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사계를 노래하다
박경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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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한자 몇 개만 겨우 알고, 한문을 적지도 못하니, 한시를 좋아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처럼 들린다. 더 정확하게는 옛 시조를 좋아했다. 어떤 공부를 얼마나 하면 즉석에서(?) 시를 짓고 운율을 맞추어 서로 주고받으며 놀 수 있는지. 그 교양 수준이 부러웠다.

 

십년도 더 전에, 쉬려고 일 년 휴직했는데, 어떻게 그냥 쉬는 건지 몰라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가 한자능력시험까지 보게 되었다. 형성과 의미를 배우는 건 아주 재미있었다. 자격증은 생겼는데 여전히 아는 바는 너무 적었다. 그나마 활용을 안 하니 거의 다 잊은 지가 오래다.

 

한자로 적힌 시들을 보니 단정하고 반듯한 생김새가 좋다. 한 글자 한 글자 다 배우고 외워야해서 중국어 공부하는 이들은 울고불고 어려워하지만, 한 문자에 의미를 담는 방식의 문자는 여전히 흥미롭다. 저자가 사계를 담아주어서 더 좋은 시들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라 읽기에 맞춤이다.



 

지난해 봄이 어제 같은데 또 봄이 왔구나

매해 이렇게 느끼는 듯하다.

 

인부들이 나뭇가지를 베어 나무 같지가 않다

가지치기라는 이름의 학대와 폭력, 쳐다볼 수도 없는 끔찍한 장면이다. 살아있는 존재의 몸을 마구 잘라낸 잔혹함에 구토와 어지럼증을 느낀다.

 

봄은 왔는데 헷갈리나 문득 머뭇거리며 망설이네

봄 날씨는 꽤 변덕스럽지만, 기후가 변하고 있어서 더 헷갈리는 올 해 봄이었다. 인간은 살아남을 것 같은데, 곤충들은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헷갈리던 산수유 생강나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운지 얼마 안 되었다. 그래도 이젠 헷갈리지는 않는다.

 

끝 봄인 오월 깊은 밤에 나오니

오월 봄밤에 자꾸 밖에 나가고 싶었다. 이런 완벽하게 불편하지 않은 날이 며칠이나 될까... 해서.

 

보름달은 교정을 내려다보며 한없이 달빛을 뿌려 주네

올 해는 다섯 달 동안 보름달을 두 번이나 보았다. 나쁘지 않은 상반기다.

 

자정 무렵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더디게 가던 7월도 어느새 다했네

6월에도 7월에도 보름달을 봐야지. 기억력인지 시간인지... 한 달씩 사라지는 것 같아...

 

세월아 천천히 천천히 가려무나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하루가 너무 길어서, 지루하고 심심해서 뭐하지 싶은 그런 느낌...



 

새벽 창을 여니 큰 보름달이 쉬고 있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벗을 삼아 친하고자 하네

가을밤 보름달도 꼭 봐야지...

 

이렇게 저렇게 하루씩 살다보면, 어느새 올해도 다 저물어 가겠지. 겨울까지 시로 미리 살아보니, 충격을 대비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한 것도 같다. 한번뿐인 모든 것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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