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꿈꾸며
강정란 지음 / 좋은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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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꿈도 어렵고 먼 일이라, 서글프고 아픈 기분으로 읽게 될 시들이 많을까 살짝 두려웠다. 표지가 향긋한 느낌의 작은 시집이라 예기불안을 휙 버리고 펼쳐보았다. 단정하고 담담한 시감詩感이 이어졌다.

 

짐작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시어들로 가만가만 일상의 고통, 괴로움, 아쉬움, 회환, 어쩔 수 없는 아픔들을 다독여준다. 괜찮다 힘을 내라, 이런 직설적인 표현들이 없는 것이 시만이 줄 수 있는 위로다.

 

괜찮지 않아도, 힘이 나지 않아도, 아물면 또 사는 거고, 뭐라도 삼킨 힘으로 또 사는 거고, 그러다 드물게 웃을 일도, 잠시 온갖 고단을 잊을 순간도 생기는 것이고. 어쩌면 시인의 바람처럼 사랑과 꿈으로 풍성한 풍경을 삶에 그려 넣어 볼 날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안간힘이 살아 있음의 희망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살다보면 어쩌다 아픈 게 아니라, 사는 일이 아프다는 것을, 누구도 상처도 헤집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어릴 적 좋아한 방패연이 등장한 시, [방패연]에서처럼, ‘마음이 산란해져연을 들고찾을 언덕이 내겐 없어, 비가 차다.

 

끊어지지 않는 실을 단 연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비 오는 날, [비가 와서]란 제목은 반갑다. 비가 와서 조금은 고요하다. 이 비가 그치면 서늘한 가을을 만날 것 같다. 덜 불안하고 덜 슬퍼질까. 그런 건 계절과 무관한 일이겠지. 울어서 될 일이 없으니, 다들 참고 누르고 살 테지.

 

아무도 내게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라고 하지 않는데, 어느새 9월의 가운데 도착해서, 녹아 흘러버릴 것 같은 남은 2023년에 기운도 녹아 흐를 것 같다. 현명한 친구는 불편한 모든 소리를 노래라고 생각하라는데, 그 친구는 무슨 고초가 얼마나 많았기에 생불처럼 생각하고 사는 건지 아프고 슬펐다.

 

나는 매일 거대한 종이 위를 걸어요

 

아침마다 말끔한 얼굴로 찾아오는

시간에 친구하면서

 

어제에 묶이지 않고

내일로 쫓기지 않고

오늘을 걸어요


................................................  


마음이 거친 날은

해 질 녘 노을을 찾아보세요

 

(...)

 

시선을 낮추고 낮추며

한 점도 남김없이 태우는

붉은 마음 만나면

 

.......................................................

 

머릿속을 걸어라

문을 연 순간

생각도 따라나설 것이다

 

[걸음] [마음이 거친 날은] [풀리지 않을 때] 모두 걸으라고 시인이 계속 말해줘서 상당히 기쁘다. 가을이니 비 그치면 바람과 함께 오래 걷고 싶다. 생각조차 비우지 못하고 끌고 다니는 어리석은 존재라, 바람이 좀 쓸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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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공부 -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
김희삼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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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happiness’ 실은 모르는 개념이다. 생각할수록 더 모르겠어서 오래 전에 행복을 주제로 삼은 철학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한다까지 이해했다. 그조차 여러 조건 차이에 따라 달라지고 말지만.


 

그러니 나의행복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산다. 하고 싶지 않은 것, 하기 싫은 것이 무엇인가가 살면서 더 선명해졌을 뿐이다. 불편과 어려움이 사라진 상태 - 중요한 충분조건 - 가 곧 행복은 아니라고 한 철학자는 이미 많았다.

 

인기 강좌였다는데, 이 책을 통해 행복 강의에 대해 처음 배운다. 행복이 아니라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기술이라고 하시니, 좀 더 구체적이다. 100% 충족이란 불가능하니, 쌓거나 높이는 것보다 자주 느끼라는 조언이 좋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기쁨의 빈도에 의해 결정된다.” 심리학자 에드 디너



 

혹시 여태 모르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무척 설레며 읽었다. 다정하고 말랑한 가이드가 아니라서 좀 놀랐다. 연구 실험 분야들이 다수고 통계 자료도 있다. 아는 바가 적은 내용들에 더 진지해졌다.

 

동화에서도 파랑새 찾기가 쉽지 않고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행복 공부도 만만치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 하나와 행복을 견주어 보는 시도도 내게는 쉽지 않았다. 어느 쪽도 기회비용으로 삼을 수 없다는 기분.

 

운수 좋기를 기다리지 말고 행복해지는 행위를 하라는 것이 주된 실천 메시지로 읽힌다. 어른이 되고 살면서 배운 가장 쓸쓸한 진실은, 간절한 개인을 돌봐주는 어떤 존재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도 내가 찾고 만드는 수밖에.

 

행복 실천력은 행복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장착하고 의식적으로 행동에 옮길 때 길러진다. (...) 지속적인 행복감의 결정요인 중 40퍼센트를 차지했던 것이 자발적 행동이었다.”

 

구체적으로 실제로 명확하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지를 알고,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실천을 하면, 행복에서 멀어지지 않는다는, 행복한 위로다. 행복을 전하는 백과사전이 존재한다고 가만히 생각하니 행복감이 느껴진다.



 

모두의 무탈을 바라는 일, 무기력해져도 사부작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일, 보이지 않아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 일, 많은 이들이 애써 만든 좋은 책을 만나는 일, 가능한 덜 유해한 방식으로 사는 일에서 멀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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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9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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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유럽에서 여러 해 살다가 귀국하니 정보를 통제당한 사회에 사는 기분이 없지 않았다. 국내 언론에서 생산하는 단타 기사는 의미 없고, 미국 중심인 정보들이 지겨웠다. 르몽드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있다는 소식에 구독을 시작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공부하듯 읽었는데, 월간지를 완독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정책과 외교와 관련 없는 직업에 점점 익숙해지고, 생활반경보다 사고반경이 더 빨리 줄어들었다. 그 르몽드를 다시 만나는 일은 매번 뭉클하다.

 

불안과 불만이 식욕을 소멸시키는 지금은 어떤 시절이며, 호흡을 몰아 쉬어야하는 갑갑함 속에서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할지, 여러모로 저널리즘이 실종된 사회에서, 다른 국가들 어떻게 사는지 9월호는 좀 더 복잡한 기분으로 읽었다.


 

국제사회의 협의체가 변하고, 외교의 룰이 바뀌고 - BRICS 외교,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공동 이해를 만나니, 기분은 더 답답해진다. 한국사회는 주저 없이 퇴행 중이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망해가는 중이고, 얼마나 더 견디고 언젠가 회복할 지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안들 중에서도 소위 타이밍을 놓치면, 회복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안들이 있는데, 과학기술과 환경이 그렇다. 이 두 분야에 대한 현정부의 인식은 참혹(지나칠 정도로 한심)하다.

 

그래서 한국의 영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착착 진행되는 약탈 준비와 영토와 영해를 지킬 능력도 의지도 전혀 없는 정부를 둔 국민으로서 동해(한국해)/일본해(병기 표기)에 대한 이슈와 독도에 대한 문제 제기(주강현)가 반가웠다.

 

이 문제는 망가진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를 핵종 제거가 아닌 희석으로 투기하겠다는 공공연한 사기 발언과 이에 찬성하고 자국 세금으로 뒤처리까지 해준다는 듣기도 믿기도 괴로운 현 정부의 행태로 이어진다.

 

어떻게 지구의 바다에 이런 짓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지, 그동안 몰래 버리고 감춘 노력이 가상해질 지경이다.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환절기 탓인지, 비가 와서인지, 안 아픈 곳이 없다. 손가락 통증이 데인 듯 뜨겁다.


 

피에르 막 오를랑(Pierre Mac Orlan, 1882~1970)의 색과 메시지가 번진 9월호 표지에 울 것 같은 기분을 위로 받는다. 거대한 고통과 비극으로 수렴될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든 대가, 노래할 사회의 환상은 무엇.


 

무능과 무지와 독선이 결합된 한국의 정치와 외교가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사의 풍경으로부터 독자인 나를 한없이 소외시킨다. 남 일처럼 구경하는 것도 한심하고, 엉뚱하게 휘말리지나 말았으면 하는 초라한 기대가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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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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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지난 세월을 가늠하는 일은 어쩐지 조금 덜 서글프다. 손으로 꽉 잡은 종이책의 물성이 위로가 된다. 1993년 나는, 대학생활에 조금 익숙해지고 막 전공과목을 배우기 시작한 자연과학대 물리학과 학생이었다.

 

사학과가 읽는 책인가 싶은 제목의 답사기를 운이 좋아 나도 만나게 되었다. 과내 산악동아리 선배들은 돈도 없이 신이 나서 목록을 따라 방학 중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후배들 역시 돈도 없이 선배 따라 떠나는 여행에 설렜다.

 

시작은 그토록 들뜨고 진지했지만, 목표한 문화, 유산, 국토에 대한 공부를 충실하게 하지는 못했다. 어딜 가나 학생들에게 너그러웠던 분들의 배려에 어리광을 부리며, 한껏 민폐를 끼치고 소란스럽게 굴다 먹다 쉬다 돌아왔다.

 

전공을 바꿔 진학한 대학원 시절, 함께 조교일을 하던 문사철 친구들과 두 번째 답사여행을 떠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여전히 놀러가기 위한 지적인 변명과 기회였고 여행의 풍경은 여전히 조금 배우고 많이 노는 시간이었다.

 

졸업 후 문화도 유산도 국토도 언어도 다른 곳으로 유학을 갔고, 책도 답사여행도 잊었다. 귀국 후 취업을 했고 출장과 업무에 바빠서 잠만 자던 오피스텔의 책장 속에는 추억이 된 여행과 문장들이 자리를 지키며 흐려지고 낡아갔다.

 

혼자 떠나거나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불가능한 삶이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답사 여행에 모셔보지 못한 조부모님들이 돌아가셨고, 언젠가 함께 여행을 가자는 생각만 하는 사이, 부모님이 날로 쇠약해져갔다.

 

사랑해서 알게 되는 것들엔 경계가 없을 텐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소홀한 이유가 되어버렸다. 기저질환과 고령으로 여행을 반기시지 않는 부모님 앞의 나도 반백()의 머리를 한 반백()이 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최재현 교수가 사경을 헤매느라 말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입모양만 보고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던 분은 부인 한 분뿐이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풍경 속 그리운 분들이 떠나고, 기후도 식생도 건물도 변했지만, 옛적 사진을 꺼내보는 일보다, 현실의 풍경을 눈에 담고 냄새를 공기를 느끼는 것은 살아 있는 특권이자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본래 화려함에는 으레 번잡스러움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배롱나무의 청순한 맑은 빛에서는 오히려 정숙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되니 아무리 격조 높은 화가인들 이처럼 맑은 밝고 화사한 색감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인가.”

 

부모님께서 가깝고 익숙한 곳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으실지, 낯설고 먼 곳을 더 궁금해 하실지 열심히 캐물어볼 것이다. 약을 다 잘 챙겨서 일단 떠나보자고, 못할 게 뭐냐고 얼얼한 마음으로 졸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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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다 - 전·현직 음료 연구원 & 마케터가 말하는 음료의 역사부터 광고이야기까지
김송이 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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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선호하는 음료가 분명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음료를 기꺼이 마시게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식품업계에서 종사하는 이들이 공저한 최초의 음료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많이 궁금하고 반가웠다.

 

생수역시 음료에 포함된다는 것을 배우는, 편견을 깨는 시작 내용부터 흥미로웠다.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서 마시는 일은 없지만, 관련 이야기는 유익했다.


 

연구원들과 마케터 분들이라서 제공하는 정보가 체계적이고 쉽게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는 가독성이 좋다. 적어도 한국 내에서 판매되는 많은 음료에 대해서 이 책을 숙지하면 기초 전문가 수준에 이를 듯하다.


 

음료의 역사는 어릴 적 특정 음료를 좋아하던 나의 역사와도 연결이 되고, 미각과 함께 하는 기억은 아주 강렬하게 재생된다. 잊고 살았지만, 음료에도 분명 트렌드가 있었다. 입맛이 보수적이라 마시던 것만 마시던 나와는 달리.

 

음료에 관해서 내가 선호하는 기업은 매일유업이다. 사게 되면 매일유업에 해당제품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이익추구의 측면만이 아니라, 팔수록 손해가 되지만, 꼭 필요한 소비자를 위한 제품들을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비건 음료가 필요할 때는 매일유업 제품을 늘 이용한다. 예전처럼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비우고 다시 유리병을 수거하는 시스템은 불가능하겠지만, 나의 소비가 어떤 식으로든 선순환에 보탬이 되길 고심하며 매번 구매한다.

 

이 책에서 다양한 제품들과 상세 내용으로 매일유업이 소개되어 반갑게 읽었다. 선호하는 기업과 제품이라 해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정보를 배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 음료의 역사도 볼 수 있고, 현재 판매 중인 제품들 성분과 제조법 등등도 확인할 수 있어 무척 유용한 책이다. 다 읽고 나서 어릴 적 홀렸던 오렌지색 탄산음료 환타가 생각나는 것이 재밌는 부작용(?)이다.


 

가족력도 있고, 혈당 조절이 중요해진 중년이지만, 어느 날 추억의 음료 중 하나를 마시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그때도 이 책에서 배운 정보들이 기억나면 조금 뿌듯하고 많이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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