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 만세 - 100%의 세계를 만드는 일
리베카 리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편집이란 출판 업무가 무엇인지 모를 시절부터 펭귄 북스 독자였으니, 그 책들이 탄생한 작업의 세계를, 편집 업무를 만나는 기회가 몹시 설레었다. 20년간 100여권도 아니고 수백 권의 책 업무라니, 잠시 오타인가 싶기도 했다.
스티븐 킹이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The editor is always right’라고 해서 흥미로웠고, 운 좋게 에디터가 저자인 재밌는 책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본격 편집의 세계를 만났다. 낯설어서 더 재밌고, 상세해서 벅차게 즐겁게 배웠다.
도서를 선별하고 기획하는 법, 투고 원고 보는 법, 기획한 도서를 소개하는 법, 에이전시나 저자와 소통하는 법, 저자와 함께 원고를 개발하는 법, 원고를 교열하는 법, 사업자로서 경력을 쌓는 법까지! 스티븐 킹은 이번에도 - 편집의 신의 영역 - 옳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일을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라져서 더 좋은 도서 별점이 존재하던 시기, 나는 독자가 좋으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와 예술은 음식처럼 취향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책들이 있어 좋고 그 다양성은 생각의 자유만큼 보장받아야 한다.
“진짜 문제는 이 책이 읽을 만한가, 가치 있는가, 좋은 책인가 하는 것입니다. 책이 구간이든 신간이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 책은 읽히기 전까지 다 신간인 거죠.”
종이책을 넘기며 읽는 것도 힘든 조건인 분들 - 장애 등 - 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종이책이 더 좋다는 말을 삼가려 하지만, 종이책을 사랑하고 가능한 오래 종이책을 읽고 싶은 독자라서, 문장마다 책 냄새가 나는 것처럼 행복했다.
이 책의 냄새와 질감과 모양을 만끽하며, 내가 만난 책들과 앞으로 만날 책들을 기억하고 상상해보았다.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출판사의 편집장이 누적된 세월만큼 꼼꼼한 면도 멋지고, 유쾌한 면은 더 멋지다.
“실수는 무언가를 출판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인간이 얼마나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초고, 기획, 교정과 교열, 팩트 체크, 윤문, 색인 작업… 그래서 책. 모든 과정이 필수인 숨 가쁘게 채워진 ‘책’과 책 만드는 사람들의 역사다. 출판이란 세계에서 살고 계신 많은 분들 - 디자이너, 번역가, 인쇄업자, 에이전트 등등 - 이 모두 반갑고 감사했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책을 정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보단 달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들릴 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만히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순간을 위해 애쓴 모든 시간들, 모든 사람들, 모든 목소리들, 모든 기다림들.
“정말 좋은 작가는 (...)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훌륭한 편집자는 (...) 책을 만드는 내내 독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니 말이다.
모두가 완벽을 위해 노력했지만, 치명적인 매력(?)인 오탈자가 불가사의처럼 존재하는 책은, 금서목록이 등장한 2023년 한국에서도 변함없이, 지식보다 ‘의식’을 가진 인간 존재들이 소통하는 아름다운 문명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