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그 작가 - 우리가 사랑했던
조성일 지음 / 지식여행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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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작고하신 분들이다. 경사보다 조사가 더 많은 나이에 이르고 나니 영원히 나와 함께 동시대에 계셔줄 것만 같던, 먼저 떠나신 그리운 분들 생각이 예전과는 또 다르게 각별하다. 모두가 자신의 작품으로 존경받는 분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삶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과 태도, 고민과 괴로움 등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아릿하다.

 

순서 없이 뒤적이며 더 빨리 알고 싶은 분, 더 특별한 애정이 있는 작가들부터 읽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제목만 들어도 다소 격한 감정이 차오른다. 이 시집을 갖는 것이 읽는 것이 외우는 것이 당연한 시기에 대학을 다니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기형도의 시 구절들이 마음에 새겨졌다. 별 다른 서러운 사연 없이도 매번 문을 탁! 닫고 나오는 순간엔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란 구절이 늘 입술에 맴돌았다. 당시 우리는 정서의 대부분과 손편지 내용의 대부분을 기형도 시인과 그의 시들에 빚지고 살았다.

 

보살계를 받고 신도증이 있는 부모님은 자식들을 데리고 어린 시절 주말마다 전국의 사찰을 다니셨다. 어릴 적이라 자연이나 종교에 대한 이해도 감상도 전무한 터라 재미도 없고 지치고 번거로운 기억이 많았다.

​현재까지 나는 어느 종교에도 귀의하지 못했지만 20대 시절 부모님이 특별히 존경하시던 법정 스님 강연을 함께 다니며 실천적 의미로서의 종교의 가치라든가 한국에서 기복신앙화 되기 전의 가르침들과 몰라서 충분히 존경하지 못했던 여러 종교인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인식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그 후 살아계신 동안 여러 말씀 듣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동안엔 시대의 어른이 계시구나, 정신의 의지처가 있구나, 여기며 존경하였다. 특히나 그토록 소탈하게 ‘비구 법정’이란 천쪼가리 한 장 덮고 소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강렬한 만큼 허전한 감정에 휘말렸고, <무소유> 책의 절판을 유지로 남기신 점을 내내 원망하기도 했다.

 

박완서 작가는 어머니 책장의 <나목>을 처음 꺼내 읽으면서 만나게 되었다. 나와는 경험에서 접점이 없는 내용이지만, 마치 조부모께서 가끔 들려주시던 사적대하소설과도 같은 광풍노도의 이야기와 그 느낌이 비슷한지라, 어느 책이든 술술 잘 읽히는 재밌는 이야기들이었다.

​이후에 그토록 참혹한 고통을 겪으신 얘기에 독자로서 마음이 아프고 늘 건강하시길 바랐다. 작고하신 소식을 들었을 때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처럼 그런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 일었다.

​마지막으로 알고 있던 책 <세상에 예쁜 것>을 조카가 태어난 선물로 동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노란 집>이라는 책이 한 권 더 있다니, 그 환한 미소를 다시 본 듯 반가운 일이다.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나 다 읽지는 않았다는 박경리 작가의 작품들 중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 밖에 읽은 것이 없다. <토지>는 시도만 하고 끝내 완독을 하지 못한 시기를 지나 대학입학 선물로 <토지>를 받고 나서야 좀 더 진지한 기분으로 읽자는 결심이 생겼고,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한 차례 읽을 수 있었다. 방대한 구성과 탄탄한 전개, 26년간 집필을 했다는 노고를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비로소 대작과 대문호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이 생겼다.

​이 책에서 소개된 개인사를 읽고 그토록이나 강렬하고 힘든 감정에 괴로워하신 세월이 안타깝고, 그럼에도 매몰되지 않고 그 모든 감정을 글을 쓰는 동력으로 삼으신 점이 존경스럽다.

​세월이 더 흐르면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고전명작으로 자리 잡기를, 수백 년이 지나도 경애 받는 그런 작가와 작품으로 살아계시길 바란다.

 

“일필휘지란 걸 믿지 않”는 작가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고지 칸마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덜어 넣듯이 글을 써내려 갔다.”

 

다른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마지막으로 <혼불>의 최명희 작가이다. 마치 ‘천명’과의 조우가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게 작품을 쓴 작가의 일화.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혼불’이야기에 매료되어 이를 작품으로 쓰기로 결심하고 17년 동안 모든 기력을 끌어 모아 삶의 마지막까지 원고를 마쳤다고 한다. 5부가 10권으로 완간된 기쁨이 크셨는지, 말기암으로 2년 가까이 투병하셨는데도,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살았다”는 말씀을 남긴 채 떠나셨다고 한다.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 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 껍질이 말라서 비틀어 시든다 해도 그 속에 든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 <<혼불>> 중에서

 

작가와 작품 설명을 읽고 나니 감정이 동화되고, 특히나 일상이 무한반복궤도의 루프에 걸린 것처럼 느껴지니 대하소설들을 모두 다 옆에 쟁여두고 독파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 든다. 한편으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망하고 싶은 마음이 많은 것이리라.

 

이런 나의 사적 심리상태와는 별개로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홍명희의 <혼불>은 다시 읽어 해될 것이 없는 대작대하소설들이자 문학유산이다.

 

휴가 시기마다 대하소설을 한 두질 사서 세상사 딱 끊고 뒹굴거리며 읽던 때가 떠오른다. 완벽하게 행복했던 단절과 몰입이라는 휴식.

​독서가 여행이라면 나는 곧 이들이 만든 세상으로 다시금 여행을 떠나서 거기 한동안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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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와 함께 -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
로빈 월 키머러 지음, 하인해 옮김 / 눌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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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이끼에 관한 마이크로 다큐멘터리 작품을 보았습니다. 더 어릴 적 눈의 결정들을 보고 놀라고 감동받은 것처럼, 눈에 띄는 큰 것, 높은 곳만 보던 머리가 숙여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미리보기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건조하고 갑갑한 일상에 촉촉한 기운과 색감을 더합니다. 귀중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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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은애숙 지음 / 상상마당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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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 사실주의’란 분류표가 붙은 이 책의 소개글을 읽고, 내가 환상적 사실주의에 대해 알고 있는게 뭘까, 문제를 받아 든 학생처럼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환상인데 사실주의를 따른다? 혹은 사실인데 환상으로 기록되었다? 명명 자체도 마치 모순처럼 재미나다. 질문을 지인들에게 돌려 보았더니, ‘실제에 바탕을 둔 허구’, ‘소설의 허구적 소재를 역사/사회적 배경을 녹여 실재했던 일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라는데, 뇌가 노화되어서인지 그게 장르 구분이 될 정도로 분명히 변별력이 있는 작법인지 명쾌하지 않다(순전히 제 개인 이해력에 기인합니다).

 

환상적 사실주의 좀 쉽게 이해시켜 달랬더니......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이야기도 나오고,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기억 안 나냐고 다그치기도 하고, 비트겐슈타인도 나오다가, 코로나가 지나가면 연희동 <바벨의 도서관>에서 만나자는 뜬금없는 약속도 했다.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보르헤스 스스로 이렇게 써놓았다니 적어도 <바벨의 도서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텍스트인가 보다. (혹여 제가 가엾어 잘 설명해 주고 싶으신 분은 댓글을 남겨 주십시오. 꾸벅)

 

어쨌든 나는 처음으로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장르의 개념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해설서도 없이 7편의 중단편이 실린 소설집을 읽었다. ‘그 사람이 지닌 어휘가 그 사람의 세계’ - 세계를 인식하는 매개가 언어이며, 개인은 자신의 언어 수준만큼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 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따르자면 이 책을 내가 지금 이해하는 것은 무리겠단 생각을 하면서.

 

‘애’, ‘간’이 닳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맛보는 것이 잊힌다는 사건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잊혀진 이들, 기억해주지 않은 이들이 될 것이다. 내 짐작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다를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주변적 존재로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이들 - 주로 여성들 - 이 작가의 기억 속에서조차 온전히 현실에서 복원되지 못하고, 꿈에서, 종교를 통해서, 꿈과 다를 바 없는 먼 나라 - 이탈리아 -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인상적인 점은 그래도 인류사에서 잊히지 않을 명성을 쌓은 여성인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절반을 휘몰아친 사회주의의 옷을 입은 남성혁명가들의 전체주의 실험의 광풍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차분히 들려오던 것이 그의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쨌든 그도 한 때는 철저히 잊힌 이였음이 분명하다.

 

존재 이유를 갖지 못한 이들이 좌절에서 벗어나 환상적 믿음을 갖게 만든 것. 버트란트 러셀

 

어떻게 환상적이며 동시에 어떻게 사실주의적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책 내용 속으로 들어갔다. <구운몽>은 입시교재 이상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몇 십년이 지났고, 그래서 생생한 이야기로 화자로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의 내용이 생경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역사서와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우연하게도 꽤 오랫만에 살아보지 못해 더욱 궁금한 시대로 오가는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구운몽의 내용이 아니라 작가가 더욱 생생하게 입말로 등장하는 부분이라, - 몰입해서 즐겁게 읽은 개인적 이유로 느낌이 증폭된 바에 기인하나 - 마치 만나 본 작가처럼 친근감이 들게 만드는 이 책의 저자의 서술이 놀라웠다.

 

허나 사람은 망각의 존재라오. 잊혀진다는 건 사람이 감내해야 할 것이라오. 중략. 잊혀진 존재가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소. 기억에 의지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이 글쓰기였다오.

 

실제의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이라면 기묘한 현상이나 비밀스러운 어떤 모습이 존재한다고 말하거나 믿는 것은 비정상인가.

 

<구운몽>은 ‘독서 불가능성’으로 인해 더욱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은 환영과 허구의 세계를 다루고 있잖아요. 바로 그런 점으로 인해 이 작품은 읽히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느낌이 드네요.

 

자칫 작가는 경제적 행위와 무관해 보이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무익한 사람처럼 여겨질 수 있소.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결코 탕진되지 않는 의미를 찾아내야 할 의무를 가졌다오.

책의 특징처럼 구름 속을 노니는 듯이 그 자체로 환상주의적 소설이 끝나고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작품에 들고 나는 전환에 시간이 꽤 걸렸다. 중단편 7편을 다 읽은 후에는 작가의 장르 구분없는 작품 색깔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같은 작가가 썼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각각의 작품들이 현저히 구분된다.

작가가 여러가지 입말투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도 신기하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배경도 동서고금을 자유롭게 뛰어넘는데, 배경 묘사를 하는 부분에서는 모두 다 취재를 나간 장소들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세밀한 부분들도 있다.

'환상적 사실주의'란 장르를 아직도 묶어서는 정의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지만, 환상도 사실도 시간한정적인 개념에 다름아니란 생각이 들자 경계를 교차하지 못할, 굳이 구분을 공고하게 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개념과 상상 수준에 머무르던 것도 어느 순간 현실화되면 사실이 될 것이니..​


상상하지 못한 일이란 말이 있어. 그 말은 진실이 아니란다. 상상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거야.

장르도 모르고 작가의 메시지도 잘 이해한 것은 아니란 반성이 들지만, 그건 내 개인의 한계일 뿐이고, 새로운 매력적인 문학작품의 장르를 만났다는 즐거움은 남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을 환상이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는 있으니, 그 때 꾼 꿈은 환상적으로 바람직했다고, 그런 평을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살고 싶다.​


데리다는 읽어 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읽히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걸작에 대해 설명했어. 독서 불가능성이란 문학이 환영과 허구의 세계를 다루기에 갖게 되는 속성이야. 내 생각엔 보르헤스의 단편 <모래의 책>이 이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작품인 것 같은데. 중략. 데리다는 유용성을 수치로 따지는 현대 사회가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을 필요하지 않게 여겨 폐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어. 그런 사회를 안타까워했지. 중략. 몇 해 전 작고한 한국의 문학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어. ‘문학을 써먹을 데가 없기에 유용한 것이다. 모든 유용한 것은 유용성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만,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기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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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참깨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양식 1
청림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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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로 참깨가 재배되는 산골의 작은 밭이 배경이며, 참깨를 기르고 수확하는 수고를 한국적인 정서로 노래하는 책이다. 밭을 가져본 적고 참깨를 길러본 적은 없어도 깨소금과 참기름을 좋아하는 가족들과 함께 읽었다.

 

동화다운 따스한 표지 속 내용은 땅을 가꾸고 작물을 재배하는 노고라기보다는 그 일련의 과정이 귀엽고 특이한 탄생과 성장 스토리처럼 다가온다. 참깨 스스로가 자신을 성장시키면서 도움을 주는 이와 환경에 감사를 느끼고 ‘참기름’이라는 소명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명상을 하고 직접 밭을 가꾸는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콘크리트 건물 안에 살면서 온전히 느끼기는 적어도 정서상으로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에겐 상상이라는 능력이 있으니!

 

 


독특하게도 주제가가 있고, 영어번역본도 수록되어 있다.

 

감사해요, 고마워요.

당신들은 영원한 이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분들이에요.

폭풍우를 견딘 우리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어요.

우리는 영원한 이의 위로와 사랑에 젖을 거예요.

감사해요, 당신들은 오래도록 기쁠 거예요.

언젠가 당신들이 알게 될 거예요, 우리들의 노력과 사랑을 당신들이 알 때가 올 거예요.

우리는 기쁘게 오늘 노래할 거예요.

영원한 이의 한없는 사랑을, 당신들이 알아차릴 때까지.

 

Thank you, Thank you.

You're the men who receive the eternal one's love the most.

Our love endured the storm was not in vain.

We will be in the consolation and the love of the eternal one.

Thank you, you'll be happy for a long time.

Someday you'll know. The moment will come when you realize our efforts and love.

We are singing today gladly.

About the endless love of the eternal one, until you real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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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라지지 않는 여름 1~2 - 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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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대까지도 <호밀밭의 파수꾼>10대 주인공 캐릭터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다 대부분을 잊어버린 독자로서, 또 다른 10대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시작도 전에 망설여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사춘기가 영원할 것만 같은 10대와 함께 오늘도 무사히 살고 있다. 그렇게 관계 속의 를 새삼스레 알아차리고 다시 책을 들여다보니, 예전과는 다른 감정으로 읽히는 내용들이 많다.

 

선한 내 한 친구는 아이를 낳아 들여다보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어찌 살아갈까 너무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파 한밤중에 통곡을 하고 얼마 후 후원을 시작했다 한다. 그런 품격에는 못 미치지만, 열두 살에 부모를 잃고 성소수자인 자신을 혼란스러워 하지만 열심히 성장하여 살아남은’ 10대가 애틋하고 가련하여 네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겠다, 는 각오가 퐁퐁 솟는다. 신작 소설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출간된 지가 10년 가까이 되었고, 2018년에 클로이 모레츠 주연,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원제: The miseducation of Cameron Post)>이라는 타이틀로 영화화되어 수상을 했다고 한다.

 

작년에 좋은 책 - <선량한 차별주의자>- 을 만나 내가 차별주의적 발언을 꽤나 한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되었고, 요즘도 종종 머리가 달아오르면 (공개적으로 발언하지는 아니지만) 혐오에 가까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니 기회가 있으면 항상 혐오, 차별, 소외의 문제를 다루는 책을 찬찬히 읽고 차분해지는 시간을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사랑하는 우리 집 10대 소녀도 무조건 반항해본다 - 그래봐야 내 경우와 비교해보면 착하고 귀여운 수준, 아직은! - 시기를 지나, 진지하게 자신과 자신만의 삶에 대한 이러저러한 발표를 할 것이고, 나는 사실 아무런 준비도 노력도 비축하지 않고 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 역시나 부모의 죽음을 너무 일찍 맞은 것과 그 충격적이고 불행한 사건에서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죄책감을 가지는 장면이 너무 슬프다. 원해서 그러는 분들이 있을까 싶지만, 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지만, 부모의 역할 중에는 있는 힘을 다해 자녀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 살아서 버텨주는 일도 있다고, 그런 의무사항을 나는 스스로에게 지워 두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한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 머릿속에는 이런 자잘한 원칙이며 성경 구절, 인생 조언이 떠돌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디서 온 것인지, 왜 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인지 의문을 품기를 그만두었음에도 짓눌리는 기분을 느꼈다.

 

다시 책으로…… 고등학교에 가서 사랑에 빠지고 모든 면에서 커다란 혼란을 겪고, 그리고 치료를 위해서라며 강압적으로 입소된 시설. 이후의 캐머런이 자신을 알아가고 정립하는 과정이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버금가게 면밀하고 이성적이라 그 노력이 힘겹겠다싶어 안쓰러우면서도 간혹 웃음이 났다. 확신할 수 없는 요소들을 제외하고 또 제외하고, 마지막 의심할 수 없는 진실 하나를 남기는 방법. 그런 숙고의 대상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이라 한편으로는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까진 못하겠다 싶은 과업(?)을 성취해낸다. 실은 절박함의 차이일 것이다.

 

집에 전화조차 걸 수 없는 이곳에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낯선 사람에 둘러싸인 채로, 진짜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목장 지대에 있다 보면, 마치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삶이었다. 호박 속에 갇힌 선사시대 벌레의 삶이었다. 죽었지만 확실히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얼어붙어 유예된 상태.

 

자신을 부정하고 지우려는 세상, 자신의 병명이 동성매력장애라는 죄악이라고 명명하는 세상, 가까울수록 사랑할수록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부정한다는 서글픈 모순. ‘동성애라면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주제이고 극소수의 일일 것도 같지만, 실은 누구나 살면서 논리적으로는 유사한 처지에 놓인 경우들이 생각보다 흔히 있을 수 있다. 사소한 취향부터 중요한 진로결정 그리고 등등등 등등등. 도와줄게, 라던가 걱정해서 그래, 라던가 사랑해서 그래, 라는 이유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세례를 주듯 쏟아 붓는 조언들. 혹은 부정들, 혹은 강압적 방해들.

 

저기요, 여기서 우리를 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심지어 우리에게 고함을 지르지도 않아요. 그런 게 아니라고요.” 나는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게 그들을 신뢰하느냐고 물으셨죠? , 저는 그들이 고속도로에서 승합차를 안전하게 운전할 거라고 믿어요. , 매주 우리를 위해 식료품을 살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이 우리의 영혼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즉 우리를 천국에 보장된 자리에 걸맞은 최선의 인간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로 알고 있다고는 믿지 않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알겠다.” 그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나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그 밖에 다른 문제는 없니?”

없어요.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든다는 말 속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짓눌리지도 않고 자신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이렇게 똘똘하게 살아남는 10대 주인공을 만난 일은 기특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이 나는 평생을 순전히 운이 좋아 험한 꼴을 덜 보고 사는 특혜를 누린 것이 맞다. 교조주의적, 근본주의적인 이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적도 없고, 그래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대충 어울렁더울렁 사는 일이 세상살이라고 속편하게 생각한다.

 

유럽에서든 한국에서든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들을 여러 공공 영역에서 만나 함께 일을 하기도 하였다. 다른 이들의 성애에 전혀 관심이 없을뿐더러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그 문제로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소란을 피우는지도 이해를 못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 혹은 자신들의 경우에는 - 온갖 고귀한 치장을 칠하는 사랑그들의 경우에만 그토록 편협하게 성애로만 몰아가는지, 그 이중적이고 부당하고 노골적이고 천박하고 얄팍한 인식에 소름이 돋는다.

 

이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자꾸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에 흠칫 놀랐다. 예상한대로 10대의 캐머런이 훌륭히 해 낸 객관적 거리두기는 나에겐 벅찬 일인가보다. 가끔은 엉망진창인 듯한 세상을 탄탄히 떠받치고 계신 기적과도 같은 많은 분들의 존재를 떠올려보며 정신을 가다듬어본다.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또 다른 사람에게는 타인을 제약없이 이해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우애와 사랑을 선사할만한 감수성을 얻는 일에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란다. 역자. 송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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