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연화
김태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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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풍경을 잘 모르고 살았다. 학과 특성도 있고, 그 시절에는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이는 드물었다. 우연히 한 선배가 기술고시라는 공무원 시험이 있다고 생각 중이라고 해서, 신기해서 교재 구경을 한 적은 있었다.

 

공무원이니 당연히 을 공부한다. 넘겨본 법학 교재들은 조사와 어미만 빼고 모두 한자였다. 영어 교재를 사용하고, 수학언어를 주로 쓰는 과학도로서 흥미를 모두 잃을 풍경이었다.

 

어쨌든 노량진 고시원과 컵밥이 청춘의 풍경이 된 것은 그이후로도 한참 지나서이다. 나는 모르던 이야기와 세계를 이렇게 책을 통해 좀 더 배워본다. 돈을 아끼며 시험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아픔이 많다.

 

노량진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면 하루에도 수차례씩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연필을 씹는 수험생도 봤다. 독서실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수십 장의 포스트잇이 붙는다. 절박하고 처절하기 때문에 마음 곳곳이 멍들어 있다.”



 

부모님 세대가 평생직장 개념이 일반적이었던 반면, 나는 이직을 여러 번 했다. 기대한 바와 다르거나,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너무 많거나, 살면서 가치가 달라졌거나, 이유는 늘 설득력이 있었고, 이직 운이 좋은 마지막 세대였다.

 

진학도 시험도 논문도 입사도 이직도 모두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혹하다고 절망적이라고, 부조리의 극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서 살지 못하고내내 삶이 시작되기는’ ‘살 준비를 하는모든 이들의 시간이 서글프다.



 

우리는 뭘 기다리고, 뭘 시작하는 걸까.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것으로는 정말 충분하지 않은 걸까. 현재란 언제인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언제쯤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직을 하던 나는 결국 적당히 멈춰서, 내 자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그냥 산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미 말했듯이,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하며.

 

기자였다, 공무원이 되었고, 이제 작가로 사는 저자의 글로 모르던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노량진에서 자신을 연화蓮花로 만개하도록 애쓰는 이들이 바라던 연화年華를 맞으시기를, 멈추고 새롭게 시작한 모든 순간의 경험이 힘이 될 거라는 응원을 남긴다.

 

오늘의 저를 이끈 것은 팔 할이 분노입니다. (...) 노량진에서 공부했지만, 1문제 차이로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 구구절절한 경험과 분노는 곧 저의 강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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