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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살인법 - 독약,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닐 브래드버리 지음, 김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평점 :
‘독’에 대해 무서움만큼 흥미를 느낀 것은 화학을 모르던 어릴 적 문고판으로 만난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섬뜩하도록 고요한 범죄 방식은 추리 작품에 긴장을 더했다.
어떤 독인지 알아내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 과정이 치밀하고 섬세한 재미를 제공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독도, 분량을 달리하면 평범한 식재료와 일상 용품으로 사용 가능한 독도 있다는 반전 같은 지식이 신기했다.

범죄의 동기는 다양할 수 있지만, 독을 사용하려면 사전 계획이 필수이고, 대상자의 습관과 일상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고, 독약의 분량과 투여 방식 등 모든 것이 숨 막힐 만큼 철저해야 성공(?)한다.

어떤 독은 즉사를, 다른 독은 오랜 세월 지독한 고통을 겪으며 살다가 비참하게 죽게도 만든다. 문학 작품으로 만난 ‘독’을 이 책에서는 논픽션의 지식정보를 더해 만난다. 르네상스 시대 인류는 ‘독’에 관한 진지한 연구를 시작했다.
“(약을) 독으로 만드는 것은 투여량이다.”
그렇다면 한 방울로도 살인이 가능한 독은 무엇일까. 독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처리되어야할 물질일까.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은 것은 독일까, 동종 인간일까. 인간의 욕망과 의도와 거침없는 목표지향은 독보다 덜 유해할까.
“어떤 화학 물질을 본질적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 차이가 있다면 그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자의 의도에 있을 것이다. 생명을 구하려는 의도인가, 아니면 생명을 빼앗으려는 의도인가.”
독이 약이 되기도 하는 현실은 마치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라는 모순이 가득한 진짜 세상 같다. 살인은 멈춘 적이 없고, 독살은 가장 오래된 살해법이다. 지금은 당당하게 해양에 독을 투기한다고 발표하는 독살의 시대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화학물질들과 원소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잠재력 위험이 인간이 합성한 물질에 내포되어 있다.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 모르고 만든 모든 것이 인류 멸종을 위해 차근차근 쓰이고 있다. 인간 스스로에 의해.

역사 속 11건의 독살 사건들을 타크 투어처럼 경험한 독서였다. 책을 덮으니, 어쩌면 누군가 기록해줄 인간도 남지 않은 미래에, 인류 역사상 가장 다크할 독살이 현실에서 곧 시작되려 한다.
“리트비넨코의 혈액에서 발견된 폴로늄-210의 양은 26.5밀리그램이었다. 매우 적은 양이지만, 이 폴로늄이 그의 몸을 공격한 방사능의 양은 17만 5000장의 엑스선 사진을 한꺼번에 찍은 것과 맞먹는 양이었다. 폴로늄-210은 1밀리그램 미만의 극미량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리트비넨코가 이 물질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그 이전까지 이 물질이 살인 무기로 쓰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