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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시야결손. 오른쪽은 바른쪽이기도, 익숙한 쪽이기도 하다. 바른쪽 시야결손, 익숙한 쪽 시야결손. 여자 없는 남자의 삶이란 가치의 파손, 생활의 결손일 터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그걸 미리 알고 어떤 행동이나 할 수 있을까. 시야결손 이후 여성 운전기사를 고용하지만 그녀가 있는 쪽은 남자의 오른쪽(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이다. 운전솜씨에 감탄하고 속내를 터놓기도 했지만, 결손된 오른쪽 시야가 상징하는 세 번째 진실은 여자 운전기사 또한 그에게 결손으로 남게 된다는 의미 아닐까. 곁에 있음에 대한 감각은 없음이후에나 감지 가능하다. 곁에 있을 때는 흔히 무시되는 감각. 반복되는 어리석음에 대한 멜랑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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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달은 언제나 두께가 이십 센티미터.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언제나 녹아버려.’ 얼음달은 순수함, 귀한 느낌이지만, 이십 센티미터짜리 라는 건. ‘백 퍼센트의 여자아이에 비해 너무 야박한 말이지만남자의 순정이란 거, 남녀의 사랑이란 거, 녹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이십 센티미터짜리 얼음달 같은 거 아니냐는 말이라면 나는 백 퍼센트에서 이 퍼센트쯤 빼고.. 끄덕거리게 된다.

 

흔들리는 불완전한 한 존재가 설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더라도, 좀 덜 흔들릴 순 있겠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불완전한 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셸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의 제목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제 보니 반쪽이 아니라 쪽이다. 한쪽이 채워지더라도 여전히 빈 부분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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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 없인 엉망이기 십상인 남자들. 그럼에도 여자 없는 남자가 될 운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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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9-2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으면 이게 좋아요. 제목만 보고 아 어떤 책에 대한 글이구나, 하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거요.
:)

dreamout 2014-09-26 19:54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읽었다는 건, 특히 같은 소설을 읽었다는 건, 더 그런 기분예요. ^^
 

 

 

 

 

 

 

 

 

 

 

 

 

 

 

 

 

바로 여기에서 당신은 계산할 수 없는 무한수를, 매우 방대하지만 어쨌든 계산은 가능한 유한수로 축소할 수 있다. 이런 상대적인 위안은 아주 오래 전에 읽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책, 늘 읽는 척했는데 이제 정말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책들이라는 복병에 의해 위태로워지지만 말이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실체만 없었을 뿐 내게는 첫 책이었다. 열한 살, 어느 밤. 할머니 댁 앞마당에서 바라 본 광막한 어둠과 무수한 빛의 입자들. 수 억년의 시간과 셀 수 없는 별들의 무리를 보고 듣고 느낀 날. 옛날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와 티브이 속 이야기가 이제 시시해졌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내게는 광막한 우주만큼이나 옛날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좀 막막하다. 시시하다는 말을 썼던 오만은 이제 많이 깎여 귀퉁이가 푸르게 마모됐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그 무한수를 어쨌든 유한수로 축소해서, 패턴을 파악해서, 역사로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새로 생겼다. 그렇지만 이 욕망은 어딘가 꼭 늙은이가 젊은 처자를 욕망하는 모양을 닮았다, 추하다. 고 말하는 목소리가 아직 내 속에 퍼렇게 살아있다.

 

포스트모던 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언지 모르지만, 어쨌든 유한수로 축소된, 패턴화된, 역사화된 이야기는 추하다. 는 느낌을 갖고 감각에 새롭게 새겨질 만한 것을 만들어보자고 아마 칼비노는 기획했을 것이다. 결과는? 보르헤스만큼 황당하게 하거나, 마르케스처럼 사기 당하는 기분 들지 않게 만드는 작품들. 책 너머에서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열의를 갖고 이야기를 실험하는 그가 보인다. 그만의 천진-진지-유쾌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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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라몽, 샤를, 칼리방.. 캐릭터들 가운데 한 명이, 우리를 만들어 낸 주인이라며 작품 바깥 화자를 슬쩍 들춰낸다. 샤를은 인형극 공연을 위한 작품을 꿈꾸는데, 실은 이 소설 자체가 인형극 공연을 위한 작품이다. 그러니 등장인물들은 각각이 인형인 거지. 인형극이다. 아이들은 환호하고 어른들도 무방비로 빠져드는 놀이(공연). 체코는 마리오네트로 유명한 곳. 밀란 쿤데라가 인형극의 형식을 말년에 취했다는 것은 그래서 눈에 띄는 일.

 

오에 겐자부로도 줄리언 반스도 마르케스도, 말년에 들어서면서 형식에 중점을 두는 작품들을 내놓는 경향. 과즙, 육즙 냄새가 진동하는 아찔한 작품들은 초기작에 많고, 이렇게 저렇게 때려도 부서지지 않고 건드려도 잠시 흔들거릴 뿐 다시 제자리를 찾고 마는 단단한 플롯은 말년의 일이다. 작가가 『느림』, 『향수』, 『정체성』 등의 작품에 비해 편한 형식을 취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지만 또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소설 내용은 뭐. 어차피 읽어들 보실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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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8-2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림아웃님, 전 이 책이 어렵더라고요. '농담'이나 '불멸'등이 저는 더 편하게 읽혔어요. 물로 그 작품들이 편하게 쉬이 읽히는 작품들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이 책, 무의미의 축제가 어려워서..

dreamout 2014-08-20 20:38   좋아요 0 | URL
농담이 좀 더 편하죠.. 불멸은 아직 읽기 전이라 비교가 힘들고..
느림, 향수, 정체성은 모두 초반부에서 일단 던져놨던 책들예요. ^^ 저는 이 세 권 보다는 즐거웠어요. 부담되지 않는 양이어서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다락방 2014-08-21 08:08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정체성도 좋았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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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을 훑어보았던 수년 전, 『언더 더 스킨』은 인상적인 표지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한국판 표지는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을 부각시켰지만, 원서 표지의 구불구불한 도로처럼 멋지지도, 함축적이지도 않다.

 

여운이 짙은 소설인데. 이 여운의 상당량은 이라는 모티프 때문이기도 해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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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리(주인공)의 차에 탄 사내들 각자가 처한 사정들이 짧게 짧게 드러난다. 직장을 잃고, 아내(또는 연인)와 사이가 틀어지고, 안 하는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적은 수입으로 궁핍하게 살면서 내일을 대비할 여유 따윈 없는. 그러면서도 운전석 이설리의 가슴을 흘낏흘낏 훔쳐보는 지구인 남자들의 모습들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그러다 곧 조수석 방석을 뚫고 주삿바늘이 찔러오고

 

『언더 더 스킨』은 SF라기 보다 잔혹동화다. 마더구스. 소설 배경이 스코틀랜드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마더구스 동요(동화)를 검색해보니, 얼핏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잔인한 이야기가 많다. 마더구스 자체가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목적이 강했다고 한다. 사회학 소설이라고 칭해야 할 것 같은 이 소설의 분위기와 제대로 매칭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동화가 만화의 주제를 드러내듯, 『언더 더 스킨』은 현대판 또는 성인판 마더구스라고 불러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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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이항대립이 다른 이항대립과 중첩될 때 나타나는 그 직각의 소음.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의 끈이 끊어지지 않은 이유는 사회 속에서의 ’, 그 모순의 집합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2×2 매트릭스의 X축과 Y축에 (여자/남자), (노동자/자본가), (추함/아름다움), (이주/정주), (유능/무능), (개방/폐쇄), (육식/채식), (수치심/죄의식).. 대입했을 때, 서로 삐걱거리는 조합들에 대한 실태 보고서를 보는 기분이다. Under the skin, 제목 자체가 품고 있는 이중 삼중의 의미들까지.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남자들. 주의 깊게 관찰한 후 그()들을 자신의 작은 차에 태우는 이설리. 이중 삼중의 역할과 입장들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소설 읽기의 동력은 저절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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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차를 끌고 농장에서 나온다. 스코틀랜드를 종단하는 A9 도로를 따라 끝없이 순환한다. 바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눈이 되는. 자연은 이설리에게 정서적으로 중요하다. ‘도로가 상징하는 것은 반복된 업무, 지치고 힘듦의 연속을 뜻하기도 하지만, 쉼을 주는 자연처럼 그 순환하는 움직임 속에 깃듯 힘을, 생기를, 구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설리를 고용한 대기업, 그 대기업 회장의 아드님(?)이 지구를 방문한 후, 이설리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무엇보다 (수많은 심리 기제들을 일단 젖히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불가역적인 시간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순환적인 흐름 덕분에 조금은 치유되었던 이설리가 다시 직선적인 시간, 불가역적 시간을 마주치고 흔들린다. 작게, 갈수록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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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단편 <동일한 점심>에는 복사실 남자가 등장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의 목록대로 복사실에서 영화를 봤다. <동일한 점심>을 읽기 훨씬 전에 나는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목록대로 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즉각 위험하다고, 위험한 신호라고 자각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폐쇄적이고 심지어 퇴폐적인 면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를 꾸짖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한편으로 자연스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끝도 없고 마디도 없고 풍경도 없는 직선적인 시간에 질려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걸 타파해 보려는 내 나름의 무의식적 시도였던 것이다. 작더라도 뚝 부러뜨린 클로징, 그런 클로징의 순환 누적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찾고, 바랐었다. 이설리가 환생을, 순환을, 초탈을 향해 나갈 때, 그때의 내가 떠올랐고 지금의 나를 마주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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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약속은 일요일, 뭉크 전이었다.

금요일 밤, 그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일정이 바뀌었다.

 

강렬한 태양과 함께한 토요일 오후 3시, 상암 월드컵경기장

시티 브레이크.

 

3시 40분. Nell의 공연을 보고, Hoobastank의 공연으로 넘어간 후, 6시 싸이의 공연을 봤다.

몇 년만에 보는 것임에도 싸이의 에너지는,, 음.. 솔직히 나이의 한계는 속일 수 없구나 했고,,,

Deftones의 공연은 주먹밥과 방울토마토를 먹느라 Skip

 

토요일의 헤드라이너, 오지 오스본!

기괴한 분위기, 어눌한 듯 오묘한 Vocal

이어폰으로 들은 것과 다른 듯 같은 듯..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에너지를 펼쳐보였다. 기타리스트와 드러머의 어마어마한 열정과 함께, 헤비 메탈 이라는 두 단어가 표상하는 사운드를 강밀도로 거침없이 보여줬다. 쏟아지는 폭포수에 정수리부터 샤워한 기분.

 

일요일 5시, 도착하자 비 뿌리기 시작

5시 반쯤 메인 스테이지 좌석에 앉았지만, 월드컵경기장의 처마 끄트머리였는지라 점점 거세지는 비를 우비와 우산으로 막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비를 맞으며 다음 공연을 기다려도 기다려도.. 결국 비 때문에 리치 샘보라의 공연은 1시간 반이 지연되어 7시 반에 시작. 70분으로 계획된 공연이었지만, 늦게 시작된 터라 결국 40여분만에 끝났다.

 

일요일의 헤드라이너, 마룬파이브

히트 곡들을 연달아 부를 때마다, 월드컵 경기장이 들썩들썩.

가장 많은 관객들이 몸으로 반응(?)한 공연.

 

 

아직 휴가 전이지만, 휴가 다녀온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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