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바라 포어자머 지음, 박은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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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기록... 가슴 위에 코끼리가 앉았음에도 숨이 쉬어진 것이 다행이다. 어떤 양질전환의 기적을 기다리는 신도처럼 관련 주제의 책들을 계속 읽는다.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 힘이 된다. 이 책도 그럴 것이라 기대한다.

 

🐘

 

감정이 필요로 하는 시간과 공간을 주고 (...) 감정을 견디는 게 중요하다.



편견과 선입견은 남부럽지 않은 편이고, 그것들이 내 출발점이라고 태평스레 생각하긴 하지만, 저자가 독일 언론인이라는 것이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교육시스템이 궁금해지는, 세계건전시민처럼 사는 독일인들만 만나고 살았습니다.


 

우울, 공황, 불안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자주 마주했음에도 내가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확장력이 참 약하고 쉽게도 잊힙니다. 입원을 했으니 제가 아는 강도보다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경험을 사유의 확장 계기로 삼아 관련 통찰을 성실하게 기고했으니 역시 공신력있는 차이퉁의 저널리스트답다는 생각도.


 

어떤 문장들에 한참 멍하니 기억 속을 헤매 다녔습니다. 최초 발현부터 갖가지 다양한 증상들, 반응들, 배워가고 적응하는 과정들, 일화들... 사는 일은 생존하는 일에 다름 아니란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우울증 환자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가족, 친구, 직업, 취미 등 자신의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한 쇼라고 느낀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심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단계 말고, 그것이 육체화되는 증상도 있습니다. 혼자서만 지진 진동을 느끼거나, 감각 기관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환시나 환청에 가까운 자극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공황 발작 직전 단계를 넘어가지 않는 법을 오래 배웠습니다.

 

어떤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야 한다.”


 

앞으로는 모를 일이지만, 익숙해진 불안은 덜 두렵습니다. 증상도 경험도 제각각이라,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이들은 그 무게가 적립되듯 쌓이다 어느 순간 폭죽 터지듯 그러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터지기도 한다고.


 

국적은 다르지만, 저자의 경험이 무척 생생합니다. 비슷하게 아픈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되고, 복잡한 감정을 분석해준 내용, 방대한 취재 결과, 잘 숙성된 글은 읽기 치료과정처럼 읽어가는 흐름이 좋습니다.


 

그리고 뜻밖에(?) 아주 따뜻합니다. 한동안은 우울에 완패하지만 말고 살아가는 일을 삶의 우선 의미로 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게 건네는 위로가 거창하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밖에 못사는 거, 오늘 하루만 살아내면 그 하루가 이어지면 되는 일.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태도가 오히려 삶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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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40만 부 기념 에디션)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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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보다 연배가 높은 저자의 이야기가 어릴 적 구술로 듣던 시절을 소환한다. 미화와 왜곡일지 모르나 이후에 읽은 책들과 비교하면 내 조상들의 육성으로 듣던 일화들이 가장 설레고 흥미로웠다. 역사서(소설)을 좋아하는 취향은 그 어린 시절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녹취를 못한 것만이 오랜 회한이다.

 

40만부 기념 에디션을 이제 읽어본다. 한국 근현대사처럼, 한 개인의 생존기록처럼도 읽힌다. 사단법인에서 노년만이 아닌 청소년 성상담도 하신다는 내용이 놀랍고 반갑다. 76세에 새로운 전공 학업을 마치셨고 일흔 넘어 한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다니, 나도 나중에 새로 배워볼까 싶은 생각도 불쑥 커진다.


 

거의 모든 시력을 잃은 상태로, 열 가지도 넘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분이다. 육체의 쇠약과 발병과 통증에 금세 우울해지는 나는 내 어리광과 엄살을 마주할 수밖에 없어 좀 더 반성하고 저자의 유쾌함과 웃음을 존경하게 된다.


 

직업인으로서의 업적과 파급력도 대단하지만, 가족 관계 내에서의 역할과 소통이 더 흥미롭고 부러웠다. 오래된 질문들 중 하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많은 이들이 알지만 행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다. ‘마음먹기’,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스스로 찾을 수밖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평소 쓰는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어떤 단어를 쓰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냉정하게 분석해보자면, 함께 산 시간보다 따로 산 시간이 더 길고, 함께 살던 때라도 서로를 잘 알고 아주 친했다고 할 수는 없는 관계가 부모자식관계라서, 함께 무언가를 새롭게 즐겁게 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무거운 것들 없이 유쾌하게 사셨으면 하고 바란다.

 

책임에서 벗어난 노년에서야 비로소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해보고 도전도 해보고 실수도 하고 그렇게 가볍게. 머리도 어깨도 팔도 손가락조차 책임과 부담과 책무로 무겁고 욱신거리는 중년의 내가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노년의 삶을 내 부모가 먼저 즐겨보셨으면 좋겠다.

 

한번만 해보면 시원하고 행복해진다고 자유로움을 구하라고 하시는데, 나도 퇴직하고 나면 더는 핑계 없이 신나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옭아매는 것들은 아직도 내 결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 순간이 왔을 때 실천할 체력과 여전한 바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니 잘 유지해야겠다.

 

시간이 흘러 본격적인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일상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지 미리 생각해 보라. 힘든 것을 남이 알아주길 절대로 바라지 마라. 이것이 바로 나이 든 자의 자존심이다.”


 

2023년 출간 10년 만의 대담이 반갑다. 어떻게 재밌게 사시는지 엿볼 수 있는 분량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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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양철북 청소년문학 7
줄리아 월튼 지음, 이민희 옮김 / 양철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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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추할 수 있는 수십 년 동안에도 십 대 여학생이 혼자 출산을 하고 아이를 버렸다’, 라는 제목과 내용의 기사들은 이어졌다. 어릴 적엔 그저 충격이었지만, 소위 어른이 되고나니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난다.

 

감정의 발원은 여학생도 버렸다도 아닌 혼자이다. 외계인에게 납치된 것도 아니고, 단성생식이 가능한 것도 아닌데, 사건을 혼자 야기했을 리가 만무하다. 의논하고 도움을 청할 단 한 명의 어른도 없었단 말인가.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의논을 할 어른과 사회가 부재했다는 것이 참담하고 아프다. 이런 현실에 더해 성폭력 범죄는 만연하고 처벌은 불쾌한 농담 같은 사회라 감당해야 할 성교육은 생존매뉴얼과 같다.

 

책 육아의 덕을 많이 본 주제이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무섭고 힘든 일이어도 말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거듭 주지시키는 이를 악문 간절한 당부가 늘 괴롭고 절박하다.

 

책의 제목이 그래서 적확하고 아팠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일지, 누가 말을 못하게 한 것인지, 말을 할 수 없어서 어떤 비극이 발생했을지 두려워하며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펼쳤다. 먼저 읽은 십 대들이 남긴 노트는 일독 후 읽어 보았다.


 

기분 좋게 영리하고 현실적인 내용들에 놀라며 읽었다. 학교에서 성교육이 불충분하다는 점에 주로 주목하던 내 생각을 환기시키듯 설정과 소재가 새로웠다. 지금 십 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할 방식과 내용이라고 느낀다.


 

블로그를 통해서 소통하고 질문하는 방식이 말할 수 없었던환경에 대한 확실한 항변으로도 보인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모두 현실감이 충분해서, 성에 관한 이야기, 십 대의 호기심과 욕망과 행위 모두에 관한 논의를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접근한다.


 

어른들의 짐작이 투영되어 단순하고 유치하게 결론으로 이르는 전개가 아니라서 좋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에 쓸쓸했다. 블로그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는 십 대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파렴치한 수단을 사용한 어른의 당선 소식이 부끄럽게 대비된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제공된 교육이 아닌, 인터넷에서 찾아낸 정보의 위험성도 지적되어 반가웠다. 다른 많은 문제처럼 청소년 성문제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책임감 있게 감당해야할 중요 정책이어야 한다.


 

이런 걸 왜 지금 알았지?

다들 이미 알고 있나?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질문하기엔 너무 늦었잖아.

 

성문제를 욕망이나 죄악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피임, 상호동의, 안전, 위생 등을 포괄하는 논의가 되고 교육이 이루어지고, 실제로 필요한 정보와 논의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거듭 확신할 수 있었다. 청소년에게도 어른에게도 필요하고 유익한 문학작품이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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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한 문장부터 - 10대를 위한 글쓰기 기본기 창비만화도서관 9
이강룡 지음, 국민지 그림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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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없으면 매일 하는 루틴에는 한글 맞춤법 10문항이 있다. 몇 달 되었는데 여전히 매번 틀리곤 한다. 평생 틀릴 예정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https://campaign.naver.com/hangeulquiz/quiz/



 

언어란 공동체 사람들이 우린 이렇게 쓴다, 라고 한 약속이다. 그러니 법칙만큼 예외가 많고 늘 변한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 점이 늘 어렵다.

 

표기문자인 한글도 그렇다. 표준어 규정 자체가 변하고 더블 규정도 생기고 이젠 규칙보다 용례를 그냥 외우는 편이 낫겠단 생각을 한다. 가장 즐겁게 맞춤법을 배우는 방법은 역시 문학작품들 읽기다.

 

내 형편이 이러니 10대 아이들의 글쓰기, 문자생활에 대해 사려 깊게 조언하기가 난감하다. 주고받는 짧은 텍스트에서 많은 문법 규칙들을 문제 삼지 않은지가 꽤 되었다. 안 하다보면 어느 순간 거슬리지도 않는다. 틀린 줄 모르고 사용하던 표현들이 고착된다.

 

어려운 많은 것들을 책에 의지하며 산다. 필요한 책의 출간은 눈물겹게 반갑다. 읽을 수 있다면 배울 수도 있다. 글쓰기 책을 읽어도 내 글은 이제 잘 고쳐지지 않는다. 괴이한 문장과 반복되는 실수는 사라졌다 곧 돌아온다. 아이들에겐 좀 더 효능이 있기를 바라며 응원한다.


 

(언제나 옳은) 만화로 배우는 이론, 퀴즈로 고쳐보는 틀린 문법, 쉽고 재밌어서 피로감이 적은 매력적인 학습법이다. 맞춤법, 띄어쓰기, 다양한 표현들에 대해 헷갈려도 야단맞지 않고 배울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안전함. 시원하고 선명하게 알려주는 설명이 백미다.


 

SNS, 가정통신문, 아파트 게시판, 전단지, 편지 등 일상 밀착인 문구들과 사례들도 유익하다. 기대하던 불평등한 표현과 차별적인 언어들도 짚어 주어 만족도가 높다.


 

자전거나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방법을 터득하면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살면서 무엇을 하든 어디서든 글쓰기는 필요하다. 맞춤법은 특히 조급해하는 대신에 꾸준하게 조금씩 배우고 바꿔나가는 공부가 필요하다. 시작이 막막한 분들에게도 참 좋은 책이다.

 

우리가 써 두었던 문장들이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과 용기를 붙잡아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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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바라 포어자머 지음, 박은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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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의 책들을 계속 읽는다.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 힘이 된다. 이 책도 그럴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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