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교양 고전 Pick 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식여행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엉뚱한 면이 있더라도 이상이 있고 목표가 확실하고 헌신하는 태도가 분명한 사람이 더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막상 내가 하려면 겁이 나서 하지 못하는 일의 대리전을 보는 듯이 유사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부분적인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돈키호테의 묘비명

 

그에 비해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 하지만 햄릿형 인간형은 작품 전반에 걸쳐 답답하고 때론 못 미더우며 결정적인 순간이라도 그 우유부단함으로 민폐형 인간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햄릿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어서는 안 될 듯하다그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그 고통은 돈키호테의 고통보다 더 치명적이고 극심하고 강렬하다돈키호테는 험악한 양치기들과 돈키호테가 나서서 석방시킨 죄인들의 공격을 받지만햄릿의 상처는 스스로가 자초한 상처이다햄릿은 자신을 괴롭히고 고문하는 분석이라는 양날의 칼날을 쥐고 있다.

 

투르게네프라는 걸출한 작가의 시선으로 본 두 인간 유형이 내가 가진 시각보다 재미와 깊이가 덜 할리 없지만나이가 들수록 햄릿형 인간형이 될 수밖에 없는그런 두루 뭉실하고 우유부단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햄릿의 지난한 고민으로 형성된 성격을 살짝 편을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유형의 인물 속에는 기본적으로 대조적인 두 성향즉 인간이 하나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할 때 그 축의 양극단이 구현되어 있는 듯하다.

 

인간의 삶은 영원히 밀고 당기는 두 힘끈질기게 적대하는 두 힘이 영원히 화해하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

 

더구나 햇빛이 찬란해서 경미한 우울쯤은 기화되고 기운이 펄펄 나는 스페인의 분위기와 일조량도 식량도 부족했던 북유럽의 환경은 달랑 인물만 떼어내어 비교하기에는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사람은 생각보다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세르반테스는 아마도 셰익스피어란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비극작가는 자기 생의 마지막 3년 동안 당시에 이미 출간되어 있던 유명한 소설의 영어판을 스트랫퍼드에 있는 자기 집에 호젓이 틀혀박혀 읽었던 게 틀림없다<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셰익스피어이는 한 예술가이자 철학자가 소재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을 터다.

 

얼마 전 '사느냐 죽느냐'의 번역으로 쭉 이어져 온 해석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강연을 듣고 나니 혼자해본 의심에 근거가 마련된 듯 그 소식이 반가웠다지독한 비극과 배신과 살해 위협이 도사리는 환경에서 가장 큰 고민이 내가 죽느냐 사느냐이런 간명한 형태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급박한 순간에도 사소한 고민과 실수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간이 사는 현실적이 모습이 아닌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결국은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고 다 죽어버리는 고전 비극의 최고봉 햄릿의 캐릭터와 언제나 무시당하고 이해받지 못했지만 저렇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돈키호테 캐릭터의 비교를 통해오랜만에 고전도 인간도 인생도 들여다보고 생각해보고 대화를 나누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던 그 방식 그대로의 세상으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전환점을 맞고 있는 시기를 견디면서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와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한다그런 동기로 선택한 각자의 책은 무궁무진하겠지만그래도 독서활동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면모든 책에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독자가 부여한 해석들이 삽입된다는 점이다아무도 셰익스피어를 그가 썼던 그대로 읽지 않는다우리가 읽는 셰익스피어는 후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정보와 해석이 풍부하다는 장점을 갖기 때문에 그 시대의 독자들이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것이 된다. 20여 년 전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스탠딩 석에서 버티며 관람한 그 오델로는 지금 다시 읽는 오델로와는 또 다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키듯 독서를 할 때마다 책도 변화할 것이다물론 독자가 반드시 사멸하는 것과는 달리 작품들은 우리와 함께 다시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기도 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고 이후의 시간을 겪으며 더 풍부해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햄릿을 읽으면 몹시 다양한 원인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속도감있게 비극이라는 결론으로 달리지 않고 산만하게 이어지다가 결국에 시원한 반전 하나 없이 모두가 사망하는 착착한 장면으로 마감되는 것에 당황하게나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처음에는 몇 번을 읽어도 정돈이 잘 되지 않아서 매번 지친 기분이었는데텍스트 자체에 집착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야 말겠다는 정적인 태도를 버리면독자로서의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과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종종 미래에 책이 소멸될 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보이는데도대체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는 말인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발명과 동시에 완벽했던 가위처럼책도 기록될 당시부터 완벽한 발명품이었다전자책의 장점도 분명하지만구동하기 위한 에너지와 기기가 필요하고 디지털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소멸된다종이책처럼 500년을 원본 그대로 남길 수는 없다.

 

다소 과격한 상상이지만 만약 단 한 권의 책만 선택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야 한다면 과연 그 책은 햄릿일까돈키호테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그때는 아마 명성과 권위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과연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인간 유형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이 더 컸을까인생의 중대한 선택 기로에서 이 두 인물은 어떤 방향을 제시했을까그리고 내가 바라는 인간상은 누구를 더 닮았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들은 두 대척적인 경향의 극단적인 표현이 불과하다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이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희극이나 온전한 비극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국내 첫 완역본이라 정성이 가득하다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포함한 다양한 도판과 같은 볼거리작품의 이해를 돕는 디타 뮐레로바의 해제와 같은 풍성한 읽을거리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더 이상 신에게만 희망을 걸지 않는다그 시대의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자신에 의지한다돈키호테와 햄릿은 르네상스의 지고한 이상들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하지만 삶의 현실적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그러한 이상들을 실제 삶 속에서 펼칠 수 없다두 사람은 이례적으로 특출한 인물이지만 자신들을 둘러싼 객관적인 환경들을 극복할 수 없다이런 상황으로 인해 두 사람은 오해받고 비정상적인 인물로 낙인찍힌 매우 비극적인 영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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