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여는 1월의 여성주의 함께 읽기 대상 도서는 웬디 브라운의 '남성됨과 정치'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를 읽지 않고 웬디 브라운을 먼저 읽는 것은 깊은 독서가 되기 어려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디 브라운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 다 쓴 페이퍼가 날아갔어... 

아니 왜 자동 저장이 안돼 욕나온다 ㅠㅠㅠㅠㅠ 

서재 쓰면 쓸수록 진짜 너무 별로네, 무슨 PC 통신 시절 블로그도 아니고 자동 저장이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안된다는 게 말이 되냐? 빡친다... ㅠㅠ 



멘탈 추스리고 다시 써보자. 



이 책은 어렵지만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까지 힘든 여정을 거쳐오면서 결국 서구사회가 정의하는 정치란 어떤 것이며, 그 정치에 남성됨이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이러한 남성됨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베버가 그토록 맹신했던 과학이 이제 정신과 육체는 별개가 아니며, 머리뼈 안쪽 어딘가에 자아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고, 우리의 정신과 자아는 회색 뇌세포와 신경전달물질과 통증 없는 컨디션의 육체 그 자체에 있으며, 육체와 정신은 말 그대로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육체와 육체를 돌보는 일상적 삶의 영역은 배격되고 지배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정치는 베버, 마키아벨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과는 달리 이제 복지국가를 표명하며 일상과 가정, 육체를 돌보면서 합법화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웬디 브라운은 말한다. "남성됨과 정치의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국가는 시민들의 삶, 시민의 목숨을 '국가 안보', '국위 선양'에 대한 대가로 지불할 때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얻은 소득 중 하나는 마르크스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의 맥락을 깨달은 것이다. 피임과 임신중지, 임신에 대한 선택이 여성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브라운은 그 시각이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자연(=육체)를 배격해야만 비로소 시민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시각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자연이 아니다. 


우리는 "남성이 배제하고 거부하고 탄압하고 부정한 것을 다시 가져와 그들을 통합해야 한다." (p.345) 


그렇다고 해서 여성적 가치를 남성적 가치와 등치되는 자리에 놓고,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려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상가들이 이러한 노선을 택했으나, 남성됨이 남성을 전부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의 속박이 될 수 있듯이 여성됨 역시 여성을 전부 표현하지 못한다. 


이분법적인 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브라운은 


"대립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상과 행동의 길을 잃곤 한다. 남녀에게 생리적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 둘이 이분법적 관계라는 뜻은 아니다. [...] 이분법은 차이를 제시하고 조직하는 데 가장 단순하고 환원적이며 흥미가 떨어지는 방식이다. [...] 우리는 단순한 역전이나 통합을 추구하기보다 잘못 깔린 판에 놓인 반대 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피해 떠나야 한다." 


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서문으로 돌아갔다. 한국어판 서문 15페이지에, "내가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던 1979년 당시 정치학과에는 나를 포함해 여자 동기가 셋 뿐이었다." 라고 쓰여 있다. 이 다음에 나오는 구절은 아, 여자라면 대충 알지. 브라운은 아주 우아하게 "그 때까지 나는 나한테 그렇게나 까칠하게 구는 곳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라고 쓴다. 

그리고, 단체생활을 하는 여자라면 여자에게 배타적인 집단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치졸하고 모욕적이며 인성을 변기에 내린 것처럼 굴 수 있는지 알 것이다.

그 전장에서... (권력 구조에 있어 남성됨을 지적하는 책에 대해 쓰면서 이런 비유를 쓰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다른 표현을 찾기가 좀 어렵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거두면서 자신이 겪은 차별이 있는 자리를 "잘못 깔린 판"이라고 정의하는 냉철한 식견이 너무 존경스럽다. 


마지막 9장과 10장이 특히 백미였고...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우리를 속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이다. 깊이 추궁해 본 적 없는 우리의 공포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들고,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요구가 우리를 배고프고 잔인하게 만든다. 또한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갈망이 우리를 만족시키지 않는 대상과 관계에 집착하게 한다." P.365


"우리에게는 우리를 완전히 주눅들게 하는 것 앞에서 경계를 지워버리고 견해 관계 노력을 밀어붙일 용기가 필요하다." P.379 


너무 좋은 책이어서, 거의 책 전권에 걸쳐 언급되다시피 하는 아렌트가 몹시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인용과 언급이 아렌트에 대한 반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인용된다는 것 자체가 아렌트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대체 아렌트의 사상이 어떻기에 이렇게 반론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너무 궁금하네. 

일단 집에 있는 아렌트 책을 읽어보자. 



이 책을 왜 샀더라...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있으니까 먼저 읽고. 













웬디 브라운의 최신작(이라지만 2019년에 나온)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폐허에서"가 너무 궁금한데... 번역이 안되었다. 대신 다른 책 두 권이 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두사의 시선 1권을 담자.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우리를 속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이다. 깊이 추궁해본 적 없는 우리의 공포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들고,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요국가 우리를 배고프고 잔인하게 만든다. 또한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갈망이 우리를 만족시키지 않는 대상과 관계에 집착하게 한다." - P365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의 삶이라고 부른 ‘좋은 삶‘은 일반적 삶에 비해 그저 더 낫거나 더 걱정이 없거나 고상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삶을 위한 욕구를 정복하고, 노동과 일에서 해방되고,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한 선천적 충동을 넘어서면서 생물학적 삶의 과정에 더는 매여있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것이다. [...] 생물학적 삶의 과정과 모든 생물의 생존을 위한 충동은 무관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진정한‘ 본성 함양에 저주와도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 P101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복합체에서 어떤 경우든, 언제나 지배하는 요소와 지배받는 용소를 추적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원칙을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 개별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등 모든 범주로 넓힌다. 영혼은 지배와 피지배로 분류되며,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뉘고 고결한 인간의 육체를 지배한다. - p.102 - P102

간단히 말해 베버는 합리화와 그에 따르는 지배와 소외의 형식을 ‘세계의 각성‘과 도구적 합리성의 출현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고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 ‘불가피한‘ 발전이 사실은 서구의 남성됨을 특징으로 하는 권력과 자유의 건설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p.289 - P289

비물질적이고 비필연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비사회적이지만 희망을 주며 영광스러운 명분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마키아벨리의 경우처럼 베버의 사상은 애초에 오직 소수의 매우 일반적이지 않은 인간들만이 진정으로 소환되는 이 고상한 영역이 궁극적으로 공허하거나 부자연스럽거나 순전히 미학적 본성만 있다고 암시하지 않는가? 남성됨과 정치는 그저 인간적일 뿐인 모든 것 위에 그리고 너머에 있는 자신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점유되지 않은 공간을 다시 찾고 있는가? p.281 - P281

베버에 따르면, 가정 내 권위와 충성은 두 가지 근본적 특성에서 비롯한다. 자산 소유와 소비의 공산주의에서 발생하는 ‘연대‘, 가정의 가장 강건한 구성원이 존경을 받는 ‘우월성‘이 그 두 가지다. 베버가 가정 공산주의를 언급하는 순간, 순수한 경제적 현상으로서의 가정 공산주의는 대체로 무시된다. 그것이 충성과 권위의 토대가 되긴 하지만, 그 충성과 권위를 구성하진 않는다. 즉 베버는 물리적 우월성에 내재한다고 생각한 권위를 상당히 의미있는 것으로 다룬다.

p. 257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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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러려고 같이읽기를 시작한거긴 하지만 이렇게 다른 분들의 독서후기를 보니 제 독서에 도움이 돼서 너무 좋네요. 언급하신 한나 아렌트 책은 제가 이미 읽은 책인데 전 참 좋았습니다. 등롱 님께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한 비판이 줄곧 나오지만 한나 아렌트다 싫어지기는 커녕 더 궁금해지는 책이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등롱 님!!

등롱 2022-01-31 23:45   좋아요 0 | URL
와 저 진짜 같이 읽기 너무 잘한 것 같아요 ^^ 이번에도 너무 좋은 독서였구, 어렵지만 이게 바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로구나 깨달으며 좁은 식견을 넓혔습니다. 이번달에도 다락방님의 상냥한 리더십에 힘입어 독서를 마칠 수 있었어요!!
너무 아는 게 없어서 사실 독후감 쓸 때마다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데요,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게 있는 거 같아서 걍 뒤죽박죽 짧은 소견이나마 독후감 쓰려고 노력하구 있어요 ㅎㅎ
한나 아렌트 책도 다락방님 말씀에 힘입어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