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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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깜짝 놀랐지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적지 않은 현실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좌절과 포기는 마지막에 하면 되니, 하루라도 빨리 공감대가 커지고 유의미한 전 지구적 행동이 이어져야겠지요. 두렵기도 하지만 정확히 알기 위해서,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누구라도 함께 많이 읽게 되길 바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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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기록상 가장 온난한 해였던 것으로 판명 났을 뿐 아니라 모든 예측치의 신뢰 구간에서도 상당히 엇나갔다. (...) 2023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20235, a)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424ppm(정점을 찍었다. 지난 80만년을 통틀어 최고 수치. 이산화탄소는 곧 열이다. , 앞으로 기후는 계속 뜨거워진다.) b)엘니뇨 발생 c) 점점 따뜻해지는 바다.

 

2023년은 위험한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경계가 허물어진 순간이었다(제임스 핸슨James Hansen). 우리는 1.5도의 한계를 더 이상 지켜낼 수 없다. 애초에 소수를 제외하면 지킬 의지도 없었던 듯하다. 혹은 다들 이미 열기에 미쳐서 이렇게 반드시 죽을 방식으로만 살고 있던가.

 

특정 지역과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활용도가 높아지고,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고, 전기 열펌프 시장이 급성장하면 기후변화를 조절할 수 있을까. 다른 쪽에서 탄소를 펑펑 배출하는 전쟁을 계속하고, 80억 인구는 욕망과 소비 어느 쪽도 그만둘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고, 화석연료는 계속 생산하고 소비 중이다.

 

화석연료가 단계적으로 퇴출되기 전까지 이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위험하고 비싸고 불안정한 곳이 될 겁니다. (...) 앞으로 수백만 명 이상이 기후변화의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그중 상당수가 죽을 것입니다.”

 

더위, 가뭄, 전쟁으로 이미 죽어가는 이들의 수는 계산할 때마다 기록을 갱신하다. 이미 빙하는 거의 다 녹았고 부서지고 있는 중이며, 염도가 낮아진 해류가 흐름을 멈추면 어떤 대재앙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전에 전지구적 감염병은 어떻게 얼마나 창궐할지 조마조마하다.

유일한 희망이자 해법은 하나뿐이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떻게든 (이산화탄소를) 쏟아내지 않으려는 노력, 기후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정치인에게 던지는 한 표.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의.

 

내가 탄 배에 물이 차오르는데 선장한테 무슨 일이냐고 묻고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당장 양동이를 집어 들고 물을 퍼내야지요.”

 

진화의 속도를 벗어난, 폭염에 최적화된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멸종한다. 체온이 40도만 되어도 인간은 죽는다. 지구 전체 기후가 2도 상승이란 것은, 내가 아는 계절별 온도에서 2도 올라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열돔heat dome이 형성되었다.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포틀랜드 시내의 기온은 24.4도에서 45.5도까지 치솟아 147년의 관측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과학자들이 말하는 앞으로의 더위는, 철로를 휘게 한다거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아챌 새도 없이 나를 죽일 수도 있는 그런 힘이다.” 확실한 사실은, 이 더위가 화석연료를 태운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인류 문명의 유산이다.

 

1초에 핵폭탄 3개가 터져 방출되는 열의 양을 지금 해양이 흡수 중이다. 해양의 흡수력은 어떤 상태일까. 한번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수천 년 머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위로 아비규환이 되는 지구에 머물며 최대한 추가 배출을 막는 것뿐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단순한 운명을 함께한다. “익숙해져 있던 온도**가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오르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 골디락스 존 혹은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 혹은 생명 가능 지대, Habitable Zone / HZ






 

유럽에 극우세력이 급부상하고, 미국 대선도 암담하고, 산유국의 미몽을 꾸는 한국정부에 희망을 품긴 어렵지만, 기후소송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보면 뭐라도 계속하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더 단단해집니다.

 

함께 읽고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을 책입니다. 현실은 두렵고 만만치 않지만, 배운 걸 티내며 행동하면 바뀝니다. 인간의 역사는 오직 그렇게만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 가능성에 의지하며, ‘행동이 많아지고 희생이 덜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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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부사 - 일본 우주 강국의 비밀
쓰다 유이치 지음, 서영찬 옮김 / 동아시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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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부사관련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시료 샘플에서 아미노산이 다종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아미노산...이라니...! 순간적으로 우주가 여러 생명체로 가득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뿐인가... 이런 질문은 근원적인 쓸쓸함을 품은 채로, 계속 반복되는 것들이다. 어쩌면... 지구 밖에서 유입된 아미노산이, 지구 대기와 햇빛에 노출된 채로, 현재의 지구 생명체를 만들었다면, 우주 여기저기에도 그런 과정이 있었을 것만 같다.

 

“2019222일 오전 72910(일본 시간), 하야부사2는 소행성 류구에 사뿐히 닿았다. (...) 별의 부스러기라는 포획물을 꽉 움켜쥔 후 드넓은 우주도 다시 날아올랐다.”

 

10년 동안 세계 과학자와 일본 기술자들이 함께 한 프로젝트가 여정을 떠났다. 관객이자 지구인으로서 결과가 궁금하지만, 그 여정에 도달하기까지의 시행착로, 고군분투에 대해서는 공개된 정보를 얻을 거란 생각을 못했다.

 

이 책은 즐겨 읽은(아직 미완) <우주형제>를 종종 떠올리게 하는 계획과 도전과 좌절로 가득하다. 단 열매만 먹고 싶었던 나는 덕분에 왁자하고 생생한 기술 개발과 적용 과정을 가상 체험하듯 상상하며 그 시간을 문장 속으로 걸어보았다. 무엇보다 왕복 비행하는 탐사선 무게가 500kg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충격적으로 놀랍다.

 

“JAXA는 우주개발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이다. 하나의 개발이 끝나면 다음 개발을 위해 체제가 바뀐다. (...) 당시 나는 39살이었다. JAXA 통틀어 그 나이네 프로젝트 매니저가 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내가 희생양이 된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세계 최초란 수식어가 붙으면 관심이 잠시 집중되지만, 각광 이후에 고민해야할 것은, 우주탐사의 목적, 의도, 영향력, 사회적 책무일 것이다. 어쩌면 현재 대부분의 인류는 상상하기 힘든 미래에 생존을 위한 필수 기술이 어떻게 파생되어 생겨날 지도 모를 일이다.

 

관심이 큰 독자라면, 비행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 선체 설계, 핵심 기술, 괴짜(?) 기술, 팀 구성 등, 하야부사2 계획의 상세 포인트를 짚어주는 이 책을 크게 반길 것이다. 류구의 중력장 계산을 하는 내용을 읽으며, 중력 이론으로 학위를 받은 친구 생각이 났다. 논문이 최종 통과되고 나서 반려견에게 공을 던져주다가, “그런데, 이 공 왜 떨어지는 거지?” 자문했다던.

 

우리 목표는 최고 품질의 탐사선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미션을 달성하는 거라구.”

 

투자비용이 클수록, 참여한 이들이 많을수록 실패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무수한 실패가 당연한 과학실험은 그래서 쓰디쓰다. 실패로만 성공을 향한 데이터를 찾을 수 있고, 한걸음씩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고단하다. 그 과정을 견디는 사람은 프로젝트와 함께 성장한다.

 

나는 그걸 견딜 수 없어 전공과 거의 무관한 삶을 택했지만, 3억 킬로미터 떨어진 미지의 천체에 오차 1미터로 착륙한 우주실험을 이 책을 통해 만나서, 오래 전 어느 날처럼 실컷 상상하고 한참 즐거웠다.

 

어릴 적엔 아무 것도 모르면서 과학자가 되고 우주인이 되어 사는 삶이 흥미진진해보였다. 구체적 이미지는 바뀔 지라도, 나는 여전히 어린이들이 설레고 가슴 뛰는 미래상을 가져보는 순간들이 많기를 바란다. 그 어린이들을 든든하게 도울 어른들이 많기를 바란다. 미래에 희망이 있기를, 즐거운 기분으로 어른이 되기를 고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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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를 바꾼다는 것 - 트랜스젠더 모델 먼로 버그도프의 목소리
먼로 버그도프 지음, 송섬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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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의 열기는 - 태생과 의도는 알지만 - 참 무의미한 낭비로 보인다. 며칠 전 <2024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도 예외 없이 혐오 세력들이 보였다. 일 년에 하루 자신을 가시화해보는 이들의 시간도 참아줄 수 없다는 오만과 폭력. 게으른 나는 그저 응원하는 것만으로 앨라이ally*가 되었다.

 

*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차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 차별을 반대한다는 뜻에서 서로에 대한 연대를 표현하는 단어.

다른 해보다 축제 분위기가 더 나고, 날씨도 좋고, 하늘은 믿을 수 업세 아름다워서였을까. 불편함과 속상함보다 즐거움이 컸다. 그 감각과 함께 이 책도 반갑게 펼쳤다. 필사를 다섯 장이나 하고 지쳐 잠들었다. 좀 안다고 생각한 모든 것도 늘 새롭게 배울 내용이 많다는 점을 거듭 절감하면서.

 

트랜지션, 곧 전환은 오로지 트랜스젠더만 겪는 것이 아니다. 트랜지션은 보편적이다.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다.”**

 

** trans- : 다른 장소·상태로 변화·이전함을 나타냄(so as to change in form or position)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동안 생명체는 늘 변화하고, 아무리 굳은 신념조차도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변화하고 변천하고 전환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명체의 성장과정일 뿐인 것이다. ‘트랜스젠더라는 강렬한 명명이 그 이외의 다른 모든 존재의 트랜지션을 가려버린 듯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 그 시절의 내가 진짜 나를 찾아나서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우리 모두는 트랜지션이 필요하다. 일단 태어나면 비자발적 정체성을 부여 받기 때문이다.*** 문명만큼 오래되고 촘촘한 규범성과 사회적 동화를 요구받으며, “아예 의문을 품지 못할 정도가 되거나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망이 되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트랜지션은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는 것이 된다.

 

***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에 더해 종교나 정치 같은 부모나 양육자들의 특정한 요구. 우리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타인의 추측, 즉 부모, 가족, 공동체의 기대로 이루어지는 정체성.

 

현실을 핑계 삼기에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권력을 지닌 이들의 눈에 비친 정상성과 동의어인 현실주의만이 존재한다. 대체로 권력은 시스젠더, 백인, 가부장, 이성애, 자본가들이 가진다. 흑인, 퀴어,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당하기도도 하고, ‘나쁜 것이라는 믿음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내가 불행했던 건 (...) 타인이 그려놓은 상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 애썼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말이 곧 내게 찾아온 우울의 뿌리였다.”

 

그래서 트랜지션은 생식기에 따라 결정되어 국가에 등록, 정부가 검열한 정체성을 넘어서는 우리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며, 성장 서사이자 자기 발견이며,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현실과 진실을 애써 찾아나서는 것이며, 도망치기를 그만 두고 나 자신을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은 집으로 만드는 일이다.

 

나 자신을 위한 작업이란 곧 내 존재를 맥락 속에 놓는 것, 내 조상들 - 퀴어 조상, 흑인 조상, 트랜스젠더 조상 - 을 이해하는 것,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며 내가 이 사회를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더 건강한 선택을 하는 것, 내가 삶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성장과 사랑이 가능한 장소에서 내 삶을 이끌어가기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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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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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홀리는 건 지양해보려 하지만, 겨울 눈 소복한 표지, 외양에 반하고 만다. 에도 시대 복수극 미스터리를 만난다. 대책 없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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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수 없는 사정이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그렇게 정하는 것입니다. 길을 벗어나도 의외로 다부지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지요.”

 

에도 시대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두려움은 얼마 읽지 않아 사라졌다. 그래봐야 빈약한 내 상상이 그려내는 풍경이겠지만, 조곤조곤한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오는 듯 곧 몰입이 되었다.

 

다행이란 생각에, 추리와 미스터리 장르물이 제공할 즐거움을 성마르게 기대하며 계속 읽는데, 차츰 호흡도 기분도 차분해진다.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터뷰 형식으로 펼쳐진다.

 

2024년에 한국사회에 사는 내가 사적복수에 대해 품은 생각과 달리, 에도 시대 작품 속 허락받은관습인 복수에 대해 새롭게 배운다. 부모 형제가 살해당했을 때, 복수 행위자가 무사라면, 관청에서 사전 허가를 받고 복수 후 보고하는 방식이다. 더 놀라운 것은, 번복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맹세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지. , 원수를 죽이지 못하면 무사 신분을 버리겠다는 뜻이 담긴, 자신의 인생을 건 맹세요.”

 

길지 않은 인간의 수명, 에도 시대라면 더 짧았을 시간, 서로 죽이고 죽고, 복수하고. 씁쓸하고 익숙한 인류의 생활 방식이다. 그보다 더 쓸쓸하고 애잔한 것은 평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풍경이지만.

 

고맙구나. 네 세상은 평평해서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

 

어느새 추리와 미스터리를 풀어보자 싶던 기분은 사라지고, 상처 많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게 된다. 어느 곳 어느 시대나 다정한 사람들은 없지 않고, 어둡고 묵직한 삶을 밝게 혹은 희미하게라고 비추는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주변을 밝게 비추는 아카히메는 될 수 없어. 하지만 아카히메를 희미하게 비추는 반딧불이(반딧불이는 일본어로 호타루다)는 될 수 있지. 그것을 네가 가르쳐 준 것 같구나.”

 

그렇게 본래의 목적(?)을 잊고 읽다보니, 사건의 자초지종은 중반에 다 나왔고, 살짝 어리둥절해지려는 차에, 영민하게 이야기를 잊는 대사가 나온다. 극장마을과 배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라서 일까, 읽는다는 참여 행위가 무대를 바라보면 대사를 듣는 관람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댁은 복수의 진위보다 그 시절의 기쿠노스케 씨에 대해 알고 싶은 것 같은데요?”

 

복선을 여기저기 감추고 독자와 재밌는 게임을 이어가다가, 긴장감을 한 번에 터트리고, 모든 단서를 수확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러니 후감은 아주 다르다. 섭섭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다만 다정이 깊을수록 슬픔이 진하다. 울고 싶지만 단발의 울음이 어울리지 않는... 고단한 삶 같기도 한 작품이다.

 

, 몇 명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걸요. 훌륭한 복수였다. 그것이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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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로 사계를 노래하다
박경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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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한자 몇 개만 겨우 알고, 한문을 적지도 못하니, 한시를 좋아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처럼 들린다. 더 정확하게는 옛 시조를 좋아했다. 어떤 공부를 얼마나 하면 즉석에서(?) 시를 짓고 운율을 맞추어 서로 주고받으며 놀 수 있는지. 그 교양 수준이 부러웠다.

 

십년도 더 전에, 쉬려고 일 년 휴직했는데, 어떻게 그냥 쉬는 건지 몰라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가 한자능력시험까지 보게 되었다. 형성과 의미를 배우는 건 아주 재미있었다. 자격증은 생겼는데 여전히 아는 바는 너무 적었다. 그나마 활용을 안 하니 거의 다 잊은 지가 오래다.

 

한자로 적힌 시들을 보니 단정하고 반듯한 생김새가 좋다. 한 글자 한 글자 다 배우고 외워야해서 중국어 공부하는 이들은 울고불고 어려워하지만, 한 문자에 의미를 담는 방식의 문자는 여전히 흥미롭다. 저자가 사계를 담아주어서 더 좋은 시들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라 읽기에 맞춤이다.



 

지난해 봄이 어제 같은데 또 봄이 왔구나

매해 이렇게 느끼는 듯하다.

 

인부들이 나뭇가지를 베어 나무 같지가 않다

가지치기라는 이름의 학대와 폭력, 쳐다볼 수도 없는 끔찍한 장면이다. 살아있는 존재의 몸을 마구 잘라낸 잔혹함에 구토와 어지럼증을 느낀다.

 

봄은 왔는데 헷갈리나 문득 머뭇거리며 망설이네

봄 날씨는 꽤 변덕스럽지만, 기후가 변하고 있어서 더 헷갈리는 올 해 봄이었다. 인간은 살아남을 것 같은데, 곤충들은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헷갈리던 산수유 생강나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운지 얼마 안 되었다. 그래도 이젠 헷갈리지는 않는다.

 

끝 봄인 오월 깊은 밤에 나오니

오월 봄밤에 자꾸 밖에 나가고 싶었다. 이런 완벽하게 불편하지 않은 날이 며칠이나 될까... 해서.

 

보름달은 교정을 내려다보며 한없이 달빛을 뿌려 주네

올 해는 다섯 달 동안 보름달을 두 번이나 보았다. 나쁘지 않은 상반기다.

 

자정 무렵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더디게 가던 7월도 어느새 다했네

6월에도 7월에도 보름달을 봐야지. 기억력인지 시간인지... 한 달씩 사라지는 것 같아...

 

세월아 천천히 천천히 가려무나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하루가 너무 길어서, 지루하고 심심해서 뭐하지 싶은 그런 느낌...



 

새벽 창을 여니 큰 보름달이 쉬고 있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벗을 삼아 친하고자 하네

가을밤 보름달도 꼭 봐야지...

 

이렇게 저렇게 하루씩 살다보면, 어느새 올해도 다 저물어 가겠지. 겨울까지 시로 미리 살아보니, 충격을 대비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한 것도 같다. 한번뿐인 모든 것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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