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지 않았다. 감탄한 것은 묘사,
공감각적 묘사라 말해도 좋을 표현들이 나도 모르는 새 팔짱을 껴왔다. 어머니의 키스를 갈망했던
콩브레 집에서의 어느 밤, 생틸레르 종탑을 묘사한 그 기막힌 문장들,
산사나무 아래 질베르트와의 짧은 만남 장면, 오데트를 찾아 한밤중 빠리의 거리를 헤맨 스완의
숨가쁨, 생퇴베르트 저택에서의 만찬 중에 연주된 뱅퇴유의 소나타, 질베르트와
재회한 샹젤리제 거리. 인화해 놓고 아무렇게나 널려놓은 사진처럼 날카롭게 구분된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반 고흐의 그림에서 곁의 검정을 움켜잡고 초록과 엉켜 붙은 노랑처럼 서로 뒤엉킨 이미지들이 시간과 장소, 추억을 한껏 휘저어 놓았다.
“난 뭘 좀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내 생각엔 선생도 그렇고” 흑인 목사가 선셋 리미티드를 향해 몸을 날렸던 백인 교수와 함께
식사한다. 백인 교수와 맛있게 먹는다. 애덤 고프닉의 『식탁의
기쁨』 프롤로그에는 다니엘 드쿠르드망슈라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사람이 쓴 편지를 소개한다. 1942년 5월 24일 이른 아침에 부모에게 쓴 편지를. ‘자유의 몸이었을 때 함께
나눴어야 했던 맛있는 음식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라는 문장이 포함된 편지를. 세 시간 뒤 나치는 그를 사살했다.
백인
교수는 선셋 리미티드를 향해 몸을 날렸고 흑인 목사는 살렸다. 흑인 목사는 백인 교수를 삶에 붙잡아
놓으려고 하고 백인 교수는 삶을 다시 접을 것만 같다. 언어로 하는 결투 또는 설득. 백인 교수는 문을 나선다.
흑인
목사와 백인 교수의 논쟁보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흑인 목사의 방백보다,
둘이 맛있게 먹은 요리에 관해 얘기를 나눈 대목이 나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