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형제들
아민 말루프 지음, 장소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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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탐욕과 극악무도함과 살의... 당신들의 힘을 지배와 군림 이외의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능력이 없다고.”

 

통제가 불가능하고,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을 장악하고, 모든 것이 마비가 된 세상... 세상의 종말은 아주 극적이고 특징적인 사건이 아니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된, 작품 속과 같은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시작되었을 거란 보고가 나오는 현실의 대멸종이 그러하듯이.

 

인간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선, 살아가는 내내 코앞에서 마주치면서도 절대 보지 않는 능력이 있지.”

 

인류는 재난과 비극을 자초했다. 원망하고 비난할 다른 생물종이 없으니 내부에서 누구라도 표적 삼아 욕하고 죽인다. 원하는 결과도 얻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최악으로 멍청한 방식이다.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된다.

 

세상은 탐욕과 증오의 전장이 돼버렸어. 모든 게 변질되고 타락해버렸지.”

 

예전에는 순진하게도 문명 이전의 사회가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홉스Hobbs)’ 상태일 것이라고, 문명과 교육은 우리를 투쟁과 폭력으로부터 우아하게 개조해줄 것이라 믿었다. 집중된 권력과 자본은 거대 무기를 만드는데 가장 열심이었다. 패권 경쟁은 최고의 게임이었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건지... 어른이 돼야겠지. 이게 그들이 돌아오는 조건이야.”

 

어른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반성만으로 어른이 될 것인가. 한 걸음 나아갔다 백 걸음 후퇴하고 다시 몇 걸음 나아가고, 숫자를 세는 일이, 거리를 가늠하는 일이 지겹다. 설득하고 말려도 죽자고 죽을 길로 간다면 앞을 막아설 이유는 무엇인가. 애써가며.


 

서로 존중하고 함께 먹고 다 같이 살 줄 아는 것이 어른됨이라 생각했다. 어른이 못 된, 앞으로도 못 될 독자의 책 읽기다. 줄어드는 많은 것들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이고, 차곡차곡 늘어나는 반갑지 않은 건 염오染汚*와 분노뿐이다.

 

* [불교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현실의 우리에게도 핵폭발 정도는 막아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할까, 기술이 월등한 친구들이 우호적이면서도,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인류에게 벌어질 재앙을 막기 위해 사용해줄까, 영생을 가능하게 할 의료 기술로 우리 모두를 치료해줄까. 아니라면 뭘 믿고 엉망인건가.

 

우리는 삶의 길목에서 역사 속의 거추장스러운 시체들과 끊임없이 부딪친다. 하지만 어느 날, 과거와 씨름하느라 지친 인류가 미래를 만난다면 과연 인류는 그것을 알아볼 것인가? 미래 속의 자신을 알아보고 그 힘차고 뜨거운 육신에 지친 손을 얹을 것인가?”

 

SF문학은 늘 메시지와 경고를 제공했다. 지구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함께 살아갈 이웃의 경계를 늘리라고. 디스토피아의 일부가 현실이 될 때마다 그저 신기하게 생각하고 말았던가, 당면한 위기는 드디어 SF의 배경과 현실의 격차를 없애고 만 듯하다.

 

알아도 별 소용없는 듯하지만, 그래도 기록해둔다. “지구는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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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임정재 옮김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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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번역, 선명한 주장을 하는 철학, 지혜롭고 유용하게 인간관계를 다룬다는 평을 계속 듣는다. 빨리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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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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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교육, 정치를 향한 욕설과 막말 대신 들어보고 싶은 우신의 자화자찬과 철학적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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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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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우리가다리를건널때

 

10월 어느 날 이 책을 살 때 기뻤다... 그런 느낌만 남았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이번엔 너덜너덜해지고 있는 해마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손이라도 비워 두지 말고, 뭐라도 잡더가 하던가 해야 된다는 경고 문자가 들어오는 것처럼 쇼크 상태이다.

 

참사 당일에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일상 얘기를 하던 친구는 오늘 참사와 슬픔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 같다고, 울다 화를 내었다. 이렇게 멀리서 소식만 듣고도 이게 무슨 일인지, 가능한 일인지 황당하고 두려운데 현장에 계셨던 분들은 어떻게...

 

어렴풋한 기억인지, 새로 만들고서는 옛 기억이라고 속이는 건지 모를 기억 속에서, 나는 백수린 작가의 글이 궁금했다. 그때의 기분이 뭉텅 사라져서 책을 후루룩 넘기다가 다리에서 멈췄다. 갑가지 무서워졌다. 공중에 떠 있는 부분이 더 많은 다리라는 건축물이...

 

아야는 벽돌처럼 너비와 높이가 일정할 것만 같은 정갈한 영어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어딘가 부서지고 삐뚤빼뚤한 자갈 같은 내 영어와는 결이 달랐다.”

 

다리가 부서졌다. 그때도 무슨 일이지, 내가 보고 있는 게 뭐지, 그랬다. 뉴스에선 반복해서 다리가 내려앉으며 부서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래, 우리는 다리를 보게 될 거야Yes, we'll see the bridge.”

 

다리를 걸어서 건넌다니 무섭다. 버스를 타는 것도 무섭다. 성수대교는 버스를 보내주지 못하고 함께 무너졌다. 2022년의 참사가 1994년의 그 다리에 이어진 것만 같다.

 

“(...) 죽지 않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같았다. 창문 속이 아니라 그림 밖의 존재. 다리를 다시 짓고, 꽃을 꽂아둘 수 있는 사람. 추모하지만 결코 영정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사람.”



 

모르겠다, 이 작품을 처음을 읽으려한 이유를. 몰라도 상관없다. 하나하나 모두 이유를 찾아서 뭘... 답답하니까 어딘가로 이동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니 모르겠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다리를 건너는 일도 영원히 무서워질 수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때도 누군가는 그렇게 비난했을까. 왜 버스를, 차를 탔냐고. 왜 다리를 건너려고 했냐고.

 

다리를 건너면 어디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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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수집가 I LOVE 그림책
크빈트 부흐홀츠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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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문학은 종종 텍스트보다 더 강렬해서, 시절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명백히 경험이 없는 그림책 속 이야기를 나의 추억인 듯 몰입하게도 만든다.

 

내게도 어릴 적 우러러보고 싶은, 좋아하는, 몹시 다정하고 어른처럼 보이던, 배울 점이 많던 연장자들이 있었다. 언니, 오빠들 뭐 하나, 어떻게 하나를 잘 보고 따라한 적도 있다.

 

화자의 유년시절, 새로 이사 온 화가인 막스 아저씨도 멋진 분이다. 아마도 스케치 여행이 아니었을까 싶은 여행을 자주 다니셨나 보다.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잘 들어주는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는 이웃이 무척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빨간 소파 위에서는 바이올린 연주가 울려 퍼지고, 신기한 이야기가 공간을 채우는 행복한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긴 여행을 떠나면서 어린이 친구를 위해 그림을 전시하고 쪽지를 남긴 장면이 많이 뭉클했다. 예술가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처럼 어린이에 대한 존중이 깊이 느껴졌다.

 

우리 눈엔 안 보이지만, 어떤 그림이든지 그 그림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길이 하나씩 있는 법이란다.”

 

화가는 그 길을 꼭 찾아 내야 해. 그리고 사람들한테 그림을 너무 일찍 보여 주면 안 돼. 찾았다 싶은 길을 다시 잃어버릴 수도 있거든.”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하고픈 어른의 모습을 본다. 현실의 나이 상으로 어른인 기성세대들이 지금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넘겨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왜 막스 아저씨가 자신이 이곳에 없는 동안 그 그림들을 보게 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화실에서 직접 설명을 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하나 둘 답을 찾아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잔소리처럼 말로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통해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깨닫고 사유하도록 이끄는, 어린이가 성장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해주는 지혜로운 방식이다. 나도 화자처럼 그림들을 한참 보았다. 이제는 꿈 속에서조차 만나지 못하는 존재들과 풍경들이 설렘이 가득하다.



 

어떤 그림이든 비밀이 있어야 하지. 나조차 그게 뭔지 모를 수 있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발견할 수도 있단다. 나는 수집가일 뿐이야. 난 순간을 수집한단다.”

 

이전 출간 제목은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이라고 한다. 그 제목도 좋다. 제목이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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