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주트의 <재평가>로 평가해보는 읽지 않아도 될, 읽지 말아야 할 저자들


한나 아렌트

"아렌트는 현대사 최악의 박해, 특히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독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청년기에 대해서, 특히 남쪽과 동쪽의 불운한 사람들과 관련하여 매우 독일적인 편견을 지니기도 했다. 아렌트는 1944년에 쓴 글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럽 망명자들의 신문을 이렇게 경멸했다. <먼 유럽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국경 분쟁을 두고, 이를테면 테셴이 폴란드에 속하는지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하는지, 아니면 빌뉴스가 폴란드가 아니라 리투아니아에 속하는지를 두고 머리가 빠지도록 걱정하고 있다.>"


"거드름 피우는 고급 독일적 특성은 아렌트가 미국의 유대인과 불편한 관계를 갖게 되는 데에도 일조했다."




























루이 알튀세르

"알튀세르의 설명은 마르크스를 작은 부분들로 자르고 거장의 해석에 적합한 텍스트만 고른 다음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최고로 난해하고 이기적이며 비역사적인 해석으로 재구성했다. 실천은 마르크스주의나 철학,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 주된 죄과는 실수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알튀세르에게는 이 점이 중요했다. 알튀세르는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그 조직의 당혹스러운 역사를 인정하되 혁명적 전지(全知)라는 그 주장에서 무엇이 남았든 그것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 스탈린과 소련의 행보는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없이 그저 스탈린의 실수일 뿐이란 것


"알튀세르는 최근 역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알튀세르는 생애의 끝에 가서야 마키아벨리와 여타 서구 철학의 고전을 발견하게 된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마르크스의 저작도 불충분하게 일부만 알고 있다고 인정한다. 알튀세르는 또한 정치 분석에서는 초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하다. 알튀세르는 생애 마지막 20년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것도 잊지 못한 것 같다. <부르주아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얘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도, 소련 진영의 반체제 인사들을 경멸하고...<믿지 못할 잔혹한 굴라크 이야기를 퍼뜨렸다>고 멸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튀세르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범주들을 필사적으로 끄적거리는 중세 시대의 2류 스콜라 철학자를 닮아갔다. 그러나 가장 모호한 신학적 공론이라도 대개 중요한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알튀세르의 몽상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알튀세르의 몽상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난해한 정치적 변증론일 때를 제외하면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에릭 홉스봄

"홉스봄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마다 당의 공식 논평을 생각하게 하는, 알 듯 모를 듯 무미건조한 언어로 한 걸음 물러섰다."


"프랑수아 퓌레는 언젠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여 프랑스 공산당을 떠난 것이 <내가 한 일 중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고 말했다. 홉스봄은 남기로 결정했고, 그 선택은 홉스봄의 역사적 직관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21세기에 무엇인가 이로운 일을 하려면 우선 20세기에 관해 진실을 말해야 한다. 홉스봄은 악을 직시하기를 거부했고 악을 악으로 부르기를 거부했으며, 스탈린과 그가 한 일의 정치적 유산은 물론이고 도덕적 유산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홉스봄이 미래 세대에 급진파의 바통을 전달해주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좌파는 오랫동안 자신들 안에 있는 악마 공산주의자들과 대면하기를 회피했다."


"에릭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재능을 타고났다. 그러나 방해 없이 휴식을 취한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알지 못하고 잠을 잤다."

->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외면한 채 역사가의 허물만 쓴 방관주의자 홉스봄


























존 루이스 개디스

"<냉전의 역사>가 미국의 시각으로 심히 편향되었다면, 이는 자료의 불균형 탓일 리가 없다. 이 책은 단연 편파적인 시각의 산물로 드러난다. 개디스는 사과할 줄 모르는 승리주의자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이유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존 루이스 개디스가 쓴 냉전의 역사를 냉전이라는 주제를 흥미롭고도 지속적으로 타당하게 만드는 것의 대부분을 놓치는, 순진하게도 자화자찬하는 설명으로 치부하고픈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 실수가 될 것이다. 개디스의 해석은 현대 미국에, 다시 말해 나머지 세계는 물론 자국의 역사와도 이상하게 분리되었으며, <벽난로 옆에서 듣는 해피엔딩의 동화>에 굶주린 걱정 많은 나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냉전의 역사>는 미국에서 역사로서나, 책 표지의 추천 문구에 들어 있는 칭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새로운 위협을 처리할> 방법을 가르치면서 주는 교훈에서나 널리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울적하다."


"개디스의 책이 미국 내에서 냉전의 성격과 냉전이 종결된 방식, 냉전이 미국 안팎에 남긴 끝나지 않은 근심스러운 유산에 관하여 오해와 무지가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읽어야 할 저자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은 카뮈가 앞서 썼던 글들의 요약이고 발전일 뿐만 아니라 카뮈의 관심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현재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중요하지 않은지를 일깨우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지침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상태를 꿰뚫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이 직관 덕에, 카뮈의 윤리학은, 그 한계와 책임의 윤리학은 특유의 권위를 얻게 되었다. 당대의 프랑스에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 도덕적 권위이며, 이는 <최초의 인간>이 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책은 비록 완성되지 않았고 다음어지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여러 점에서 훌륭하다."


"전자기기 너머의 청중이라는 찬미의 거울 앞에서 멍청하게 멋이나 부리며 자신을 높이는 미디어 지식인의 시대에, 카뮈 특유의 정직함은, 예전에 학교 선생이 말했던 <너의 본능적인 정숙함>은, 거짓 복제품이 판치는 세상에서 걸작 수제품이라는 진정한 작품의 매력을 지닌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쓴다. 카뮈는 <작품으로써 프랑스 문학계의 매우 독창적인 면모를 이룬 도덕가들의 긴 계보를 잇는.......현대의 계승자를 대표한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자신을 받아준 나라들에서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다룬 3권짜리 훌륭한 저작인 이 책은 1967년에 파리에서 폴란드어로 출간되었고 2년 후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했으며 지금은 여기 미국에서 노턴 출판사가 한 권짜리로 다시 찍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은 현대 인문학의 기념비적 저술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코와코프스키가 보기에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급투쟁에 관한 명제들 때문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붕괴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이행의 약속 때문도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프로메테우스의 낭만적 환상과 완고한 역사적 유물론의 독특한 혼합이었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실패한 예언자이고 그의 가장 성공적인 제자들은 독재자 집단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기획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에 속하는 몇몇 사람에겐 비할 데 없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산당의 통치에 희생된 나라들에서도 당대의 지성사와 문화사는 마르크스 사상과 그 혁명적 약속의 매력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진보주의 정치의 뿌리 깊은 <구조>였다.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는, 아니 마르크스주의 범주들에 기생하는 언어는 사회민주주의부터 과격한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온갖 정치적 저항에 형태와 암묵적인 통일성을 부여했다."


"시장의 승리와 국가의 후퇴를 성원하는 자들, 오늘날의 <평평한> 세계에서 경제적 주도권의 무한정 확대를 축하하라는 자들은 지난 시절 이렇게 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잊고 있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가 믿을 만한 안내자라면, 희생양은 아마도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디지털 방식으로 마스터 테이프를 다시 만들고 공산당의 자증스러운 상처가 없는 마르크스주의 테이프를 재생하고자 꿈꾸는 자들로 말하자면, 결국 모든 것을 망라하는 통치 <체제>로 귀결될 것이 빤한 포괄적인 사상 <체계>란 도대체 무엇인지 빨리 자문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앞서 보았듯이,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글을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토록 유례없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에서 30년 넘게 사실상 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관한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사이드는 일신상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공적 봉사를 수행했다. 사이드의 죽음으로 미국의 공적 생활에는 큰 빈자리가 생겼다. 누구도 사이드를 대신할 수 없다."















아서 케스틀러

"소련의 허상을 깨뜨리는 데에는 그 무엇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한낮의 어둠> "이 소설의 한 가지 매력은 공산당의 작동 방식과 공산당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포착하고 확인했다는 데에 있다.....이 책은 대중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한 독재정권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실과 논거, 재판을 조작하는 거짓말이자 사기로 제시했으나, 식별력을 더 갖춘 지식인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기묘하게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제시한다."


"케스틀러가 야경봉보다 변증법을 강조한 것은 공산주의가 그렇게 많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본질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케스틀러가 공산주의의 최악의 모습을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케스틀러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분열과 갈등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식인이란 바로 그러한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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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5-19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논쟁이 많을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읽어보고 싶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책 내용 중 읽지 말아야 할 저자 한나 아랜트는 백퍼 동의합니다.
하지만 에릭 홉스봄과 특히 존 루이스 개디스는 잘 수긍 되지 않습니다. 전 존 루이스 캐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안 읽어본 분들께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추천하고 싶습니다. ㅎ
전 오히려 에드워드 사이드 책을 읽을 필요 없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여튼 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Redman 2022-05-19 20:48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정말 마구마구 추천하고 다니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단 한 개의 글도 허투루 넘길 게 없습니다. 대가다운 균형잡힌 시각과 체계적 글쓰기가 인상적입니다. 내용도 마찬가지고요. 올해 제가 읽은 첵 중에 이 책을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Redman 2022-05-22 07:43   좋아요 1 | URL
읽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저자가 한 말은 아니고. 이 책을 읽은 저의 결론입니다 ㅋㅋㅋㅋ 홉스봄의 저작들은 여전히 의미있긴 하지요. 개디스의 냉전사 책은 안 읽더라도 역사의 풍경은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도시락 싸들고 다닐정도로 좋아하시는군요 ㅋㅋ
 

제5장 유가 윤리 중심의 정치사상

제4절 맹자의 인정 사상

제5절 순자의 예치사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사상가들은 고유의 인성론을 전개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로부터 그에 맞는 정치체제를 구상하고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경우, 정치사상은 인성론 - 정치체제론 - 정책론으로 나뉘는데, 이들을 다시 범주화하면 형이상학적 인성론과 실천학(정체, 정책)이 될 것이다. 인성론은 정치체제의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루소, 마르크스 등이 그러하다. 플라톤의 <정체>politeia는 좋은 정치체제를 논하기 위해 좋은 정치 지도자란 누구이며 좋은 시민은 무엇인지를 논한다.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자연적 인간의 타락을 논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체제 구상을 담은 책이 <사회계약론>이고, 그 사회에서의 인간의 교육방법을 논한 책이 <에밀>이다. 루소 역시 인성론 - 정치체제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간주하며 공동체 속에서의 조화를 붕괴시키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체제를 비판하며 다시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구상했다.






중국 정치사상사에서 인성론을 논한 유명한 논자들은 바로 맹자, 고자, 순자이다. 맹자의 사상은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로 알려져 있으며 고자는 인간의 품성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현대에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론은 아마 고자일 것이다. 하지만 고자의 사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고 이 책에서도 거의 논하지 않는다. 그래서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정치 실천을 류쩌화의 논의를 따라 집중적으로 보고자 한다. 맹자에서 순자 순으로 정리하겠다. (원전 번역은 모두 류쩌화의 책에서 인용)


맹자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선한 마음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사람의 본성이 선함은 물이 낮은 데로 임하는 것과 같다." 그는 사람이라면 "차마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갖고 있다며, 이 마음을 다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사심'으로 개괄한다. 맹자는 공자의 인의예지 관념을 돌출시켜 4대 윤리의 범주가 이 사심이라고 주장한다.(사단) 이는 맹자의 중요한 공헌인데, "인륜관계가 사람의 본성에서 나온다는 맹자의 이 한 가지 주장은 유가 윤리 관념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지닌다...[윤리의 위반을 하늘의 뜻이 아니라] 맹자는 인성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맹자는 성선으로부터 인간동류설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에서 민에 이르기까지 성선이라는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같은 부류이다. 인간동류설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첫째, 인간은 자연세계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을 내재적으로 통일시켜주는 요소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요임금의 옷을 입고, 요임금의 말을 읊조리며 요임금의 행동을 하면 요일 따름이니"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 수양을 통해 선한 본성을 지키는 사람이 군자요, 선한 본성을 잃은 사람이 '소인'이다. 맹자에게 있어 성인의 기준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인의의 준수이다.

맹자는 정치적으로 인정설을 주장했다. 이것은 그의 성선론을 정치현실과 결합해서 발전시킨 이론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차마 참지 못하는 정치'가 있다. 이 마음이 정치로 발현되면, '차마 참지 못하는 정치'가 이루어진다. 인정仁政의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능히 생활하도록 하고, 능히 삶을 충분히 누리고 죽음에 이르도록 하고,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위로 족히 부모를 섬길 수 있어야 하고, 아래로 족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양혜왕 상)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는 춥고 굶주리고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며 효를 행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의 암담한 현실에서 나온 것이리라.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참지 못하고 인정을 펼치려면,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정책들을 시행해야 한다고 맹자는 주장했다. 1) 백성의 항산 보장, 2) 정해진 제도에 따른 부세와 요역, 3) 가벼운 형벌, 4) 빈민 구제, 5) 공상업 보호 등. 이렇게 인정을 펼치면, 그 정치는 왕도이다. "왕도는 맹자의 인정론이자 정책이었는데, 그 요점은 보민, 덕의 실행, 민심에의 복종이다."


다음으로 순자이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본성이 선천적으로 악한 행위를 지향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인간 본성의 선악을 구분하지 않았다. 순자의 인간론은 인간의 자연성과 사회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자연 속 존재이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일정한 군체를 결성하고 일정한 조직을 갖추며 "집단생활"을 이룬다. '집단'이란 오늘날의 사회성과 유사한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집단을 공동체로 바꾸면 더 이해하기 쉬워질 것 같다. 순자는 인간이 사회 속의 인간임을 논의의 밑바탕에 둔 것이다.

인간의 자연적 본성(性)은 그 자체로 악하거나 선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성이 사회 속에서 표출되면, 정(情)과 욕(欲)이다. "성은 하늘이 이루어놓은 섯이다. 정은 성의 본질이다. 욕은 정이 감응한 것이다. 욕한 바를 얻고자 갈구하게 되면 정은 어쩔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성, 정, 욕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감각기관의 욕망: 이는 자연적 본성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2) 이익을 좋아함: 이익은 감관의 욕망과 함께 자연스러운 요구를 넘어서는 주관적 욕망이기도 하다. (참조: 사람의 정이란 먹는 데 집짐승을 바라고, 입는 데 화려한 의상을 바라고, 행차하는 데 가마와 말이 있기를 바란다. 게다가 남은 재물을 축적하여 부유해지기를 바라는데, 세세연년 족함을 모른다. <영욕>편)

3) 배타성과 질투심

4) 영에를 좋아하고 치욕을 싫어함: 영예를 좋아함이란 기본적으로 권력욕이다.

여기서 감관의 욕망은 자연적 본능이지만, 나머지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회성의 표현이다. 이들 각각은 선악을 논할 수 없지만 "이 본성 가운데 악의 기초적 인자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본능이 외부로 확장해갈 때 비로 악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주관적 욕망의 추구가 극에 달할 때, 사회 질서와 공동체 생활을 무너뜨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순자의 성악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즉, 이러한 성정욕에 순응하면 인간의 욕망이 정상적인 사회 질서와 충돌하여 이를 파괴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이 외부행위로 드러나면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 질서와 충돌하는 자연성과 사회성의 모순을 순자는 지적한 것이다. "순자는 본성에 순응하면 '사양' '충신' '예의문리'와 대항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의미에서 보면 인성은 악한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파괴적 정욕이 수습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인성의 개조를 주장한다. 개조의 방법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이 성인의 "인위"이다. 이는 예와 법을 말한다. 예는 유가적 관념이지만, 법은 법가와도 이어진다. 순자는 도덕과 제도를 동시에 강조한 것이다. 개조의 두 번째 수단은 스승의 교육이며, 세 번째는 환경과 습속의 개조이다. 마지막은 수신이다.

맹자의 사상 속에서 정치체제는 도덕으로도 충분히 작동된다. 그가 본 인간은 성선을 핵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자가 봤을 때 진정한 문제는, 인간의 욕망 추구와 사회 질서 사이의 모순이었으므로, 단순히 도덕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도덕(예치)에 제도(법치)를 거론한 것이다.

"예와 법은 인성을 교정하는 공구인데 성인이 만든 것이다. 또 성인의 예, 법, 제작은 사회적 모순에 기초한 것이다. 이들 모순은 사람의 본성, 욕망과 자연 및 사회 사이의 모순, 충돌을 바탕으로 전개된다...모순은 먼저 욕망의 무한성과 물질의 유한성 위에 드러난다...모순은 또 욕망의 평등성과 사회관계의 불평등성 위에서 드러난다." 예로서 이 모순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은 우선 사람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며, 또 사회적으로 구분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예에 근거하여 제도(법)가 성립되어야 한다. (순자의 법 사상에 대하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정리하겠다)

순자의 예치는 경제적인 부분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일종의 이상국가론이 부국부민론인 것도 당연힌 것이겠다. "순자의 인식이 다른 유가들보다 깊이 있는 곳은 바로 그가 심각하게 경제 문제를 정치의 기초로 생각했고, 또 그것을 정치의 좋고 나쁨의 표식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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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는 원천은 바로 이것이다. 상상을 통해 고통을 받는 자와 입장을 바꿔봄으로써 우리는 고통을 받는 자가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거나 또는 그가 느끼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P5

다른 사람도 마음속으로 우리 마음속의 감정에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것은 없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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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거스틴의 고백록
성 어거스틴 지음, 선한용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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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제국의 변두리인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야심만만한 청년이었다. 그는 기억력이 비상했고 말재주와 글쓰기 능력에도 뛰어난 인재였으며, 그의 중산층 부모는 공부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 수사학은 단순히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다. 고대 사회에서 수사학은 정치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고, 특히 고대 로마에서 그것은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사회에서 태어나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수사학 교사직을 맡을 정도로 수사학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심지어 그는 당대 최상급의 교양인 변론술까지 통달했으니, 그는 매우 자신만만했을 것이다. 이것은 곧 그가 로마 사회에서 상당한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도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학을 통해 로마에서 성공하고픈 세속적 야심으로 불타올랐었고, 지방 총독직에 오를 뻔했었다. 입신양명의 욕구로 부풀어 올랐던 야심찬 이 젊은이에게 공부란 출세의 발판이었다.

그러나 힌편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던 구도자이기도 했다. 그의 나이 19살 때 읽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통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 불멸의 지혜(immortalitas sapientiae)를 향한 열정으로 고양되었다. 그가 맨 처음 진리를 찾았던 곳은 성경이었으나, 성경의 소박하고 단순한 문체는 수사학을 공부하고 여러 고전을 두루 섭렵한 그에게 하찮게 보였다. 성경을 덮은 그는 기독교를 멀리하고 마니교를 믿기 시작한다.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진리를 이해시키겠다는 마니교는 그에게 진리를 약속할 것만 같았다. 이로써 9년 동안 마니교는 그의 전 사유와 세계관을 지배하게 된다. 마니교는 단순히 사고방식의 하나가 아니라 삶의 신념 체계였다.

마니교는 선악이원론과 유물론적 사고를 큰 특징으로 한다. 마니교는 선한 하나님의 존재와 그렇지 않은 악한 세상의 문제를(악의 문제)를 조화하기 위해서 악이 어디서 오느냐는 물음에 대해 '최고악의 본성'이라는 물질적 실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선악의 기원이 다르며, 선한 것은 모두 영원이고 악한 것은 모두 물질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무형의 정신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형체를 가진 덩어리라고 생각했으며, 하나님조차도 물질적인 존재로 보았다. 마니교적 사유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영적, 정신적 실체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물질성을 가진 것만의 진리값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힌편으로 고매한 진리를 탐구하면서도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었던 것은 이런 마니교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 마니교에 회의를 느끼고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인정하면서도 영적 실체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때 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외의 다른 실체를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7.1.1) 이것은 그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심취해 있던 마니교적 사유와 다르게 생각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추측했던 것은 당신을 다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7.1.2) 하나의 사유 체계 내에서만 살았던 그에게는 하나님을 물질적 실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가 "영적 실체의 자존성"(가토 신로의 표현)을 받아들이려면, 우선 그 물질적 사고를 청산해야만 했다. 그것이 마니교를 정리하고 기독교로 귀의하는 첫 단계였다.

그런데 마니교적 사유는 그의 신앙뿐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가치있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진리를 추구했으나 현실은 밑바닥 시궁창에서 뒹굴고 있었다. 마니교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진리로 인정하는 이들에게 성공이란 물질적 성공만을 의미할 뿐이다. 마니교를 자신의 신념 체계로 받아들였던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명예와 부와 결혼을 열망하고"(6.6.9) 있었다. 선한용은 명예(honores), 부(lucra), 결혼(coniugium)을 현대 말로는 권력, 돈, 성이라고 말한다. 재능을 가졌고 치기어린 공명심에 움직였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명예, 부, 결혼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징표였다. 그는 이런 것들을 성취하고자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했다. 공부의 이유는 물질적 풍요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주의적 추구는 "아주 쓰디쓴 곤경"(6.9.9)이었다. 6권에서 그 자신도 현세적 이익추구와 진리 탐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으나, 그것을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버릴 때 우리가 꽉 붙들 수 있는 확실한 진리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6.10.17)이다. 마니교적 사유에 물든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자신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반석이요 진리이다. 이것은 고대 로마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보이는 사고방식이다. 더 많은 재산, 더 좋은 차, 더 좋은 스마트폰, 더 넓은 아파트와 집,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지, 얼마를 버는지, 부동산 시세, 주식, 매력적인 이성과의 사랑, 신도의 숫자 등. 이런 것들이 그의 삶을 이루고 있고, 그 토대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만큼 확고하게 그의 삶을 장악한다. 회심 이전 아우구스티누스를 끝까지 괴롭혔던 것들도 지성적인 요소들보다도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회심한 이후의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먼저 한 공적인 일이 수사학 교사직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는 그가 마니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복음을 새로운 삶의 신념으로 받아들였고 새로운 원리에 토대를 둔 새 삶을 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지적 여정은 공부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고백록>은 엄밀한 의미의 자서전이 아니다. 이 책을 저술할 당시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삶을 신학적 관점에서 회고적으로 비평하고 재구성한 일종의 신학 에세이이다. 이 책에는 실재했을 역사적 서술과 그에 대한 현재 자신의 평가가 교묘하게 섞여 있는 것이다. <고백록>을 집필하던 당시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 자신의 공부를 되돌아보면서 그것이 모두 헛되었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최상위의 교양인 변론술을 익혔으며 로마의 고전 문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술도 익힌 인물이었다. 그는 비상한 이해력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한번에 읽고 이해한다. 그는 최고의 교양인(교양을 좁게 정의하면)이라 할 만하다. "나는 그 당시에 학예라고 부르는 방면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을 구입하여 모조리 읽고 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4.16.30) 그러나 이 득의양양한 학자의 발언은 다음 문장에서 빛을 바랜다. "나는 그 책들을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만 그 책 속에 있는 참되고 확실성 있는 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나의 삶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온갖 서적을 다 읽고, 지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읽고서도 인생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자조적 비판은, 역시 다방면의 책을 읽고 어려운 고전을 머리 싸매며 읽어나가는 나에게는 힘빠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의 한탄은 모든 공부하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아니면 세속적 성공을 위해서?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 이중 하나일 수도 있고, 전부 다일 수도 있다. 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그래보인다. 그가 자유학예를 익힌 것은 진리를 알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앎을 충족하기 위해서이고 무엇보다 성공을 위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의 공부는 그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도 변론술도 그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속적 권력욕을 단죄하지만, 그 못지않게 단지 앎을 위한 공부도 경계한다.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않는 공부는 기만술이다. 그가 <고백록>에서 수사학과 변론술을 가리켜 남을 속이는 기술이라고 경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귀의하는 도정에는 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있었다. 플라톤주의는 그로 하여금 영적 실체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마니교의 유물론적 사유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이런 지적인 변화가 훗날 그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적 회심의 과정을 담은 7권 1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렇듯 나는 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우둔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7.1.2, nec mihimet ipsi vel ipse conspicuus) 공부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을 낯설게 보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포함하며,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는 마니교적 물질적 사고 이외에 다른 방식의 사유 체계를 접함으로써 기존의 사고방식을 점검하고 그것의 잘못을 인식하고 새로운 길(영적 실체)로 자신이 함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증명해내어 생각을 바꾸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나에게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이 과정은 뼈를 깎는 듯한 실존의 고통스러운 믿음의 결단을 요구한다. 자신이 기존에 가졌던 신념 체계와 그에 기반한 삶의 방식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유동하는 것, 이것이 공부의 또 다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10권 23장 34절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공부가, 교양이 내면을 바꾸고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에 이르지 못하고 '지식 쌓기' 그 이상이 되지 못하는 이들의 공부에 통렬한 야유를 가한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진리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왜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그 행복을 사랑한다 하면서 진리를 전파하는 당신의 사람은 적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진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진리 아닌 것을 진리인 것처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속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속고 있음을 시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의 자리에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가져다 놓고는 그것들을 위해 진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마니교도들을 생각하면, 이 지적이 과거의 것으로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비판은 사실 <고백록>에서 낯설지 않다. <고백록> 1권에서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고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문법 교육은 중시하면서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를 지적한다. 문법학자, 학교 교사들은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hominem'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에는 주의하면서 정작 실제 사람을 대할 때는 그만한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 공부 깨나했다는 그들은 hominem을 틀리게 발음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잘못 발음한 사람을 깔보지만, 사람의 마음에 상처주는 일에는 전혀 서슴치 않는다. 이것은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공부의 폐해라고 하겠다.

<고백록>은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텍스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모든 공부하는 이들의 경전이다. 회심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10.1.1.) 알기 위해 공부한다. 이것은 하나님이라는 무한자에 비추인 유한자의 조건을 앎으로써 자신의 삶을 무엇에 근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반성적 성찰의 매개체로서의 공부이다. 누군가 나에게 왜 공부하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돈과 명예 때문일까? 한국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교수가 아닌 이상 공부로 먹고 사는 사람에 대한 대우가 어떤지 뻔히 아는 이상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교수가 꿈인 것도 아니므로 명예는 더더욱 아니다. 공부에 무언가 혁명적 힘이 있어서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마르크스처럼 세계를 이해하고 변혁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앎과 이해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과 인간을 언급했지만, 여기서는 사회 속의 개인을 문제삼지 않고 있다. 나는 인간, 하나님, 내가 사는 사회를 알고 싶다. 이를 퉁해서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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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30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니교에서 회의주의로 신플라톤주의로 그리고 기독교로 그렇더라구요. 요즘에 신플라톤주의에 대해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Redman 2022-04-30 17:3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고대 서양 철학, 기독교 사상을 공부하려면 신플라톤주의도 필수죠.
 

맑스는 항상 자신을 자본주의의 적으로 여겼지만, 그의 적개심은 더욱 재미있어지고, 더욱 찬영의 기미를 띠게 되고, 더욱 변증법적으로 된다. 나는 맑스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전 과정을 하나의 웅장한 이야기로 보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주제를 ‘근대성MODERNITY‘으로 보았다. - P140

맑스는 비록 자신을 유물론자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의 최고 관심사는 부르주아가 창조한 물질적 대상들이 아니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삶과 에너지의 작용, 힘,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인간의 노동, 이동, 경작, 통신, 조직, 자연과 인간 자신에 대한 인식 등으로, 부르주아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그리고 끊임없이 갱신된 활동 양식인 것이다. - P150

그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역동 속에서 올바른 삶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있다. 그 새로운 모습이란 최종적으로 완성된 삶도 아니고, 일정하게 규정된 정적인 본질의 구현체도 아니며, 지속적이고, 불안정하고, 개방적이고, 무제한적인 성장의 과정이다. 그리하여 맑스는 점더 완전하고 좀더 심오한 근대성을 통하여 근대성의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 P157

맑스가 기대하는 것은, 노동계급이라는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일단 "자신들이 현실적인 생활 조건들과 자신들의 동료들과의 관계들을...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그들이 한데 뭉쳐 그들 모두에게 스며드는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결사체는 새로운 공동체적 삶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집단적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선언>의 주요한 목적의 하나는 그런 추위에서 탈출하는 길을 가리켜주는 것, 곧 공동체의 온기에 대한 공통의 열망을 키우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P177

이 에세이에서 내가 깅조하는 것들은 맑스의 사상 안에 존재하는 회의적이고 자기비판적인 저변의 흐름들이다. 어떤 독자들은 오직 비판과 자기비판만을 생각하고, 희망들은 유토피아적이고 순진하다며 내팽개치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맑스가 비판적 사고의 본질적 요체라고 본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그가 이해한 바의 비판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변증법적 과정의 일부였다. 그것은 본래 역동적이며, 비판자가 그를 비판하는 사람과 그 자신 모두를 비판하도록 밀어주고 고무하는 것이며, 양쪽을 새로운 종합을 향햐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초월에 대한 엉터리 요구들을 폭로하는 것은 참된 초월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초월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는 것은 정체와 체념에 후광을 씌워주는 것이며, 맑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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