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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함락 1945 ㅣ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평점 :
식민지전쟁과 국제전과 내전과 학살이 자행된 역사를 가진 한국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운이 좋아서 유사한 어떤 경험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살았다. 이산가족이 된 가족 친지도 안 계시니 간접 경험도 일천하다. 그래서 더욱 기억하려 한다. 역사서의 기록은 실제보다 간명하기 마련이라고.
고단한 현실로부터 잠시 도피할 수단으로 독서를 오용하는 삶을 산다. 단숨에 읽고 잊는 소모적이고 이기적인 읽기를 지속했다. 그러다 팬데믹 발발 전 운 좋게 마지막으로, 친구의 책모임에 참가했다. 펼치기도 전에 두려운 전쟁사였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 저자는 익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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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분리된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국가는 없겠지만, 한국사회는 힘의 각축과 충돌의 전선을 제 땅 위에서 겪고 살아야했다. 2차세계대전의 참담한 역사는 책을 통해 거듭 읽히고 채워졌다. 책모임인데 영화 감상도 겸했다. 힘겨웠지만 기록한 용기를 존경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지 않았다.
* 원제: Eine Frau in Berlin, A Woman in Berlin: 2008년 영화 <베를린의 여인>으로 제작. 막스 파르베르복Max Farberbock 감독.
겁쟁이에 게으름뱅이라서, <베를린 함락 1945> 역시 친구의 권유로 책모임을 통해 함께 읽었다. 결과적으로 함께 읽고 이해하고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는 방식의 읽기가 더 좋은 책이었다. 여섯 번의 모임 동안, 옆에는 혼자 읽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고요히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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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된 도시의 여자>와 더불어, 몇 번이나 놓치고 싶고 포기하고 싶던 책이었다. 단정한 문자를 읽는데 떠오르는 광경은 너무나 참혹했다. 책장을 넘길 힘조차 주체하기 힘들어진 감정이 다 가져가 써버리곤 했다. 먼 곳의 모르는 이들의 역사를 느긋하게 배우는 일이 죄짓는 일처럼도 느껴졌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이제 <베를린 함락 1945>를 만나고 읽고 함께 한 시간은, 미진하게 마친 이전 과제를 수정하고 마침내 마무리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두께가 압축파일처럼 느껴지도록 놀랍고 꼼꼼하고 상세한 기록이다. 2주 동안의 전투, 수백만 명의 사연이 데일 듯 뜨겁게 기록되었다.
나이에 비례하는 지혜는 없어도,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털어내고 사실을 적시하는 담담한 태도는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더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기록하고 분석하려는 저자의 문장들에 자주 화들짝 놀랐다. 알던 내용도 모르던 내용도 읽던 호흡을 잡아먹듯 새롭게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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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300년 남짓이라던 내용은, 좀 안다고 생각한 세계가 가짜였다는 충격과 슬픔의 깨달음을 주었고, 전쟁사를 소재로 삼은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아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어떤 힘을 조금 증량시켜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살 것인가, 무엇을 바랄 것인가를 묻는 힘.
이 책에는 거대한 숫자들이 적혀 있다. 수십만 명의 동사자들, 200만 명의 강간 피해자들, 700만 명의 피란민들……. 이런 규모의 잔인함은 창작 세계의 악몽보다도 거대해 보인다. 이 참상의 동력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건가, 살아남았다는 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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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이긴 하지만,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프라모델을 만들고 스파이 영화를 즐기면서도 전쟁과 무관했던 내 삶에, 이 책은 경계를 넓히기보다 테두리를 찢는 충격을 주었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독백들에서 식은땀이 어느새 배어나기도 했고, 전쟁과 강간의 모든 기록에는 위경련이 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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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이 밝혀준 인간 뇌의 진화와 작동 방식에 좌절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만든 것이 문명사회인데, 오래된 가스라이팅도 현재 진행형인 프로파간다도 모두 하찮게 만드는, 인간성 말살에 복무한 기막힌 선전 선동은 모두가 고통스러운 종착지로 다급하게 향해갔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폐허를 톺아보는 남은 인간들은, 이제야 불필요한 사상자들에 의아하고, 서로에게 총질하고 포격한 무능한 공격 작전을 마주한다. 대의라는 가식조차 부재한,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군상이 선택한 가해와 폭력의 순간들은 타인의 죽음으로 핓빛 어둠으로 얼룩졌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사적인 게으름이 합쳐진 독자로서 소련군 주인공의 시선으로 역사를 본 경험이 없었다. 나찌 독일에 대한 거부감처럼 전체주의 소련군에 대한 저항감도 크다. 다만 무참히 쓰러져간 소련군 보명의 공격과 독일 군인들의 수비에 똑같이 서글플 뿐이다. 무슨 의미와 가치가 거기에 있는가.
이런 비극과 참상을 다루면서도, 소위 ‘지도부’의 ‘신성 신화’를 위한 계산과 의지는 집요하다. 미국 원조 규모를 줄이거나, 집단 강간 등의 전쟁 범죄 거론에 대한 비난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상기시켰다. 철저한 사료 중심 기록인 이 책 덕분에 어떤 장면들이 이제야 선명해진다.
전투와 전쟁의 막바지에 가능한 병사들을 살려서 귀가하려는 노력을 하는 지휘관과, 그렇지 않은 이들 하에서의 최종 결말은 아주 다른 풍경이다. 전력 차이가 극명함에도, 병사들에게 돌격을 지시하는 자들이 후방 도주를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결국 히틀러 정권은 총독 시신조차 보존 못하는 종말을 맞았다.
대규모 전투와 전쟁이란 국운에 영향을 주겠지만, 그 이후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재건을 상상하지 않는 권력자들의 결정은 무모하고 어리석을 뿐이다. 원제의 적확한 의미와 더불어, 이 전투에서 희생된 청소년들을 생각하니, 독일이 어떻게 회복하여 현재에 이르렀는지가 미스터리 같다.
분단국가에서 살지만 기이할 정도로 태연하게 사는 독자가 만난 670쪽의 방대한 서사는 오래도록 곱씹을 귀한 기록이었다. 과문해서 많이 배웠고, 거대한 비극을 조망하는 저자의 방식에 경탄했다. 함께 읽은 것이 몹시 다행이었다.
아무리 간절해도, 어떤 역사도 단시간에 다르게 쓰지는 못할 것이다. 전쟁과 폭력의 역사는 문화와 언어와 일상에도 녹아있어서, 고작 몇 개를 분리해내기도 지난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에 공감하지는 못해도 함께 사유할 수는 있다는 것이 나의 희망과 낙관의 근거다.
고통과 위험의 규모가 더 커지는 흐름으로 역사의 흐름을 보기도 하지만, 19세기보다 20세기가, 그리고 21세기가, 차별과 폭력과 광기와 시행착오를 더 잘 배우고, 대처법을 하나라도 더 알게 된 시대가 아닐까. 이 책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만든 계단 위에 내가 서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밀덕이었다면 동원된 차량과 무기와 제복과 진군과 공격의 방식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듯 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규모의 전투를 한 흐름으로 떠올려 볼 수 있게 해주는 독보적인 책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전쟁을 서술하고 디테일을 분석하고 비극을 사유한 최고의 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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