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 올해 너에게 권할 수 있는 단 한 권의 소설이야, 지금은 읽을 시간이 없겠지만 몇 년이 지나 좀 시간여유가 생기면 잊지 않고 선물할게

 

 

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 그의 소설 가운데 번역되기를 가장 바랐던 책. 기대는 충분히 채워졌고 그의 다른 책들에게로 나의 항해는 계속 될 것이고

 

 

저지대, 줌파 라히리
- 세월호. 저지대를 드문드문 읽은 그 혼돈과 비탄의 시간은 분리할 수 없다. 도저히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 조금 멍청한 사람을 읽는 것은 즐거운데, 그 멍청이의 꽤 많은 점들이 나와 닮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아연해지고. 소설은 사랑스러워지고

 

 

척하는 삶, 이창래
- 맹세와 고백 사이의 길고 긴 험로.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존재 때문이었겠지만 생존 이상을 위해선 관계가 있어야 함을

 

 

킹, 존 버거
- 벨벳 레이스 리본 코트, 벨벳 레이스 리본 코트. 장식과 기능. 아름다움과 밥그릇. 이 소설은 노골적이지만, 존 버거. 그가 이렇게 노골적으로라도 쓴 이유는. 하아.

 

 

언더 더 스킨, 미헬 파버르
- 그녀의 차에 올라탄 히치하이커들. 각각의 사정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한숨 쉬었고, 내가 간다. 그녀가 말했을 때, 차라리 담담했던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 성글어 보이기도 하고, 촘촘해 보이기도 하는 구조. 대가의 솜씨란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이탈로 칼비노
-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충격적이었고, 나무 위의 남작은 사랑스럽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가장 아름답다면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가장 정곡을 찌른다.

 

 

이런 이야기, 알레산드로 바리코
-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마이클 온다체의 소설 옆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다카하시 겐이치로
-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지키는 독서습관은 일년에 한 작가 한 장편소설. 사요나라, 갱들이여를 올 초에 읽었으니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내 습관을 깬 소설가. 정영문의 소설 읽기가 7미터짜리 꼬불꼬불한 인간의 소장 속을 지나는 것 같았다면, 다카하시 겐이치로 소설 읽기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

 

 

현기증. 감정들, 제발트
- 11월 2일. 읽기를 마쳤다. 그런데, 뭐라도 하나 끄적거리게 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을 들였다. 제발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좋았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장악한 분위기는 거의 두 달 동안. 심지어 제발트가 사랑한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고 나서까지도 여전히. 여진은 계속됐다. 토성에는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게 생긴 고리가 둘러져 있고, 나의 의식도 그 고리들처럼 토성을 벗어나지 못했고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어린 아기 곁의 날카로운 가위처럼. 보기에 불안불안 했던 것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푸념 섞인 한숨을 쉬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다음날은 못 읽을 것 같았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후반부는 서서 읽었다. 졸지 않으려고. 야밤에 두 시간 넘게 서서 읽었더니 또렷하니 좋았다. 첫 문장이 인상적이라지만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쿤데라의 농담도 떠오르고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안토니오 타부키
- 지금 이 소설을 대한민국에서 읽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2666, 로베르토 볼라뇨
- 아직 세 권만 읽었고 다 읽지는 못했어도 올해 나만의 소설로 꼽고 싶다. 전체를 일관하는 분위기가 있음에도 또 각 권이 제각기 달라서, 남은 두 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긴 소설은 일독하기 힘들어

 

 

 


굿바이 2014

 

다들 새해엔 더 좋은 책들을 만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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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1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나에게 준다

툭..발밑에..떨어진..책이 왜 없지?
정말,잠깐 멍하기 까지..
그랬는데
신나서 응...!!^^ 하려고 보니
저는. 순서 축에도 못드.는 사람인거죠.
깜빡 넘어가서..냉큼 무릎 꿇고 기다릴뻔
한...거죠.ㅎㅎㅎ네...풀 안죽었어요.
네! 걍 가요..안녕히 계세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_ど) ㅎㅎ

dreamout 2015-01-03 19:46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ㅎ ^^
 

     크리스마스 이브에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난 스크루지처럼 페레이라는, 그리고 독자는 몇 명의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난다. 가르시아 로르카에 대한 정치적인 글을 페레이라에게 내보인 몬테이루 로시와 첫 만남에서 이 시간에 내가 왜 이런 곳에 왔는지 모르지만, 이미 와 있는 이상 왜 나한테 춤을 청하지 않느냐던 마르타, 뭔가를 하라던 델가두 부인과 기다리라고, 다른 지배적 자아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카르도주 박사, 기자가 모르는 것을 어찌 알겠느냐고 툭 던진 카페 종업원 마누엘까지. 숨을 들이키듯, inspire. 페레이라는 딸각거리는 뼈를, 들끓기 시작한 피를, 일으켜 세우는 맷집을 온몸 가득히 채워나간다. 행동한다.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4장인 <귀향>의 한 대목. 짙은 구름으로 잔뜩 뒤덮인 날, 국경 검문소를 지나 W로 진입하다 들어가게 된 크루멘바흐 예배당. 배를 타고 망망대해 한가운데를 항해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 곳. 나는 이 환각적인 장면에서 아직 읽어보지도 않은 모비딕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장면의 환상성에 깊이 매료됐다. 제발트는 리얼의 리얼을 쫓듯 써나가지만 그 리얼의 끄트머리에 환상을 리얼하게 펼쳐놓는다. 그리고 이 대목의 환상성은 마법에 걸린 사냥꾼 모티프와 엮이면서 기이한 역동성을 획득한다. 제발트가 느낀 현기증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 감정의 다발 속에는 실패로 끝난 리비도의 분출이라는 역동적 비틀림도 존재함을.

 

 

     300여 페이지를 지나, 이런 문장을 보았다. ‘색깔 없는 사각형 사이에서 새빨간 상처처럼 눈에 확 띄는데다 위치도 비대칭이어서-체스로 치면 나이트가 꼭대기에서 한 번 움직인 자리였다-볼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이 대목에서 호텔 마법에 걸린 사냥꾼에서 잠시 말장난을 나눴던 사람이 떠올랐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험버트 험버트에게서 처음으로 어떤 멜랑콜리를 느낀 순간, 소설의 1부 후반부가 떠오른 것이다.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에 바벨(Barbell) 전략이 언급되는데, 이는 중간(평균)은 버리고 양극단적인 선택만 하는 투자전략을 말한다. 투자전략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자산과 아주 리스크가 큰 자산을 동시에 선택하는 것인데, 험버트 험버트는 양 쪽 모두 아주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한다. 소설의 형식도 그랬다. 롤리타를 세 등분한다면 처음과 끝은 파토스로 넘쳐나고 가운데는 밋밋하다. 바벨처럼.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저 지점부터 끝을 향해 고속낙하 할 험버트 험버트를 나는 민감하게 감지했다. 미국 전역을 로드무비 찍듯 여행하는 부분을 밋밋하게 처리할 때부터 분위기는 이미 형성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격자무늬 창살로 이루어진 사각형 중에서 한 칸에만 루비색 유리를 끼워놓은' 것을 이상하게 신경 쓰게 된 시점이 왔고, 그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 또한 다이빙대 끝에 선 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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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새로운 부서로 처음 출근하는 날.

지난주 내내 휴가였다. 여름 휴가를 이제서야 사용했다. 금요일에 인사이동 발표가 있었는데, 나보다는 우리 부서의 부서장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새 부서장이 오기 전에 휴가를 사용했다. 예상대로 부서장은 이동했다. 그리고 내 이름도 이동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이동 가능성은 20% 내외라고 생각해서 기대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빠른 서울 복귀다. 새로운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직 감도 잡지 못한 상황. 다시 연말은 바쁠 것 같다.

 

 

근래에 읽은 책들을 전부 백자평으로 쏜살같이 쓴 것은, 마음 부담을 적게 가져가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현기증. 감정들』, 『롤리타』를 백자평만으로 딸랑 쓴 건 미안하네

 

 

점점 갈수록 내게 좋은 책이란, ‘연구하게 만드는 책이다. 자발적으로 연구하게 만드는 책. 정답이 번듯하게 나와있는 그런 것 말고 이미 다른 사람은 모조리 알고 있는 내용이더라도 내 눈에 들어온 자그마한 단서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나만의 뭔가. 썸씽으로 만들게 하는 책은 정말이지 소중하다. 지금의 내게는 그 대부분이 소설이다. 그 밖의 책들은 내 생각의 씨앗을 짓밟을 정도로 나를 주눅들게 하던가, 너무 설명적이고 정답에 이르는 길만 가르쳐주는 학원 강사 느낌이어서 자발적인 기쁨을 찾기 어렵다. 소설만이, 특히 소수의 소설만이 나를 자발적으로 연구하게 만든다. 지금은.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제발트, 나보코프의 소설도 그랬다. 여전히 머리가 뱅뱅 돈다. 그만큼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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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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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페이지. 사각형 중에서 한 칸에만 루비색 유리를 끼워놓은 격자무늬 창살이 이상할 정도로 신경쓰인다는 문장과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에도 등장하는 마법에 걸린 사냥꾼 모티프. 이 두 가지는 재독할 때 더 주의깊게 살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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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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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원에는 업둥이/사생아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 제발트는 촘촘한 기억/기록으로 거의 믿을 수 없는 현실(=환상)을 만들어냈다. 제발트는 업둥이 작가군에 속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지만 훨씬 벗어난 값, 아웃라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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