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섹스 비디오 유출로 수군거리던 어린 시절의 소문들 때부터, 야동에 대한 이야기가 은근히 돌아다녔던 걸 기억한다.
야동이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야동순재라는 유행어가 돌면서 남자라면 당연히 보는 것처럼 언급되었지만 예전엔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야한 잡지를 갖고만 있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하던 시절이 있기는 했었다.
그게 언제부터 이렇게 바뀌었는지, 나는 제대로 기억해보지 않았는데, 연구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너무나 놀랍다.
N번방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포르노 역시 하나의 문화현상 중 하나고, 포르노라는 것이 처음부터 이런 형태는 아니었다는 것부터 다뤄지면서 뭔가 깨닫는 게 있었다. 포르노의 탄생 배경 역시 사회적 맥락이 있었고, 어떠한 맥락과 어떤 현상들을 통해 이렇게 변해왔는지 짚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N번방 이후 뭔가 갈곳없던 울분이 방향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런 거고,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거고, 원래 이렇게 여자를 그저 물건화하기만 하는 것이 남자의 목적이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 이 또한 사회문화적인 현상이고 학습과 전이를 거쳐 형성된다면 바꿀 여지가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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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앤더시티가 한창 열렬한 숭배를 받고, 그걸 보는 게 쿨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그게 정말 보기 싫었다. 그 때는 왜 그런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어서 사람들이 열광할 때마다... 캐리의 수많은 구두와 웨딩드레스와 보석들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내가 왜 그걸 불쾌하게 여겼는지 잊어버렸다. 유행이란 게 흔히 그렇지 않나. 시간이 흐르면 그 유행에 대해 언급하는 게 또 구질구질하게 여겨지니까.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옛날의 그 감정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렇게 여자들끼리 서로를 재어보고 신체를 조각조각 분절하고 태도도 분절해서 평가하는 게 싫었고, 어떤 물건을 소비했느냐로 우위를 논하는 것도, 얼마나 핫한 가게에 가서 먹어봤느냐로 우위를 점하는 것도 싫었지만, 섹스에 대해 쿨한 태도를 유지해야만 멋진 여자인 것 같은 태도가 특히 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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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 컨텐츠에 대한 필요성과 포르노에 대한 필요성은 이제 같은 선상에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동 포르노만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여자의 신체에 대한 철저한 대상화에 대한 용납의 문제다.
소프트한 포르노는 허용한다는 건 신체를 조각내는 대상화를 허용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한 번 허용하면 속도가 관건일 뿐, 결국은 자본과 결합된 포르노는 브레이크없이 계속 치달을 뿐이다.
"우리 문화의 포르노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내게 마법 같은 해결책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 우리는 거대한 경제구조와 맞닥뜨리고 있다. 포르노 산업과 싸우려면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적 운동으로써 저항해야 한다. -p.320"
"포르노 문화에서 주어지는 가소화, 일반화, 정형화된 섹스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도 성적인 존재로 살아갈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그러한 섹슈얼리티는 사회 운동이 정해줄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에게 귀속된 것이고 우리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우리가 성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p.322"
포르노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그리고 이 거대한 성산업에 대해서 반대하는 실질적인 행동은, 운동이 아니라 개개인의 층위에서도 해나갈 수 있다.
혐오만 말하는 게 아니라, 대안을 계속 생각해야하는 것.
개개인이 포르노 문화에서 정해주는 성문화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섹슈얼리티를 정하는 것. 포르노 문화는 섹슈얼리티가 아니고, 섹시하지 않다고 잘라 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