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드럼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잠을 편히 못자서 기절할 것 같은 날들(기절도 안 함), 루이스 어드리크 세계로 달아날 책들이 있어 다행이다. 네 번째 작품을 읽으니 이제야 제대로 도착한 느낌이다. 도착지가 안전지대가 아니라서 문제지만.

 

두렵고 걱정스러운 현실이야기처럼도, 모르는 신화 속 이야기처럼도 읽힌다. 여름이라서, 밤이라서, 아름다운 문장들이라서, 온통 상실과 그리움이 가득이라서. 현실은 누추하고 문학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반짝인다.

 

drum'이다. 북소리가 심장을 둥둥 울려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죽은 이의 집에서 발견된, 스스로 울리는, 삼나무와 무스 가죽의, 상징이 가득 그려진, 채색된, 전통에 의하면 매매될 수 없는, 전수할 인간을 선택하는 북.



 

살과 뼈처럼, 북의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 북은 계속 살아간다. 북은 생명 없는 사물이 지닌 인내심으로 기다리지만, 생명 자체의 힘으로 치유된다.”

 

제 자리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여기서 살고 싶다란 기분이 드는 곳일까, 그저 살 수는 있겠다란 조건일까. 못 파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 문명과 팔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문명은 어떻게 세세하게 달랐을까.

 

인간은 북을 왜 만들었을까. 북을 울려 인간에게 닿는 소리는 어떤 힘을 가질까. 인간이 만든 북의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차분하게 읽으며 그림을 맞춰가는 경험이 처음이라 벅차고 신비로웠다. 인간의 북의 화자가 되어 결국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인간/비인간의 무례한 구조가 없어서 그리운 세계다.

 

북을 울리는것은 무엇인지, 북에 힘과 능력을 부여한 것은 무엇인지, 찾아가보니 슬픈 풍경들이 가득했다. 층층이 다채롭게 슬펐다.

 

슬픔은 혼란이다. 죽음과 질병은 세상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북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다. 그 질서 속에서 살아나가고 그 질서를 지키는 것은 절박하게 희망을 갈구하는 몸짓이다. 우리를 보호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의 마음에서 슬픔을 걷어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찬미하게 하소서.”

 

작가와 작품이 전하는 바는 모녀 관계와 상호 구원의 내용이 있는 것도 같은데, ‘구원자체가 어려운 만큼 내게는 그 가능성이 옅어서 읽어도 읽히지 않았다. 너무 낯선 판타지,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망각하려는 욕구가 있다. 나는 우리의 열병 같은 망각이 그쳤는지 아직 모르겠다. 우리는 늘 망각의 언저리를 걷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립백 코스타리카 라 알퀴미아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기면증도 아니고 깊은 졸음이 몰려온다. 노화와 폭염 탓이 가장 쉽다. 위로와 의지할 향이 필요해서 또 구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최선도 완벽도 존재하지 않는 삶,
허술하게 적당히 충분하게
살고 싶은 폭염의 시간.
두통과 불면으로 괴로워 휴가를 상상하며 일단 구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운드 하우스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손 가는 대로 펼쳐 읽는데, 작품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우연이 신기하고 기쁘다. 상당히 묵직한 분위기의 전작, <비둘기 재앙>의 복잡한 구도를 경험하고 나니, 이 책은 스핀오프처럼 단출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사건의 심각성이나 상처의 깊이가 얕지는 않다. 선주민으로 태어나 이주민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이렇게나 참혹하고 억울하고 힘든 역사여야 했을까. 인간이란 종과 문명이란 허상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깨고 싶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가 라운드 하우스다. 선주민에게 신성한 장소라는 점에서 이주민들의 가학과 폭력은 일말의 수치도 주저도 없는 구역질나는 짓이라는 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인간혐오에 빠질 듯해 잠시 숨을 고른다.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당하는 것이 당연한 여러 입증 절차와 빠른 해결이 어려운 여러 부차적 조건들에 한숨이 난다. 이따위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법 따위가 한 인간에게 가해진 저열한 범죄를 밝히는 것보다 정말 더 중요한가.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폭로 대신 침묵을 택했다. 보호구역 내에서 저지른 범죄일 경우 원주민이 아니라면 처벌할 형사 관할권이 없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지점을 알지 못하면, 연방법, 주법, 부족법 중 적용한 법조차 알 수 없다.

 

간판은 법치국가인데 그런 메뉴가 없는 지경, 정의를 바라는 이는 이제 인간사회를 포기하고 하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피해자는 어머니고 아들인 조는 이제 열 세 살이다. 판사인 남편과 아버지도 무력하다. 요즘 유행하는 사적복수가 답일까.

 

정의는 있을 거야. 정의가 도와줄 거야. 지금 당신은 정의는 아무 도움 안 된다고,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 방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사랑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의가 도와줄 거야.”

 

장애를 비하하고 차별하는 표현인지도 모른 채, 무엇을 살까 하는 고민에 결정 장애니 선택 장애니 그런 말만 하지 말고, 없으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모를, 정의와 자유에 대한 고민을 더 깊고 넓게 진지하게 해야 되지 않을까.

 

잘 모르던 사회지만 어느 사회나 닮아 있는 약자들이 당하는 이야기에 화가 너무 많이 난다. 손가락이 아니라 부글거리는 뇌가 타이핑을 하는 기분이다. 이런 꼴 안 보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되돌릴 수도 없다. 아무리 간절하다해도. 그래서 죄를 물어 처벌을 하고, 피해자는 일상을 회복하고, 상처를 계속 치료해야 한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방법이 유일하다.

 

책을 덮으며 할 수 있는 건, 1988년과 지금은 많이 다를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고작이다. ‘원주민 보호구역이 있는 한, 모멸감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누군가의 차분한 의견처럼, 동물원이 있어 당장은 보호받는 동물도 있으니까. 지금은 그게 최선이라고 하니까.



 

읽고 나서 다시 본 표지 일러스트에 울음이 터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둘기 재앙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너무 무섭다, 조류공포증에 도시비둘기를 두려워하니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 그냥 보아도 무섭고 푸득 날아오르는 조류 곁에 있다면 온갖 바이러스를 뒤집어쓰는 기분이 들어서 더 무섭다. 과장된 불안과 공포지만 강력하다.

 

<사랑의 묘약>에 이어(실제 이어진 내용이 아니라), 선주민의 삶을 다시 경험할 수 있어서 기쁘다. 오래 전 건조한 사회학/역사책으로 배운 북미대륙 선주민들의 삶이 이번에도 고달프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겼다니 더 귀하다. 논픽션처럼 읽지 않으려 애쓰며 읽었다.

 

법이 멀거나 없고 폭력은 가까운 시절,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사적인 복수가 따랐다. 그래도 삶은 이어졌다. 운명이라 믿은 만남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도주도, 온 힘을 다한 애정도, 다른 이에게 끌리는 감정도 평범하고 현실적인 드라마 같다. 잔뜩 긴장한 기분이 잠시 풀린다.

 

역사의 어떤 내용은 지독하고 지겹게 반복된다. 누구를 무엇을 탓해야 할까. 오랜 마녀사냥의 역사와, 비난한 대상을 외부에서 지목하고 시선을 돌리고 잔혹하게 구는 집단 광기는 인간 집단 어디서라도 흔하디흔한 일일 뿐인지.

 

극도의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하얗게 칠한 상업용 운반기의 벗겨질 것 같은 표면을 보았고, 불에 탄 밀 아래로 녹색 풀밭을 보았고, 피를 빨아먹은 이처럼 다시 살이 차오른 버펄로를 보았고, 그 거대한 짐승의 무리가 무성히 자란 풀밭을 발굽으로 납작하게 짓이기며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고개를 들자 하늘은 새 떼로 뒤덮여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새들은 낮게 날았고, 천둥처럼 몰려왔다.”

 

소설이 반가운 이유는, 모든 비정한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고 밝히고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억울함을 갈래갈래 풀어주는 듯한 문장을 따라 읽으며 사회시스템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계속 했다.

 

인질극, 전쟁, 말 같지도 않은 신화 위에 세워진 사이비 신앙 공동체, 동조하고 찬양하는 이들. 20세기도 21세기도 한편에서는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끊임없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개발/활용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강력한 종교의 영향 아래 착취당하는 삶이 있다.



 

더 무겁고 어두울 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지만, 툭 치고 나오는 위트가 즐겁다. 읽은 앞부분을 다시 펼쳐 보게 한 복선과 암시가 결론에 이르면 어두워진 하늘에 드러나는 8개의 별처럼 반짝인다. 잘 모르는 이들의 삶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본 화면처럼 떠오르는 여행이 가능한 것이 글이고 문학이다. 새삼스럽지만 대단히 아름답다.

 

내게도 오래 보관한 수집품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 잊고 사는 걸 보면 물질이란 생각보다 가치가 덜할 지도 모르겠다. 죽는 순간 생각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인간을 가두고 빼앗고 죽인 인류의 역사, 오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거리만큼 먼 무관심이 미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