쓰는 과학도로서 흥미를 모두 잃을 풍경이었다.

 

어쨌든 노량진 고시원과 컵밥이 청춘의 풍경이 된 것은 그이후로도 한참 지나서이다. 나는 모르던 이야기와 세계를 이렇게 책을 통해 좀 더 배워본다. 돈을 아끼며 시험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아픔이 많다.

 

노량진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면 하루에도 수차례씩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연필을 씹는 수험생도 봤다. 독서실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수십 장의 포스트잇이 붙는다. 절박하고 처절하기 때문에 마음 곳곳이 멍들어 있다.”



 

부모님 세대가 평생직장 개념이 일반적이었던 반면, 나는 이직을 여러 번 했다. 기대한 바와 다르거나,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너무 많거나, 살면서 가치가 달라졌거나, 이유는 늘 설득력이 있었고, 이직 운이 좋은 마지막 세대였다.

 

진학도 시험도 논문도 입사도 이직도 모두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혹하다고 절망적이라고, 부조리의 극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서 살지 못하고내내 삶이 시작되기는’ ‘살 준비를 하는모든 이들의 시간이 서글프다.



 

우리는 뭘 기다리고, 뭘 시작하는 걸까.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것으로는 정말 충분하지 않은 걸까. 현재란 언제인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언제쯤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직을 하던 나는 결국 적당히 멈춰서, 내 자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그냥 산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미 말했듯이,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하며.

 

기자였다, 공무원이 되었고, 이제 작가로 사는 저자의 글로 모르던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노량진에서 자신을 연화蓮花로 만개하도록 애쓰는 이들이 바라던 연화年華를 맞으시기를, 멈추고 새롭게 시작한 모든 순간의 경험이 힘이 될 거라는 응원을 남긴다.

 

오늘의 저를 이끈 것은 팔 할이 분노입니다. (...) 노량진에서 공부했지만, 1문제 차이로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 구구절절한 경험과 분노는 곧 저의 강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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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타이머 사계절 1318 문고 138
전성현 지음 / 사계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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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발음을 적은 제목 - death timer - 의 의미가 무섭다. 누구나 죽고, 언제 죽을 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것이 삶이지만, 통계와 확률에 따라 우리는 기대수명을 염두에 두고 삶을 설계한다. 무엇보다 태어난 생명이 잘 성장하고 노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감각도 있다.

 

SF의 배경이 결코 오지 않을 미래였을 때도, 있고, 근미래, 초근미래로 접근하다 현재 진행 중인 시절이 되었다. 지금은 현상 파악도 미래 예측도 어렵다. 누구도 전체 모습을 모른다는 의심도 한다. 집중된 권력이 위험하듯, 인간이 에너지를 집약해서 만든 무기들과 시설들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까.

 

인간은 살만큼먹고 살지 않는다. 80억이 넘은 인구는, 10억 명이 기아로 사망함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만으로 지구생태계를 교란하고 기후시스템을 변화시켰다. 기후위기는 지구행성규모의 문제이다. 국가 중심 체제조차 비효율적인 규모인데, 다른 대안이 없으니 개인들이 애쓰는 수준의 실천만 있다.

 

지구행성규모의 정부나 연합이 없으니, 각 국가들의 정책을 살펴보는 수밖에 없는데, 너나없이 기후위기가 어느 순위인지 살펴보면 한심하고 절망적이다. 인간은 생존보다 우선순위가 많은 유일무이한 생물종이라는 쓸데없고 방해만 되는 어리석은 진화를 이룬 듯 보인다.

 

청소년문학을 읽으며 청소년이 이런 엉망인 세상에 대해 결국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세상이니까.”라고 하니,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기성세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는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미래세대가 해결하겠지, 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무책임하고 갑갑하다.


 

7편의 소설은, 지금 당장 우리가 감당해야할 세상을 보여준다. 미래를 가정하고 있지만,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감당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미래. 계속 화가 난 상태로 사는 일은 너무 지치는 일이라서, 문득 잊고 외면하고도 싶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대가를 치를 미래는 오고 말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아직 데스타이머가 작동하는 중이다. 그래서 두렵지만 힘을 내어 뭐라도 해보자는 얘기도 할 수 있다. 언젠가, 생각보다 빨리 타이머는 멈출 지도 모를 일이다. 예상하고 상상하고 기대하는 세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그 세상으로 향하는 방향을 잡고 그리로 걸어가야 한다. 한 걸음이라도.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사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현실도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미 애쓰는 이들만 더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반성하는 반복도 서글프지만,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둔다. 잊고 싶을 때 기억할 내 다짐을 문서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니까.

 

시간이 없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아직 우리가 살아 있으니, 시간도 기회도 있다고 믿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화내고 욕하고 절망하고 무기력하게 지낼 시간조차 없다. 조바심이지만 그렇게 느낀다. 정확한 상상력과 지식과 의지를 가진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으려 조심할 것이다.

 

누군가 말해 주면 좋을 것 같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이다.”


 

필요한 모든 행운이 기적처럼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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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가족과 등대섬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
이유진 옮김, 토베 얀손 원작 / 어린이작가정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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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그림책만한 행복도 드물다. 무민 시리즈라면 더욱. 톤다운된 색감들은 늘 좋고, 무민 가족들과 새로운 등장인물은 이번에도 현실의 존재 못지않게 생생하고 매력적이다. 항해 모험인가 했는데 지금 이 시절의 필독서처럼 읽혔다.


 

바다가 친근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한 장마다 슬픔이 푸르게 차오른다. 수많은 기대를 품었고 그만큼 실망이 거듭된다. 생명이 살아가기 좋은 온도로 물이 풍부한 아름다운 행성, 그 기적을 망치는 호모 사피엔스라니.


 

그림에서처럼 단출하게 준비해서 바다로 나갈 수 없어서 가지 못한 곳도 가본 적 없는 곳도 다 그리워진다. 방향 지표들이 준비되어 있고, 작은 섬에 도착하니, 등대와 등대지기도 있는 세계가 작고 안전하고 아름다워서 또 서럽다.

 

여름이면 질문이 이어지고, 속임수와 반전이 거듭되는 장르문학을 읽고 싶어진다. 외부 기온이 올라갈수록 자극이 강한 구성과 결말이 체온을 낮춘다고 느낀다. 참고 삼키고 한 것들을 결말과 반전을 알면 다 끝나는 이야기로 해소한다.

 

그런데, 더운 공기가 몸속을 파고드는 오늘, 순한 맛 그림책과 더불어 차분하게 행복하다. 항해를 마치고 귀가하는 무민 가족을 배웅하며, 또 다른 책으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다시 묻는다. 바다에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수산물, 해산물, 소금, 해수욕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말 이토록 완벽한 지구의 바다에, 수많은 생물이 사는 바다에 오염수를 방출하는 극악한 짓을 하려는 걸까. ‘가장 비용이 저렴한 처리법이라는 현실 인류의 비교분석에 수치스럽다.

 

지금 막지 못하면 회복이 불가능한,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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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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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복잡하게 좋았다. 화내면서도 웃었다. 슬프면서도 즐거웠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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