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창비세계문학 5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설준규 옮김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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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셰익스피어 400주기가 훌쩍 넘었다비극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모든 것을 걸고라도 해야 할 일을 시도할 것인가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간에 대해 깊숙이 들여다보는 이 작품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그 쓸쓸하고 황망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열광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고 공연되는 독보적인 작품이다.

 

오래 전 영국 유학 당시 문학 전공이 아니었음에도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중고서적에서 상당히 오래된 셰익스피어 전집을 구매한 적이 있었다세월을 오롯이 품은 외관이 비밀의 방을 열고 들어오라는 듯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문제는 내게 익숙한 시대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집필 당시의 영어로 쓰인 문장들이라 영문학을 전공한 영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결국 끝까지 읽어 내지 못했다단어들이 생경해서 자주 찾아봐야하는 언어 수준으로는 천재의 자유자재 언어 구사와 시적 효과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부동의 책장 장식으로 존재하는 클래식한 판본을 볼 때마다 아쉬워하다 설준규 교수가 무려 십 여 년에 걸쳐 상세하고 깊이 있게 번역했다는 소개에 다시 제대로 읽어 보고 싶어 졌다.

 

세상 관절이 다 어긋났어저주스러운 악연내 굳이 태어나 이를 바로잡아야 하다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때로는 우유부단해서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하는 인물어쩌면 독자가 가장 공감하고 싶지 않거나 어려운 캐릭터일지 모른다물론 그 지난한 과정을 읽어 가면서 인간의 삶이란 것이 이렇지이렇게 사소한 일들에 좌절하고 사소한 실수들로 전체를 망치기도 하는 것이지라고 마음이 편해질 가능성도 있지만이런 태도와 시각의 변화는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좌절과 포기와 인정을 거듭하는 경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시대적 한계에 갇히는 메시지로서만 의미가 평가되는 것은 부당하다흔히 하는 말로 속이 다 썩어문드러질 지경인데도 괜찮은 척 견디는 모습이 지금에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빈부격차와 불공평부정의에 휘둘리는 일도 여전하다인간으로 사는 한 왜 살아가야 하는지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현재에도 별 다를 바 없이 되살아나는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악몽 같은 질문들이다.

 

얼핏 모순처럼 혹은 단순히 구도 상의 대비처럼 강조되어 보이는 점은스토리와 갈등 구조의 강렬함과는 별개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련의 장면들 속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햄릿의 인간 유형과 행동이 오히려 그 이유로 인해 시대를 거듭하며 해석과 분석과 설명과 평가를 재생산해 오면서 절대 사멸하지 않는 생명력을 얻어 날이 갈수록 명작과 거작의 칭호를 굳히고 있다는 것이다마치 햄릿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 작품 밖에서 작품을 읽고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독자들의 임무가 된 것처럼 말이다회자되는 바대로 바로 그렇게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는 참여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고전을 부지런히 찾아 읽고 그래서 햄릿은 명작이 되고 걸작이 되어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짧은 한 문장이지만분분한 해석이 시도되는 To be or not to be는 죽느냐 사느냐”, “존재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설준규 교수에 의해 이대로냐 아니냐로 번역되고 해석되었다나 역시 햄릿의 복잡한 상황과 난감한 선택들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된 이후로는단순히 이전에 통용되었던 (내가죽느냐 사느냐라고 묻는 질문은 아니지 않을까…… 이것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란 느낌을 가졌다.

 

그렇다고 이제 내 안에서 위 문장의 해석이 아주 명쾌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삶의 방식지속이냐 변화냐좀 더 진지한 철학적 숙고존재를 이어가는 것이 맞는가 아닌가이런 부가적 해석이 덧붙었다고 정리된다어쩌면 햄릿의 유의미한 현대적 가치는 이 한 문장을 붙들고 거듭 질문하고 고민하게 하는 힘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이대로냐아니냐그것이 문제다어느 쪽이 더 장한가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죽는 것-잠드는 것그뿐.” 육신이 상속받은 가슴앓이며 수천가지 타고난 고통을 한번 잠들어 끝낸다고 한다면그것은 간절히 원할 만한 대단원죽는 것잠드는 것-잠들어혹 꿈이라도 꾸면-그래그게 걸려이 뒤엉킨 삶의 결박 풀어 던졌을 때저 죽음의 잠 속에 찾아들 꿈 떠올리면우리는 망설일 수밖에-그런 까닭에 이리도 긴 인생이란 재앙이 빚어지는 것누가 견디랴 세상살이 채찍질과 멸시를압제자의 횡포세도가의 오만불손을홀대당한 사람의 아픔느려터진 법집행을관리들의 방자함인내와 덕 갖춘 이가 하찮은 자들에게 당하는 능멸을벌거벗은 단검 한 자루면 만약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누가 견디랴 무거운 짐고단한 삶에 짓눌려 툴툴대며 진땀 흘리랴다만 죽음 뒤 그 무엇저 미발견의 나라국경 넘으면 길손 돌아오지 못하는 저 나라가 두렵기에의지는 갈피를 잃고미지의 고초를 향해 날아 달아나느니 차라리 지금 겪는 고초를 견딜 따름하여심사숙고 탓에 우린 모두 겁쟁이 되고하여결단의 타고난 혈색 위로 사념의 창백한 병색이 드리우며드높은 뜻 품은 중차대한 계획도 이런 까닭으로 물길 틀어져 실행이란 이름을 잃고 마는 것.

 

끝없는 언어유희동음이의어의 적극적인 활용자유자재로 말을 구사하는 햄릿은 마치 셰익스피어 자신이 적극적으로 투영되었거나 혹은 동일한 인물처럼 겹쳐진다주석이 없었다면 온갖 의문들로 머리가 채워지다 길을 잃고 말 수준이다그 점에서 이 친절한 번역서는 각주에 있어서도 더할 수 없이 친절하며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완독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번역가의 능력인지 한글로 읽은 햄릿은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가독성이 증가해서 마치 단막극을 감상한 것처럼 짧은 시간에 끝이 났다그 속도감이 의아해서 잠시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단순하고 냉정하게 살펴보면 친족을 살해하고 연인을 방관하고 격정으로 인해 자신도 파멸시킨 인물임에도 한 사람에게 드러날 수 있는 다각적인 면이 워낙 처절하게 부각되어서인지 여러 명의 전형적인 자아들을 소개받은 느낌이 남았다웅장하고 우렁차게 완전한 비극으로 끝난 이야기고민에 빠져 머뭇거리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적막한 무대만이 이미지로 남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살아서 밝혀낸 것이 없음을 햄릿은 죽어 가는 순간에도 안타까워했을까죄 없는 사람들도 죽였는데 그들에게는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을까그리고 죽어서도 자신의 억울함만을 위해 아들을 고통과 파멸로 몰아넣은 유령의 정체는 햄릿의 판단처럼 정말 아버지가 맞는 것일까단 한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호레이쇼 역시 부탁을 제대로 들어 주지 못했을 텐데 햄릿은 그래서 죽어서도 억울했을까아니면 살아서 겪은 갈등과 괴로움이 너무 커서 죽어 가는 순간 비로소 편안해졌을까.



찬사 받는 정당한 영웅도 마땅한 권리를 자력으로 찾아 온 권력자도 추앙받는 인격자도 행복한 삶을 누린 젊은이도 아니었던 햄릿이제 내 나이에서 바라본 그의 캐릭터는 가엽고 안쓰럽기 그지없다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과정의 오류는 얼마나 잦으며해야 하는 일 중에서도 할 수 없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비극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장치로서의 햄릿이라는 인물을 파악하고 남긴 요한 볼프강 괴테의 말이 식은 무대처럼 무섭도록 스산하게 죽음으로 가득한 적막한 결론을 잠시 다독여준다.

 

엄청난 책무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는 한 인간에게 부여되었음을 셰익스피어는 그리려했다중략아름다운 꽃들을 품어야 했을 값진 화분에 한 그루 참나무가 심어졌고뿌리가 뻗어나가자 화분은 산산조각이 난다사랑스럽고 순결하고 고결하고 극히 도덕적이지만영웅이 되는데 필요한 정신의 힘들은 지니지 못한 한 인간이 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짐에 깔려 무너진다중략불가능한 일을그 자체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수행하라고 그는 요구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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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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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며 거짓말의 정체와 진실의 정체가 가장 궁금하였다특히나 나처럼 눈치 0단인 사람남의 일에 관심이 적어 관찰력을 키울 기회가 적었던 사람은 도무지 거짓말도 진실도 알아차릴 수가 없다그래서 거짓말은 소망성취 용이고 진실은 드러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사적인 관계에 도움이 되는 팁을 주고자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충격적인 사회적 사건들과 결과적 부정의에 대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상호작용본성통념을 분석하는 강렬하고 진지한 내용이다마치 가벼운 읽을거리를 집어 들었다가 상념과 편견이 박살나는 기분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다가 평소라면 관련성이 적은 특정 사회의 일에 대해서는 당장 굳이 읽어서 알아 두고 싶은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글래드웰의 글은 완전히 새로운몰랐던 소재들을 엮어내는 재주가 탁월해서인지 이러저러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나 역사적 인물들 - 히틀러와 동시대 다른 유럽 국가의 수반들 - 에 관한 사례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보다 못한 판단결과에 아연실색하게 되었다.

 

백인 남자 경찰관이 샌드라 블랜드라는 흑인 여자 운전자의 차를 멈춰 세운다.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고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운전자가 담뱃불을 붙인다.

감정이 고조되고 장시간 입씨름을 하게 된다.

이 둘의 대화는 경찰차 계기반 위 비디오카메라에 녹화된다.

경찰관이 샌드라 블랜드를 차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에서 끝난다.

사흘 뒤 샌드라 블랜드는 유치장에서 목숨을 끊는다.

 

저자는 묻는다이런 비극은 왜 생겼는가. 충격과 혼란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답변이지만 실제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인류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는 말을 거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낯선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기까지 대가나 희생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마치 동어반복처럼 헷갈리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좀 더 읽어 나가면 우리가 판단할 때 오류를 범하게 하고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들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중앙정보국 간부들은 스파이를 파악하지 못하고판사들은 피의자를 파악하지 못하며총리들은 적수를 파악하지 못한다사람들은 낯선 이의 첫인상과 씨름한다사람들은 몇 달씩이나 낯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씨름한다누군가를 한 번만 만나도 씨름하고낯선 이를 여러 번 만나도 씨름한다사람들은 낯선 이가 과연 정직한지 평가하기 위해 씨름한다낯선 이의 됨됨이를 놓고 씨름한다낯선 이의 의도를 놓고 씨름한다혼란스러울 뿐이다. 69

 

그러나 아무리 물러서서 생각해봐도 샌드라 블랜드와 같은 오해와 비극적 결말은 불가피하게 치를 수 있는 대가라고 쿨하게 접어줄 수는 없는 종류이다.

 

또한 타인을 신뢰하는 본성 또한 포기할 수 없다모든 타인들이 살인자라고 가정하면 누구도 집 밖을 나갈 수 없게 된다그렇다면 다시수반되는 위험이 아무리 끔찍할 지라도 여전히 진실이 디폴트 값이 되어야 한다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 사회가 작동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속 시원한 해결법이 모든 문제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편인데도 마치 인간이란 인간 사회 속에서 실은 옴짝달싹못하고 살아가다 오해로 인해 판단미숙으로 인해 망가지고 파괴되기도 하는 존재인가 싶어 마음이 갑갑해진다.

 

그리고 신뢰가 결국 배신으로 끝나는 드문 경우에 진실을 기본 값으로 놓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비난이 아니라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177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 우연보다는 훨씬 유능하다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는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우리는 이 모든 동영상을 살펴보고 진실진실진실을 추측한다무슨 말이냐 하면 면담 시에 진실을 말하는 이를 잘 알아보고 거짓말을 하는 이를 몰라본다는 것이다우리는 진실을 기본 값으로 갖고 있다우리의 가정은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101

 

심호흡을 하며 읽어 내려오다 보니 설마 중간에 빠뜨리고 읽었나 싶어 책을 뒤적여볼 정도로 글래드웰은 당혹스럽고 현실적인 조언을 최선의 결론인양 전한다.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 잡아버린다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니까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만약 이 책에서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를 설득할 수 있다면이런 사실일 것이다낯선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다. 75

 

질문은 이어진다그럼 우리 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타인과 의사소통을 이어가야 하는 현실에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결국은 태도의 문제인가조심스럽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낯선 사람은 일종의 위험입니다제가 주장하는 것처럼우리는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 사람이 친절한 사람인지 위험한 사람인지재미있는 사람인지 지루한 사람인지걱정에 시달리는 사람인지 행복한 사람인지 판단을 하지요하지만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합니다우리는 그런 식의 판단을 내리는 데 굉장히 서툽니다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런 약점이 있다고 해서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걸 마냥 피할 수만은 없겠지요세상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은 대부분 과감하게 다른 사람과 말을 터보면서 시작됩니다그 첫걸음은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6

 

돌고 돌아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것처럼 초조하게 읽으며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엉클어진 끝에 어쩌면 나는 이 천재적인 글 솜씨를 가진 작가가 전하려는 말이 많은 이들이 실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그래서 억울하다는 말은 아니다이유가 무엇이든 실천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도 없는 행위의 부재일뿐이니까.

 

단지, 다음번에 내가 닥친 상황 속에서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이 전한 충고들을 기억할 여유가 있다면 알면서도 이전에는 왜 실천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한번 쯤 열심히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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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상구 -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4
제정임 엮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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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완전히 자연 물질에서 자유로워지는 발명품이 플라스틱이었고 이에 대한 찬사도 대단하였다가볍고 편리하고 깨지지 않는그런데 이런 이유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한 결과 사용 후 버린 쓰레기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의 환경문제가 되고 말았다효율과 편리와 맞바꾼 대가가 감당 불가능해진 것이다.

 

특히나 판데믹에 이른 코로나 전염병을 겪으면서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줄이려 노력했던 일회용품의 사용문제는 대안 없이 증가했고 그 해결책 또한 난감한 지경이다물론 안전은 중요하지만 과연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만이 정답이었는지...... 설혹 대안 없는 정답이었다 하더라도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으며사용 가능한 자원은 유한하고 우리의 생산과 소비는 언제나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선 안 된다.

 

언급하는 것이 사족처럼 느껴질 만큼 현대의 생산소비 체계는 수용 한계를 초과했다는 것이 분명하고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천이나 인식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우리에겐 제대로 작동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석유화학 제품인 플라스틱비닐 등을 줄임으로써 기후변화 원인인 탄소배출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친환경 대체상품을 개발사용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쌀빨대를 개발한 중소기업 연지곤지의 김광필 대표는 요즘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중략그는 현재 한달 3억 5000개 정도의 쌀빨대를 만들어 호텔과 카페 등에 납품하고 있는데 내년 초까지 월 10억 개 이상 생산이 목표라고 말했다김 대표에 따르면 김 대표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가 개당 5-15원인데종이빨대는 대략 3-5쌀빨대는 10배 가량인 50원이다하지만 가격이 비싸도 친환경 식품소재를 쓰겠다는 구매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중략쌀빨대의 장점은 약 2시간에서 10시간이면 자연 분해가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 비상구>란 제목은 일견 물러설 곳이 없다는 비장함과 어쩌면 비상구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암시하는 이 책은 2017년 9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연재된 탐사보도 에너지 대전환내일을 위한 선택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은 이론서나 윤리적 논설이 아니라 원칙이 명백하고 상세한 취재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선명하고 귀중한 자료이다현장으로 가자외국을 빼곤 직접 달려가 발로 뛰며 확인하자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자익명 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 모든 취재원의 이름나이경력 등을 최대한 드러내 독자의 이해를 돕고 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자데이터로 뒷받침하자통계나 기록 등 근거로 쓸 수 있는 자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긁어모아 분석하자.”

 

이런 원칙 하에서 채적된 자료들은 원전 재난의 위험성과 미세먼지 등 화석연료의 폐해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가장 생생하고 정밀하게 알려주었다이제는 객관적인 수치로 등록된 정보에 따르면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채택한 배출전망치(BAU) 방식을 선진국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이 방식은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비해 겉으로만 효과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를 가져오니까요.

 

주제와 목적이 분명한 만큼 이 책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탈원전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란을 규명하고 에너지 정책의 대안을 모색한다전국 곳곳에 있는 현장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에너지 구조기후위기기후변화에 관한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은 물론이고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점은 대안까지 제시했다는 것이다이 책의 가치는 더 널리 알려지고 곱씹어야 될 만큼 크다그 중에서도 전문가가 아니면 설득력있는 주장을 하기 어려웠던 원자력발전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을 살피기 전에 희망적인 결론을 거칠게 표현하자만이 책은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과 기후 붕괴와 원전 재앙을 피할 마지막 비상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긴 시간의 노고가 제대로 정리되고 발표된 점이 정말 다행이다.

 

이런 비상구에 도착하기 위해 우선 이 책에서는 우리 시대의 대한민국의 그릇된 신화 중에 하나인 원전은 싸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것은 허구이며원전은 비싸고 위험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밝혀낸다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첫손 꼽히는 원전 밀집 지역이라는 위험까지 안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보호책이 없다는 사실도 짚어낸다.

 

논쟁이 필요 없는 사실을 얘기하자면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선량이 자연 상태로 줄어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최소 10만 년이고이 고준위 핵폐기물 사용후 핵연료 의 안전한 영구 처분 방법은 아직 어느 나라도 찾지 못했으며한국 역시 최종 처분 방식에 대한 결정을 미룬 채 각 원전 근처의 임시 저장 시설에 계속 쌓아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핵발전소가 있는 다른 나라들에는 10만 년 동안 핵폐기물을 보관할 땅이 있을까.

 

취재의 생생한 입말로 표현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원전 인근 동네에서 지진을 겪은 후 매일 생존배낭을 챙기며 불안에 떠는 초등학생핵발전소 부근에서 수십 년 물질을 했다가 무더기로 암에 걸린 해녀들원전에 쌓인 핵폐기물 근처에 살다 자녀 몸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까지 검출되자 원전 가까이 산 죄라며 가슴을 치는 어머니의 탄식석탄발전소가 들어선 후 조개와 게가 탄가루 투성이가 되고 주민들은 줄줄이 폐질환으로 숨지는 현장. 2030년이 되어도 석탄 화력이 국내 발전원 1위라는 모순된 사실이 지적된다. 몇 문장으로 표현된 내용에는 당사자들이 겪어야 했던 아직도 그 환경에서 머물러 있는 그리고 언제 끝날지 치료가 될지 모르는 고통과 괴로움이 날 것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이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문제이며 핵을 발전원으로 사용하는 인류 공동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회피하는 한수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촘촘하게 국민의 세금으로 원전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과 지역 사회를 관리해오고 있었다는 내용들도 기록되어 있다그 구체적 사례들이 엄청나서 한결같이 태연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원전 광고 협찬비용원전 옹호기사로 얽힌 언론사들에 전해 진 비용대학 학보사들퀴즈 프로그램그리고 돈 받고 쓴 무수한 기사들……종편 채널들이 단연 두드러졌고, SBS, MBC, KBS 공영방송들 모두가 공범에 해당된다당연히(?) 조중동문화일보 국민일보 매일경제도 부지런히 돈을 받고 원전 홍보 기사를 쏟아 붓 듯 써주었다또한 월성 1호기의 계속 운전 허가를 위해 미국 시찰을 하고 수명 연장 가동을 지지하는 기사를 남발했으며 기어코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모든 돈은 국민들이 매달 내는 전기요금에서 나왔다

우리는 합의한 적도 없이 공멸의 미래에 투자한 것이다.

 

2017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간 전력사업기반기금에서 원전 홍보비로 나간 돈은 824억 1200만원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취재팀은 정보공개청구로 원전 홍보내역을 확보해 친원전 논조 보도와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지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확인한다중략지역주민들에게 관관을 보여주고 초중고생 견학 프로그램도 이루어졌다중략지난 5년 간 본사 및 전국 5개 원전본부(고리한울한빛월성새울)에 총 4만 5297명을 초청해…… 총 18억 4749만 2000원을 지원했다참가자 중 학생은 9644지역주민은 9165명이었다.

 

이런 전 방위적인 방해와 왜곡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전환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이 책에서 가장 기대한 점이 이러한 대안을 선명하게 보여주는가를 확인하고 배우고 싶은 것이었다멀리로는 독일스웨덴덴마크스페인 등에서 빠른 속도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프랑스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사옥 전체를 재생 에너지 발전소로 만든 애플 등의 기업들태양광 고속도로제로 에너지 하우스 등이 예시되어 있고가까이로는 제주도의 공풍화 정신과 이익 공유 구조 등 단순한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분명히 현실화되고 있다이와 더불어 재활용 기술과 현황시설과 건물과 교통수단의 에너지 효율화 방안 등해보지 않고 절망하거나 돈 받고 오도한 비난들을 차치하고도 시도해볼 수 있는 사례들은 많다.

 

바람이 많아 살기 힘들었던 제주 마을이 바람 덕에 돈을 벌고 있다동복리의 풍력발전기 중 15기는 지방공기업인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육상풍력단지 소속이고 나머지 1기는 마을 주민 807명이 공동으로 운영한다풍력단지가 들어서는 지역에 주민들이 자체 운영하는 발전기를 세워 수익을 낼 수 있게 한다는 정책에 따른 것이다중략동복리사무소 사무장에 따르면 2메가와트 용량의 이 발전기에서 연간 약 4억원의 순수익이 나온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 IPCC는 지금처럼 북극 빙하가 계속 녹으면 

2100년쯤에는 지금보다 최대 1미터까지 해수면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전 세계 인구 중 33퍼센트가 해안선으로부터 100킬로미터 이내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해수면 상승이 끼칠 위험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부디 이 책에서 들려주는 생생하고 정밀한 내용들이 추후 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되기를예산이 뒷받침되어 실행력을 가지기를 희망해본다이것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제안이다.

 

이 책을 다 읽어 가는 즈음 문득 떠오르는 책과 저자가 있다<한국탈핵>, 김익중 교수님이다.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다행히 시간 여유가 있었던 지라 어둠을 가로질러 늦은 저녁 강의를 찾아갔었다후쿠시마 이후로 몹시 불안하고 혼란스럽던 터라 사실과 전망을 제대로 배우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김익중 교수는 이전에도 많은 강의를 하시는 강행군을 마다않으셨는데이 책과 강의가 좋았던 이유는 <마지막 비상구>처럼 탈핵이 가능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었다명석하고 정열적이고 명쾌하고 헌신적인 운동가이자 명강사이시니 이 책의 부제가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라고 붙은 것은 거짓도 과장도 아니다함께 읽으면 여전히 참 좋겠다 싶다.

 

그 때 이후로 몇 해가 흘렀고멈추지 않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취재와 통계를 통해 드러난 현실은 아득하다필사적으로 현실을 가리려는 해당 국가의 안감힘과 주류 메이저에서 결코 다뤄주지 않는다는 불리함에 기인할 것일 수도 있지만코로나와 같은 광범위한 전염병의 판데믹 상황이 기후변화에 기인한다는 공감대가 80%에 이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핵발전소에 대한 진실은 공감이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공공자금을 쏟아 부어 친원전 이데올로기를 주입해온 결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의 원전 찬성 여론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현상은 현상을서 존재하는 것이니 당장 어떻게 할 수 는 없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무척이나 깊은 울림을 준 인용구를 소개해본다.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다. 

인지부조화. 리언 페스팅어


악을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데에 악의 본질이 있다.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


나도 잘 하는 일은 아니지만 내 사정과는 별개로 어쨌든, 배운다는 것 즉 배워서 알게 된다는 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을 알게 되어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과거의 잘못과 작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지배력이 큰 언론사들이 자본의 입맛에 맞춰 에너지 전환의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저희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언론이 이 문제에 바르고 강한 목소리를 내주고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해 주신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쁘겠습니다.

 

희망과 절망과 좌절과 격려 사이를 오가며 이 책을 다 읽고 나자말자 시의적절하고 반갑게도 이런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손을 놓지 않고 여전히 꾸준히 노력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경남환경운동연합 환경단체들은 29일 보도 자료를 통해 "오는 30일 삼천포 1, 2호기가 폐쇄된다. 38년간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악명을 떨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며 "지금 당장 석탄화력발전소를 멈추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석탄화력발전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온실가스의 국내 배출 28%를 차지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퇴출 대상 1위가 됐다"며 "정부가 규정한 석탄화력발전소 설계수명 30년을 훨씬 넘겼다"고 삼천포 1, 2호기의 폐쇄를 적극 환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2911465691328&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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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교양 고전 Pick 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식여행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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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엉뚱한 면이 있더라도 이상이 있고 목표가 확실하고 헌신하는 태도가 분명한 사람이 더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막상 내가 하려면 겁이 나서 하지 못하는 일의 대리전을 보는 듯이 유사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부분적인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돈키호테의 묘비명

 

그에 비해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 하지만 햄릿형 인간형은 작품 전반에 걸쳐 답답하고 때론 못 미더우며 결정적인 순간이라도 그 우유부단함으로 민폐형 인간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햄릿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어서는 안 될 듯하다그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그 고통은 돈키호테의 고통보다 더 치명적이고 극심하고 강렬하다돈키호테는 험악한 양치기들과 돈키호테가 나서서 석방시킨 죄인들의 공격을 받지만햄릿의 상처는 스스로가 자초한 상처이다햄릿은 자신을 괴롭히고 고문하는 분석이라는 양날의 칼날을 쥐고 있다.

 

투르게네프라는 걸출한 작가의 시선으로 본 두 인간 유형이 내가 가진 시각보다 재미와 깊이가 덜 할리 없지만나이가 들수록 햄릿형 인간형이 될 수밖에 없는그런 두루 뭉실하고 우유부단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햄릿의 지난한 고민으로 형성된 성격을 살짝 편을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유형의 인물 속에는 기본적으로 대조적인 두 성향즉 인간이 하나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할 때 그 축의 양극단이 구현되어 있는 듯하다.

 

인간의 삶은 영원히 밀고 당기는 두 힘끈질기게 적대하는 두 힘이 영원히 화해하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

 

더구나 햇빛이 찬란해서 경미한 우울쯤은 기화되고 기운이 펄펄 나는 스페인의 분위기와 일조량도 식량도 부족했던 북유럽의 환경은 달랑 인물만 떼어내어 비교하기에는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사람은 생각보다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세르반테스는 아마도 셰익스피어란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비극작가는 자기 생의 마지막 3년 동안 당시에 이미 출간되어 있던 유명한 소설의 영어판을 스트랫퍼드에 있는 자기 집에 호젓이 틀혀박혀 읽었던 게 틀림없다<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셰익스피어이는 한 예술가이자 철학자가 소재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을 터다.

 

얼마 전 '사느냐 죽느냐'의 번역으로 쭉 이어져 온 해석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강연을 듣고 나니 혼자해본 의심에 근거가 마련된 듯 그 소식이 반가웠다지독한 비극과 배신과 살해 위협이 도사리는 환경에서 가장 큰 고민이 내가 죽느냐 사느냐이런 간명한 형태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급박한 순간에도 사소한 고민과 실수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간이 사는 현실적이 모습이 아닌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결국은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고 다 죽어버리는 고전 비극의 최고봉 햄릿의 캐릭터와 언제나 무시당하고 이해받지 못했지만 저렇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돈키호테 캐릭터의 비교를 통해오랜만에 고전도 인간도 인생도 들여다보고 생각해보고 대화를 나누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던 그 방식 그대로의 세상으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전환점을 맞고 있는 시기를 견디면서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와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한다그런 동기로 선택한 각자의 책은 무궁무진하겠지만그래도 독서활동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면모든 책에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독자가 부여한 해석들이 삽입된다는 점이다아무도 셰익스피어를 그가 썼던 그대로 읽지 않는다우리가 읽는 셰익스피어는 후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정보와 해석이 풍부하다는 장점을 갖기 때문에 그 시대의 독자들이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것이 된다. 20여 년 전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스탠딩 석에서 버티며 관람한 그 오델로는 지금 다시 읽는 오델로와는 또 다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키듯 독서를 할 때마다 책도 변화할 것이다물론 독자가 반드시 사멸하는 것과는 달리 작품들은 우리와 함께 다시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기도 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고 이후의 시간을 겪으며 더 풍부해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햄릿을 읽으면 몹시 다양한 원인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속도감있게 비극이라는 결론으로 달리지 않고 산만하게 이어지다가 결국에 시원한 반전 하나 없이 모두가 사망하는 착착한 장면으로 마감되는 것에 당황하게나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처음에는 몇 번을 읽어도 정돈이 잘 되지 않아서 매번 지친 기분이었는데텍스트 자체에 집착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야 말겠다는 정적인 태도를 버리면독자로서의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과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종종 미래에 책이 소멸될 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보이는데도대체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는 말인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발명과 동시에 완벽했던 가위처럼책도 기록될 당시부터 완벽한 발명품이었다전자책의 장점도 분명하지만구동하기 위한 에너지와 기기가 필요하고 디지털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소멸된다종이책처럼 500년을 원본 그대로 남길 수는 없다.

 

다소 과격한 상상이지만 만약 단 한 권의 책만 선택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야 한다면 과연 그 책은 햄릿일까돈키호테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그때는 아마 명성과 권위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과연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인간 유형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이 더 컸을까인생의 중대한 선택 기로에서 이 두 인물은 어떤 방향을 제시했을까그리고 내가 바라는 인간상은 누구를 더 닮았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들은 두 대척적인 경향의 극단적인 표현이 불과하다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이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희극이나 온전한 비극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국내 첫 완역본이라 정성이 가득하다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포함한 다양한 도판과 같은 볼거리작품의 이해를 돕는 디타 뮐레로바의 해제와 같은 풍성한 읽을거리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더 이상 신에게만 희망을 걸지 않는다그 시대의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자신에 의지한다돈키호테와 햄릿은 르네상스의 지고한 이상들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하지만 삶의 현실적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그러한 이상들을 실제 삶 속에서 펼칠 수 없다두 사람은 이례적으로 특출한 인물이지만 자신들을 둘러싼 객관적인 환경들을 극복할 수 없다이런 상황으로 인해 두 사람은 오해받고 비정상적인 인물로 낙인찍힌 매우 비극적인 영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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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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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거의 어떤 장면과 기억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선명한 경우가 있다다른 모든 중요하고 심각한 것들은 다 잊어버렸는데 유독 그 한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소환되는 경험이 있다이 책의 도입부가 그렇게 너무나 사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나는 한동안 별 그리움 없이 잊고 살았던 시절이 자꾸만 떠올랐다마치 일기를 공개한 것처럼 섬세하면서도 중요한 모든 것은 그렇게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둘만의 교집합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이 소설의 이야기는 브레이크 없이 순식간에 흘러간다아끼며 천천히 녹여 먹듯 읽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살면서 얼토당토않은 상대에게 급작스런 감정을 느끼게 되거나 더 나아가 고백까지 하게 되는 혹은 받는 경우들이 있다당사자로서는 그런 상황 자체가 버겁게 마련이라 상대를 살필 여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생각해보면 첫 인상 말고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대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무모함은 무엇이었을까신비롭고도 참 강렬한 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눈에 반하는 것을 믿는 이들도 있지만나는 아주 잘 아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타입이라 모험적인 그 세계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거의 없다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일 수밖에 없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자신이 끔찍하게 싫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해서도 잘 알기 때문에 비로소 특별한 감정이 자라나게 되는데이런 나를 변호하는 구절을 오래 전 <비포선라이즈>를 통해 들으며 안심한 기억이 난다.

 

네가 아까 커플이 몇 년 동안 같이 살게 되면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고 또 상대의 습관에 싫증을 느끼게 돼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고 했잖아.

난 정반대일 것 같아난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 사랑에 빠질 것 같거든.

 

나는 혜인이 좋은 이유를 한 열가지는 숨 한번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었는데사실 고민하고 말 것도 없이 나의 마음은 예스였다하지만 나는 생각 좀 해볼게,하고 우물거리고 말았다누군가에게 고백을 들은 것도 누군가의 첫 연인이 되는 것도 처음이었으며무엇보다 연애나 사랑 같은 건 먼 훗날의 것이었지 그게 내 것이 될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벗었기에 나는 시원하게 좋아,하고 말해줄 수 없었다.

 

소리 내지도 못하고어깨를 마음대로 들썩이지도 못하고그저 8절 문제지 위에 펜을 쥔 자세 그대로 흐느껴 울고 있었다그러니까 나는 그 모습에그 모습을 보고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확신했다이건 명백해백 퍼야저 머리띠가 조금만 더 고급이었어도 이건 사랑이 아니었을걸나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 대신 혜인의 손을 붙잡고 열람실을 뛰쳐나왔다.

 

물론 사는 일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상대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어느 순간 멀게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내가 어제 발을 담근 이 강물은 오늘 이 강물과는 다르다고 한 철학자를 소환할 필요도 없이매순간 변화하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유일한 실재성이라 결국 아무도 서로를 지속적으로 알 수는 없는 일이다당연하다그렇지만 얼마나 잘 이해하는 가와는 별개로 여전히 슬픔과 쓸쓸함은 남는다.

 

그때-그곳이 지금-이곳과 너무 비슷하거나 달라졌을 때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나곤 했으나 이제 원기억마저 희미해진 이곳에는 겹쳐지는 것도 길어낼 것도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나도 이제 그때,가 떠오르지 않는 나이가 되었구나.

 

세월이 금방이라는 말은 듣는 즉시 이해가 되었지만 뜯어볼수록 참 이상하고 오묘한 말이었다그리고 그 말을 곱씹자 가슴 안쪽을 고운 사포로 긁어내리는 기분이 들어 정말로 가슴을 쓸어 만졌다.

 

관계 속의 나와는 별개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척 유쾌하게 풀어내고는 있지만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무척 힘겨웠을 것이다진심을 속속들이 짐작할 순 없지만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풀어 주었기 때문에 글 속에서나 대화 속에서 이토록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었고 고맙게도 시간과 거리가 나를 대신해 끊어주기도 했다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고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때론 우리는 마치 진정한 사랑이란 목숨까지 아깝지 않다고 자신을 온통 쏟아 부을 정도의 모성애나열병처럼 격렬한 성애로 치닫는 이성애 혹은 동성애만을 해당 범주에 공식적으로 올려 주곤 한다하지만 이토록 이성애로 조건화되고 끊임없이 의식화되고 한편 강요받는 사회가 아니라면 사랑은 딱 한 가지 정체성과 합치하는 감정이 아닐 확률이 높다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이 모든 조건화된 환경 속에서도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이라고 느낀 모든 것이 진짜 사랑의 감정이었다고 말한다단지 내용에 몹시 이끌려서가 아니라 그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작가는 <시절과 기분>이라는 제목에 사랑이란 그렇게 다양한 것이라는 말을 이미 했다고도 볼 수 있다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의 흐름에 따라 느껴지는 기분들.

 

조금은 서글픈 기분 속여전하게 뛰는 이 심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중략오랜만인지처음인지 알 수 없는 고동이 기차가 내는 착착 소리와 함께 반복되었다그건 어떤 과거의 회한으로 뻗어나가 겨울날의 술집으로 데려가기도 했고가본적 없는 미래의 풍경으로 도약해 가닿기도 했다대부분 슬펐지만 어떤 것은 너무 생생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고나는 대체로 외로웠지만 그럼에도 문을 열었을 때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순전하게 기뻐했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아무여도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상상만으로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가능 세계를 그려보는 일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슬픔과 불안에서만 찾아왔던 재미와 미(역시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흔들림이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문득 아직 심장이 잘 뛰고 있는 걸까하고 심장자리에 손을 얹고서야 안심을 하곤 하는 요즘의 나는 주인공이 느끼고 있는 뛰는 심장이, 흔들림이, 진동이 부럽기만 하다. 구축한 일상을 단번에 날려버릴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질 여지가 섭섭할 만큼이나 전혀 없으니, 그 이유도 답도 괘념치 않고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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