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주트의 <재평가>로 평가해보는 읽지 않아도 될, 읽지 말아야 할 저자들


한나 아렌트

"아렌트는 현대사 최악의 박해, 특히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독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청년기에 대해서, 특히 남쪽과 동쪽의 불운한 사람들과 관련하여 매우 독일적인 편견을 지니기도 했다. 아렌트는 1944년에 쓴 글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럽 망명자들의 신문을 이렇게 경멸했다. <먼 유럽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국경 분쟁을 두고, 이를테면 테셴이 폴란드에 속하는지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하는지, 아니면 빌뉴스가 폴란드가 아니라 리투아니아에 속하는지를 두고 머리가 빠지도록 걱정하고 있다.>"


"거드름 피우는 고급 독일적 특성은 아렌트가 미국의 유대인과 불편한 관계를 갖게 되는 데에도 일조했다."




























루이 알튀세르

"알튀세르의 설명은 마르크스를 작은 부분들로 자르고 거장의 해석에 적합한 텍스트만 고른 다음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최고로 난해하고 이기적이며 비역사적인 해석으로 재구성했다. 실천은 마르크스주의나 철학,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 주된 죄과는 실수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알튀세르에게는 이 점이 중요했다. 알튀세르는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그 조직의 당혹스러운 역사를 인정하되 혁명적 전지(全知)라는 그 주장에서 무엇이 남았든 그것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 스탈린과 소련의 행보는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없이 그저 스탈린의 실수일 뿐이란 것


"알튀세르는 최근 역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알튀세르는 생애의 끝에 가서야 마키아벨리와 여타 서구 철학의 고전을 발견하게 된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마르크스의 저작도 불충분하게 일부만 알고 있다고 인정한다. 알튀세르는 또한 정치 분석에서는 초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하다. 알튀세르는 생애 마지막 20년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것도 잊지 못한 것 같다. <부르주아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얘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도, 소련 진영의 반체제 인사들을 경멸하고...<믿지 못할 잔혹한 굴라크 이야기를 퍼뜨렸다>고 멸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튀세르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범주들을 필사적으로 끄적거리는 중세 시대의 2류 스콜라 철학자를 닮아갔다. 그러나 가장 모호한 신학적 공론이라도 대개 중요한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알튀세르의 몽상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알튀세르의 몽상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난해한 정치적 변증론일 때를 제외하면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에릭 홉스봄

"홉스봄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마다 당의 공식 논평을 생각하게 하는, 알 듯 모를 듯 무미건조한 언어로 한 걸음 물러섰다."


"프랑수아 퓌레는 언젠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여 프랑스 공산당을 떠난 것이 <내가 한 일 중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고 말했다. 홉스봄은 남기로 결정했고, 그 선택은 홉스봄의 역사적 직관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21세기에 무엇인가 이로운 일을 하려면 우선 20세기에 관해 진실을 말해야 한다. 홉스봄은 악을 직시하기를 거부했고 악을 악으로 부르기를 거부했으며, 스탈린과 그가 한 일의 정치적 유산은 물론이고 도덕적 유산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홉스봄이 미래 세대에 급진파의 바통을 전달해주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좌파는 오랫동안 자신들 안에 있는 악마 공산주의자들과 대면하기를 회피했다."


"에릭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재능을 타고났다. 그러나 방해 없이 휴식을 취한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알지 못하고 잠을 잤다."

->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외면한 채 역사가의 허물만 쓴 방관주의자 홉스봄


























존 루이스 개디스

"<냉전의 역사>가 미국의 시각으로 심히 편향되었다면, 이는 자료의 불균형 탓일 리가 없다. 이 책은 단연 편파적인 시각의 산물로 드러난다. 개디스는 사과할 줄 모르는 승리주의자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이유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존 루이스 개디스가 쓴 냉전의 역사를 냉전이라는 주제를 흥미롭고도 지속적으로 타당하게 만드는 것의 대부분을 놓치는, 순진하게도 자화자찬하는 설명으로 치부하고픈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 실수가 될 것이다. 개디스의 해석은 현대 미국에, 다시 말해 나머지 세계는 물론 자국의 역사와도 이상하게 분리되었으며, <벽난로 옆에서 듣는 해피엔딩의 동화>에 굶주린 걱정 많은 나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냉전의 역사>는 미국에서 역사로서나, 책 표지의 추천 문구에 들어 있는 칭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새로운 위협을 처리할> 방법을 가르치면서 주는 교훈에서나 널리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울적하다."


"개디스의 책이 미국 내에서 냉전의 성격과 냉전이 종결된 방식, 냉전이 미국 안팎에 남긴 끝나지 않은 근심스러운 유산에 관하여 오해와 무지가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읽어야 할 저자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은 카뮈가 앞서 썼던 글들의 요약이고 발전일 뿐만 아니라 카뮈의 관심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현재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중요하지 않은지를 일깨우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지침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상태를 꿰뚫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이 직관 덕에, 카뮈의 윤리학은, 그 한계와 책임의 윤리학은 특유의 권위를 얻게 되었다. 당대의 프랑스에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 도덕적 권위이며, 이는 <최초의 인간>이 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책은 비록 완성되지 않았고 다음어지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여러 점에서 훌륭하다."


"전자기기 너머의 청중이라는 찬미의 거울 앞에서 멍청하게 멋이나 부리며 자신을 높이는 미디어 지식인의 시대에, 카뮈 특유의 정직함은, 예전에 학교 선생이 말했던 <너의 본능적인 정숙함>은, 거짓 복제품이 판치는 세상에서 걸작 수제품이라는 진정한 작품의 매력을 지닌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쓴다. 카뮈는 <작품으로써 프랑스 문학계의 매우 독창적인 면모를 이룬 도덕가들의 긴 계보를 잇는.......현대의 계승자를 대표한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자신을 받아준 나라들에서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다룬 3권짜리 훌륭한 저작인 이 책은 1967년에 파리에서 폴란드어로 출간되었고 2년 후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했으며 지금은 여기 미국에서 노턴 출판사가 한 권짜리로 다시 찍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은 현대 인문학의 기념비적 저술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코와코프스키가 보기에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급투쟁에 관한 명제들 때문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붕괴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이행의 약속 때문도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프로메테우스의 낭만적 환상과 완고한 역사적 유물론의 독특한 혼합이었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실패한 예언자이고 그의 가장 성공적인 제자들은 독재자 집단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기획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에 속하는 몇몇 사람에겐 비할 데 없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산당의 통치에 희생된 나라들에서도 당대의 지성사와 문화사는 마르크스 사상과 그 혁명적 약속의 매력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진보주의 정치의 뿌리 깊은 <구조>였다.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는, 아니 마르크스주의 범주들에 기생하는 언어는 사회민주주의부터 과격한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온갖 정치적 저항에 형태와 암묵적인 통일성을 부여했다."


"시장의 승리와 국가의 후퇴를 성원하는 자들, 오늘날의 <평평한> 세계에서 경제적 주도권의 무한정 확대를 축하하라는 자들은 지난 시절 이렇게 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잊고 있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가 믿을 만한 안내자라면, 희생양은 아마도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디지털 방식으로 마스터 테이프를 다시 만들고 공산당의 자증스러운 상처가 없는 마르크스주의 테이프를 재생하고자 꿈꾸는 자들로 말하자면, 결국 모든 것을 망라하는 통치 <체제>로 귀결될 것이 빤한 포괄적인 사상 <체계>란 도대체 무엇인지 빨리 자문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앞서 보았듯이,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글을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토록 유례없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에서 30년 넘게 사실상 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관한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사이드는 일신상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공적 봉사를 수행했다. 사이드의 죽음으로 미국의 공적 생활에는 큰 빈자리가 생겼다. 누구도 사이드를 대신할 수 없다."















아서 케스틀러

"소련의 허상을 깨뜨리는 데에는 그 무엇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한낮의 어둠> "이 소설의 한 가지 매력은 공산당의 작동 방식과 공산당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포착하고 확인했다는 데에 있다.....이 책은 대중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한 독재정권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실과 논거, 재판을 조작하는 거짓말이자 사기로 제시했으나, 식별력을 더 갖춘 지식인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기묘하게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제시한다."


"케스틀러가 야경봉보다 변증법을 강조한 것은 공산주의가 그렇게 많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본질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케스틀러가 공산주의의 최악의 모습을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케스틀러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분열과 갈등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식인이란 바로 그러한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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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5-19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논쟁이 많을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읽어보고 싶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책 내용 중 읽지 말아야 할 저자 한나 아랜트는 백퍼 동의합니다.
하지만 에릭 홉스봄과 특히 존 루이스 개디스는 잘 수긍 되지 않습니다. 전 존 루이스 캐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안 읽어본 분들께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추천하고 싶습니다. ㅎ
전 오히려 에드워드 사이드 책을 읽을 필요 없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여튼 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김민우 2022-05-19 20:48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정말 마구마구 추천하고 다니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단 한 개의 글도 허투루 넘길 게 없습니다. 대가다운 균형잡힌 시각과 체계적 글쓰기가 인상적입니다. 내용도 마찬가지고요. 올해 제가 읽은 첵 중에 이 책을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김민우 2022-05-22 07:43   좋아요 1 | URL
읽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저자가 한 말은 아니고. 이 책을 읽은 저의 결론입니다 ㅋㅋㅋㅋ 홉스봄의 저작들은 여전히 의미있긴 하지요. 개디스의 냉전사 책은 안 읽더라도 역사의 풍경은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도시락 싸들고 다닐정도로 좋아하시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