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음, 김정훈 옮김 / 호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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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따지자면, 죽음에 더 가까운 이도 먼 이도 없지만, 나이가 높은 어머니 생신은 탄생보다 죽음에 대한 염려가 불쑥 치미는 조금은 서글픈 이벤트다. 돌아가셔서 슬픈 꿈을 생신 전날과 당일 날 꿨다. 불안감의 선명한 재현이다.



 

죽어가는 인간이 존재해 온 지 그토록 오래되었는데도 (...) 우리는 왜 산 자가 사라질 때마다, 마치 처음 일어난 사건이기라도 한 듯이 놀라는 걸까요?”

 

거듭 따지자면, 죽음에 순서란 없다. 그러니 다른 죽음에 대한 염려보다, 내 죽음에 대해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고 대비하는 준비는 필수다. 설명해 두어야 할, 전해야 할 어린 가족이 있다면 더구나.

 

우리는 죽어가면서 죽음을 겪고, 그것을 겪음으로 인해 죽습니다. (...) 마지막 숨을 내쉬는 동시에 죽는 것입니다. (...) 죽어서 죽습니다. (...) 앞의 말은 무화nihilisation의 순간적인 타격을 가리키고, 뒤의 말은 무Nihil의 영원성을 가리킵니다.”

 

폭염 속 태풍 소식처럼, 다소 어두워서 좋기도 하고 불안을 더하기도 하는 날,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달리, 음악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의 문장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철학에 담긴 진심은 참 품위가 있다. 덕분에 차분하게 진정이 된다.

 

죽음은 대상을 생각하는 사유로부터 대상 전체를 제거합니다. 죽음은 사유를 포함해 인간의 총체를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직면해야 할 가장 크고 무거운 진실은 죽음이다. 부활과 윤회를 믿지 않는 내게는 영원한 이별과 소멸이다. 그러니 동서고금 질문도 많고 답변도 많았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고심한다.

 

행위의 관점과 체험한 인생의 관점에서 보면 (...) 짓누르는 듯한 암흑을 삶에 던지는 것은 사실성이라는 낮의 선명함이고, 새벽의 첫 빛과 (...) 첫 희망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언젠가라는 여명 속에서입니다.”

 

그 과정은 지극히 지성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유와 의지와 삶 모두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이용당하게 된다. 그 틈을 파고드는 사기수법이 광신적인 종교 활동으로 위장한 범죄행위다. 지식과 지능과 지성이 저항의 무기다.

 

불가역성은 시간의 진정한 객관성입니다. (...) 그래서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이 새로운 의지와 무기가 될 것이다. 저자의 사유는 증거와 논증으로 단단하게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신념과 주장이 아니라 을 제공한다. 저자가 구축하는 것은 지식의 체계이다.

 

내가 있는 곳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있을 때에는 내가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죠. 내가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앞으로 올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지금 죽음이 도래할 때는 더 이상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인간이 죽음 직전까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이다. 이 책은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모든 빛나는 경험이다. 저자의 사유는 새롭게 아름답다. 행복해서 기후붕괴를 잠시 잊는다.

 

내가 줄 수 있는 감동과 사랑은 적고, 폭염과 태풍과 인간의 어리석음과 과도한 욕망에 매일 누군가의 죽임당함을 전해 듣지만, 오늘은 두껍고 아름다운 이 책을 꽉 붙잡고,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며 살기 위한 호흡을 계속한다.

 

표지만큼 아름답고 음악처럼 위로가 되는, 감사한 철학이고 귀한 책이다. 철학서를 읽을 때면 의도하지 않아도 발췌독서가 된다. 아는 만큼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마침내 죽음이 찾아올 날까지, 매년 의식처럼 읽어도 새로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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