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인기가 시들해졌을 즈음 기생충에 대해서 리뷰를 해보자. 리뷰라고는 하나 그저 조그만 입으로 주절거리는 수준일 뿐이다. 기생충은 본 사람들의 다양한 리뷰가 이미 소피아 로렌의 머리숱만큼 많고 흘러넘치기 때문에 거기에 기생충처럼 숟가락 하나 얹어보자

 

기생충은 봉준호 영화의 흐름을 이어받아 대립구조가 확실한 영화다. 하지만 이전의 다른 영화보다 대립을 하는 기저가 영화를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도록 장치를 하나 더 숨겨 놨다. 봉준호의 모든 영화는 장면장면이 하나의 복선 내지는 숨겨둔 암시 같은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요컨대 퍼붓는 장대비는 연교의 가족에게는 스쳐가는 싱그러운 날씨의 한 부분이지만 기택의 가족에게는 풍비박산인 것이다. 기우의 가족은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 ‘프리텐더’로 계급을 올리려 투쟁을 한다. 기생충이 있어야 할 곳을 떠나 기생충이 있으면 안 되는 곳으로 기생충들이 프리텐더로 기생충이 아닌 모습으로 오르려 한다. 기생충은 항상 벽을 타고 어딘가로 오른다

 

하지만 프리텐더로 중무장한 기택의 가족이 아무리 오르려 해도 높은 계급사회에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동익을 죽인 기택이 숨어 있는 지하에서 빼내기로 한 기우는 자본을 끌어 모으면 이 저택을 구입하여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라고 한다. 하지만 기우의 현실은 반 지하에 있다

 

영화는 이렇게 끝나지만 기우가 어떤 식으로 저택을 구입할지에 대한 여지는 관객 몫으로 돌린다. 과연 기우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꼭대기 계급사회로 올라가기 위해, 이 저택을 구입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만 할까. 이 처절한 시기에 어떤 방법? 어떤 일을 해야 단번에 대저택을 구입할 수 있는 자본을 구할 수 있을까. 아마 어떤 이는 5년 동안 무슨 일을 했을지 모를 게츠비가 되어 나타나서 저택을 구입하지 않을까 라고 할지도, 또 다른 이는 기우가 계속 프리텐더로 사기를 쳐서 대저택을 구입하게 될지도, 또 어떤 사람은 결국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부분은 영화의 섬뜩함을 보여준다

 

기생충을 보면 봉준호의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가 떠오른다. 그곳에서도 지하세계에서 살아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 윤주는 공기가 좋은 숲에서 살아가고 싶지만 눈을 뜨면 숲보다 더 거대한 아파트숲의 중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그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알게 되는데 기생충의 기우와 기택의 모습도 아아 이 사람들 정말, 하는 생각이 든다

 

기생충에서 사건으로 발전을 하는, 스믈스믈 영화 속에 연기를 풍기는 건 ‘냄새’다. 우리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향수를 뿌리고 방향제를 뿌린다. 모두가 좋아하는 갓 지어낸 밥 냄새는 매일 밥을 퍼는 일을 하는 아주머니의 손에 그 냄새가 각인이 된다. 각인이 된 그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하나의 낙인이 된다. 낙인이 된 밥냄새는 더 이상 좋은 냄새도, 맛있는 냄새도 아닌 것이다. 사람의 감각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것이 후각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안 좋은 냄새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은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매일 씻고 바르고 뿌리는 것에 지치지 않는다. 냄새를 숨기기 위해 프리텐더하며 생활하지만 한 번 낙인 된 냄새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계급이 높은 냄새가 날리없고, 땀이 많이 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보송보송한 냄새가 날리 없다. 근세에게서 심하게 풍기는, 코를 막아야 하는 냄새는 바로 기택 자신에게서 나는 낙인 된 냄새였다. 동익이 그 냄새에 코를 막았을 때 기택은 (자연스럽게) 칼을 들게 된 것이다. 기생충은 두 번 세 번 보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요즘 보기에 참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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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밀면처럼 무서운 공포영화가 더위를 물리치는데 한 몫 한다. 공포영화의 법칙은 밀실이 있고 폐쇄된 공간에서 점점 죽음이 몰려온다면, 거기에 바다 밑과 상어가 등장한다면 더 없이 무서운 영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죠스 영화는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다. 작년의 메가로돈도 제이슨 스타덤을 내세웠지만 망했다

 

그런데 영화 ‘47미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끊어진 샤크 케이지가 47미터 밑으로 떨어지고 점점 사라지는 산소와 그 속에서 탈출하려는 케이트와 리사. 하지만 40미터 위로는 샤크들이 진을 치고 있고, 47미터 속 샤크 케이지 속에서 그들은 결국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이 영화는 진지하게 오싹하게 만드는 요인을 구석구석 잘 배치했다. 마치 정말 잘 버무린 겉저리 같다. 그렇게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바다 밑의 샤크 무비를 이렇게 잘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이 영화는 초반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바다 밑바닥의 씬이다. 그리고 공포감을 주기 위해 아주 최소한의 조명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영화 버닝에서 종수 부분을 이창동 감독이 자연광으로 촬영을 하여 종수의 그 암울하고 벗어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 떠오른다

 

맨디무어와 클레어 홀트의 얼굴이 어두컴컴하여 잘 보이지 않지만 바다 속 공포가 화면으로 활개를 치며 칼처럼 돋아 나온다. 실제 90%이상 수중촬영을 하다 보니 맨디 무어와 클레어 홀트는 8주 동안 매일 8시간씩 20피트의 수중 탱크 안에서 촬영을 해서 폐가 늘어나고 귀압력의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상어와 인간의 대결 같지만 실은 그 외의 공포가 사람을 조여 온다. 잠수병과 질소중독이 주인공들을, 그리고 보는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비록 상어에게 다리를 물렸지만 구조가 된다. 하지만 그건 질소로 인한 환각이었다. 다시 47미터 속 장면이 이어지고 리사는 질소 때문에 미쳐간다. 그때 구조대원 3명이 다가오고 무전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린 샤크 케이지. 리사는 구조대원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3명의 대원은 말이 없다

 

영화는 리사가 바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끝이 난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사람들은 생각해본다. 47미터에서는 무전이 들리지 않잖아?(초반 장면에서 47미터에서 무전이 되지 않아 40미터 까지 올라간다) 구조대원 3명은 뭐지? 조명탄을 켰을 때 샤크 3마리? 오 맙소사. 그럼 영화 후반 30분 정도를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가 봤단 말이야. 맙소사.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묘한 공포를 주고 있다

 

영화를 아주 잘 만들었다. 샤크 무비치고 이 정도로 만들 수 있다니 하며 좀 놀랐던 영화였다. 이제 47미터 2가 개봉을 한다. 47미터 2역시 예고편을 보면 기대가 된다. 보는 동안 조여오고 보고 난 후 더 오싹했던 영화 47미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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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존스 시즌 3도 재미있다. 시즌 1, 2가 슈퍼의 힘을 가진 제시가 그에 상응하는 슈퍼들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면 시즌 3에서는 일반 사람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일반 사람이지만 사람을 난도질해 죽이는 연쇄살인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법학을 전공했고 잡히더라도 법의 구멍으로 빠져나온다

 

연쇄살인마는 노력 없이 힘을 가진 슈퍼들을 증오하고 그들의 주위 사람들을 죽이거나 괴롭힘으로 제시를 압박한다. 이런 대결구도는 아주 흥미롭다. 슈퍼히어로 뉴욕 법상 죄를 가졌다 해도 일반인을 슈퍼의 힘으로 두들겨 패지를 못한다. 부글부글 거리게 만들고 잡혀가도 법망 안에서 안전하게 자신을 지킨다

 

법은 늘 악한자를 보호하고 처벌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마블 티브이 시리즈에 전부 깔려있다. 우리도 고유정 사건만 봐도 왜 저 여자를 밥을 먹여가며 씻겨주며 보호를 할까, 왜 법은 저 여자를 처벌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블의 데어 데블에서도 루크 케이지에서도 퍼니셔에서도 법은 악당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시카 존스 3에서는 그 사이에 연쇄살인마에게 엄마를 잃은 트리시가 시즌 2에서 얻게 된 슈퍼의 힘으로 죄를 짓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가면서 점점 자아를 잃어간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빌런은 누구일까. 슈퍼지만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제시가 빌런일까, 연쇄살인범인 일반 범죄자가 최고의 빌런일까, 슈퍼의 힘을 얻게 되어서 자아를 잃어가며 범죄자들을 법 대신 죽음으로 처벌하는 트리시가 최고의 빌런일까

 

최고의 빌런은 호가스 법률 사무소의 최고 수장인 제리 호가스가 아마도 최고의 빌런일지도 모른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악질의 범죄자도 돈만 내면 물불 안 가리고 변호를 해준다. 거기에 도덕적이거나 인간적이거나 윤리적인 면모는 1도 없다. 마치 우리나라 김엔장과 흡사하다. 돈만 낸다면 전범 기업의 변호까지 최고의 변호사들이 맡는다. 그들의 역사적 죄에 대한 생각은 1도 하지 않는다. 입금만 되면 설사 그들이 우리 민족을 유린했다 할지라도 성심성의껏 변호를 한다. 제시카 존스에서 아마도 최고의 빌런은 제리 호가스이다

 

제시카 존스의 역을 맡은 리터는 시즌 2와 시즌 3 사이에 출산을 하고 나와서 인지 아직 시즌 1, 2만큼의 몸은 아니다. 슈퍼지만 칼도 맞고 비장도 떼어내서 면역력도 떨어진다. 제시카 존스는 시즌 1이 가장 재미있었다.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빌런인 킬그레이브스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요즘 케이블에서 시즌 1이 하는 것 같다

 

시즌 3 마지막은 분명히 다음을 알리며 끝이 나지만 이제 제시카 존스의 제작은 없다고 하니 아쉽다. 제리 호가스의 사무실 벽에 걸린 저 그림 역시 너무 좋다. 마음을 확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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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윅의 세계관은 고독이다. 고독하며 고독하고 계속 고독하고 앞으로도 고독 할 수밖에 없다. 존윅의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서 존윅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존윅이 살아남고 싶은 이유는 고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존윅은 자신의 고독으로 아내와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살아남아야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는 수많은 킬러들을 되려 죽여야 한다. 고독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고 고독이 없으면 사는 게 무의미한 남자가 존윅이라는 생각이 든다. 존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독의 세계를 덮고 있는 것은 아내와의 추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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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에는 처음 등장부터 심상치 않아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심상치 않은 케릭터가 나온다. 왕좌의 게임 속 대부분의 캐릭터는 성장을 한다. 미숙하거나 무력한 모습에서 외부로부터의 충격에서 점차 성장해간다. 그건 피지컬도 그렇고 내적으로도 그렇다. 그런데 등장부터 모두를 눌러버리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어느 나라의 꼬마 영주이다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서 거침없고 아이지만 아이로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영주로서 자신의 백성을 생각하고 데리고 있는 나이가 많은 핸드와 여러 경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맹세를 철저하게 지킨다. 그것에 있어서 벗어날 시에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꼬마 영주가 나이트킹이 몰고 온 세력에 맞서 달려 나가는 장면은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최후를 맞이한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남성위주, 남성우월주의가 가득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전쟁이 치뤄지는 역사 속에서 여자는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왕좌의 게임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여성들이 어려움을 막아낸다. 나이트킹에게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도 한낱 꼬꼬마였던 아리아 스타크였다

 

데스나이트를 대동한 나이트킹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여러 나라의 영주와 왕들은 협정을 하고 모여든다. 그들은 이전에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고 상대편을 쓰러트려 무릎을 꿇리기 위해 죄도 없는 아이와 가족들까지 무참히 죽인다. 이쪽에서 봤을 때는 저쪽이 죄악이며 나쁜 사람들이지만 저쪽에서는 이쪽이 그저 적인 것이다. 오로지 무릎을 꿇게 하여 자신의 지배하에 집어 넣는 것이 목적인 인간들이 인간이 아닌 나이트킹의 부대와 맞서기 위해 다들 뭉치게 된다

 

고 노회찬 의원도 그랬다. 외계인, 이종이 쳐들어왔을 때는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뭉쳐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그러면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왕좌의 게임에서는 잘 보여준다. 뭉치기 전에는 절대 뭉칠 수 없을 것 같은 인간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뭉치면, 설사 희생이 따르더라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은 일본 정부라는 말도 안 되는 악마부대가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마구 쳐들어오고 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아베 만세를 외치며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 대통령이 아베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외치는 세력이 늘어났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정치인들은 보수 진보를 떠나서 지금은 뭉쳐야 할 때인데 이런 때일수록 더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떡볶이 팔고 시집이나 읽고 아이와 놀아주는 국민은 성숙한데 귀족 같은 정치인들이 미개스러우니까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빌런이 무너지는 장면이 떠들썩하지 않아서 좋다. 빌런이 죽 끌고 온 그 악마성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던 사람들이 모든 빌런을 기상천외하게 없애야 하는 다른 영화에 비해서 순간적이고, 고요하고 침착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좋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실은 거창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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