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지금 - 전 세계가 주목하는 2022 최신 연구 트렌드
국립과천과학관 지음 / 시공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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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을 읽은 후 읽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다. ‘세상의 모든 과학을 담아 주셨다니 이미 좋아하는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위업이다전공학문을 싫어하지 않아 삶의 낭비가 줄었다고 여기며 사는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애호자는 못 되지만과학팬 정도는 되겠다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과학은 ‘science’라는 단어가 학문을 뜻할 때의 의미이기도 하다사람들이 인문과학사회과학자연과학이란 용어들은 익숙하게 사용하면서 과학을 사유 방식과 연구 방법이 아닌 자연과학 분야로 소급하는 것이 종종 불만이기도 하다.

 

분야별혹은 학자별로 궁금하고 관심 있는 내용을 찾아 순서 없이 읽기에 완벽한 책이다공저자들이 고심해서 주제들을 선별한 느낌이 든다아주 전문적이거나일상에서 경험할 일이 없는 과학은 없다그보다는 과학으로 유혹하려는 재밌고 매력적인 주제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대중문화와의 접점들특히 영화와 문학에 연계한 과학적 사실들은 모든 면에서 흥미롭다가령 20세기에 물리학과 동기들 7명이 함께 영화관에 가서 한 줄로 앉아 진지하게 즐긴 영화 <컨택트>의 추억과 근래에 읽은 SF문학을 모두 소환하며 즐길 수 있는 특이하게 재밌는 책이다.

분야가 다양하니 늘 모르던 것들새롭게 흥미로운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다가장 충격적인 것은 2018년 6세계보건기구에서 노화란 자연현상이 아니라 질병이라고 공식화해서 국제 질병 분류에 포함시킨 것이다. ‘좀비세포로 불리는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여러 기술이 연구 중이라고 한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이 반갑지 않은 이유가 건강하게 끝까지 살 가능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수명을 과학기술로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누군가에겐 고대하던 소식일 것이다.

 

미래 사회가 무척 궁금한 나도 조금쯤은 솔깃하지만 기후격변으로 인한 재해와 부정의하게 가해지는 환경재난의 피해와 종식되지 않는 세계 곳곳의 전쟁들과 극심해지기만 하는 빈부격차가 심화될 미래라면 오래 목격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거란 생각도 한다.

 

과학이니 책의 내용을 질문 형식으로 바꿔 읽어 보았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대부분의 심리적 활동이 실은 뇌를 구성하는 세포 즉 뉴런들의 광대한 네트워크 위를 흐르는 전기화학적 신호일 뿐이라는 것은 어떤 메시지로 들리는가.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도 디자인이라 한다면디자인의 가치는 사람의 경험을 혁신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유전정보를 미리 알고 질병 유발 유전 요인을 제가하거나 더 나은’ 우성 유전자를 갖게 하는 맞춤형 아기의 출생은 어떤 도덕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 있나.

 

슈퍼 근육 돼지뿔 없는 소인간 장기 생산용 돼지갈변 안 되는 사과맥주 맛을 높이는 효모코로나19 진단키트에 활용된 유전자가위(편집기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계지적생명체탐사Search for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SETI의 시발점인 된 아레시보 메시지에 기회가 있었다면 담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심채경 연구원도 참여하는 미국의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젝트는 2030년을 목표로 한 화성 유인’ 탐사 계획이다달 표면 거주 시설건설거주에 필요한 달 현장에서의 자원 확보달 표면 및 달 궤도선에서의 장기 체류 등이 중요 임무이다인간이 달에 가서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류는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로 생물 종 하나쯤은 쉽게 없앨 수 있다대상국가의 농업을 망칠 목적으로 썩은 과일이 아닌 정상 과일을 먹는 초파리도 만들 수 있다유전자조작된 생물에서 태어난 돌연변이 유전자가 인간으로 건너올 지도 모른다예상할 수 있는 위험성은 사용자 탓인가 기술 자체인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차 보고서에 따르면지구온난화가 인류의 책임일 가능성이 95% 이상이라 한다대규모로 기후조작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은 가능할까혹은 변해야 하는 건 기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까.

 

- 2020년 지구는이산화탄소 농도는 측정 이래 최대였으며 코로나19와 함께 호주캘리포니아러시아의 산불동아시아 폭우허리케인과 태풍 등으로 최악의 자연재해를 겪었다이제 시작이라고 한다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변화해야할 것들은 무엇일까.

 

대중이 과학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과학 식자율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과학 대중화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과학기술 시민권Scientific Citizenship이라는 개념과 노력이 있어왔다사람들이 과학을 잘 알면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될까.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자 과학과 미래Science & Future의 약자를 의미하는 SF의 기능과 영향은 무엇일까. SF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과학에 대한 흥미도와 비례할까. SF 작가들이 과학자들보다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사회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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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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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가 그려낸 SF 세계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책소개를 읽지 않고 대본집만 읽어 보았다소재와 상상력이란 독자의 취향과 공명을 해야 반짝빛나기도 하는 요소들인데 표지의 한 문장으로 이미 작품에 더 바짝 다가가고 싶은 나는 마치 기대라고 하고 있었던 상상력인 듯 작가가 내어주는 이야기들에 즐겁게 말려 들어가기만 한다환영목소리손톱 사이의 새싹.
 
역시미치는 중인 걸까.”
 
일상의 미스터리출생의 미스터리실종 미스터리가 촘촘하고 자연스러운 속도로 전개된다가독성과 흡인력은 말할 필요가 없다그렇다고 사건들의 해결에 골몰하느라 불친절하게 일상과 인물들을 스쳐 달리는 방식도 아니다. ‘가만히’ 잠시 정지한 듯한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비밀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것이라고 했다그렇게 벗겨 낸 세상의 비밀을 한 겹씩 먹으면어떤 비밀은 소화되고 흡수되어 양분이 되고어떤 비밀은 몸 구석구석에 염증을 만든다.”
 
주인공 나인이 일상에서 만난 미스터리는 자신의 출생의 미스터리와 함께 풀려 나간다기발함은 물론이고 청량한 숲향기를 맡는 듯 선하면서도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교묘하고 섬세한 설정은 너무나 새로워 이질적이기도 하고효능이 좋은 신약을 삼킨 듯 몸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네가 듣고 있는 이상한 소리그거 식물이 대화하는 소리야그게 들리는 건 너도 식물이라서야좀 많이 진화하긴 했지만.”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도 모두 중요하고 각자의 서사도 중대하다대본집으로 받았으니 영상화되는 상상도 해보는데아쉽게도 캐릭터들은 멋진데 이입할 배우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기존의 여러 이미지가 중첩된 이들 말고 연기 잘하는 신인들이 대거 기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리가 들린다니까 머지않았구나짐작은 했었거든. (...) 어쨌든 탄생이 다를 뿐이지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야너도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어절대로 다르지 않아. (...) 너무 오래 부정하지도 말고.”
 
존재로서 우리 모두 이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는 동일 원소들의 결합이지만, ‘개체로서는 고유한 존재이며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오랜 세월 위계적인 분류 체계를 만들었고폭력적으로 진화된 배제와 차별은 인간 종 내부에서도 구체적인 구분을 다져왔다그러니 사실이자 위로인 지모의 저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다이 작품의 갈등은 존재 깊숙한본원적인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떨리고 기대된다.
 
달라지는 게 있는가물론 있다아니이미 달라진 게 있다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살아 있기에 소리를 내는 다른 생명체처럼 식물도 그렇게 소리를 낸다. (..) 각자의 방식으로 숨쉬고 있기에 소리를 낸다. (...) 환청이 아니니 다행이었다.”
 
나인의 곁에 머무는 지인들의 반응들에 주로 안도하며자라나는 중이라는 건이렇게 유연하고 보드랍고 그래서 비폭력적일 수밖에 없다고새삼스럽게 어른들이 가하는 딱딱한 폭력의 언행들을 생각해본다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마치 식물처럼 제가 태어난 곳을 떠나지 못하고 견뎌야하는 인간의 아이들 역시그래서 온갖 상처를 받아 안은 식물의 모습 같다고.
 
무관심과 잘못된 양육에 식물이 그러하듯 죽어 버리기도 하고다행히 아주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성장하기도 하고흔히 사용한 어린이가 새싹이라는 표현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그들의 처지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고 느낀다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 참 아프다.

그리고 또 다른 미스터리 스릴러로 들어서는 시작이다이전의 내용들이 초록하고 파란 기분좋게 시원한 온도의 이야기들이었다면이제부터는 뜨겁고 붉은 색채들이 펼쳐진다그 과정에서는 검게 타버린 어두운 순간들도 등장한다심장의 온도는 올라가고 손가락은 차가워지는 기분으로 읽는다.
 
나인은 그 나무가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는다른 식물들과 다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나무는 아주 오래전에 죽은 인간이었다금옥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 금옥이 일본군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야밤에 산을 넘던 때에금옥은 열두 살이던 해에 이 산을 넘다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는데그때 한두 해밖에 자라지 않은 이 어린 나무가 금옥의 상처를 관통했다숨이 꺼져 가던 그 순간에 금옥은 자신의 살결에 들러붙는 나무를 느꼈다.”
 
12살 어린 금옥의 피를 받아 자란 나무영혼이 나가지 못하고 얽매이게 된 금옥나이 탓을 또 하자면 울컥한다무섭고 아팠겠지그리고 어쩌면 이해를 못했겠지왜 인간들이 악착같이 죽고 죽여야 하는 지를일본군이 아시아 지역에서 학살한 인명은 얼마나 될까돈 주고 기록에서 삭제한 것들을 빼더라도.
 
작품의 주인공이 외계인으로 설정되었는데읽다 보니 외계생명체라는 SF적 느낌보다는성장하며 사회를 배워가는 부모에게서 분리되어 자아를 찾는 모든 아이들은 한동안 자신을 이 세상에 적응 못한 외계인처럼 느낄 수 있겠단 그런 생각이 든다익숙한 것들도 낯설어지고성장하느라 피곤하고잘 알고 있다고 믿은 것들도 의심이 되고나와 타인들을 알아 가는 일도 힘겹고.
 
겉으로 보면 모르지만 당사자만은 느낄 수 있는 그 이질감낯섦생경함피곤함이곳에서 난데없이 추방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혹은 납치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 불안은 넝쿨처럼 서로를 옭아맸다서로의 목숨을 반절씩 나누어 가진 양 굴었다.”
 
그리고 나무에 얽매인나무가 된혹은 금옥인 채로 살아가는 나무가 나인에게 알려 준다인간들을그들이 한 짓을 다 들었다고잔인함조롱분노절망슬픔부정공포여기에 유골이 있다고 그리고 이름들을 들었다고.
 
나인의 분위기와 출생능력 이외에 나인의 성격에 대해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알게 된다보고도 못 본 착알아도 모르는 척 하지 않는세상에서 현명하고 신중하다고 하는 남 일은 가능한 모른 척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되돌아올 반응과 피해를 짐작하면서도 이렇게 반듯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역시 외계인이라서 일까지구 인간에 대한 작가의 평가가 궁금했다잠시.
 
본인만 정의롭지.”
차만 다니는 길에 쓰레기 좀 버린다고 누가 피해 보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좀 있지.”
애도 없는 아가씨가 뭘 안다고 자꾸 말을 얹어.”
땅값 걱정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나인은 답답하면 못 참는 성격분하고 억울하면 답답해서 잠도 못 자고밥도 못 먹다 속병 나는 성격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피곤하게 살겠다는 성격이다승택과 같은 지인들이 이해할 수 없어 하면서도 싫지 않다고 하는 것이 따스한 온기 같은 격려이다이런 타고난 성격 이외에 나인에게 다른 능력도 있을까외계인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일수록 나인은 인간들의 능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인간만이 타고난 힘나 역시 궁금하다.
 
살아가나는 건적응한다는 건익숙해진다는 건버텨야 한다는 건존속한다는 건그러니까 끈질기게 존재한다는 건세계라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유지한다는 건 지킨다는 것이고 동시에 버린다는 것이다.”
 
듣긴 했지만 믿지 않았던 말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는... 그 말이 얼마간이라도 힘을 가졌던 시절의 믿음이 아니라나는 현대과학의 지식정보로 그 말을 믿는다그런데 안다는 것은알기만 한다는 것도 힘이 있는 것일까언제나 그 점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이건 땅의 기억이다땅에 뿌리내린 모든 것의 기억이기도 하다. (...) 아주 작은 입자가 3차원 지평 위에서 홀로그램처럼 불완전하게 형체를 만들고 있었다. (...) 입자들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리의 파동을 따라 흩어졌다가 뭉치기를 반복했다.”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인간들이 있다면나인은 그 대척에 선 존재이다사람을 살리는 일에 이유를 두지 않는다그 사람이 죽었든 살았든 모두 구하고자 한다.
 
이런 인물이 완전 낯설지 않는 것이 살면서 내가 만난 행운일까이런 이들은 의외로 많다강하고 선한굳이 산 사람들을 위한 목적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죽은 자들 역시 사과 받고 한을 풀고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이들.
 
반대로 올바르게 쓰일 줄 모르는 힘은 재앙과 다르지 않다.’
 
한번 넘어가면 다시는 청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는 거지그 영역의 경계가 점이 지대야나는 이 점이 지대를 넘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 죄책감의 유효한 기간. (...) 자신이 저지른 일이 죄인 걸 깨닫고그 죄를 평생토록 어깨에 짊어지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거지. (...) 고통스럽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니겠니?”
 
내 기준으로는 이미 많은 스포일러를 남발해 버렸지만좋은 문학은 내용을 안다고 재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결론으로 가면작가가 전하는 뭉클하고 단단한 메시지들을 만나게 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마음이 데워지기도 한다.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두어야 하는 건 무엇인지 다시 떠올리게 한다누군가는 다음 세대에게 진실을 알려 줘야 한다면누구라도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일이다그래야 모두가 야만성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다지우고 없애면 사라졌다고 안심할 이들이 있지만기억하는 이가 있다면의외로 진실은 힘이 세서 드러나기 시작하면 야만적이 권력으로도 중단할 수 없는 특이점에 다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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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홈트로 내 몸이 편해졌습니다 -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마음챙김의 시작
안미라 지음 / 더난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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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방식과 다르게 변화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기회나 계기가 간절하다물론 의지력이 강해서 생각대로 살 수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승무원이었던 저자의 경험은 극적인 편에 속한다난기류로 사고를 겪으며 상처를 입고 이우에도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었다.

 

다행히 현명한 저자는 아픈 몸의 통증을 치료하며 내내 다쳐있던 마음도 더불어 치유하기로 한다직장 생활을 충실히 하지만 매일 음주를 하던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간들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14살의 내면아이를 만난다.

 

부모의 이혼한부모와도 살지 못하고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지고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말까지 듣는다사정을 정확히 알아도 섭섭한 상황인데단절과도 같은 관계와 환경의 변화는 그대로 상처로 남았다.

 

무척 흔한 병명이나 도무지 공허하게 들려서 감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병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다같은 진단을 받아도 개별 증상원인효과 있는 치료방법이 다 다를 수 있다자꾸 울컥하고 눈물이 나고 갑갑하고 죽을 것 같은내게만 실재하는 고통과 위협일 수 있다.

 

정신과 육체는엄밀히 말하면 정신 작용을 담당하는 ’ 역시 육체이니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상호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다예전에는 나는 짜증이 왜 이렇게 자주 나지하고 그런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적어 보다가그런 경우에 그저 배가 고팠구나즉 혈당이 낮았구나하는 간단한 원인을 찾아낸 적이 있다성격 탓이 아니라 혈당수치 탓.

 

그러니 우리 몸에 일어나는 여러 트러블을 잘 관찰하면 역으로 정신의 건강진단을 해볼 수도 있다저자 역시 잦은 알러지와 복통이 잦았다고 하니기분이 나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의 식사가 소화가 안 되고 체증이 생기는 것처럼어린 시절 강요당해 억지로 먹어야했던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이어지는 것처럼혹시 기억해낼 수 있다면 적어도 마음은 편해진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이유가 있었네” “그랬나 보다” “그러려니 하자” 등등은 나도 타인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꽤 유용한 툴tool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기회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도움이 될 내용을 잘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마음 챙김의 과정을 읽으며 나도 마음을 좀 더 낮게 내려놓아본다상대가 선의로 해주는 말에도 예의바른 반응을 보이지만 생각은 뾰족하게 방법의 유효성부터 분석하려고 드는 이런 버릇은 사기당하는 일은 잘 피할지 몰라도 하여간 내 맘에도 들지 않는 습관이기도 하다.

 

운동으로 몸을 돌보고 명상으로 감정을 가라앉히고그제 어제 연이어 몸을 잘 쓰는근력 키우며 멋지게 사는 이들을 만난 뒤라 이어지는 여러 생각들이 많다자고 깨면 지인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고자가격리를 당해 일상이 중단되고나이 드신 부모님들의 서글픈 소식들이 들리고판데믹이라 아니라도 저자의 말처럼 당연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이 세상의 진실이다.

 

나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어주길 원했다하지만 내가 슬프고 힘들다고 말할 때 그저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무척 힘들었다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 나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미라야 괜찮니...?’ 홀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은 실은 걷기 명상으로 시작한 것이다. 2000년 대 초반 어느 날 틱낫한 승려를 만나 시끄러운 마음으로 조용한 방에 앉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당돌하게 물었더니 가르쳐준 명상의 방식이다오른발왼발한 발씩 내 속도로 앞으로.

 

부디 모두가 원하는 곳에 있길원하는 곳으로 다가가길도착할 힘이 충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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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체력왕 - 땀 흘리는 여자들의 근력 연대기
강소희.이아리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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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국가주도 엘리트 스포츠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박세리의 에세이를 읽고오늘은 타이틀과 메달 기록이 없는생활과 생존을 위한 중요한 근력연대이야기를 읽는다제목에 이 들어있으니 이쪽이 더 야심만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표지를 보면 판데믹 시절 금기시되는 비말 아랑곳없이 큰 소리 응원을 하고 싶은 기분이다.

 

펼쳐본 내용은 모두 속 시원한 얘기들은 아니다어째서 어딜 가나 이런 별로인 남성들이 많은가 의아할 만큼 별로인 경험담들도 있다운동을 배우고 싶으나 성적 대상화이죽거림비웃음불공평한 시선과 처우로 배워야할 장소를 고를 수 없었던 여성들의 성장과 경험담들은 여전히 비슷비슷하게 닮아 있다이럴 때 필요한 게 없으면 만들면 되지!”란 호기인가.

 

다행히 여성 사범에게 배울 수 있는 도장을 찾아 간 저자의 체험기가 생생해서 재밌다.

 

뼈와 근육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무지했던 나는 (...)”

 

원치 않는 상대로부터 생각보다 쉽게 내 몸을 분리하는 동작이 내 삶의 경험들을 작게나마 전복시키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보여지는 몸이 아닌 기능하는 몸으로 롤 모델이 되는 여성들을 훨씬 더 많이 보고 싶다그들을 따라 몸을 굴리고 내던지고 겨루고 버티면서 강해지는 여자들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기를몸을 쓰는 기쁨을 알아버린 사람은 바라고 또 바란다.”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우는’ 여가여배 종목을 선정하는 기준은 접근성이라고 한다접근성이 쉬운 것이 아니라 힘든 운동 위주이다그동안 진행한 클래스는 주짓수농구스케이트보드축구배구스윙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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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인 나는 다른 많은 분들도 절감하시겠지만 체력과 지구력이 모든 일의 기본이고 가장 필수적이라는 것을 안다단지 운동할 때만 필요한 것들이 아니다내가 아는 한 만화가는 체성분분석에서 근육량이 많이 나와서 안심하고 연재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고 한다세상의 모든 노동은 집중력과 지구력을 요구하고 운동을 통해 길러진 근력과 체력으로 이를 유지 강화할 수 있다 이래놓고 산책과 계단만 오르내리는 모순덩어리 나.

 

이에 더해 저자는 운동을 하고 나서는 완급 조절이 가능해져서 좋다고 한다버겁고 갑갑할 때 생각을 멈추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다시 난제를 해결하는 추진력을 얻는 순환내 갑갑증도 운동으로 풀 수밖에 없는 건가플랭크와 스쿼트를 다시 진지하게 해볼까 하던 거쉬운 거만 생각나는 이 게으름.

 

마른 몸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하다그러나 요즘 내게는 몸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기능하는 몸강한 몸을 가진 여자들을 많이 보게 된 탓이리라. (...) 나도 그렇게 크고 강한 본새를 지녀야지. (...) 내 허벅지는 이미 굵으니까 이제 근사한 근육만 입혀주면 되겠다.”

 

보고 듣고 만나고 현존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그러니 저체중 영양실조 상태인 여성들을 끊임없이 등장시키는 미디어를 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떤 의미로 이미지와 영상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격리당한 기능하는 몸을 가진근수저들은 현실에서 별 탈 없이 살고 있다운동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다소 불순한(?) 동기로 - ‘더 오래 놀고 싶다’ 등등 운동을 하는 것도 신나는 즐거운 목표이다.

 

몸의 기본값이 지금보다 더 다양해지기를주름만 흰머리의 수가 계절의 순환처럼 읽히기를몸에 대한 시선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이 글은 나의 오랜 반성이자 앞으로의 다짐이다.”

 

아무리 간단한 운동이라도 계획과 생각은 주로 방해가 된다 반백년 살아본 경험에서변명같지만스쿼트플랭크계단오르내리기산책은 그런 이유에서 가장 오래 남은 운동 습관이기도 하다가능한 최대한 준비과정 없이 그냥 바로 할 수 있는 운동들물론 근력을 키우기 위한기술을 겸비한 다른 신나는 운동들을 하시면 더 좋다어쨌든 운동은 그냥 하는 거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일단 해보는 것의 힘은 세다.”

 

그리고 한국처럼 병리적으로 성취 지향적인 삶을 전체주의적으로 강요받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경험이 있다. ‘실패라는 경력실패도 경력이고 고맙게도 고스란히 경험으로 쌓인다아무 것도 안 한 것보다 백만 배는 더 여러 가지를 배운다존경하는 예술가이자 작가의 말을 만나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이것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무조건 기분 좋아지는 걸 저장해두는 거.” 이반지하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불안으로 넘어 갈 때나를 증명하는 일의 고단함이 불안과 합체되지 않도록 일시 정지 버튼 누르기.

 

다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움직임이자 활동인 걷기산책이다세상에서 이보다 더 높은 확률로 행복해지는 일을 아직 모른다오른발왼발 내딛는 일은 책장을 한장두장 넘기는 것과도 비슷하다내 속도에 따라 장면이 달라지고 그것을 경험한 나도 달라지고.

 

좋은 이들 개들 포함 과 함께 하는 거라면 더 좋겠지만나는 훌쩍 나가는 것을 좋아하니일정을 등록하고 시간을 맞추고 기다리고 하는 일은 조금 벅차다얄팍한 성품에 깊이가 생기고 좀 더 깜냥이 커진 인간이 되면 어울려서 뭘 하는 일을 진득하니 해보고도 싶다이름조차 멋진 #슬로우하이킹클럽

 

불안과 수명장애를 가진 분들이 공감할 중요한 이야기 나눔으로 벌써 다 읽어버린 아쉬움을 달랜다이 책을 오래 즐기며 읽고 싶은 분들은 애써 굳이 나누어 주의 깊게 읽으셔야 한다.

 

누군가는 정신과 약에 의존하지 말고 의지와 운동으로 이겨내는 게 좋지 않으냐고 말한다글쎄나는 약으로 제멋대로 나대는 교감 신경을 가라앉히는 게 좋다잠을 자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잠들지 못하는 고통 대신 약의 도움을 받아 쉬이 잠드는 편이 좋다그렇게 주말의 오전이 생기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게 좋다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속 가오나시처럼 끝없이 먹고 또 먹는 밤끈적하고 지저분한 잠에서 때어나지 못하는 아침이 찾아와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게 된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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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 인생은 리치하게
박세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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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성기일 때는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좋아하기까지는 되지 않았다국가가 주도하는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 국가주의 성공 모델로 활용되는 것도 IMF라는 금융범죄를 책임과 처벌이 끝나지 전에 두루뭉술하게 함께 극복하자는 메시지에 등장하는 것도 별로였다온갖 화학약품을 동원해야 관리되는 장소를 요구하는 골프라는 스포츠 자체에 대한 거부도 있었다.

 

TV를 잘 안 보는 걸 아는 친구가 한 프로그램을 보라고 추천해줘서 보게 된 것이 <노는 언니>였다국가대표메달리스트 여성 선수들이 나와 잘 먹고 잘 놀고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한참을 봐도 막 불편하지가 않았다외모에 대한 강박이 최강도인 한국에서 이 언니들은 세간의 청순가련 따위 일고의 가치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잘 쓸 줄 알고 근육의 쓰임에 정통하고 원하는 목표를 위해 땀 흘리는 멋진 언니들이 가득했다성취 여부를 따지기보다 인간으로서 사는 고단함을 가감 없이 나누는 대화도 좋았다박세리는 그 중에서도 큰 언니로서돈이 아니라 존재로 경험으로 그들과 함께였다.

 

책임은 줄지 않았지만 넉넉하게 존재하는자주 웃는자기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더 많이 잘 들어주는 그가 좋아졌다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보이는 일과는 또 달리 책이란 자신의 말을 정확히 전하는 일이고 기록으로 남을 일인데출간 소식에 궁금하고 반가웠다화면에서 다정하고 넉넉한 인간으로 느껴졌던 그의 문장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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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서부터 웃었다먹방 콘텐츠는 싫어하지만 먹는 걸 솔직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좋다뭔가 유쾌하고 신나고 반짝거리는 생명력이 있다고 느낀다더구나 삶은 땅콩을 사준다면 아빠랑 골프 치러 가겠다는 초3의 거래는 귀엽고 고소하다삶은 땅콩과 바꾼 골프 체험세리박은 그렇게 시작했다.

 

일기나 회고담 에세이 정도일 거라 기대를 낮춰 읽기 시작했는데그런 오만함은 얼른 버려야겠다고민도 생각도 깊고 삶의 일관성도 뚜렷하고 무엇보다 ’, ‘내 삶’ ‘내 사람의 테두리에만 머물지도 않는다세상을 넓게 살고 좋게 만드는 일들에 도전하고 나는 엄두도 못 낼 에너지로 주위 사람들을 살피고 행복하게 만든다리치rich!

 

오늘의 절망은 오늘의 것으로 묻어둘 것.”

 

나는 아주 어리석은 짓들을 자주하는 인간이다예전에는 아프고 힘들어 2박 3일 휴가를 가서첫 날은 두고 온 일 걱정에 허비하고 다음 날은 돌아가서 할 일 걱정에 허비했다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다행히 그 경험을 교훈 삼아 반복은 없다고 경계는 한다골프를 통해 배웠다고 하는데 골프가 삶이었으니삶을 통해 배운 것이 터울컥했다.

 

이제 짐 안 싸도 된다!”

 

24년 선수 생활 끝에 박세리에게 처음 든 생각이다얼마나 후련할까아주 솔직하게 섭섭함보다 해방감이 들었다고 한다나는 이제 누가 나보고 시험보라는 사람 없겠다!” “이제는 매달 공항에 안 가도 된다!” 하고 마음이 둥둥 떠올랐던 장면들이 있다조금쯤은 공감한다그러니제발 이제 뭐 할 거냐고 묻지 마시길별 진지한 관심도 없으면서.

 

사람들아나 조금만 쉬자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깁시다.”

 

벌써 이만큼 읽었나 싶게 고속으로 책장이 넘어간다거의 음성지원 수준의 솔직하고 간명한 문장들이다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은데여전히 세 줄씩 늘어지는 문장만강요도 주장도 없는 경험을 드러내는 솔직함이 이 책과 저자의 가장 큰 장점이라 느낀다재밌고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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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언니>를 일부 시청한 것 이외에 출연한 다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줄 몰랐다개농장유기견입양에 대한 진지한 내용을 담았다이 언니는 자신이 경험한 것과 변화에 늘 솔직한가 보다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복잡하고 난처해 보였던 힘겨운 문제들과 깊은 고민들을 술술 잘도 쓴다부럽고 행복하다.

 

새로운 개가 구조되어 들어오면 언젠가는 죽음으로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매일 새로운 피드로 올라온다. (...) 저 아이들 중에 단 한 마리라도 내가 구할 수 있다면(...).”

 

이미 아픈 아이의 보호자이면서 다시 아파서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입양하는 용기부디 돈 많아 그런다이런 발언은 삼가 주길 바란다그래서 떡 삼 남매모찌, 찹시루가 탄생했다.

 

보호소의 강아지를 입양해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많이 받는다고맙다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안다.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럽다동물을 입양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서 버려진 아이들이 또다시 버려지는 일을 겪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혹시 나중에 같이 살고 싶은 남자가 생겼는데 강아지를 싫어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명쾌하다내 가족이 싫다는 남자랑 같이 살아야 할까? (...) 각자 맞는 사람을 찾읍시다후후.”

 

마음이 무거워지려다 대신 너무 웃어서 목이 아프다솔직담백명쾌 그리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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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레전드라 불리는이런 솔직한 박세리에게도 역시나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고 한다. 24년 동안그래서 성취를 바탕으로 한 행복 이외의 삶을 알았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

 

은퇴를 하고 방송을 시작하고 사업을 하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해설위원을 해보니 각각의 영역에 고유한 보람과 성취감이 존재했다세상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로 가득하단 말인가.”

 

박세리의 세상은 재미있는 일로 가득한 곳이다다른 어른들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해주면 참 좋을 텐데그러면 아이들이 세상이란 무슨 일을 해도 고유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게 당연한 곳이구나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현실은 바라는 대로 바뀌기 마련이다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지 못할 이유들이란 무엇일까.

 

인생의 법칙은 때로 굉장히 단순하다나를 믿고나는 지키며 솔직하게 나아가면 된다물론 아무리 단순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일 수 있다그래도 항상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러는 건 다 네 걱정 때문이라고네가 제대로 살아야하기 때문이라고.’ 이런 말 대신 양육자들은 다른 말을 배웠으면 한다자신의 삶은 당사자에게만 온전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그래야 하고그래서 자신이 고민해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행위들은 간섭이자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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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가 받는 단골 질문 1번은 바로 징크스에 대한 것이다나도 정말 지겹도록 자주 이 질문을 받았다기대를 저버려서 죄송하지만 나는 징크스를 키우지 않는다.”

 

팬심이 크게 자라려한다징크스는 변명과 많이 닮았다전혀 상관없는 원인을 찾아 스토리를 만드는 일인데이러면 정확한 분석도 못하니 고칠 수도 개선할 수도 없게 된다나는 징크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과는 어떤 공동 업무도 하고 싶지 않다.

 

다이어트 이야기외모 이야기가 나오니 레전드 급이라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외모 평가를 안 했을 리가 없다 싶다재밌게 읽다가 화악 짜증이... 그리고 계속 읽다 또 웃었다.

 

이 책이 나올 때쯤 내 몸무게가 어떤 숫자를 가리킬지 알 수 없으므로 다이어트 성공담을 들려드리기는 어렵겠다. (...)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서 즐기며 살기 위해 건강을 조금 챙겨보자는 의미 정도랄까남들 보기에 과체중으로 보이면 어떤가. (...) 내 몸은 나의 것이니 기준도 내가 정하면 된다.”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서’ ‘건강을 조금 챙겨보자라는 구절에 한참 웃었다. ‘많이와 조금을 이 순서로 쓰다니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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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세리는 방송 콘텐츠라고 여겼는데그는 확실한 기준과 원칙과 철학을 가진 방송인이다그 내용들은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직업윤리이기도 하다뭐 이렇게 가진 게 많아싶은 사람이다.

 

새로운 프레임이라고 해서 내가 그 틀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솔직하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다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제일 중요한 것은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 반드시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 선을 넘지 않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 애매할 때는 직접 물어보면 된다섣불리 짐작만으로 판단하고 말을 꺼냈다가는 오해만 커진다. (...) 꼭 필요한 말은 하되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한 뒤에 솔직한 (...) 결국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진정으로 솔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위 눈치가 없고 의사소통은 언어가 가장 편한 나는 속마음을내 기분을 알아 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어렵다그런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미안하게도 없다말로 글로 하는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눈치가 없는 것이 눈치를 안 보고 살아도 되었던 상황의 덕이 있는 것처럼솔직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게 못하게 만든 시간이 있는 것이다그래도 어떻게든 같이 연습을 하자그게 가장 확실하고 쉬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니까 초능력은 배울 수도 구매할 수도 없다.

 

나는 언제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고주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서로를 기둥 삼아 때론 기대고받쳐주고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박세리가 사는 세상은 재밌을 뿐더러모두가 이런 사람들이라고 한다우리 모두가 꼭 이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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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서 궁금했던 반가운 <노는 언니이야기도 있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고충을 나누다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 (...) 은퇴와 동시에 현실은 고단하고 그 명예조차 쉽게 잊힌 채 아픈 몸만 남은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 명예만을 위해 몸을 갈아 넣으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 더 오랫동안 그들의 성취를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바로 얼마 전의 올림픽 이야기까지 박세리의 삶은 늘 현재진행형이다무척 분노했던 이슈를 딱 집에 담아 주니 비 오는 날 여기저기 통증이 잠시 사라지듯 마음이 기쁘다.

 

똑같은 경기를 하는데도 여자 선수들은 늘 몸에 딱 달라붙거나 너무 짧아서 움직임이 불편한 유니폼을 입도록 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유니폼일까?”

 

직업과 계층과 학력과 거의 모든 것에 관계없이 한국은 관음적이고 폭력적인 성별관계가 공고하다스쳐 지나간 기사 제목에 모 학교 교장이 불법촬영을 목적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다 구속되었다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특별한 일이 아니다. IT 강국휴대폰 보급률 1위 국가인 한국의 휴대폰은 성범죄자들의 편리한 수단이 되었다.

 

디지털 범죄에 대한 법개정을 맡은 법사위 소속 의원들 중년 남성들 중 몇몇은 정당과 관계없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들이 예술이고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발언했다여성의 육체를 남성의 눈요기로 사용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그 역할을 거부하고 경기에 편한 옷을 입어 몸매를 감추는 일이 도리어 범죄가 되는 것이다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 선수단에게 비키니가 아닌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1500 유로 벌금이 부가되었다.

 

더 기막힌 것은 이중 잣대를 제 맘대로 편한 대로 들이대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너무 짧으면 왜 여자 선수가 머리가 짧냐고 비난하고머리카락을 기르고 화장을 하면 선수가 운동은 안 하고 꾸미는 데나 신경 쓴다고 비난한다. (...) 마음이 무겁다여전히 후배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남이 자기 몸에 뭘 하건 타인은 평가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대신 시선을 스스로에게 좀 돌려서 흉측하게 돌출하는 생각을 좀 다듬어 보는 건 어떤가이왕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답게 뇌를 써보는 일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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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 (...) 그렇게 조금씩 삶을 배우고 성장했을 뿐이다나의 성장에 적은 없다. (...) 어렵고 힘들수록 그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칠 것이 아니라그 시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치열하게 살되 그 치열함을 늘 의심하자지금 이 삶이 최선인지혹시 이 치열함이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벌써 다 읽어서 속상하다마지막으로 전혀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박세리의 멋진 인사를 남긴다.

 

다들 너무 수고하셨다고내일은 더 나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두 손을 맞잡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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