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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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홀리는 건 지양해보려 하지만, 겨울 눈 소복한 표지, 외양에 반하고 만다. 에도 시대 복수극 미스터리를 만난다. 대책 없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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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수 없는 사정이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그렇게 정하는 것입니다. 길을 벗어나도 의외로 다부지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지요.”

 

에도 시대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두려움은 얼마 읽지 않아 사라졌다. 그래봐야 빈약한 내 상상이 그려내는 풍경이겠지만, 조곤조곤한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오는 듯 곧 몰입이 되었다.

 

다행이란 생각에, 추리와 미스터리 장르물이 제공할 즐거움을 성마르게 기대하며 계속 읽는데, 차츰 호흡도 기분도 차분해진다.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터뷰 형식으로 펼쳐진다.

 

2024년에 한국사회에 사는 내가 사적복수에 대해 품은 생각과 달리, 에도 시대 작품 속 허락받은관습인 복수에 대해 새롭게 배운다. 부모 형제가 살해당했을 때, 복수 행위자가 무사라면, 관청에서 사전 허가를 받고 복수 후 보고하는 방식이다. 더 놀라운 것은, 번복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맹세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지. , 원수를 죽이지 못하면 무사 신분을 버리겠다는 뜻이 담긴, 자신의 인생을 건 맹세요.”

 

길지 않은 인간의 수명, 에도 시대라면 더 짧았을 시간, 서로 죽이고 죽고, 복수하고. 씁쓸하고 익숙한 인류의 생활 방식이다. 그보다 더 쓸쓸하고 애잔한 것은 평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풍경이지만.

 

고맙구나. 네 세상은 평평해서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

 

어느새 추리와 미스터리를 풀어보자 싶던 기분은 사라지고, 상처 많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게 된다. 어느 곳 어느 시대나 다정한 사람들은 없지 않고, 어둡고 묵직한 삶을 밝게 혹은 희미하게라고 비추는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주변을 밝게 비추는 아카히메는 될 수 없어. 하지만 아카히메를 희미하게 비추는 반딧불이(반딧불이는 일본어로 호타루다)는 될 수 있지. 그것을 네가 가르쳐 준 것 같구나.”

 

그렇게 본래의 목적(?)을 잊고 읽다보니, 사건의 자초지종은 중반에 다 나왔고, 살짝 어리둥절해지려는 차에, 영민하게 이야기를 잊는 대사가 나온다. 극장마을과 배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라서 일까, 읽는다는 참여 행위가 무대를 바라보면 대사를 듣는 관람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댁은 복수의 진위보다 그 시절의 기쿠노스케 씨에 대해 알고 싶은 것 같은데요?”

 

복선을 여기저기 감추고 독자와 재밌는 게임을 이어가다가, 긴장감을 한 번에 터트리고, 모든 단서를 수확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러니 후감은 아주 다르다. 섭섭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다만 다정이 깊을수록 슬픔이 진하다. 울고 싶지만 단발의 울음이 어울리지 않는... 고단한 삶 같기도 한 작품이다.

 

, 몇 명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걸요. 훌륭한 복수였다. 그것이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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