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개념으로서 확률은 픽션과 얼마만큼 관련이 있을까?

전적으로라고 할 만큼 관련이 있다는 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왜냐하면 그 개념에 정통한 저명 역사가 이언 해킹이 언급한대로, 확률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p.28 


첫 챕터를 읽기 시작하고 눈이 번쩍 뜨여서 자세를 바로잡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 굉장히 흥미로운데, 이 저자는 소설가이자 사회인류학자, 영문학자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책의 첫 챕터 제목이 왜 문학인지 이해를 못한 상태에서 읽어내려가다가 깊이 납득한 것이다. 기후위기가 왜 문학의 소재가 되기 어려운지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에는 이상 기후의 이야기를 꺼내고, 이후 문학의 패러다임을 설명하고, 문학 뿐 아니라 과학에도 영향을 미치는 근대적 세계관을 설명한 후 마침내 기후위기로 접근하고 있다. 

아미타브 고시는 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예술성, 과학은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진리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예술도 과학도 결국은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내러티브란 본질적으로 어느 면에서 나머지와 다르거나 그로부터 두드러지는 순간 또는 장면을 서로 연결하면서 전개된다. 당연히 이러한 순간이나 장면은 예외적인 것들의 예다. 

소설 역시 이런 식으로 펼쳐지지만, 다른 것과 구별되는 형식상의 특징이 있다. 다름 아니라 내러티브의 동력으로 기여하는 그러한 예외적 순간들에 대한 은폐다. 이는 이탈리아의 문학이론가 플아코 모레티가 '필러 fillers' 라고 부른 것을 끼워 넣음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모레티에 따르면 "필러는 흡사 제인 오스틴에게 더없이 중요했던 '훌륭한 예절' 처럼 작용한다. 필러도, 훌륭한 예절도 모두 삶의 서사성을 통제하고 존재에 정규성, 즉 양식을 부여하고자 고안된 기제다. 소설은 바로 이 같은 기제를 통해 세상을 만들어낸다. 내러티브의 정반대로 기능하는 나날의 일상적 디테일을 통해서 말이다." 이렇게 근대 소설은 "전례없는 사건은 배경으로 밀어내고 나날의 일상을 전경으로 끌어내는" 식의 변화를 겪었다. p.30


전례에 없는 사건 - 즉 기후위기, 지구 기온 상승, 녹는 빙하, 갑작스런 사이클론 등의 느리면서도 거대한 자연의 사건들은 이렇게 세상에서 배제되고, 자연스럽지 않은 사건처럼 여겨져 점점 소설에서 다뤄지지 않는 것.


다시 말해 기후위기에 대해서 문학에서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한 개인의 문제, 기후위기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세계관에 관련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수 소설이라는 대저택 내에서는 아무도 대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 그 같은 규모의 관련성과 사건은 그럴 법해 보이지 않을 뿐더러 소설이라는 한정된 시야 내에서는 터무니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인류세의 지구는 바로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만큼 광대한 힘이 좌우하는 , 피할 수 없는 집요한 연속성의 세계다. 순다르반스를 침범하는 물이 마이애미 해변도 덮친다. [...] 물론 기후와 지질학이라는 힘이 우리 삶과 무관한 시대는 한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힘이 이렇듯 무자비하리만큼 직접적으로 우리를 압박한 시대도 없었다. p.86


2부의 역사에서는 기후위기를 논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끌려나오는 근대성 개념이 서구 고유의 것인 양 다뤄진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매우 거칠게 요약... ), 아시아 출신이기에 첨예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2부에서 인용하고 다루는 책들이 몹시 궁금했는데 비서구권 책들은 거의 번역이 안되거나, 되더라도 7,80년대에 된 후 근래에는 별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의 책들 역시 대혼란의 시대 외에는 구해보는 게 쉽지 않고, 번역되지 않은 책도 많다. 

소금 도시 너무 읽어보고 싶은데 읽을 수가 없어서 안타깝네!! 


중국의 석탄, 유정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버마(=미얀마)의 석유 채굴 이야기도 대단히 흥미로운데, 내가 얼마나 동남아시아에 무지한지 새삼 깨닫다. 서구권 외에 돌려지는 동양권에 대한 시선이 중국과 일본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외의 나라들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근대성 이야기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제국주의 역시 따라나와야지. 

그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저자가 언급하는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아쉬워. 


3부는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기후위기를 다룬다. 

기후 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결국 사람들의 도덕심에 호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기후변화의 공적 정치는 그 자체로 도덕적, 정치적인 것이 어떻게 해서 마비상태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다. 최근에 수많은 활동가와 관심있는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도덕적 이슈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 다른 모든 민주적 통치자원이 동나고 오직 그 찌꺼기인 '도덕'만 남은 듯한 형국이다. 


기후변화 이슈에 대한 이러한 틀 지우기는 한 가지 커다란 미덕을 지닌다. 그것은 국제적 기후변화 관료주의가 그 이슈에 부과해온 경제적 언어(비용 이익 언어)를 단호히 배격한다는 점이다. [...] 만약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주로 개인의 양심에 제기하는 문제로 바라본다면 진지함이나 일관성은 불가피하게 정치적 입자을 판단해줄 시금석이 된다. 이는 다시 부인론자로 하여금 활동가들이 개인적으로 선택한 생활방식을 지적함으로써 그들을 위선자라고 몰아붙이게끔 만들 수 있다. [...] 


"당신은 기후변화 때문에 무엇을 포기하셨죠? 당신이 감수한 희생은 뭔가요?" [...] 그가 일순 얼어붙음으로써 분명한 것마저 제대로 말할 수 없게 된 것은 정치와 도덕이 손잡은 결과였다. 기후변화의 규모는 더없이 방대하므로 집단적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화하지 않으면 개인의 선택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p.177 


먼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 역시 바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지. 


관련된 논문도, 책도 많은데다 시간과 공간을 아주 넓은 범위로 다뤄서 책 자체는 얇지만 사고를 따라가느라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고두고 다시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요새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읽는 책마다 언급되는데 번역된 김에 완독해야겠다고도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쓰는데 글을 네 번 날렸다... 

하... ㅠㅠ

















언급된 책들 중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 

그리고 관련해서 읽으려고 담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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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을 여는 1월의 여성주의 함께 읽기 대상 도서는 웬디 브라운의 '남성됨과 정치'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를 읽지 않고 웬디 브라운을 먼저 읽는 것은 깊은 독서가 되기 어려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디 브라운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 다 쓴 페이퍼가 날아갔어... 

아니 왜 자동 저장이 안돼 욕나온다 ㅠㅠㅠㅠㅠ 

서재 쓰면 쓸수록 진짜 너무 별로네, 무슨 PC 통신 시절 블로그도 아니고 자동 저장이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안된다는 게 말이 되냐? 빡친다... ㅠㅠ 



멘탈 추스리고 다시 써보자. 



이 책은 어렵지만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까지 힘든 여정을 거쳐오면서 결국 서구사회가 정의하는 정치란 어떤 것이며, 그 정치에 남성됨이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이러한 남성됨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베버가 그토록 맹신했던 과학이 이제 정신과 육체는 별개가 아니며, 머리뼈 안쪽 어딘가에 자아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고, 우리의 정신과 자아는 회색 뇌세포와 신경전달물질과 통증 없는 컨디션의 육체 그 자체에 있으며, 육체와 정신은 말 그대로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육체와 육체를 돌보는 일상적 삶의 영역은 배격되고 지배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정치는 베버, 마키아벨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과는 달리 이제 복지국가를 표명하며 일상과 가정, 육체를 돌보면서 합법화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웬디 브라운은 말한다. "남성됨과 정치의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국가는 시민들의 삶, 시민의 목숨을 '국가 안보', '국위 선양'에 대한 대가로 지불할 때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얻은 소득 중 하나는 마르크스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의 맥락을 깨달은 것이다. 피임과 임신중지, 임신에 대한 선택이 여성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브라운은 그 시각이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자연(=육체)를 배격해야만 비로소 시민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시각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자연이 아니다. 


우리는 "남성이 배제하고 거부하고 탄압하고 부정한 것을 다시 가져와 그들을 통합해야 한다." (p.345) 


그렇다고 해서 여성적 가치를 남성적 가치와 등치되는 자리에 놓고,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려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상가들이 이러한 노선을 택했으나, 남성됨이 남성을 전부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의 속박이 될 수 있듯이 여성됨 역시 여성을 전부 표현하지 못한다. 


이분법적인 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브라운은 


"대립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상과 행동의 길을 잃곤 한다. 남녀에게 생리적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 둘이 이분법적 관계라는 뜻은 아니다. [...] 이분법은 차이를 제시하고 조직하는 데 가장 단순하고 환원적이며 흥미가 떨어지는 방식이다. [...] 우리는 단순한 역전이나 통합을 추구하기보다 잘못 깔린 판에 놓인 반대 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피해 떠나야 한다." 


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서문으로 돌아갔다. 한국어판 서문 15페이지에, "내가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던 1979년 당시 정치학과에는 나를 포함해 여자 동기가 셋 뿐이었다." 라고 쓰여 있다. 이 다음에 나오는 구절은 아, 여자라면 대충 알지. 브라운은 아주 우아하게 "그 때까지 나는 나한테 그렇게나 까칠하게 구는 곳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라고 쓴다. 

그리고, 단체생활을 하는 여자라면 여자에게 배타적인 집단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치졸하고 모욕적이며 인성을 변기에 내린 것처럼 굴 수 있는지 알 것이다.

그 전장에서... (권력 구조에 있어 남성됨을 지적하는 책에 대해 쓰면서 이런 비유를 쓰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다른 표현을 찾기가 좀 어렵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거두면서 자신이 겪은 차별이 있는 자리를 "잘못 깔린 판"이라고 정의하는 냉철한 식견이 너무 존경스럽다. 


마지막 9장과 10장이 특히 백미였고...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우리를 속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이다. 깊이 추궁해 본 적 없는 우리의 공포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들고,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요구가 우리를 배고프고 잔인하게 만든다. 또한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갈망이 우리를 만족시키지 않는 대상과 관계에 집착하게 한다." P.365


"우리에게는 우리를 완전히 주눅들게 하는 것 앞에서 경계를 지워버리고 견해 관계 노력을 밀어붙일 용기가 필요하다." P.379 


너무 좋은 책이어서, 거의 책 전권에 걸쳐 언급되다시피 하는 아렌트가 몹시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인용과 언급이 아렌트에 대한 반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인용된다는 것 자체가 아렌트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대체 아렌트의 사상이 어떻기에 이렇게 반론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너무 궁금하네. 

일단 집에 있는 아렌트 책을 읽어보자. 



이 책을 왜 샀더라...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있으니까 먼저 읽고. 













웬디 브라운의 최신작(이라지만 2019년에 나온)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폐허에서"가 너무 궁금한데... 번역이 안되었다. 대신 다른 책 두 권이 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두사의 시선 1권을 담자.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우리를 속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이다. 깊이 추궁해본 적 없는 우리의 공포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들고,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요국가 우리를 배고프고 잔인하게 만든다. 또한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갈망이 우리를 만족시키지 않는 대상과 관계에 집착하게 한다." - P365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의 삶이라고 부른 ‘좋은 삶‘은 일반적 삶에 비해 그저 더 낫거나 더 걱정이 없거나 고상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삶을 위한 욕구를 정복하고, 노동과 일에서 해방되고,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한 선천적 충동을 넘어서면서 생물학적 삶의 과정에 더는 매여있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것이다. [...] 생물학적 삶의 과정과 모든 생물의 생존을 위한 충동은 무관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진정한‘ 본성 함양에 저주와도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 P101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복합체에서 어떤 경우든, 언제나 지배하는 요소와 지배받는 용소를 추적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원칙을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 개별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등 모든 범주로 넓힌다. 영혼은 지배와 피지배로 분류되며,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뉘고 고결한 인간의 육체를 지배한다. - p.102 - P102

간단히 말해 베버는 합리화와 그에 따르는 지배와 소외의 형식을 ‘세계의 각성‘과 도구적 합리성의 출현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고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 ‘불가피한‘ 발전이 사실은 서구의 남성됨을 특징으로 하는 권력과 자유의 건설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p.289 - P289

비물질적이고 비필연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비사회적이지만 희망을 주며 영광스러운 명분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마키아벨리의 경우처럼 베버의 사상은 애초에 오직 소수의 매우 일반적이지 않은 인간들만이 진정으로 소환되는 이 고상한 영역이 궁극적으로 공허하거나 부자연스럽거나 순전히 미학적 본성만 있다고 암시하지 않는가? 남성됨과 정치는 그저 인간적일 뿐인 모든 것 위에 그리고 너머에 있는 자신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점유되지 않은 공간을 다시 찾고 있는가? p.281 - P281

베버에 따르면, 가정 내 권위와 충성은 두 가지 근본적 특성에서 비롯한다. 자산 소유와 소비의 공산주의에서 발생하는 ‘연대‘, 가정의 가장 강건한 구성원이 존경을 받는 ‘우월성‘이 그 두 가지다. 베버가 가정 공산주의를 언급하는 순간, 순수한 경제적 현상으로서의 가정 공산주의는 대체로 무시된다. 그것이 충성과 권위의 토대가 되긴 하지만, 그 충성과 권위를 구성하진 않는다. 즉 베버는 물리적 우월성에 내재한다고 생각한 권위를 상당히 의미있는 것으로 다룬다.

p. 257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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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러려고 같이읽기를 시작한거긴 하지만 이렇게 다른 분들의 독서후기를 보니 제 독서에 도움이 돼서 너무 좋네요. 언급하신 한나 아렌트 책은 제가 이미 읽은 책인데 전 참 좋았습니다. 등롱 님께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한 비판이 줄곧 나오지만 한나 아렌트다 싫어지기는 커녕 더 궁금해지는 책이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등롱 님!!

등롱 2022-01-31 23:45   좋아요 0 | URL
와 저 진짜 같이 읽기 너무 잘한 것 같아요 ^^ 이번에도 너무 좋은 독서였구, 어렵지만 이게 바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로구나 깨달으며 좁은 식견을 넓혔습니다. 이번달에도 다락방님의 상냥한 리더십에 힘입어 독서를 마칠 수 있었어요!!
너무 아는 게 없어서 사실 독후감 쓸 때마다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데요,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게 있는 거 같아서 걍 뒤죽박죽 짧은 소견이나마 독후감 쓰려고 노력하구 있어요 ㅎㅎ
한나 아렌트 책도 다락방님 말씀에 힘입어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기대가 됩니다^^
 

2021년의 화두는 디지털 디톡스, 미라클 모닝, 습관이었다. 

, 지금의 몸은 지금까지의 내 선택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지금의 내 몸에 잘못되었다면, 내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선택은 잘못된 선택일 공산이 큽니다. 

"가장 싫은 선택이 가장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이 한 마디를 목표로 삼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과는? 운동과 일기쓰는 습관을 몸에 붙였고, 지금은 집중력을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올해의 화두는 집중력과 현존이다.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독적인 쾌감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집중력을 낮추고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 뿐인 멀티태스킹을 줄이고 집중을 높여서 성과의 질을 끌어올리고 싶다. 

몸도 더 챙기고. 

높은 집중력은 건강한 몸에서 나오기에. 


그래서 관련한 책들을 곰곰이 살피는 중이라 명상 관련한 책들이 없나 밀리의 서재를 뒤지고 있고. 

가드닝에서 자연으로, 그리고 기후위기까지 관심사가 조금씩 이동 중.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돌돌콩님 유튜브에서 본 책이다. 지금 아직 초반부만 읽었는데 서두부터가 강렬하게 주의를 끈다. 인간의 인생을 표현한 4장의 그림으로 시작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이룰 것을 다 이루고 안정기에 들어서야 할 40대에 이르러 왜 불안과 초조감, 자괴감에 시달리고, 상황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는데도 50대에 이르면 거짓말같이 그 불안감이 사라지는지에 대해 통계학적으로 제시를 한 다음.... ... 제시를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음. 

이 다음이 궁금해!

하지만 지금은 남성됨과 정치를 먼저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이건 '요즘 애들' 읽다가 담았다. 이거 아직 안 읽었는데 읽어봐야 할 거 같아. 


]초인적 힘의 비밀 : 여성 운동 초월]

하이드 님의 추천으로 장바구니에 담음. 앨리스 벡델의 그래픽 노블이고, 운동을 좋아하는 저자가 계속해서 운동을 해온 이야기가 개인사, 현대사와 맞물려 펼쳐지는 이야기인 것 같다.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운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지라 아주 흥미롭다.

얼마 전에, 내가 어떻게 운동을 하기 시작할 수 있었지?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은 게.

2018년 즈음에 나는 불현듯 마라톤을 해보고 싶었고, 망설이다가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엉망진창이지만 어쨌든 달리기 연습을 하다가 마라톤에 참가했다. 

기록은 당연히 완주한 게 신통방통한 수준이었는데... 문득 떠오른 것이다. 아, 이 정도면 나도 이제 어느 정도 경력에 맞는 커리어패스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을 처음 했었던 시점이 그 때였다는 게. 

그 때부터 삶이 조금씩 나아졌던 것은, 그 때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로소 내가 처음으로 내 성취를 긍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 운동을 한다는 건 30년 넘는 시간동안 계속해서 주입받아온 수치심을 처음으로 이겨본 거였다. 

처음으로 운동이 내 삶에 그렇게 들어왔고, 우당탕탕 허둥지둥 형편없이 낮은 기록으로 자신의 몸을 알아가면서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뒤늦게 받아들인 게 아니라 운동이 항상 삶에 같이 있던 사람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도무지 상상이 잘 안된다. 

















[대혼란의 시대]

기후 위기에 관심사가 생겨서 담았고, 관련해서 구입한 책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다. 

기후 위기는 거시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느낌.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해서 읽은 [내일 날씨, 어떻습니까?]를 통해서 기상학, 그리고 기후위기에 관련한 과학의 발전과 연구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트라우마]는 최근 트위터에서 후기를 좀 보다가 다락방님도 추천을 하셨기에 장바구니에 담음. 




























그리고, [동네에서 만난 새]. 

유튜브 새덕후 채널을 보면서 하늘과 새들을 보는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됐다. 원래도 토리빵 보면서 직박구리의 부숭부숭한 머리, 아씨처럼 고운 콩새의 외모와는 달리 무시무시한 식욕 같은 걸 보며 즐거워했었는데, 더이상 출간이 안되어서 너무 슬펐다. 책이 너무 즐거워보여서 얼른 장바구니에 담음. 

그랬더니, 줄줄이 이 책을 산 사람이 함께 산 책이 뜨길래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새의 언어], [벌의 사생활], [식물학자의 노트]를 담고 말았지 뭐야. 

[숲은 고요하지 않다],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도 그렇게 같이 담아버림. 

동네 지역 까페에서 우연히 어떤 요기가 명상을 위해 숲을 턱 사버린 걸 보고 너무 부러웠다. 

와 나도 숲 600평 사고 싶어. 

그래서 그 숲을 천천히 거닐면서 가꿔보고 싶다.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

미세 세계의 이야기 너무 기대된다. 


















살림비용과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세트로 장바구니에 담기 무섭게 사버렸기 때문에 언급할 새도 없었네, 벌써 책장에 슬쩍 꽂혀있는데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책욕심 너무 많아... 

열심히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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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23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라우마> 는 책 자체로도 너무 좋지만 읽어두면 다른 책 읽을 때도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사셨다면 정말이지 무조건 읽어봐야 하는 책이에요.

등롱 2022-01-23 09:0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이렇게 여러 추천을 받으니 엄청 기대됩니다!! ㅎㅎㅎㅎㅎ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은 사회구조적 현상이며, 이 번아웃에는 이전 베이비붐 세대의 책임, 하락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 감소와 쇠퇴한 사회복지, 기술의 발달, 가혹해진 양육 기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는 내용이 책의 요지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일자리와 고용 형태가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현 상황은 곧 아주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워커홀릭이 힙하게 받아들여지는 풍조, SNS를 이용하면서 생겨나는 고독과 집중의 고갈 같은 부분을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다른 인류학자, 사회학자, 행동경제학자들의 여러 연구들이 많이 인용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챕터 부분에 인용되었기에 장바구니에 담아보았다. 


칼 뉴포트 역시 인용되는데, 저자의 말대로 디지털 디톡스를 해본 적이 있다. 한달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썼던 5개의 어플을 지워서 접속하지 않는 디지털 디톡스였는데, 그 후 다시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갔다. 스마트폰을 없앨 고려를 해보기도 했는데 이미 내 생활에 아주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어서 곤란하다. 무엇보다 재택근무 OTP와 접근 권한이 폰으로 검증되고 있고, 운전 시 내비게이션을 쓰고, 각종 관공서와 은행 어플 등이 있고... 


비정기적으로 보상처럼 내 뇌를 자극하는 여러가지 알람들 때문에 내 의지력만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싶은 욕망을 억제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고 소용없는 짓인지는 이미 충분히 안다. 


요새 스마트폰을 다루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걸 느껴서 줄이려고 노력하는 참에 본 책이라 이 챕터 부분에 꽤나 집중해서 읽었지만, 책에서 다루는 성인 밀레니얼 세대들의 번아웃에 관련된 문제들은 바로 내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내 보스의 보스는 시도때도 없이 일에 모든 것을 때려박는 걸 성공의 중요 요인으로 여기고 있고, 좀더 강렬하게 시간을 많이 바쳐 일해주길 바란다. 본인이 이미 육아를 위해 아이를 재우는 시간에서조차도 메일과 기획서와 리뷰를 읽으며 업무에 올인하는 중이고, 다른 사람도 그러길 바란다. 

취미에 대한 찬사가 '돈 벌어도 되겠어요'인 것 역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이고, 개인의 삶에서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돈벌이로 치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버렸다. 

수많은 아웃소싱 역시 남 이야기가 아니며, 시궁창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다른 시궁창 일자리를 찾아 돌려야하는 것 역시 남 이야기가 아니며, 여가에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휴식에는 무엇을 해야 휴식인지 몰라서 방황하며 일하지 않을 땐 죄스럽고 일하면 비참한 것 역시 그렇다. 


그리고 결국 이 번아웃들은 개인에게서 촉발된 것이 아니기에, 해결방법 역시 개인이 심리치료를 받고 일기를 쓰고 스스로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채찍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행동이 어떻게 남의 번아웃을 부추기는지를 생각해보고

모두를 위해 삶을 더 낫게 만들 해결책들을 지지해야만 한다. 

더 나아지는 변화는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과로는 아방가르드적이고, 패셔너블하고 ,진보적인 것이 되었다. 반면 조합에서 보호하는 주당 40시간 근무는 고루하고 현실에 무지할 뿐더러 멋지지 않은 것이 되었다. 조합과 조합을 보호하는 법이 인기를 잃자 노동자 간의 유대 역시 인기를 잃었다. 그 대신 ‘좋아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쟁취한다는 목표 아래 무자비한 경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 "모든 개인이 자신을 나머지 사회 구성원과 제로섬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독립 계약자로 간주할 때, 유대는 혐의가 된다. 개인이 일하지 않고 보내지 않는 모든 순간이, 다른 누군가가 앞서나가서 그를 불리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된다."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에는 참으로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 하나를 앤은 매일 직면한다. 너무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이, 많은 희생과 고생으로 얻은 것이, 행복도 열정도 자유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동의 일상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 훗날 일터에 진입할 때를 대비한 최적화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아동은 성년을 한참 앞둔 나이에 작은 성인이 되고, 그에 수반되는 불안과 기대 역시 끌어안는다.

여성들이 전문적 일터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그 결과로 불거진 ‘어머니 없는‘ 아이들, 지저분한 집, 여성화된 남성 전업주부들에 대한 불안을 어떤 식으로든 잠재워야 했다. 자칫하면 미약한 발전마저 백래시에 의해 무산될 테니까. 그리하여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성들은 오직 모든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킬 때만 일터에 진입할 수 있었다. 여성은 야심을 가질 수 있었지만, 여전히 상냥해야 했다. [...] 그러나 과거엔 이 모든 자질을 온라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포장하라는 기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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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백인 중산층 여성들은 특권이 자유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은 생존자가 거의 없는 낯선 나라였다. 여성의 몸은 빈민가나 제3세계만큼이나 식민화 되어 있다. 그들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여성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강하고 행복한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48


미친 여자들은 정말로 미친 걸까?

정신병을 앓는 여자들은 정말로 정신병에 걸린 걸까?


서양의학이 어떤 질병을 이해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을 때 종종 그 질병을 단순히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하면서 그런 병의 존재를 부인해왔다는 사실이다.  - p.37


필리스 체슬러 자신도 스스로의 대표 저작이라고 꼽는 여성과 광기를 읽으면서 따라가면 왜 구성이 이렇게 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1부 제목은 광기, 2부 제목은 여성인데 1부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를 든 후 신화와 대표적으로 미쳤다고 평가된 여성 영웅에 대해 언급하고, 이후 정신병원과 질환, 치료사들에 대해서 범용적으로 다룬다. 2부에선 정신병원에 입원당했거나 치료받았던 여성들을 분류하고, 그들에 대해 다루며, 개인들과 진행했던 인터뷰 역시 담겨 있다. 


어떻게 사회와 치료사들이 손쉽게 미쳤다고 진단해버리거나 몰아붙여버렸는지, 혹은 실제로 미쳤다면 왜 미치게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내게 어둡던 길이 밝혀진 느낌이었다. 


전통적으로 우울증은 '이상적인' 자아의 상실, 애증의 대상의 상실이나 자기 인생의 '의미'의 상실에 대한 반응(상실에 대한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서, 외부로 향했어야 하거나 외부로 향할 수 있었던 적개심이 자신의 내부로 방향을 돌리게 되어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격성'보다는 우울증이 실망이나 상실에 대한 여성적 반응이다. 그런데 연구조사와 임상적 증거를 놓고 봤을 때 이러한 견해는 전체든 일부든 간에 논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우선 대부분의 여성이 어머니를 '상실했다' - 또는 한번도 진정으로 '가진' 적이 없었다 - 는 점에 주목하자. 여성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남편이나 연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단단한 '이상적' 자아를 발전시키는 여성은 거의 없다. 삶의 '의미'에 관심을 쏟는 일에 격려는 말할 것도 없고 허용조차 받지 못하는 여성이 대다수다.(물론 많은 남성들도 그렇겠지만 확실히 여성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그렇다) 여성은 삶의 의미를 지탱하고 있는 실존적인 기반을 상실한다기보다 '여성'이라는 직업을 잃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그들이 결코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을 '상실할' 수 없다. 


여성은 그들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언제나 애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 대다수 여성들은 이러한 애도를 성적,육체적,지적인 활동을 통해 철학화하거나 무시해버리거나 화를 내 풀어버리지 못한다. p.163


그는 '가족병리학'이 혼란스러운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개인 행동의 이해 불가함을 집단의 이해 불가함으로까지 확장한다. 이제 이것은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다수의 개인들에게 적용된 생물학적인 유추이다. [...] 이것은 '범임상주의'의 한 형태인데 [...] 그런 임상주의에서 모든 사회는 심리적으로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범임상주의의 위험은 가공할 낙관성에 있다. 토머스 사즈는 이것을 "정신분석학적인 제국주의"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실제로 사회가 '치료를 필요로 할 수는 있겠지만, 통찰이 있건 없건 간에 개인의 자유라는 환상에 기초한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적 방법은 그와 같은 '치료'를 할 수 없다. 특히 주요한 사회제도가 전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면 더더욱 치료될 수 없다. 


위 구절은 이북으로 읽어서 페이지 수가 없다. (이북은 종이책과 비교했을 때 몇 페이지인지도 같이 병기를 해주면 좋겠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여성) 개인의 행동은 그 개인만의 행동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발견되는 것이며 결국 사회는 심리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임상주의를 가리켜서 '그 가공할 낙관성' 이라고 잘라 말하는 부분이 너무나 멋진 것이다. 

사회제도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는데 어떻게 치료하녜... 

저 절묘한 비꼼... 


하지만 이 책은 그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읽은 두 권의 책... 정확히는 대략 80%만 읽은 페미니즘의 투쟁과 어찌저찌 완독해낸 하나이지 않은 성에서 이해가 안되던 부분들을 명쾌하게 관통하는 지점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나는 이전 두 권에서 몸에 대한 투쟁과 이론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당황스러웠고, 어딘가에서 몸을 다루는 게 필수적인 것 같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쭉 따라가다보니까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이다. 


소규모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여성들의 성적 오르가슴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됐다. [...] 여성이 자기 몸을 인정하고 즐기는 것은 자기발전에 필수적이다. 미국의 기계적인 '성매매'나 남성 중심적인 그룹섹스나 프리섹스와 같은 환상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여성들이 완전한 섹슈얼리티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어머니들이 생산수단과 재생산수단을 통제해왔을 때라는 것이다.  [...]  여성의 성적인 오르가슴도 빈민가의 아침 식단도 그 자체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첫걸음임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고서야 몸에 대한 탐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의 일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육체를 죄악시하고, 육체에서 나오는 욕망을 죄악시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어떻게 긍정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음, 사실 신화 파트도... 뒤에서 계속해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소환하여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았다면 신화 파트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 2의 성을 읽을 때도 그랬다. 긴긴 신화들을 읽어가면서 뭔가 알 듯 말 듯한 걸 보니 나는 정말로 이해한 게 아니었고... 그러나 일단 읽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일단 읽어가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 


사업하는 여성으로서 나는 남자 동료나 고객과 스포츠클럽이나 동업자 모임이나 사창가나 남자들만 모이는 파티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와 유사하게 관여할 수 있는 여자 동료도 거의 없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그와 같은 제도를 즐길 만큼 사회화되어 있지 않다. - p. 495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공적인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거의 없으며, 가치 있는 역할 모델도 거의 없다. '권력'과 '공적 행동'은 사실상 남성의 것이기에, 여성에게는 낯설다. - p.505


이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신화를 찾는 것은 가치 있는 역할 모델을 찾아내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동료를 찾고 경험을 찾기 위한 사회화의 일환이라는 걸 비로소 이렇게 구체적인 언급을 듣고서야 이해한 것.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깊이 몰입했다가 마지막 열 세 가지 질문을 읽었다. 출간된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 여전히 살아 숨쉬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루비 이든은 열일곱살 때 임신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이모는 그녀를 "헤픈 년"이라고 부르면서 그녀가 몰고 온 ‘소동‘과 ‘치욕‘을 비난하고 임신중절을 권유함으로써 괴로운 시련을 안겨주었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 모성은 이런 방식으로 실체화되었다. 여기서 진지하게 묻고 있다. 육체가 그처럼 야만적으로 부정당할 때 여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P233

일각에서는 남성 동성애를 서구 문화의 파수꾼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는 우리 문화가 반여성적이고 독선적이며 호전적임을 의미한다. - P362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흑인이자 여성은 폭력과 자기파괴와 편집증 사이를 끝없이 비틀거리며 걷는 위치에 있다. 나는 흑인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증세를 연구했다. 흑인 여성은 흑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좋아하지 않고 백인 여성을 선호하며 돈이라고는 벌어오지 않고 아내나 흠씬 두들겨팬다는 점을 전 생애에 걸쳐 분명히 깨달았다. 흑인 남성은 딴 여자들과 놀아나지만 흑인 여성은 백인 남성으로부터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또한 분명히 알고 있었다. 흑인여성들의 눈에 백인 여성들은 굴러먹은 여자들이고 유치하며 부유하며 인종차별 적이다. [...] 흑인 여성은 강하지만 그들 역시 굴러먹었고 가난하고 인종차별적이고 백인 남성이나 ‘좋은‘ 흑인 남성을 얻는 데 목을 맨다.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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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31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저는 저 비꼼을 그냥 넘겨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은데 등롱 님은 바로 딱 지적해주시니 같이 읽는 맛은 바로 이런데 있는가 봅니다. 저 혼자 읽기에도 좋은 책이지만 이렇게 다른 분들의 후기 읽다 보면 제가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게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책의 가치가 더 뛰는 것 같아요. 읽느라 고생하셨고 후기 쓰느라 애쓰셨어요. 책도 등롱 님의 후기도 읽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등롱 2021-12-31 22:19   좋아요 0 | URL
다른 분들의 인용을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다시 읽는 묘미가 있습니다! 저도 다른분들 후기 찾아 읽으며 이리가레보다 후기가 많아서 즐거워요 ㅎㅎㅎ 여성과 광기 정말 너무 좋은 책이었어요…!! 잠시 쉬고, 이제 또 다음 책을 기대하면서 출발하겠습니다, 다음 책 남성됨과 정치도 너무 설레어요~~

공쟝쟝 2022-01-04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습니다! 굳이 다 찾아내서 읽는 중입니다 ^^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은 여성주의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입니다. 먼저는 육체와 이성의 이분법이 여남의 이분법 그대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겠지만, 저 스스로는 제 몸에 대한 통제권을 높여가는게 (그것이 운동이나 안전의 문제, 혹은 섹슈얼리티까지) 여성이자 인간으로서의 저를 좀 더 강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종종 또 같고 다른 책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

등롱 2022-01-04 11:49   좋아요 1 | URL
앗 공쟝쟝님 리뷰 저도 잘 읽었습니다~. 수줍어서 댓글을 안 달았는데,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몸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가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몇권째 읽으니까 비로소 몸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느낌이에요. 보봐르가 말했던 여성의 몸은 여성에게도 타자화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함께 읽기 너무 즐겁습니다, 또 책 후기 나눠보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