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를 바꾼다는 것 - 트랜스젠더 모델 먼로 버그도프의 목소리
먼로 버그도프 지음, 송섬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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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의 열기는 - 태생과 의도는 알지만 - 참 무의미한 낭비로 보인다. 며칠 전 <2024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도 예외 없이 혐오 세력들이 보였다. 일 년에 하루 자신을 가시화해보는 이들의 시간도 참아줄 수 없다는 오만과 폭력. 게으른 나는 그저 응원하는 것만으로 앨라이ally*가 되었다.

 

*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차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 차별을 반대한다는 뜻에서 서로에 대한 연대를 표현하는 단어.

다른 해보다 축제 분위기가 더 나고, 날씨도 좋고, 하늘은 믿을 수 업세 아름다워서였을까. 불편함과 속상함보다 즐거움이 컸다. 그 감각과 함께 이 책도 반갑게 펼쳤다. 필사를 다섯 장이나 하고 지쳐 잠들었다. 좀 안다고 생각한 모든 것도 늘 새롭게 배울 내용이 많다는 점을 거듭 절감하면서.

 

트랜지션, 곧 전환은 오로지 트랜스젠더만 겪는 것이 아니다. 트랜지션은 보편적이다.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다.”**

 

** trans- : 다른 장소·상태로 변화·이전함을 나타냄(so as to change in form or position)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동안 생명체는 늘 변화하고, 아무리 굳은 신념조차도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변화하고 변천하고 전환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명체의 성장과정일 뿐인 것이다. ‘트랜스젠더라는 강렬한 명명이 그 이외의 다른 모든 존재의 트랜지션을 가려버린 듯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 그 시절의 내가 진짜 나를 찾아나서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우리 모두는 트랜지션이 필요하다. 일단 태어나면 비자발적 정체성을 부여 받기 때문이다.*** 문명만큼 오래되고 촘촘한 규범성과 사회적 동화를 요구받으며, “아예 의문을 품지 못할 정도가 되거나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망이 되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트랜지션은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는 것이 된다.

 

***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에 더해 종교나 정치 같은 부모나 양육자들의 특정한 요구. 우리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타인의 추측, 즉 부모, 가족, 공동체의 기대로 이루어지는 정체성.

 

현실을 핑계 삼기에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권력을 지닌 이들의 눈에 비친 정상성과 동의어인 현실주의만이 존재한다. 대체로 권력은 시스젠더, 백인, 가부장, 이성애, 자본가들이 가진다. 흑인, 퀴어,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당하기도도 하고, ‘나쁜 것이라는 믿음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내가 불행했던 건 (...) 타인이 그려놓은 상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 애썼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말이 곧 내게 찾아온 우울의 뿌리였다.”

 

그래서 트랜지션은 생식기에 따라 결정되어 국가에 등록, 정부가 검열한 정체성을 넘어서는 우리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며, 성장 서사이자 자기 발견이며,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현실과 진실을 애써 찾아나서는 것이며, 도망치기를 그만 두고 나 자신을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은 집으로 만드는 일이다.

 

나 자신을 위한 작업이란 곧 내 존재를 맥락 속에 놓는 것, 내 조상들 - 퀴어 조상, 흑인 조상, 트랜스젠더 조상 - 을 이해하는 것,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며 내가 이 사회를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더 건강한 선택을 하는 것, 내가 삶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성장과 사랑이 가능한 장소에서 내 삶을 이끌어가기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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