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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수집가 ㅣ I LOVE 그림책
크빈트 부흐홀츠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12월
평점 :
그림이 있는 문학은 종종 텍스트보다 더 강렬해서, 시절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명백히 경험이 없는 그림책 속 이야기를 나의 추억인 듯 몰입하게도 만든다.
내게도 어릴 적 우러러보고 싶은, 좋아하는, 몹시 다정하고 어른처럼 보이던, 배울 점이 많던 연장자들이 있었다. 언니, 오빠들 뭐 하나, 어떻게 하나를 잘 보고 따라한 적도 있다.
화자의 유년시절, 새로 이사 온 화가인 막스 아저씨도 멋진 분이다. 아마도 스케치 여행이 아니었을까 싶은 여행을 자주 다니셨나 보다.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잘 들어주는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는 이웃이 무척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빨간 소파 위에서는 바이올린 연주가 울려 퍼지고, 신기한 이야기가 공간을 채우는 행복한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긴 여행을 떠나면서 어린이 친구를 위해 그림을 전시하고 쪽지를 남긴 장면이 많이 뭉클했다. 예술가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처럼 어린이에 대한 존중이 깊이 느껴졌다.
“우리 눈엔 안 보이지만, 어떤 그림이든지 그 그림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길이 하나씩 있는 법이란다.”
“화가는 그 길을 꼭 찾아 내야 해. 그리고 사람들한테 그림을 너무 일찍 보여 주면 안 돼. 찾았다 싶은 길을 다시 잃어버릴 수도 있거든.”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하고픈 어른의 모습을 본다. 현실의 나이 상으로 어른인 기성세대들이 지금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넘겨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왜 막스 아저씨가 자신이 이곳에 없는 동안 그 그림들을 보게 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화실에서 직접 설명을 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하나 둘 답을 찾아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잔소리처럼 말로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통해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깨닫고 사유하도록 이끄는, 어린이가 성장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해주는 지혜로운 방식이다. 나도 화자처럼 그림들을 한참 보았다. 이제는 꿈 속에서조차 만나지 못하는 존재들과 풍경들이 설렘이 가득하다.
“어떤 그림이든 비밀이 있어야 하지. 나조차 그게 뭔지 모를 수 있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발견할 수도 있단다. 나는 수집가일 뿐이야. 난 순간을 수집한단다.”
이전 출간 제목은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이라고 한다. 그 제목도 좋다. 제목이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