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똥 Why? 초등과학학습만화 20
허순봉 지음, 송회석 그림, 박완철 감수 / 예림당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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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조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정말 좋아해서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why?시리즈가 초등학생에게 좋은 독서 기회가 되어 주어 감사합니다. 특히 배변과 관련해 훈련도 올바른 인식도 중요한 시기인데, 과학적인 학습도 가능한 도서라, 유익하고 반갑습니다. 건승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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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 크리에이터 선바의 거침없는 현생 만담
선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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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인생노답에 할 수 있는 응원도 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잠시 숨을 돌리고 생각해보니, 전체 인생이 노답이란 얘기는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에 사는 일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실제로 한 방에 인생이 결정 나는 무시무시한 구조가 강하긴 하지만, 그 시스템을 살짝 빠져 나오면, 남들이 망했다고 으레 생각하는 상황도 나는 힘을 내서 이어갈 수 있겠다 싶다. 이번엔 망했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결기!

1부 목차에서, 철학과 1 | 철학과 2 | 철학과 3 | 철학과 4 | 철학과 5 만 봐도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진심 짠하기도 하다. 나 자신이 자연과학대를 졸업해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가족, 친지, 친구들의 반응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정신 나간, 철딱서니 없는, 곧 망할 걸로 결론 난 인간 보듯 했던!

물론 그렇다고 내 결정에 자조와 후회가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미리 걱정해 달라거나 저주해 달라거나 욕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지 않은가. 누군가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결심을 한다면, 가족과 친지와 친구로 그냥 있어 주고, 실패하면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무리 선의로 포장되었더라도 남들 얘긴 흘려들어도 괜찮다, 결국 내 인생을 가장 오래 염려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끝까지! 끈질기게!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자!’

어쨌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선바 이야기 들으면서 신나게 웃고 기운내자!


: 희희 / : 망했다. 희희망했다. 훌훌 털고 또 다른 걸 해보자. 44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져보자. 공짜니까. 하지만 조심하자. 창피는 비싸다. 56


이거 서로 윈윈이야라는 말을 하며 제안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이기고 있을 때 윈윈이란 말을 쓴다. 66


살면서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답이 없는 게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답 없는 상황보다 더 힘든 건 질문이 없는 상황이다. 답이야 찾아내면 괜찮지만 질문이 없으면 우린 나아갈 방향 자체를 잃어버린다. 129


내가 생각하는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이란 별것 아니라 그냥 딱 그것만 해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상태이다. 사실 별것 아닌 게 아니라 엄청난 것이긴 하다. 구독자가 몇 명이니 조회 수가 몇이니 그런 것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그게 성공이다. 136


그런 목적이라면 굳이 힘들게 남을 웃길 필요 없다. 그냥 잘 웃는 사람이 더 인기 많으니까. 원래 사람은 자길 알아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 물론 안 웃기는데 일부러 웃어주면 더 멕이는 것 같으니 주의.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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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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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한 말에 왜 그래?

기울어진 세상에서 평등을 찾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어떻게 이런 대단한 제목이 나올 수 있을까. 그야말로 벤젠 고리 구조 발견 못지않은 직관과 통찰을 담은 제목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가하는 차별을 겪은 경험이 없는 선계의 인간들은 이해 못할 감동이겠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가의 열패감에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드는 나로서는, 내용을 읽기도 전에 최고의 대변인이자 변호인이자 상담사를 만난 것과 맞먹는 감동적인 조우일 거라 믿어 마지않았다.

 

순전히 운이 좋아서, 거대한 차별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선량한 이들재밌자고’ ‘(지들만) 좋은 게 좋다고무분별하고 사려 없이 쏟아내는 발화들에, 뒷목 잡기부터 이불 킥까지, 혹은 상당한 분노와 짜증이 솟구치는 경우들이 부지기수이다. 더욱 곤란한 경우는, 그 행위자가 정말 좋은 사람일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경건하게 용서와 화해의 전도사로 살 수도 없는 나로서는, 일상의 분노들이 쌓여가다 도무지 그럴 일이 아닌 일에도 기어코 짜증과 화를 내고 마는...... 찌질한 인간이 되는 스스로를 지켜봐야 하는 2차 고통도 겪어야 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켜켜이 쌓아 온 그런 저런 하소연을 떠올리며, 일상화되고 교묘한 차별들의 정체를 저자가 선명하게 밝히고 확실히 부셔버리는 방법을 잘 가르쳐 주리란 기대를 하며 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억울함에 공감해줄 내 편을 얻는 대신,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결코 그럴 일 없다고 생각한 분야에서 나 자신이 차별주의자란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몇 년 전부터 얼마 전까지도 벙어리장갑이란 표현을 쓰지 말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 우아하고 상냥하게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몇 번인가 별 것 아닌 옵션들 앞에서도 매번 결정을 고민하는 나 자신을 자조하며 다그치듯 결정장애인가봐, 라고 말했다.

 

... 도대체... ... 그랬던 것일까, 공교롭게도 유사한 경험을 한 이 책의 저자처럼, 나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생각과 발화를 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살았다고? 세계인권선언과 헌법이 각 가정의 필수품으로 보급되고야 한다고 믿고, ‘equity’‘equality’를 공들여 구분하는 글을 쓰면서 평등이 확대되는 역사의 진보를 믿고, 인권영화제관련 일을 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인권관련 통/번역과 해외출장, 다큐멘터리 작업을 숫자로 환원되는 이해관계를 떠나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고, 뇌병변 장애 친척의 상황을 인지하고 가능한 도움이 되고자 애쓴 그 세월 동안, 내가 실은 장애인 차별주의자로 살아온 거라고?

 

결정장애라는 말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6

 

인생을 탈탈 털어, 비소설 부문에서, 그것도 프롤로그 도입 부분에서 이토록 결정적이고 묵직한 한 방을 날려준 책은 없었다. 저자는 유사한 그 경험 이후 연구를 충실히 진행하여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덕에 적어도 간신히 앞으로는 결정장애란 말을 남발하는 장애인 차별주의자로 살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에 관련된 사건과 논쟁을 주요하게 담았지만, ‘어떤 사람이 소수자로 위치 지어지는 이유는 - 나이, 학력, 직업, 출신 지역, 경제적 수준, 가족상황, 건강상태 등 - 무수히 많다고 경고한다(12). 나는 예상치 못하게 너무 일찍 아픈 충격과 반성의 시간을 가져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스스로에게서 또 다른 차별주의자의 모습을 얼마나 더 발견하든 놀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왜 나는 순수 무결하게 아무도 차별하지 않을 것이란 근거 없고 오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시작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위안은, ‘기쁜 우리 젊은 날에 내가 믿었던 것이 가설에 불과하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 함정과 같은 구덩이에 웃으며 걸어 들어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이 가설이 가치라곤 없는 것이라 통렬히 비판하고 버리려는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아마 평생 이 가설을 포기하지도 않고 언젠가! 반드시! 이런 유의 희망을 놓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런 유의 인간이다.

 

단지 이제야 어렴풋이 정리되고 이해되는 것 중 하나는, 오랜 유학을 떠나기 전 여러 시민운동에 동조하고 참여했는데, 주변에 온통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뿐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흔히 말하듯 젊음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많은 이들의 많은 노력들이 이어지는 한 세상이 반드시 기대대로 희망대로 아름답게 진보하리라 믿었고, 귀국 후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한, 혹은 불가시적일 만큼 느린 변화 속도를 따르는 현실 사회를 목격하고는, 뇌 속에서 울리는 정체모를 불쾌한 잡음을 꽤 오랫동안 견뎌야 했던 상황이다.

 

한 가지 예로, ‘꼭 뽑아야할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특수한 정치상황에선 꼭 떨어뜨려야할 사람을 떨어뜨리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생각해서 낙선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돌아와 맞이한 총선 유력 후보자들 이력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존속살인’, ‘방화’, ‘성범죄등이 거리낌 없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눈을 의심할 상황이었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가라는 질문에 갇혀, 누군가가 동의해줄 때까지, 스스로의 급성 악화된 정신질환을 의심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물론 그 중 정점은 전과 14범이 당당 대통령에 당선되는 장면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투표결과는 공교롭게도 늘 생일에 이루어졌다(국정농단/대통령탄핵 이후 5월 대선을 제외하고!) 그래서 2007년 생일날 새벽은 어떤 의미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내 친구들은 이 따위 세상, 이제 막 살아버릴까라는 생각에 진지하고도 깊이 침잠하였다.

 

멜빈 러너(Melvin Lerner)는 사람들이 공정세계 가설(Just-world hypothesis)을 품고 산다고 말한다.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어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믿음이 필요하다. 168

 

어쩔 수 없이, [매트릭스]의 빨간 약, 파란 약이 떠오른다. 속기 싫다면, 두렵지만 눈을 제대로 뜨고 잘 살펴봐야 한다. 어차피 유일하게 의미 있는 현실이란,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는 현실 밖에 없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인용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믿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 공정세계라면, 그런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 미리 쫄지 말자, 수퍼히어로가 아니라 모든 일은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 그러니 할 수 있다.

 

찌질하고 이율배반적인 자신에게 실망하기보다 이건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미처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가 충분한 변명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벙어리장갑은 알아차리고 결정장애는 못 알아차린 그 이상하고도 낯선 스스로의 사고의 균열이 아마 이후로도 오랫동안 의아할 테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 우리 모두는 서로의 삶의 방식과 장소와 시간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차별을 주고받으며 사는, ‘모두가’ ‘어느 지점에서다양하고 중첩되는차별주의자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서로 간에 신뢰가 있다면, 그리고 모욕을 가하거나 비난을 할 의도가 없다면, 좀 더 먼저 보이는사람이 말해주면 되는 일일 것이다.

 

기성세대가 되고 말았다란 낭패감도 있지만, 이만큼 살아보니 이제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가끔 우쭐했는데, 오늘부터 1일이 시작되어 앞으로 평생을 애쓰고 노력하며 살아야할 정체성이 생겼다. 나는 언제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마에 새긴 주홍낙인보다 더 선명한 이 진실과 더불어 살려면, 앞으로는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더 예민하게 해야 한다.

 

누구도 차별을 받지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수백 가지의 해법이 있겠지만, 차별금지법은 그중 하나로 우리가 서로 차별을 하지않게 만들자는 즉각적인 해법이다. 이 해법은 나도 차별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포함한다. 195

 

수많은 빼곡한 하나같이 명철한 내용들을 일일이 언급하는 것을 생략하고, 2007년 법무부가 제정을 시도했으나, 아직 제정되지 못한 <차별금지법>의 법안들이 반드시 법률로서 구체화되기를 끝까지 함께 응원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또한 이 책이 대학 이외의 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쓰이거나, 추천도서로 권장되기를 기원하고자 한다.

 

214에서 243에 이르기까지, 30쪽을 주석과 참고문헌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2019년 여름에 출간되었지만, 이 책은 여름이 간다고 다 읽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저자의 의지와 선한 의도와 집필의 수고와 미래에의 희망을 더 많은 독자들이 더 깊이 깨닫고 더 널리 알려주기를 바란다.

 

비로소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가 우리 시대에 실천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 된다면, 소수자들만도 아니고 특정 집단들만도 아닌 모두가 더 살기 편한 사회를 앞당기는 일에 큰 도움이 될 통찰과 이념이 담긴 귀중한 저서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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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예쁨상을 드립니다
한승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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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은 때론...... ‘그냥도 할 수 있는 말을 만지작거려 반짝반짝 별처럼 만들어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시들이 있다. 반짝거린다고 다 기쁨의 노래는 아닐 것이다. 세상의 무수한 사랑/연애가 그러하듯이.

 

연애에 관한 한 체력도 홀몬도 바닥인 내게 지인이 소개해준 무려 연애시집이라고 적인 이 새빨간 시집을 받은 지가 꽤 지났다. 시집은 추리소설처럼 그 내용이 궁금해서 서둘러 덥석 펼쳐보게 되는 것과는 좀 다른 결심(?!)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읽고 싶은가, 읽어야 하는가, 충분한 시공간이 비워져 있는가 등등...... 어쨌든 나는 그렇다. 괜스레 무더위 탓을 하면서 그 타이밍을 못 찾아 펼쳐 보는 일을 하루하루 미뤘다.

 

그러다 7월이 가기 전 뭐라도 읽어 보자란 조바심에, 저자가 자신을 가수 신승훈의 열혈팬이라 소개한 내용이 생각나 [신승훈 4, 그후로 오랫동안(1994)]을 플레이하고 시집을 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MAnD34qLIQ

 

감사하게도 시집이란 읽는 순서가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백 편이 넘을 듯 한 시집 제목을 훑다가 모르는 단어로 된(그래서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그래서 흥미로운) 제목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감또개

 

화가는 날렵한 붓으로 얄궂은 춘풍을 일으켰다

탯줄을 부여잡은 어린 감

본능도 품어 주지 못한 중력 법칙은

순사가 휘두르던 검마냥 날카로워

생이별을 자행했다

 

화가는 소도록한 감또개 주검에

미색의 감꽃으로 습과 염을 한다

갈라진 붓끝으로 촘촘히 수의를 입힌다

떨어져 나간 새끼가 안쓰러운 감나무는

숨죽인 채 가지를 흔들며 조사를 읊는다

떨어진 감꽃들이 상여를 메자

화가는 흔들리는 가지에 못을 박듯

붓으로 피눈물을 찍어 댄다

 

감또개는 그렇게 세월 속에 묻혔다

화가는 절규를 폭발하여 삭풍을 일으켰다

악착스런 모성이 부여잡은 까치밥도

서리가 내린 새벽이 오자 자취를 감췄다

 

화가도 어느 순간

앙상한 가지만 뻗어 있는 감나무를

이젤에 남겨 놓은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아름다운 청춘의 꽃 한번 피워 보지 못한 채

위안부란 이름으로 환한 낮에 별이 되어 버린 소녀처럼

 

삼월의 첫날

언젠가 욱일기에 고개 들지 못하고

숨죽이며 펄럭이던 태극기들이

오늘 아파트 베란다에서 구슬픈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감또개의 뜻 : 꽃과 함께 떨어진 어린 감

 

뜻밖의 시와 만났다. 어찌 보면 더할 수 없이 시의적절하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가끔 지금이 준전시 상태는 아닌지, 이렇게 태연하게 아무 이도 없는 듯 사는 게 맞는지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다. 이념보다 강력한 것이 경제라, 다국적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그 복잡한 사정이 응집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일은 가능성 제로라는 위안적 판단도 들지만, 인류의 역사가 언제 총체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지한 적이 있었나 싶어 두렵기도 하다. ‘감또개란 단어가 궁금했을 뿐인데, ‘연애시집의 첫 시를 읽고 전쟁이야기로 흘렀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백편이 넘는 다른 시들이 있다. 하나씩 넘기다 보면, 내가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누구였는지를 떠오르게도 하고, 지금 나에게 남은, 자리 잡은 혹은 새롭게 인식된 사랑이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한 때는 예쁨상이란 상은 매일 받았을 법한 과거의 연인들도 현재의 홀로인들도, 어깨가 지나치게 무섭고 일상이 너무 오래 씁쓸한 날에 어쩌다 입에 대지 않던 달다구리에 손을 뻗치듯 그렇게 두고두고 읽어보는 친구로 삼으면 좋겠다. 그럴 때 이 시집에서 체리향이 풍기는 사탕 같은 한 편을 발견하거나 토페 향이 진한 초콜릿 같은 한편을 발견하면 오래도록 건조한 입 안에서 천천히 녹여 먹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https://blog.naver.com/kml0516/221573298672

에필로그 암호를 푼 대단한 독자분 글을 링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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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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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혹시 늦게 꽃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색하고 애잔한 소망


이 문장에 사로 잡혔다.

어릴 적 상 몇 번 받고 표현력 좀 있었다는 사람치고 비밀스럽게 자신이 예술과 학문의 분야에서 언젠가 빛나는 성공을 거두리란 상상 안해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대가가 된 이들은 또 몇이나 있을까.

근거 없이 문소영 작가에게 혼자만의 친밀감을 한껏 느끼고 그가 들려 주는 글과 소개해주는 작품들을 열독하였다. 그런데 문소영 작가는 나의 비밀스럽게 좌절된 꿈과 열망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꿈이 큰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뭔가를 이루는게 궁극의 목적이 아니라,


극소수보다는 좀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생각을 전환시키고,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을 꿈꾸던 그리고 아마도 백세까지 꿈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꿈만 꾸는 사람도 아니고 많은 분야의 많은 이들과의 만남과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글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모든 것들로 꽉 채워 세상에 내어 놓는 그야말로 벅차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제공하는 훌륭한 강연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이론의 어느 부위를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화자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 예를 들면, <페미니즘과 모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라면 2018년 개인전에서 만난 윤석남 작가의 말,


모성은 타인을, 특히 약자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희생만을 강요하고 좁은 가정의 틀에 갇히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겁니다.

를 통해 묵직한 한 방의 기분좋은 충격을 머리와 가슴에 남겨 주는 식이었다.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길 여성 혼자 걷기>와 같은 직접 경험을 통한 섬세한 정서적 문제제기 또한 여성 독자인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감과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기에 넉넉했다.


더욱더 감동스러운 점은 문제제기와 사례 나열에 그치지 않고 마치 막 타오릭 시작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한 <~해야 한다>라는 문장들 또한 내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그저 입을 다무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 혼자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非)유럽계 인종들이 인종차별 받지 않고 돌아다닐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나는 내 불편함을 말해야 한다. 비록 그 변화가 산을 숟가락으로 떠서 옮기는 일 같더라도……

참으로 강단 있고도 온건하고도 아름다운 발언이다.


그 외에도 공장식축산업과 윤리, 기후문제의 상관성, 마치 괴테의 'Light theory'를 연상시키는 색채와 빛의 예술에 대한 설명, '나대지말라'는 한국식교육의 아픈 일화 등, 이런 에피소드들이 하나하나 모두 문소영 작가가 함께 실어 준 그림들을 제대로 감상하고 나아가 색채예술과 회화와 학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인식에 배울거리를 제공한다.

굳이 고루한 논쟁인, 순수예술이냐 참여예술이냐의 구분과 논쟁을 떠올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어쩌면 처음부터 분리될 수 없었던, 예술과 그 창작 터전인 사회에 대한 문제인식과 문제제기와 노력하는 이들의 활동과 작가가 지지하는 대안 예시 등이 묘하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잘 이루면서 이야기를 한 시도 지루할 틈 없이 이어 나간다.


우리는 세상이 참 똥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 참다운 대책도 있으니까. 이 똥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똥 같은 세상을 그나마 낫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를 비난하며 ‘나는 더 조심해야지.’라고 다짐하는 게 아니다. 가해자가 부당한 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인식을 교육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물론 나쁘다, 하지만……’에서 제발 ‘하지만’ 뒤부터는 말하지 마세요.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함께 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 내가 언젠가 열심히 말했지만 그다지 들어주는 이들이 많지 않아 좌절했던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가 또 해주는 것, 그건 우연히 마주친 행운보다 더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문소영 작가가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 좋아해주길, 그래서 이토록이나 기분좋게 산뜻하고 발랄하지만 단호하고 통쾌한 발언들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응원하고자 한다. 다행히 블로그와 출간된 책들이 있으니 여름에 녹아 내릴 듯한 무거운 어깨가 조금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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