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에서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주옥같은 세계문학 중단편을 모아 noon 세트 10권과 midnight 세트 10권을 출간하였다. 이번에 읽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강연록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대학 강의실에서 여성 청중들을 향해 전달한 메시지를 글로 엮었는데 그녀의 소설에 비해 이해가 쉬운 작품으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다.
어느 가을 날,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뇌하다가 소설처럼 '나'라는 여성 화자를 설정하여 그녀의 행적을 쫒는 이야기를 허구로 만들어 낸 글로, 잔디밭과 도서관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당시에 여성들이 겪었던 차별적 내용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한 나는 예배당 앞에서 들어갈 마음이 사라져버렸다는 것......'나'는 곧 버지니아 울프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 열려 있지 않는 교육의 기회, 그리고 여성의 빈곤에 대해서도 지적해 나간다. 당시 이렇게 여성이 차별 받고 배제되는 모습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차별. 한쪽 성별의 안전과 유복함. 다른 성별의 궁핍함과 불안전함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는 그녀.
100년 전의 서양의 모습이지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9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 '아들과 딸'을 보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치관이 현대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여성이 지금까지 받아왔던 차별을 냉철한 인식을 갖고 이 책을 읽어나가려고 노력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뜨거운 울림으로 깊이 번져나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여성에 관해 주로 남성들이 쓴 글을 보며 남성들의 뿌리깊은 편견에 대한 생각을 썼는데, 남성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한다는 내용에서는 나 역시도 화가 날 수밖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뿌리깊은 가부장제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모든 남성중심의 권위주의 바탕에는 자기가 가진 걸 하나라도 빼앗기지 싫은 치졸한 기득권 의식이 깔려 있으며, 그 권위주의 아래에서 여성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눈치를 봐야하는지 말할 것도 없다.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500 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 울프. 500 파운드의 돈이 왜 필요할까? 고정된 수입이 없다면 원하지도 않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하고, 그렇게 재능이 소멸하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500 파운드의 돈이 단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 역사 속의 가난하고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 이제는 여성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최소한의 경제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미래나 과거를 사유하고 책을 보면서 꿈꾸고 길모퉁이를 배회하고 생각의 낚시줄을 강물 깊이 드리울 수 있는데 필요한 500 파운드의 돈을 말이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자기만의 방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홀로 사색하면서 완전한 자신만의 문장을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공간이다. 역사속에서 지워지고, 시와 소설에서 찬미의 대상으로만 그려질 뿐 역사 속의 주체로 그려지지 못한 여성들이 이제는 경제적 자립을 통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는 여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100년 지난 지금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으며 공감을 한다. 100년 동안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현재도 남성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을 갖을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