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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체력왕 - 땀 흘리는 여자들의 근력 연대기
강소희.이아리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어제는 국가주도 엘리트 스포츠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박세리의 에세이를 읽고, 오늘은 타이틀과 메달 기록이 없는, 생활과 생존을 위한 중요한 근력연대이야기를 읽는다. 제목에 ‘왕’이 들어있으니 이쪽이 더 야심만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표지를 보면 판데믹 시절 금기시되는 비말 아랑곳없이 큰 소리 응원을 하고 싶은 기분이다.
펼쳐본 내용은 모두 속 시원한 얘기들은 아니다. 어째서 어딜 가나 이런 별로인 남성들이 많은가 의아할 만큼 별로인 경험담들도 있다. 운동을 배우고 싶으나 성적 대상화, 이죽거림, 비웃음, 불공평한 시선과 처우로 배워야할 장소를 고를 수 없었던 여성들의 성장과 경험담들은 여전히 비슷비슷하게 닮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없으면 만들면 되지!”란 호기인가.
다행히 여성 사범에게 배울 수 있는 도장을 찾아 간 저자의 체험기가 생생해서 재밌다.
“뼈와 근육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무지했던 나는 (...)”
“원치 않는 상대로부터 생각보다 쉽게 내 몸을 분리하는 동작이 내 삶의 경험들을 작게나마 전복시키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보여지는 몸이 아닌 기능하는 몸으로 롤 모델이 되는 여성들을 훨씬 더 많이 보고 싶다. 그들을 따라 몸을 굴리고 내던지고 겨루고 버티면서 강해지는 여자들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기를. 몸을 쓰는 기쁨을 알아버린 사람은 바라고 또 바란다.”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우는’ 여가여배 종목을 선정하는 기준은 ‘접근성’이라고 한다. 접근성이 쉬운 것이 아니라 힘든 운동 위주이다. 그동안 진행한 클래스는 주짓수, 농구, 스케이트보드, 축구, 배구, 스윙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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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인 나는 - 다른 많은 분들도 절감하시겠지만 - 체력과 지구력이 모든 일의 기본이고 가장 필수적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운동할 때만 필요한 것들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만화가는 체성분분석에서 근육량이 많이 나와서 안심하고 연재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노동은 집중력과 지구력을 요구하고 운동을 통해 길러진 근력과 체력으로 이를 유지 강화할 수 있다 - 이래놓고 산책과 계단만 오르내리는 모순덩어리 나.
이에 더해 저자는 운동을 하고 나서는 완급 조절이 가능해져서 좋다고 한다. 버겁고 갑갑할 때 생각을 멈추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다시 난제를 해결하는 추진력을 얻는 순환. 내 갑갑증도 운동으로 풀 수밖에 없는 건가. 플랭크와 스쿼트를 다시 진지하게 해볼까 - 하던 거, 쉬운 거만 생각나는 이 게으름.
“마른 몸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하다. 그러나 요즘 내게는 몸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기능하는 몸, 강한 몸을 가진 여자들을 많이 보게 된 탓이리라. (...) 나도 그렇게 크고 강한 본새를 지녀야지. (...) 내 허벅지는 이미 굵으니까 이제 근사한 근육만 입혀주면 되겠다.”
보고 듣고 만나고 현존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니 저체중 영양실조 상태인 여성들을 끊임없이 등장시키는 미디어를 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이미지와 영상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격리당한 기능하는 몸을 가진, 근수저들은 현실에서 별 탈 없이 살고 있다. 운동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다소 불순한(?) 동기로 - ‘더 오래 놀고 싶다’ 등등 - 운동을 하는 것도 신나는 즐거운 목표이다.
“몸의 기본값이 지금보다 더 다양해지기를, 주름만 흰머리의 수가 계절의 순환처럼 읽히기를, 몸에 대한 시선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나의 오랜 반성이자 앞으로의 다짐이다.”
아무리 간단한 운동이라도 계획과 생각은 주로 방해가 된다 - 반백년 살아본 경험에서. 변명같지만, 스쿼트, 플랭크, 계단오르내리기, 산책은 그런 이유에서 가장 오래 남은 운동 습관이기도 하다. 가능한 최대한 준비과정 없이 그냥 바로 할 수 있는 운동들. 물론 근력을 키우기 위한, 기술을 겸비한 다른 신나는 운동들을 하시면 더 좋다. 어쨌든 운동은 ‘그냥 하는 거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하는 것, 일단 해보는 것의 힘은 세다.”
그리고 한국처럼 병리적으로 성취 지향적인 삶을 전체주의적으로 강요받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경험이 있다. ‘실패’라는 경력. 실패도 경력이고 고맙게도 고스란히 경험으로 쌓인다. 아무 것도 안 한 것보다 백만 배는 더 여러 가지를 배운다. 존경하는 예술가이자 작가의 말을 만나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이것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조건 기분 좋아지는 걸 저장해두는 거.” 이반지하
: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불안으로 넘어 갈 때, 나를 증명하는 일의 고단함이 불안과 합체되지 않도록 일시 정지 버튼 누르기.
다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움직임이자 활동인 걷기, 산책이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높은 확률로 행복해지는 일을 아직 모른다. 오른발왼발 내딛는 일은 책장을 한장두장 넘기는 것과도 비슷하다. 내 속도에 따라 장면이 달라지고 그것을 경험한 나도 달라지고.
좋은 이들 - 개들 포함 - 과 함께 하는 거라면 더 좋겠지만, 나는 훌쩍 나가는 것을 좋아하니, 일정을 등록하고 시간을 맞추고 기다리고 하는 일은 조금 벅차다. 얄팍한 성품에 깊이가 생기고 좀 더 깜냥이 커진 인간이 되면 어울려서 뭘 하는 일을 진득하니 해보고도 싶다. 이름조차 멋진 #슬로우하이킹클럽
불안과 수명장애를 가진 분들이 공감할 중요한 이야기 나눔으로 벌써 다 읽어버린 아쉬움을 달랜다. 이 책을 오래 즐기며 읽고 싶은 분들은 애써 굳이 나누어 주의 깊게 읽으셔야 한다.
“누군가는 정신과 약에 의존하지 말고 의지와 운동으로 이겨내는 게 좋지 않으냐고 말한다. 글쎄. 나는 약으로 제멋대로 나대는 교감 신경을 가라앉히는 게 좋다. 잠을 자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잠들지 못하는 고통 대신 약의 도움을 받아 쉬이 잠드는 편이 좋다. 그렇게 주말의 오전이 생기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게 좋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처럼 끝없이 먹고 또 먹는 밤, 끈적하고 지저분한 잠에서 때어나지 못하는 아침이 찾아와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게 된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