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타 가족
브랜던 홉슨 지음, 이윤정 옮김 / 혜움이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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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루이스 어드리크 작품들을 읽었다.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더 모르는 선주민(원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그 세상을 상상해보는 귀한 기회였다. 반가운 우연처럼 <에코타 가족>을 만날 수 있어 뭉클하고 기뻤다.

 

체로키족의 일상과 신화와 고유한 세계를 경건하게 방문하는 경험이라면 행복했을 것이나, 실체 없는 인종주의는 이번에도 살해를 교사했다. 경찰은 본능적으로소년을 총으로 싸서 죽여도 처벌 받지 않을 특권이 있어야할까.

 

고통 속에 울부짖는 사람들 곁에서 웃어대는 놈들을 보며 저들의 영혼은 어쩌면 저토록 연민도 없고 오염되었는지 의아했단다.”

 

숨진 건 열다섯 살 레이-레이고, 망가진 건 가족들인데, 호흡을 밀어내는 내 숨이 가쁘다. 큰 슬픔은 아픔이 되고 병이 된다. 치매, 우울증, 자해적 인간관계, 약물중독, 가족들은 각자 그리고 함께 무너져간다.



 

막막한 풍경을 작가는 쓰다듬듯 풀어나간다. 큰 슬픔 이전의 더 큰 슬픔, 폭력과 각인된 트라우마, 상실과 깊은 상처는 치유를 위해 밖으로 끌려나오고, 다시 매듭지어진다. 회복에는 역사와 현실과 죽음과 영성과 알지 못하는 세계조차도 모두 필요했다.


 

인간의 언어로 기록을 남기지 못한 시기에도 인간이 경험한 것들은 살아남은 후손들의 유전자에 새겨졌을 것이다. 처음 만난 체로키 부족의 구전설화가 외계인 이야기 같지가 않다. 심연의 줄을 튕겨 감정을 떨리게 한다.

 

치유가 뭘까?”

 

죽고 싶지 않은 거요.”

 

나는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고 회복되는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겁쟁이로 사는 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문장들이지만, 치유와 회복과 용서로 가는 길이 내게는 조금 가파르고 빨랐다. 아들을 죽인,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경찰을 찾아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라면 연민조차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모닥불 모임은 한없이 부러웠다. 그리운 떠난 이들이 으로 다가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가 아니라는 것, 큰 슬픔과 아픔을 겪을 때 옆이 아닌 에 있어줄 존재들이 찾아온다는 것이 한참 부러웠다.


 

울고 싶고 아프지만 계속 읽게 되었다. 문자 이전의 언어로 전해 듣는 것처럼 이야기는 강력했다. 신화와 종교와 환상과 상상에 대해 강퍅한 판단 밖에 못했던 시절의 내가 내뱉은 설익은 말들이 미안했다.

 

나이가 들수록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복잡하고 복합적인 혼돈의 삶을 사는 누가 하는 말도, 하지 못하는 말도, 가능한 많이 믿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너무 슬퍼서 모른 척하고 싶었던 사자 이야기를, 무섭고 슬픈 제목 - The Removed - 을 가진, 용기 있고 아름다운 이 이야기와 함께 남긴다.


 

사자로 보이지도 않게 앙상한 체구의 그는, 그늘 하나 없는 작은 우리에 갇혀 더위에 시달리다가 문이 열려있어서 나가보았다. 평생 갇혀만 살았으니 멀리 갈 줄도 몰라 주변을 서성이다, 제 우리보다 시원한 풀숲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것도 잘못이라서, 허락되지 않은 삶이라서 사살 당했다.

 

앵커의 마지막 멘트는 별 다른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다였다. 인간에게 아무 피해도 입히지 않은 사자가 평생 갇혀서 굶주리고 구경거리가 되다가 살해되었는데. 다른 노력 따위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겠지. 납치, 감금 그 다음엔 살해. 인간이 잘 하는 흔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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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 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양재화 지음 / 어떤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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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부제를 읽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럴 수 있을까, 내 이유가 될 수도 있을까. 새삼스럽지만, 개별 어른으로 사는 일은 고단하다. 이런저런 모임이 있고 만들어지고 함께 할 친구/동료들이 늘 주변에 있던 시절이 문득 그립다.

 

체력이 별로라서, 관광도 유흥도 즐기지 않지만(못하지만), 여행조차 대단한 목적이 있거나 분명한 계획이 있는 삶은 아니었다. 순전히 여행을 목적으로 잘 다니지도 않는다. ‘그냥’ ‘노는 것쉬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니 다크 투어는 내게는 반갑고 편리한 여행 이유가 되어줄 수도 있다. 배우면서 하는 여행이라는 변명이 가능하니까. 이런 이기적인 욕구로 시작한 읽기가 나를 투어에 데려간 게 아니라 다크 투어를 내 삶에 데려다 놓았다.

 

우선, 타인의 죽음을 그저 관조하지 않는 태도, 불편하다고 외면하지 말아야 할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짧은 생에 다 배울 수 없는 인간의 역사처럼, 모르는 죽음, 애도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많고도 많다.



 

이 책은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제노사이드를 알려준다. 정말 아는 거라곤 한심할 정도로 적었다. 그럼에도 패턴은 늘 비슷한 것이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후짐 같아서 갑갑하고 인간임이 지겹기도 했다.



 

독재, 군부, 사기꾼 주로 이런 욕망에 충실한 뻔뻔한 남성 존재들이 타인의 인권을 멋대로 유린하고 빼앗고 죽인다. 가용 권력이 약한 남성들은 물론, 사회적 약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폐허 속엔 실종자들을 찾는 여성들이 있다.

 

칠레 북구 아타카마 사막에는 28년 동안 사막을 헤매며 소중한 이를 찾는 70세 여성이 있다. 그에게 시간이란 무슨 의미이며, 죽음이란 또 무엇일까. 찾지 못하면 죽을 수 없다는 그의 의지는 행복한 조우를 가능하게 해줄 것인가.

 

결코 알 수 없는 아픔을 아파하는 는 그 공감을 어디서 배웠을까. 삶의 스승들을 가만히 반추해본다. 다크투어란 이름을 모를 적에도 방문했던 현장들,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줬던 사람들, 지금도 현장에서 저항하는 동료 시민들, 폭력은 폭력이고 억압은 억압이라고 분노하는 모든 분들. 이렇게 배워왔고 오늘도 배운다.

 

공감도 학습이 필요한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훌륭한 선생이다.”


 

가족과 함께 하고 함께 배우는 여행도 중요한데 이번 휴가는 여행다운(?) 여행은 없는 휴가다. 반나절 방문과 산책과 식사로 구성된 미니멀 여행만 두 번. 삶 자체가 여행이라고 하면 너무 피곤하게 들려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어떤 시간은 여행의 시간이기도 하다고 변명 같은 위로를 해본다.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공간들에, 살해당한 사람들에, 무언가 특이한 점이라고는 없었다. 그러한 일들은 어느 날 우주에서 떨어진 미치광이 몇 명이 저지른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배운 것 중 오래 잊고 싶지 않은 내용은 발췌한 전 후 두 문단과 같다.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를, 가능한 내 일처럼, 우리 모두의 일처럼 잠시라도 공감하고 사소한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아우슈비츠는 가자 지구다, 킬링필드는 제주다, 혹은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 라는 인식이야말로 이 고통스러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값진 교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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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
페데리코 핀첼스타인 지음, 장현정 옮김 / 호밀밭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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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부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해전에 들었다. 한 국가가 아니가 전 세계가 우경화 - 극우 파시즘화 - 되고 있다는 경고였다. 미국 파시즘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한국의 현실을 바로 소환한다.

 

파시즘이야말로 진짜 민주주의다. 진실이란, 힘의 결과다!”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확산시킴으로써 정치적 힘을 얻는파시즘은 거짓말 대잔치다. 성공을 위해서는 진실에 관심 없는 언론과 진위 구분이 불가능한 유권자들이 필요하다(혹은 알지만 이익 계산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파시스트들에게는 그들만의 진실, 그들만의 합리성이 있었다. (...) 그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은 장악하거나 길들이거나 망가뜨리면 되고 유권자들은 생각도 공부도 책읽기도 모임도 대화도 어렵게 만들면 된다. 영리하고 세련된 파시스트들이라면 교묘하게 할 것이고 무식하고 무능한 권력이라면 뻔뻔하고 후지게 할 것이다.

 

파시즘이 비겁하게(?) 거짓말만 뿌려댈 리는 없다. 폭력과 혐오가 진짜 정체성이고 차별이 전술이다. 전통적인 대상을 공격할 수도 있고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있다. 가장 흔하고 반복적인 것은 익숙해서 쉬운 늘 차별하던 대상들이다.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은 포퓰리즘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물론 그 과정에 동원되는 것이 거짓말이다. 사회자본과 권력을 가진 파시스트들의 목소리는 사방에 울려 퍼지고, 증거가 있는 듯 지원받고, 가스라이팅에 성공해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을 이용해 목표한 제 이익을 챙긴다.

 

독재자는 국민공동체의 이름으로 행동했고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국민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여겨졌다.”

 

만인이 만인을 적으로 규정하는, 위선조차 거추장스러워하는, 진실마저 언제든 왜곡하고 오용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는 꼴을 보고 사는 시절, 가시적으로 타오르는 욕설과 조롱과 비난과 막말 대신 읽을 수 있는 서늘한 책이 귀하다.

 

정신 상태를 평가하거나 그를 그저 사기꾼으로 정형화하는 것보다는 체계적인 정치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민주적 삶의 현재와 미래에 더 중요하다.”


 

이렇게 깊고 짙은 증오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차별적 거짓말과 정치 폭력, 거짓이 진실과 뒤섞여 더 진실처럼 들린다는 현대 정치는 어떻게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거짓말이 힘을 얻을수록 현실이 험하고 사나워진다.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말보다 행동이 더 진실하니까. 그래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특정 시기에 발현한 현상을 헷갈리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집단적 가스라이팅이 게임처럼 유행하고, 적지 않은 대중이 정체성 정치를 하듯 지지를 보내는 시절에, 역사를 소환하고 복기하고자 하는 갑갑한 이들에게 눈앞의 많은 현상을 이해하고 욕을 참아볼 기회를 이 책이 준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에 대한 비판이 왜 단순한 형용사의 사용이나 욕설 정도로 그치고 마는지 그 이유를 자문해봐야 한다.”

 

이 작은 책이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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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마인드 -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내면의 힘
지나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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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를 진심으로 믿어 본 적은 없지만, 같은 외력과 고통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때론 참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건 경험으로 배웠다. 그렇다고 너는 왜 그렇게 나약하나, 더 잘 받아들일 수 없었나 등으로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스스로에겐 그런 짜증을 부릴 때도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성인이 조사 때마다 40% 이상이고, 자살률은 여러 해 1위이고, 출생률은 인구붕괴 수준이다. 집단자살 사회라고도 불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한 사회로도 호명된다. 그러니 아프고 힘든 걸 개인 탓을 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늘 무탈할 수 없어 마주하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살아가는 힘과 지혜는 궁금하고 부럽다. 경험을 통해서만 배우고 키울 수 있는 거라 더욱 그렇다. 자율신경계 장애와 만성피로증후군, 얼핏 아는 것도 같지만, 난치병 진단을 받고 겪으며 살아가는 경험은 전혀 다른 일이다.

 

오래 전 통증이 대단한 병에 걸렸을 때, 밤이면 통증이 심장으로 몰려들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호흡에만 집중했다. 심호흡하는 법, 긴장을 이완하는 훈련을 그 덕분에 익숙해지도록 할 수 있었다. 저자 역시 닥친 불행 앞에 유일하게 가능한 것을 찾아 집중한다.

 

심리정신과 교수로서 코어core 관련 단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코어 바디, 코어(핵심) 신념, 코어 마인드. 정신/심리적 고통을 좀 덜 수 있는 힘이라고 이해했다. 좀 더 키우고 단단하게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내 경험으로는 몸의 근육보다 키우기가 훨씬 더 어렵다(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 짐작하지만).

 

불안은 일렁이고 화는 치솟는 요즘에는, 그러느라 그나마 챙긴 체력도 정신력도 망가진다. 알지만 반복하는 자신이 짠하다. 프로 작심삼일러가 되고 있다. 훨씬 더 많은 강박이 있었는데, 많이 놓았다고 생각하지만, 살아간다는 것 갖가지 걱정과 근심이 통과하는 트랙을 달리는 것과 같다.


 

감정(마음)을 들볶지 말고, 의미/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가능한 지향하는 방식의 관계를 나 자신과 맺고, 실패와 좌절에 겁 내지 말고, 그럴 경우 다시 일어서고 걷는 법을 기억하기. 좀 더 차분하게 반응하며 살고 싶다. 대단한 일은 못하지만, 잔잔하게 덜 불행하고 싶다. 그래야 민폐도 덜 끼친다.

 


가장 인상적인 제안은 썩은 쌀가마니가 있다면 창고에서 꺼내서 버리라는 것,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growth) 그리고 수면에 관한 조언이다. 여름 불면은 여름이 지나면 낫겠지, 희망한다. 세상모르게 일 년에 하루 정도는 푹 자고 싶다. 작고 어려운 소원이다.

 

지나영 교수/의사께서는, 난치병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지지는 않기를, 단단한 코어를 잘 지키고 키우시며 사시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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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음, 김정훈 옮김 / 호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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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따지자면, 죽음에 더 가까운 이도 먼 이도 없지만, 나이가 높은 어머니 생신은 탄생보다 죽음에 대한 염려가 불쑥 치미는 조금은 서글픈 이벤트다. 돌아가셔서 슬픈 꿈을 생신 전날과 당일 날 꿨다. 불안감의 선명한 재현이다.



 

죽어가는 인간이 존재해 온 지 그토록 오래되었는데도 (...) 우리는 왜 산 자가 사라질 때마다, 마치 처음 일어난 사건이기라도 한 듯이 놀라는 걸까요?”

 

거듭 따지자면, 죽음에 순서란 없다. 그러니 다른 죽음에 대한 염려보다, 내 죽음에 대해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고 대비하는 준비는 필수다. 설명해 두어야 할, 전해야 할 어린 가족이 있다면 더구나.

 

우리는 죽어가면서 죽음을 겪고, 그것을 겪음으로 인해 죽습니다. (...) 마지막 숨을 내쉬는 동시에 죽는 것입니다. (...) 죽어서 죽습니다. (...) 앞의 말은 무화nihilisation의 순간적인 타격을 가리키고, 뒤의 말은 무Nihil의 영원성을 가리킵니다.”

 

폭염 속 태풍 소식처럼, 다소 어두워서 좋기도 하고 불안을 더하기도 하는 날,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달리, 음악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의 문장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철학에 담긴 진심은 참 품위가 있다. 덕분에 차분하게 진정이 된다.

 

죽음은 대상을 생각하는 사유로부터 대상 전체를 제거합니다. 죽음은 사유를 포함해 인간의 총체를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직면해야 할 가장 크고 무거운 진실은 죽음이다. 부활과 윤회를 믿지 않는 내게는 영원한 이별과 소멸이다. 그러니 동서고금 질문도 많고 답변도 많았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고심한다.

 

행위의 관점과 체험한 인생의 관점에서 보면 (...) 짓누르는 듯한 암흑을 삶에 던지는 것은 사실성이라는 낮의 선명함이고, 새벽의 첫 빛과 (...) 첫 희망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언젠가라는 여명 속에서입니다.”

 

그 과정은 지극히 지성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유와 의지와 삶 모두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이용당하게 된다. 그 틈을 파고드는 사기수법이 광신적인 종교 활동으로 위장한 범죄행위다. 지식과 지능과 지성이 저항의 무기다.

 

불가역성은 시간의 진정한 객관성입니다. (...) 그래서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이 새로운 의지와 무기가 될 것이다. 저자의 사유는 증거와 논증으로 단단하게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신념과 주장이 아니라 을 제공한다. 저자가 구축하는 것은 지식의 체계이다.

 

내가 있는 곳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있을 때에는 내가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죠. 내가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앞으로 올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지금 죽음이 도래할 때는 더 이상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인간이 죽음 직전까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이다. 이 책은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모든 빛나는 경험이다. 저자의 사유는 새롭게 아름답다. 행복해서 기후붕괴를 잠시 잊는다.

 

내가 줄 수 있는 감동과 사랑은 적고, 폭염과 태풍과 인간의 어리석음과 과도한 욕망에 매일 누군가의 죽임당함을 전해 듣지만, 오늘은 두껍고 아름다운 이 책을 꽉 붙잡고,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며 살기 위한 호흡을 계속한다.

 

표지만큼 아름답고 음악처럼 위로가 되는, 감사한 철학이고 귀한 책이다. 철학서를 읽을 때면 의도하지 않아도 발췌독서가 된다. 아는 만큼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마침내 죽음이 찾아올 날까지, 매년 의식처럼 읽어도 새로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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