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1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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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상공을 덮은 한랭한 대기가 서서히 지나가는 시간이다겨울이 따뜻해서 계절을 잃은 새싹들이 흙을 뚫고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는 시절이라 적응을 하지 못한 손과 귀가 얼어붙었다공기가 쨍하니 이마가 서늘해서 정신은 조금 맑아지는 듯하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안전하게 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예전엔 요란함과 소란스러움이 잦아드는 겨울이 참 좋았는데 이제는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생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 작품 속 세계는 내가 사는 판데믹의 세계보다 더욱 황량하고 처참하다그래도 어떻게든 적응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위안과 힘을 얻는 방식도 존재한다그러나 매일 누군가에게 만족과 웃음을 주는 일이란 사실 기획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일이 뭐가 그렇게 자주 있을까더구나 이런 세상에서.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속 액터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따뜻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그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온갖 극적인 상황에 휘말려 고통받는 그들의 드라마로부터 오히려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현실의 독자들인 우리가 영위하는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지만차이점은 스노볼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는 모두 연기가 아니라 실제 삶이라는 것이다리얼리티 쇼의 인기는 이미 시작된지 오래이긴 하다타인의 삶이 담긴 시공간은 왜 흥미로울까.

 

그렇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하루종일 편집 없이 그대로 지켜보는 것은 불필요하고 지루한 것이다그래서 디렉터는 (...) 자신이 판단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추려서 근사한 이야기로 만든다.”

 

한국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일 년은 사계절이라 믿고 경험하며 살았다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계절이 서로 섞여들기 시작하고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사실이다날씨는 짐작과 기대를 자주 우습게 만들었고우리는 그래도 이름이 남은 계절감을 최대한 찾아보려 한다.

 

스노볼에는 사실상 날씨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거대한 유리 천장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땅에는 (...) 그래서 스노볼은 인공적으로 날씨를 만들어낸다. (...) 그리고 이러한 날씨를 뽑는 사람이 바로 기상 캐스터다.”

 

이 정도면 살만한 안전한 환경인건가그런데 인간의 최고 약점이자 운명은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찾아 먹고입고그 외 모든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마지막 남은 발전소는 원전 핵발전소 이다생존과 관련된 장소이기도 하고혹시나 사고가 생기면사고가 없더라도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하면 남은 인류도 멸종한다.

 

온기와 평화의 대가는 늘 있게 마련이지만 짐작보다 잔혹했다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을 어찌되었든 유지해나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해서 머리가 무거워졌다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는다그러니 아무리 사람들이 일하다 죽어도 죽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보다 보상금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스노볼이 여전히 따뜻할 수 있는 이유는 기적적인 지리 환경 덕분만이 아니라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 버린 사형수들이 작동시키고 있는 미지의 발전소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이 태어나면 생존을 위해 적응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이 때의 환경은 주어진 그대로이다그래서 적응에 성공하면 획득한 모든 삶의 방식이 당연해진다예외와 돌발이 불편해지고 뭐라고 바꾸는 일이 피곤해진다그런 노력 대신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 기회를 더 많이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사회는 그런 욕망을 원료로 작동되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을 목적에 맞게 사회화시키고불행은 각자의 일로 설명한다인간이 모여사는 일은 필연적으로 사회체를 구성하는 일이라 스노볼의 세상 역시 마찬가지이다문제는 얼마나 그 비밀이 어둡고 격차가 끔찍한가이다.

 

타인에게 이용당하려 태어나거나스노볼을 유지하라는 사명을 타고난 사람의 세상은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근데 우리가 쓸 전력을 생산하는 게 착취라니물론 지금의 삶이 천국은 아닐지라도 이보다 나은 선택은 없어.”

 

이본 미디어 그룹은 백 명이 넘는 사람의 기억과 목숨그리고 인생을 가지고 놀고 있다이들이 전부 사형수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본의 잘못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이 정도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바이러스에도 추위에도 계속 일하는 이들이 많다그들이 부당하게 일하지 않도록 그런 부분이 근절될 때까지 완전한 파업을 한다면 나는 기쁠까얼마나 오래 지지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부러운 점은 세상이 멸망했고노출되면 모두를 죽이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이 모두 거짓이라는 점이다손쉽게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했다는 점이다그리고 그걸 밝히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

 

평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거야나를 향한 금기와 한계를 깨기 위해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안전과 평온을 위해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기꺼이 감내하고 이어 가는 것그게 세상을 바꾸는 일의 본질이야.”

 

그래서 스노볼의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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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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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를 잠시 만나고 나니 이 책을 바로 읽고 싶다는 욕구가치팅 없이 제목이 전하는 메시지를 짐작해보려 애썼다소크라테스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뒤집기란 어려우니 아마도 확신에 찬 이들의 어리석은 모습들이 잔뜩 펼쳐질 듯했다단편소설집은 매일 한 편씩 아껴 읽어야 하는데 덮지 못하고 후루룩꿀꺽 삼키듯 읽었다.

 

종류도 수위도 다양하지만때로는 물리적 폭력과 범죄에 못지않은대상을 정하기가 임의적이고 다수가 익명으로 가담할 수 있고폭력의 수위도 최강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제재도 처벌도 어렵고 도주가 쉽다는 점에서 극악한 범죄도 될 수 있는 선입견이 등장한다.

 

편견과 편애가 없는 사람은 없다자신에게 편견과 편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가능한 주의하는 사람과 의식하지 못하고 공평무사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그리고 나는 편견과 편애는 자신의 삶과 취향과 관계에 한정해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해서 제가 판단하고 떠들어댈 권리란 누구에게도 위임된 적이 없다그럴 때 인간이 가진 선입견은 잔혹하고 무자비한 폭력의 도구가 된다어른들이 사는 모습은 형편없이 휘둘리는 난장이고그런 어른들에게 배워 단순화시킨 아이들의 선입견은 잔인하다.

 

인생은 아주 어려워어른도 정답은 모르고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조차 최고난도를 자랑해게임처럼 쉬움’ 모드는 없지그런데 남을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난이도가 올라가는 거야언제 그 사실이 들통날지 모르거든왜 스스로 어려움’ 모드를 선택하는 걸까?”

 

이 책은 그런 어른들의 선입견을 드러내어 은근히 비유적으로 지적해주는 것이 아니라그냥 솔직하게 이런저런 것들 다 어른들의 선입견이고 답답하지 그지없다고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추위가 닥친 밤에도 얼굴이 뜨끈하다.

 

딱 한 번 먹어본 적 있는 치즈가 떠올랐다냄새가 지독해서 상한 줄 알고 금방 뱉었다하지만 그 후에 엄마가 그건 고급 치즈야” 하고 가르쳐주자 별안간 그게 독특한 맛으로 느껴졌다알맹이는 변하지 않았는데도정보 때문에 맛이 달라졌다.”

 

하아... 우리 모두 할 말 많은 담임교사의 선입견 가득한 발언들은 한 편으로는 화가 치밀지만아이들이 그 덕분에 생각하고 판단하고 부정하는 사고 훈련을 한다는 점에서 제 역할이 있기도 하다이후 아이들이 교사의 생각을 바꿔보려 하는데... 말리고 싶었다.

 

운동회에 마라톤경기를 하는 학교가 있다니부러웠다전생의 일 같긴 하지만 오래달리기마라톤을 무척 좋아했다아무데도 못가는 트레드밀 위에서도 15분 지나면 내려오기 싫어진다뽑기로 정하는 방식은 공평의 외양을 한 폭력이다왕따를 가시화하는 방식의당사자들은 스스로가 슬로하지 않은지를 증명하기 위해 너무 애써야 하니까.

 

납득과 동의를 거듭하며 읽다가 <거꾸로 워싱턴>에서는 생각이 무척 복잡해졌다통계상으로는 입양 가족보다 소위 친부모 가족’ 내에서의 폭력이 아주 빈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작년 통계상으로는 98%가 친부모 폭력이었다.

 

그런데는 이야기 속에서처럼 새아버지가 생기고 난 후 아이의 결석 소식을 듣는 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내 편견은 어떤 장면을 가장 빨리 떠올릴까저항의 노력에도 끄떡없이 건재한 선입견이 있다.

 

그 외에도 외모만으로 재빨리 판단하는 일도 있고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뭐라 의견을 표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도 있다자신의 범죄에 대한 형을 마치고 난 이와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사법과 형벌체계에 대한 동의와 수긍이 부족해서 그 점이 판단의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계속 고민해봐야겠다.

 

반성을 거듭한다선입견이 강한 인간으로 사는 모양새만이라면 괜찮은데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가한 언어폭력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명확한 의도가 없는 것들이라는 걸 상대가 부디 알아차리고 깊은 상처를 입지 않았기만을 바란다.

 

초등학생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지만연령 불문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읽으면 가장 좋을 선입견에 관한 리트머스 종이와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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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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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beings are by nature political animals, because nature, which does nothing in vain, has equipped them with speech, which enables them to communicate moral concepts such as justice which are formative of the household and city-state (1253a1-18). Aristoteles
 
한때 교과서에도 버젓이 실린 사회적 동물이라는 무근본 번역은 깨끗하게 사라지기 바란다. 그리스는 도시국가polis 체제이고 거기에 사는 인간은 도시국가의 방식에 맞는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정치적political이며, 그래서 치안을 담당하는 직업을 경찰policemen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이런 삶이 싫다고 떠난 ‘자연인들’은 논외의 대상인 것이다. 그 도시국가들의 스케일이 커져서 국민국가가 되었다. 국가에서 살아가는 국적을 가진 모든 이들은 따라서 여전히 정치적political이여야 한다.
 
“산다는 게 징글징글한가? 징글징글한 나머지 산 속으로 잠적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거기에 정치는 없다. 답이 없는 세계에서 좋은 세상 보겠다고 싸우다가 지치면, 세상을 뜨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뜨지 않고 버티는 데 정치가 있다.”
 
정치란 내 삶의 모든 영역을 결정하는 합의이고 협의이기 때문이다. 논의할 때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나는 동의 안 했다고 불평불만을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큰! 문제이다.’
 
폴리스polis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저이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쓰다 보니 이책의 분위기에 반하는 안티글이 될 것 같아 얼른 정신을 차린다. 김영민 교수는 마주치는 모든 것에서 정치를 사유하고, 동서고금의 철학, 책, 뉴스, 드라마, 영화 - 아주 많음 - 에 대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자신의 코드로 엄청난 수다(?)를 들려준다.
 
유쾌하고 재미있다. 정치사상이나 이론을 막 함축적으로 설파하는 내용은 없으며, 정신없이 재밌게 읽다 보면 좋아했던 영화들이 소환되면서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관련 내용이 아주 많으니 개별 소개와 인용은 생략한다. <파리대왕> <폭풍 속으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아이리시맨> <모노노케 히메> <D.P> 등.
 
“악의 존재에 맞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고자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온 역동적인 정치사가 한국에는 있다. 실로 현대 한국인의 마음에는 대규모 정치적 시위가 준 효능감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덴트의 언급은 좀 아프다. 조커가 간파하고 의도한 대로 ‘정의’란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고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세상의 어느 한 부분에 정의를 불러오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인류의 성인처럼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이루고 나와야 하는 걸까. 온갖 실수를 저지르지만 한 때 한 가지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결점투성이인 사람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위선일까.
 
그런 도덕성의 신화를 서사구조로 만들어 내세운 것이 하비 덴트이고 한국 현대사의 운동권이었던 것도 맞다. 텍스트나 콘텐츠보다 이미지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시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시작되었으니까. 그러면 정치 행위에 있어 이미지 전술은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또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유쾌하고 재미난 수다라 저자의 이야기를 몇 시간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도 글은 자꾸 이러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웃다 죽을 것처럼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흥미로운 의식의 흐름은 여전히 좋고 그 정도로 웃지는 못했다. 주말 동안 언급된 영화들 중 한 편을 보고 싶다는 생각.
 
“불과 100여 년의 시간 동안에 왕조 국가에서 공화국으로 탈바꿈하고, 자신들이 무시해온 이웃 나라에서 강점당하는 식민지 체험을 겪고, 동족의 배때기에 죽창을 쑤시는 상잔의 전쟁을 거쳐, 끼니를 걱정하는 빈국에서 (...) 부국으로 도약하는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쓴 나라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한 이 나라가 어떻게 ‘헬’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한국은 지옥불에도 무너지지 않은 그을린 가옥이며, 한국인은 지옥불을 견디고 기어이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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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수, 판데믹, 호환, 마마보다 참담한 재앙이란 바로 담담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다. 다 귀찮아하는 상태다. 그래서는 이 세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 뼛속 깊이 귀찮아하는 사람은 삶 자체도 귀찮아하므로 인류의 멸망 따위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 (...) 사람들이 귀찮은 나머지 아무 것도 안 하다가 멸종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사람들의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 욕망이 없다면 이 세계는 텅 비어버리고 말 것이다.”
 
“제대로 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유아적으로 행동하기를 그치고 정치적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 (...)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가 말한 것처럼, 미성숙한 인간들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power)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뭔가를 해내기 위해 발휘하는 그 모든 것이다. 군사력, 경제력, 정신력, 정치력, 매력, 지력, 자제력, 드립력, 이 모든 것이 권력이다. (...) 욕망과 목표가 있으면 권력은 존재하게 되어 있다.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고, 살아가는 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관계를 맺는 이상 정치체에 속하지 않을 수 없고, 정치체에 속하는 한 누군가에게 다스려지지 않을 수 없다. (...) 실로 놀랍지 않은가, 다수가 소수보다 분명 강할 텐데, 그 강한 다수가 결국 소수의 지배를 받는다. 정치적 허구가 그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 허구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구를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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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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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난 작가의 에세이를 이후에 만나는 일은 있어도 에세이 작가의 소설을 접하는 경험은 처음인 듯하다읽다보면 인문학적인 사유가 이전 에세이나 이번 소설의 저변에 동일하게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그래서 이 작품은 단지 성장 소설이나 모험 소설이 아닌 게 된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을 하며 만난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이 각자의 삶에서 떠올리는 인물들과 삶의 면면이 있듯이소마가 소년으로 떠나 노년이 이르는 여정에서 만난 인물들이 각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하며 독자의 발걸음도 늦춘다.

 

내 세대의 조부모님부모님의 삶이 거대한 대하소설과 같은 것처럼이 작품 속에 흐르는 시간 역시 사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는 도저한 시대의 흐름이 느껴진다.

 

캐릭터화가 아주 강조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피로감이 생기다가도누구의 삶도 천변만화하는 극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이게 더 현실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주인공 소마는 관찰자이자 경험자이자 시대의 체험자이자 메신저로서 모두 활약하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스토리텔링인 것처럼 전하며 사고를 일깨운다소소한 정밀 관찰과도 같은 작품도 좋지만 이렇게 거대한 판타지 서사가 주는 몰입감과 재미도 크다.

 

어느 날 살던 마을이 불타고사람들이 몰살당하고노예가 되고다른 마을을 몰살시키는 현장에 가기도 하고마녀사냥을 목격하고검은 기사단이 된 후 좌절도 겪었지만 마침내 바라던 대로 많은 이들을 돕고훌륭한 정책을 펼치는 인물이 되었다.

 

아무래도 변하지 않는 상황들에 연일 걸려 넘어지며 소마는 세상이란 어쩌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고현실이란 생각보다 복잡하게 꼬여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투쟁과 대결과 피와 고통으로 가득 찬 혐오스러운 세상은 이제 없다이것은 새로운 세상이다이것은 너무 아름답구나.”

 

그러나 인간다움이란 늘 그런 안타까운 약점을 가지는 것인지... 복수집착증오... 등의 강렬한 감정에 휘둘리면서 잃어가는 것들을 멈출 수가 없다어린 소마의 상처는 내면의 목소리로 갇혀 오랜 삶의 여정에서도 치유되지 않았나보다상처는 고통에 다름 아니다.

 

영문을 모른 채 아버지의 말을 따라 시작한 여정아버지는 자신이 쏘아 날아간 화살처럼 곧은 삶의 길로 나아가라고 지시한다단지 구명이 목표가 아니라 찾아갈 방향을 가르쳐 준 것이다.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도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게다하지만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언제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단하고 힘겨운 일들을 모두 겪어 내고 여전히 생존한 소마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잡고 버티던 것은 무엇일까소마가 목격한 삶의 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겨 둘 것은내 삶을 한 장의 그림 속에 담는다면별 다를 바 없는 구성체이지만경험과 기억의 고유성을 가진 나는 누구인가이 모든 건 다 무엇인가.

 

다시 한 번의 삶을 원하느냐?”

 

내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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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의 요정 1
천지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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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은 처음이다단행본으로 읽었으니 웹소설을 읽은 건 아닌 건가십대들은 다 알고 대사인지 노래가사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한다늘 일반화의 오류에 걸리고 말지만 십 대들의 연애에는 밀당이 무척 중요한 기술로 활용되나... 잠시 궁금했다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기술이긴 하지만.

 

연락하고 싶을 때 참고만나자 그럼 한번 튕기고 질척거리고 싶을 때 쿨하게 돌아서고 여자가 쉽게 맘 주면 안 돼그래야 네가 날 더 좋아하게 될 걸

 

설정 자체는 이런 하드코어가 없다전남친이 결혼하는데 내가 웨딩 플래너다심지어 웨딩드레스 입고 등장... 자신에게 반한 남자는 재벌 2세인다가가 비혼주의자... 사귀자고 해서 사귀어볼까 했는데... 남자는 제 아비에게 팔려(?) 다른 결혼을 준비한다그 결혼식 준비도 내가 한다!!

 

이게 무슨 극한의 삶이고이런 와중에 연애는 어떻게 하며밀당이 끼어들 틈은 어디 있나 싶지만십대들도 웹소설의 세계도 곱게 자라 편한 세상을 산 내 세대로선 상상도 힘든 삶을 사나보다.

 

외모가 출중한 여성과 재벌2세는 이제 드라마로 나와도 재미 1도 없을 듯하지만이 놀라운 이야기에는 돈과 결혼사랑으로 버무리는 관계에는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엄청 솔직한 조건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타이밍 완전 안 맞게 등장한 사진작가는 너무 불쌍하다작가의 심술인가 싶을 정도로의외로 읽다 보면 인간 사이에 권력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갖가지 요인들이 아주 잘 보인다.

 

밀당이 왜언제 필요한 지 전혀 이해 못하는 독자로서 이런 막강한 스트레스를 견디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해내는 인물들이 놀랍다.

 

마음에 드는 점은 구남친이든 현남친이든 폭탄이 떨어진 듯한 상황에서도 내 직업은 웨딩플래너니까 일은 한다라는 강철멘탈 여주하도 시달리다보니 밀당을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최강자가 된다.

 

로맨스 소설웹소설을 읽은 경험이 너무 적어서 그런가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스타일이다두근거림과 설렘을 느끼기에는 정서상 괴리가 크지만 가볍디가벼운 생각과 말투에 두 발이 끌리는 듯한 목요일의 시간이 폴폴 깃털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이다.

 

완결은 3권에서! 회사 합병되고 비밀연애 들통 나면서 2권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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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1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poiesis 2022-01-05 19:54   좋아요 1 | URL
많이 늦었지만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해 다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