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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 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양재화 지음 / 어떤책 / 2023년 5월
평점 :
‘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부제를 읽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럴 수 있을까, 내 이유가 될 수도 있을까. 새삼스럽지만, 개별 어른으로 사는 일은 고단하다. 이런저런 모임이 있고 만들어지고 함께 할 친구/동료들이 늘 주변에 있던 시절이 문득 그립다.
체력이 별로라서, 관광도 유흥도 즐기지 않지만(못하지만), 여행조차 대단한 목적이 있거나 분명한 계획이 있는 삶은 아니었다. 순전히 여행을 목적으로 잘 다니지도 않는다. ‘그냥’ ‘노는 것’과 ‘쉬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니 ‘다크 투어’는 내게는 반갑고 편리한 여행 이유가 되어줄 수도 있다. 배우면서 하는 여행이라는 변명이 가능하니까. 이런 이기적인 욕구로 시작한 읽기가 나를 투어에 데려간 게 아니라 다크 투어를 내 삶에 데려다 놓았다.
우선, 타인의 죽음을 그저 관조하지 않는 태도, 불편하다고 외면하지 말아야 할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짧은 생에 다 배울 수 없는 인간의 역사처럼, 모르는 죽음, 애도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많고도 많다.
이 책은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제노사이드를 알려준다. 정말 아는 거라곤 한심할 정도로 적었다. 그럼에도 패턴은 늘 비슷한 것이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후짐 같아서 갑갑하고 ‘인간임’이 지겹기도 했다.
독재, 군부, 사기꾼 주로 이런 욕망에 충실한 뻔뻔한 남성 존재들이 타인의 인권을 멋대로 유린하고 빼앗고 죽인다. 가용 권력이 약한 남성들은 물론, 사회적 약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폐허 속엔 실종자들을 찾는 여성들이 있다.
칠레 북구 아타카마 사막에는 28년 동안 사막을 헤매며 소중한 이를 찾는 70세 여성이 있다. 그에게 시간이란 무슨 의미이며, 죽음이란 또 무엇일까. 찾지 못하면 죽을 수 없다는 그의 의지는 행복한 조우를 가능하게 해줄 것인가.
결코 알 수 없는 아픔을 아파하는 ‘나’는 그 공감을 어디서 배웠을까. 삶의 스승들을 가만히 반추해본다. 다크투어란 이름을 모를 적에도 방문했던 현장들,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줬던 사람들, 지금도 현장에서 저항하는 동료 시민들, 폭력은 폭력이고 억압은 억압이라고 분노하는 모든 분들. 이렇게 배워왔고 오늘도 배운다.
“공감도 학습이 필요한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훌륭한 선생이다.”
가족과 함께 하고 함께 배우는 여행도 중요한데 이번 휴가는 여행다운(?) 여행은 없는 휴가다. 반나절 방문과 산책과 식사로 구성된 미니멀 여행만 두 번. 삶 자체가 여행이라고 하면 너무 피곤하게 들려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어떤 시간은 여행의 시간이기도 하다고 변명 같은 위로를 해본다.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공간들에, 살해당한 사람들에, 무언가 특이한 점이라고는 없었다. 그러한 일들은 어느 날 우주에서 떨어진 미치광이 몇 명이 저지른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배운 것 중 오래 잊고 싶지 않은 내용은 발췌한 전 후 두 문단과 같다.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를, 가능한 내 일처럼, 우리 모두의 일처럼 잠시라도 공감하고 사소한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아우슈비츠는 가자 지구다, 킬링필드는 제주다, 혹은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다, 라는 인식이야말로 이 고통스러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값진 교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