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는 항상 자신을 자본주의의 적으로 여겼지만, 그의 적개심은 더욱 재미있어지고, 더욱 찬영의 기미를 띠게 되고, 더욱 변증법적으로 된다. 나는 맑스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전 과정을 하나의 웅장한 이야기로 보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주제를 ‘근대성MODERNITY‘으로 보았다. - P140
맑스는 비록 자신을 유물론자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의 최고 관심사는 부르주아가 창조한 물질적 대상들이 아니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삶과 에너지의 작용, 힘,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인간의 노동, 이동, 경작, 통신, 조직, 자연과 인간 자신에 대한 인식 등으로, 부르주아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그리고 끊임없이 갱신된 활동 양식인 것이다. - P150
그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역동 속에서 올바른 삶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있다. 그 새로운 모습이란 최종적으로 완성된 삶도 아니고, 일정하게 규정된 정적인 본질의 구현체도 아니며, 지속적이고, 불안정하고, 개방적이고, 무제한적인 성장의 과정이다. 그리하여 맑스는 점더 완전하고 좀더 심오한 근대성을 통하여 근대성의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 P157
맑스가 기대하는 것은, 노동계급이라는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일단 "자신들이 현실적인 생활 조건들과 자신들의 동료들과의 관계들을...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그들이 한데 뭉쳐 그들 모두에게 스며드는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결사체는 새로운 공동체적 삶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집단적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선언>의 주요한 목적의 하나는 그런 추위에서 탈출하는 길을 가리켜주는 것, 곧 공동체의 온기에 대한 공통의 열망을 키우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P177
이 에세이에서 내가 깅조하는 것들은 맑스의 사상 안에 존재하는 회의적이고 자기비판적인 저변의 흐름들이다. 어떤 독자들은 오직 비판과 자기비판만을 생각하고, 희망들은 유토피아적이고 순진하다며 내팽개치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맑스가 비판적 사고의 본질적 요체라고 본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그가 이해한 바의 비판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변증법적 과정의 일부였다. 그것은 본래 역동적이며, 비판자가 그를 비판하는 사람과 그 자신 모두를 비판하도록 밀어주고 고무하는 것이며, 양쪽을 새로운 종합을 향햐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초월에 대한 엉터리 요구들을 폭로하는 것은 참된 초월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초월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는 것은 정체와 체념에 후광을 씌워주는 것이며, 맑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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